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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제5장 백육십팔

· 44화 중 4화 · 3,338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열다섯시 십이분에 다시 왔다.

이번 건 아까보다 적었다. 적은데 더 가까웠다. 진지 앞 도로에 하나가 떨어졌고 나는 그 순간에 3번포 뒤쪽 흙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확전 4화 제5장 백육십팔 — 헤더컷

윤지호가 탄약고 쪽에 있었다.

그 애는 포탑 밖에서 탄을 나르는 중이었다. 나르다가 엎드렸고, 일어나서 또 날랐다. 다음번에 내가 봤을 때 그 애 오른쪽 귀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목까지 내려와 있었다.

"지호야."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애 얼굴을 잡아 내 쪽으로 돌리고 귀를 가리켰다. 그 애가 손으로 귀를 만졌다가 손가락을 봤다. 그러고는 나를 봤다. 그 눈이 물어보는 게 뻔했다.

"괜찮아."

괜찮은지 나는 몰랐다. 위생병 데려오라고 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위생병은 지금 다른 데 있을 거였다.

그 애는 다시 탄을 들었다.

열다섯시 십구분에 5번포가 살아났다. 그쪽은 우리보다 빨랐다. 5번포 정비를 하던 애가 봄에 부산에서 전자과를 다니다 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다섯 문이 됐다.

4번포는 끝까지 안 됐다. 오전 열한시 사십분에 낀 그 탄이 오후 내내 거기 그대로 있었다.


열다섯시 이십오분부터는 손만 기억한다.

탄, 장약, 폐쇄기, 딸깍. 탄, 장약, 폐쇄기, 딸깍.

제원은 바뀌지 않았다. 그게 이상했다. 훈련 때는 표적이 자꾸 바뀌니까 숫자도 바뀐다. 그날 오후에는 같은 숫자가 계속 왔다. 사격지휘반에서 같은 걸 몇 번이나 다시 불러 줬다.

한 번은 김선우 중사 목소리가 갈라졌다. 목이 쉰 게 아니라 무전이 그런 건지 모르겠다.

나는 우리가 어디를 쏘는지 몰랐다. 알 필요가 없었다. 방위각이 있고 사각이 있고 장약 호수가 있으면 포는 나간다. 그 끝에 뭐가 있는지는 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면 그렇게 생각이 된다. 그게 편할 때가 있다.

배승기가 탄을 올리다가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놈 겨드랑이를 잡아 일으켰다. 일으켜 놓으니까 또 올렸다.

포탑 안이 뜨거웠다. 유압유 냄새하고 화약 냄새하고 사람 냄새가 섞여서 목구멍에 붙었다. 헬멧 안쪽으로 땀이 흘러서 눈에 들어갔다. 십일월인데 다들 웃통이 젖어 있었다.

열여섯시 사십이분에 하동찬이 내 팔을 잡았다.

포탑 안에서 그놈이 손바닥을 위로 펴 보였다. 없다는 뜻이었다.

탄약고가 비었다.


포상 밖으로 나오니까 저녁이 오고 있었다.

이준하 소위가 언덕길로 올라왔다. 판때기에 종이를 끼워 들고 있었고, 판때기 모서리가 깨져 있었다. 소위는 우리 앞에 서서 종이를 봤다.

"3번포."

"예."

"몇 발."

나는 대답했다. 우리 포가 쏜 수는 알고 있었다. 세고 있었으니까.

소위가 그걸 받아 적고, 다른 칸을 손가락으로 짚어 내려가다가 맨 아래에서 멈췄다. 그러고는 그 숫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나한테는 뭉개져서 들렸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소위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크게, 한 자씩 끊어서 말했다.

"백육십팔 발."

나는 속으로 한 번 더 셌다. 우리 포가 몇, 1번포가 몇, 6번포가 몇. 2번포하고 5번포는 중간에 들어왔으니까 덜 쐈을 거고. 그렇게 나눠서 붙여 보니까 얼추 맞았다.

맞으니까 이상했다. 아침에 서남쪽으로 쏜 것도 그 종이에 적혀 있을 텐데, 그건 다른 칸에 적혀 있을 것이다.

소위가 판때기를 내리고 나를 봤다.

"오 병장."

"예."

"손."

"예?"

"손 좀 보자고."


2010년 11월 23일 14시 36분 · 서울 합참 지하 지휘소 / 청와대 지하벙커 / 워싱턴

붉은 점을 먼저 본 것은 중령이 아니라 상병이었다.

전시상황도 앞자리에 앉은 그 아이는 이 년 가까이 같은 화면을 봤고, 그래서 화면에 없던 것이 생기면 손이 먼저 멈춘다. 아이가 헤드셋을 한쪽으로 밀며 뒤를 돌아봤다.

"연평에서 원점 올라옵니다."

작전1처장이 고개를 들었다.

"뭐가 올라와?"

"대포병 원점입니다. 궤적 세 개."

한지환은 두 걸음 만에 화면 앞에 섰다. 강령반도 남단이었다. 개머리라고 표기된 자리였다.

그는 그것을 두 번 봤다. 두 번 본 것은 못 믿어서가 아니라, 믿기 전에 확인하는 것이 그의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연평의 그 장비는 올해만 세 번 정비를 받았고, 지난 두 해 동안 상황판에 이런 것을 올려 보낸 적이 없다.

