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3부 서울
16화제22장 남쪽으로
대전 임시수용시설은 실내체육관이었다.
입구에 책상이 있고 등록부가 펼쳐져 있었다. 칸이 여섯 개였다. 성명, 생년월일, 이전 주소, 동행 인원, 연락처, 그리고 마지막 칸은 제목이 비어 있었다. 앞사람들은 거기에 아무거나 적었다. 목적지를 적은 사람도 있고 혈액형을 적은 사람도 있었다.

박순임의 차례가 왔다. 노인이 볼펜을 잡았는데 첫 획에서 획이 두 번 끊겼다.
"할머니, 제가 쓸게요."
지원이 볼펜을 받았다. 박순임. 1941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 그리고 동행 인원 칸에서 손이 멈췄다.
노인이 옆에서 봤다.
"둘이라고 써."
"할머니."
"태우하고 둘이지."
지원은 2를 썼다. 자기 이름은 다음 줄에 따로 적었다. 동행 인원 칸에 1을 썼다.
사흘을 그 체육관에서 잤다. 사흘째 아침에 노인이 말했다.
"나는 여기서 좀 쉬어야겠다."
"부산은 배가 다녀요. 일도 있을 거고요."
"다리가 안 나가."
그 말이 사실인지 지원은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려면 노인의 다리를 봐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바닥 한쪽에 신문이 깔려 있었다. 열흘 전 것이었고 누가 매트 대용으로 편 것이었다. 발밑에서 활자가 반쯤 보였다. 정부 추정 사망자가 육천여 명으로 크게 줄었다는 제목이었다. 그 위에 누가 젖은 수건을 널어 놓아서 종이가 불어 있었다.
부산행 버스는 12월 8일 저녁 여섯 시에 체육관 앞에서 출발했다.
미연은 대구로 갔다. 이모가 거기 있다고 했다. 헤어질 때 둘은 악수를 했다. 왜 악수를 했는지 나중에 둘 다 설명하지 못했다.
지원은 버스 계단을 밟았다. 두 번째 계단에서 뒤에서 소리가 났다.
태우가 따라오고 있었다. 뛰어온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걸어서 버스 문 앞까지 왔고, 손잡이 쇠기둥을 두 손으로 잡았다.
박순임이 아이 어깨를 잡아 뗐다. 아이는 저항하지 않았다. 손이 기둥에서 떨어질 때 쇠에 닿는 소리가 짧게 났다.
버스 문이 접히며 닫혔다. 지원은 세 번째 줄 창가에 앉았다. 좌석 등받이에 누가 매직으로 뭐라고 써 놓았는데 읽지 않았다.
기사가 기어를 넣었다. 차체가 한 번 크게 흔들리고 나서 앞으로 나갔다.
그녀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어깨가 먼저 돌아가고 목이 따라갔다.
2010년 12월 4일 · 서울 광화문 지하보도 / 종로소방서
무전에서 나온 첫 숫자는 열둘이었다.
두 번째 무전은 스물이 넘는다고 했다. 세 번째는 숫자를 말하지 않고 안에 사람이 있다고만 했다. 차경석은 차가 흔들리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장갑을 꼈다. 왼쪽 손가락 두 개가 늘 뻑뻑했다. 그는 그것을 이로 물어 당겨 폈다.
"팀장님, 열둘입니까 스물입니까."
"신고자가 세 명이야. 셋이 다 다르게 말해."
"그럼 셋 다 안에 있던 사람은 아니네요."
"그렇지."
"그럼 안에 있던 사람은 신고를 못 했다는 거고요."
앞자리에서 팀장이 뒤를 한 번 돌아봤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차는 종로1가에서 더 못 갔다. 도로에 승용차가 문을 열어 놓은 채 서 있었고 그 옆으로 유모차가 넘어져 있었다. 대원들은 장비를 내려 들고 걸었다. 사백 미터쯤이었다. 유압 장비 가방은 둘이 들어야 하는 무게인데 그날은 하나씩 들었다. 인원이 모자랐다.
세종로 쪽 지하보도 남쪽 입구가 주저앉아 있었다.
계단 상단부 슬래브가 통째로 내려앉았고, 그 위에 보도블록과 흙이 쌓여 있었다. 콘크리트 조각 사이로 철근이 손가락처럼 휘어 나와 있었다. 북쪽 입구는 열려 있었다. 열려 있는데 안에서 바람이 안 나왔다.
차경석이 랜턴을 아래로 비췄다.
빛이 계단 열 몇 개를 내려가다가 검은 면에서 멈췄다. 물이었다. 표면이 아주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헬멧 뒤통수에는 흰 페인트로 번호가 찍혀 있다. 그의 것은 07이었다. 페인트가 두껍게 발려서 0의 가운데가 메워져 있었고, 그래서 멀리서 보면 07이 아니라 뭉개진 두 덩어리로 보였다.
"물이 왜 있어." 막내 이성진이 말했다.
"관 터졌겠지." 차경석이 헬멧 끈을 조였다. "그리고 여기 펌프가 있어. 지하는 원래 물이 올라와. 그래서 하루 종일 퍼내는 거야. 전기 나가면 못 퍼내."
"그럼 며칠째—"
"그러니까 지금 들어가야지."
그는 랜턴을 입에 물었다가 뺐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성진아, 나 수영 못 하는 거 알지."
"진짭니까."
"몰라. 해 본 적이 없어서."
세 명이 먼저 내려갔다. 물은 종아리였다. 차고 탁했고 기름 냄새가 났다.