"확인해. 연평부대 직접 연결해."

"연결 중입니다."

"몇 시야."

"삼십육 분입니다."

확전 4화 제5장 백육십팔 — 전환컷

한지환은 화면 왼쪽으로 돌아가면서 상황판 아래쪽을 손등으로 스쳤다. 서부전선 지상군 배치가 그려진 구역이었다. 육군 1사단 마크 위를 손등이 지나갔고, 그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자리는 그날 그의 관심 밖이었다.

십사시 삼십구분, 연평부대 사격지휘반이 좌표를 수신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작전본부장이 뒤에서 말했다.

"원점이 잡혔다는 건, 지금까지 우리가 원점 없이 하던 걸 안 해도 된다는 거지."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 문장의 뒷부분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방의 스무 명이 동시에 알았다.


십사시 삼십팔분, 중부 기지에서 KF-16 두 대가 떴다.

십사시 사십육분까지 두 대가 더 뜨고 대구에서 F-15K 네 대가 떴다. 공중 상황도에 표시가 여덟 개 생겼다.

"무장 상태."

"공대공만입니다."

"공대지는."

"없습니다."

한민구가 그 보고를 서서 들었다. 합참의장은 그날 자리에 거의 앉지 않았다. 그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고 다시 썼다.

"북 항공기는."

"십사시 삼십분부터 다섯 대 떠 있습니다. 미그이십삼입니다. 내려오지는 않고 있습니다."

십사시 오십분,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다.

그 무렵부터 회의실에서 같은 단어가 돌기 시작했다. 처음 꺼낸 사람은 작전기획 쪽 대령이었다.

"항공 타격은 동종·동량 문제가 걸립니다."

"어디 규정인데."

"유엔사 교전규칙입니다. 상대가 포로 쐈으면 포로 답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게 그거잖아."

"포까지는 그렇습니다. 전폭기가 진지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건 다른 겁니다."

"다르다는 게 누구 판단이야."

대령이 대답하지 않았다.

연합사령관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월터 샤프는 그날 오후 내내 전화로만 그 방에 있었다. 통역이 필요 없는 통화였고, 그래서 오히려 문장이 짧았다. 상황을 확인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협의하자고 했다. 협의라는 단어가 세 번 나왔다.

십오시 삼십분, 판문점 채널로 전통문이 갔다. 즉각 중지하라는 것이었다.

답은 오지 않았다.


청와대 지하는 공기가 마른 곳이다.

이명박은 서서 보고를 받았다. 국방부 장관이 피해 상황을 읽었다. 전사자 수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이 두 번 나왔고, 민간인 피해 여부는 확인 중이라는 말이 세 번 나왔다.

대통령이 물었다.

"우리가 얼마나 쐈나."

"백 발이 넘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김태영이 잠깐 서류를 봤다. "발사 원점입니다. 이번엔 원점이 나왔습니다."

"이번엔?"

"…예."

대통령이 탁자에 손을 얹었다.

"다시는 도발할 생각을 못 하게 몇 배로 응징해야 돼. 군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거고."

방 안에서 아무도 그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나중에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이 이 순간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다음에 나온 문장 때문이었다.

누가 말했다.

"다만 확전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같이 보셔야 합니다."

누가 그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기억이 갈렸다.

천영우는 창문이 없는 벽을 보고 서 있었다. 외교안보수석으로 부임한 지 오 주째였다. 그는 이 회의에서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머릿속으로는 워싱턴 시각을 계산하고 있었다. 지금 그쪽은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었다.

"수석."

"예."

"미국은 뭐라 그래."

"아직 성명 전입니다. 나오면 규탄 표현은 들어갈 겁니다."

"들어가는 거 말고. 뭐라 그러냐고."

천영우가 대답을 고르는 사이에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종이 한 장이었다. 대통령은 그것을 받아 읽고 김태영에게 넘겼다.


워싱턴은 아직 어두웠다.

국방부 관사에 전화가 간 것은 자정을 조금 넘겨서였다. 태평양사령부를 거쳐 올라온 첫 보고는 짧았다 — 북한 포병이 한국 영토의 섬을 포격했고, 한국군이 대응사격 중이며, 사상자가 있다.

로버트 게이츠는 그 보고에서 두 가지를 물었다. 한국군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한국 공군이 떴는가.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떴다는 것이었고, 세 번째 물음은 그가 아직 하지 않았다.

새벽에 백악관에서 성명 초안이 돌았다. 문장은 세 개였다. 미국은 이 공격을 강력히 규탄하며(strongly condemns), 북한에 도발 행위 중단과 정전협정 준수를 촉구하고, 한국 방위에 대한 공약은 확고하다는 것.

한 실무자가 초안 여백에 연필로 물음표를 하나 그렸다. 규탄 문장 다음에 뭐가 더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뜻이었다. 그 물음표는 지워졌다.

국방부 브리핑룸의 조명은 아침에 켜졌다. 제프 모렐은 준비된 문장을 읽었다. 동맹의 의무를 지킬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기자 하나가 미국이 군사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 그 얘기를 하는 건 이릅니다."

그날 아침 워싱턴에서 이것을 전쟁이라고 부른 사람은 없었다.

그날 아침 워싱턴에서 이것을 전쟁이라고 부른 사람은 없었다.

남은 40화 · 약 141,155자 · 약 3시간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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