지하보도 안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포격이 시작된 뒤에 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벽을 따라 종이상자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이불과 옷가지가 쌓여 있었다. 기둥마다 비닐끈이 매여 있고 거기에 수건이 널려 있었다. 누가 라면 상자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 두었다.

명단은 없었다. 여기 몇 명이 있었는지 적어 둔 종이가 아무 데도 없었다.
첫 번째는 여자였다. 무너진 쪽 벽에 붙어 앉아 있었고, 발이 콘크리트 덩어리 아래에 있었다. 스프레더로 오 센티를 들었다. 여자가 빠져나오면서 제일 먼저 한 말은 신발이었다.
"신발 저기 있어요. 저기."
"나가서 드릴게요."
"저거 산 지 얼마 안 됐는데."
두 번째, 세 번째는 걸을 수 있었다. 노인 남자 하나는 배낭을 안 놓겠다고 버텼고, 대원이 배낭을 대신 메고 나가겠다고 하니까 그제야 놓았다. 배낭 안에서 그릇 부딪는 소리가 났다.
네 번째부터 물이 무릎이었다.
물은 남쪽에서 왔다. 무너진 계단 쪽에서 흘러 내려왔고, 흘러 내려오면서 잔해를 밀었다. 랜턴 빛에 잡히는 것은 물 위에 뜬 것들이었다. 슬리퍼 한 짝, 라면 봉지, 두루마리 휴지, 아이 장갑.
다섯 번째는 안 보이는 데 있었다. 소리로 찾았다. 두드리는 소리였는데 한 번씩 쉬었다. 차경석이 무릎을 물에 넣고 벽에 귀를 붙였다.
"여기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같이 있었다. 남매였고 스무 살 안쪽으로 보였다. 여자애가 남자애 팔을 붙잡고 놓지 않아서 둘을 한 번에 밀어 올렸다.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하는 일이 이상했다. 여자는 담요를 받자마자 그것을 반듯하게 개어서 무릎에 올려놓았다. 배낭을 안은 노인은 지퍼를 열어 안을 확인하고 다시 잠갔다가 또 열었다. 남매 중 오빠는 젖은 지폐를 꺼내 보도블록 위에 한 장씩 펴서 널었다. 물 자국이 번져 나가는 것을 그가 쭈그리고 앉아 봤다.
여덟 번째는 노숙하던 남자였다. 다리를 못 썼다. 그런데 그 남자가 통로 구조를 알고 있었다.
"저쪽 끝에 계단 하나 더 있어요. 지금 잠겨 있는데."
"몇 명 더 있습니까."
"…아까까지는 있었어요."
차경석은 여덟 번째를 업고 북쪽 입구 계단을 올라왔다.
지상에 내려놓고, 헬멧을 벗고, 무릎에 손을 짚었다. 숨이 짧게 여러 번 나왔다. 공기호흡기 압력계를 들여다보고 손등으로 유리를 문질렀다.
팀장이 왔다.
"몇이야."
"여덟입니다."
"안에 몇이었는데."
"모릅니다."
둘 다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위쪽 어디선가 또 한 발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멀었다.
"물 어디까지 찼어."
"허리요."
"경석아."
"제가 아까 그 안쪽 통로를 봤습니다. 물이 저쪽에서 오는데, 저쪽에 사람이 있으면 저쪽이 먼저 찹니다."
"봤어? 사람을?"
"소리를 들었습니다."
"물소리겠지."
차경석이 헬멧을 다시 썼다. 턱끈을 두 번 당겨 조였다.
"팀장님, 저 헬스 삼 년 했다니까요."
"이 새끼가."
"십 분입니다. 십 분 안에 안 나오면 부르지 마세요. 목만 아파요."
이성진이 로프 끝을 그의 벨트에 걸려고 했다. 차경석이 손등으로 그것을 밀었다. 안쪽에 걸리는 데가 너무 많다고, 그러면 못 나온다고 했다. 그러고는 랜턴을 켜서 한 번 흔들어 보이고 계단을 내려갔다.
팀장은 클립보드를 들고 있었다.
출동일지에는 시각과 번호를 적는 칸이 있다. 그는 볼펜으로 한 줄을 적었다. 1531, 07, 재진입. 그 줄 오른쪽에는 빈칸이 하나 더 있었다. 나온 시각을 적는 칸이었다.
입구에 남은 사람들은 소리로 그를 따라갔다.
물을 헤치는 소리가 났다. 규칙적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 소리가 왼쪽으로 옮겨 갔다.
무전이 왔다. "안쪽 통로 진입."
물소리가 잠깐 멈췄다. 그리고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두 번 났다. 대답하는 소리가 났다. 사람 소리였다.
이성진이 계단 두 개를 내려갔다. 팀장이 그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무전이 다시 왔다. 말이 아니라 숨소리였다. 그리고 뭐라고 했는데 세 글자쯤이었고, 그 뒤가 잘렸다.
지하에서 낮고 긴 소리가 났다. 땅을 통해 발바닥으로 먼저 왔다.
입구에서 먼지가 밀려 나왔다. 흰 먼지가 계단을 타고 올라와 사람들 다리를 지나갔다.
무전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팀장의 손에 볼펜이 들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클립보드 위에 대지 않았다. 손등에 먼지가 앉는 것을 그대로 두고 서 있었다.
이성진이 입구 쪽으로 대고 이름을 불렀다. 세 번 불렀다. 세 번째는 소리가 갈라졌다.
그 소리가 그친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이 계단을 때리는 소리만 났다. 한 번, 한 번, 한 번. 아까부터 나던 소리였다.
물이 계단을 때리는 소리만 났다. 한 번, 한 번, 한 번. 아까부터 나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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