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1부 11월 23일
6화제8장 트럭 소리
윤지호는 잠을 안 잤다.
거즈를 붙인 쪽 귀가 아픈지 자꾸 그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나한테 왔다.

"병장님."
"어."
"우리가 쏜 거요."
"어."
"그거 어디로 간 겁니까."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제원이 계속 같은 거였잖습니까. 그럼 한 군데로 계속 간 거 아닙니까."
"자라."
"거기에 사람이…"
"자라고."
그 애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나서 안 갔다. 그냥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스무 살짜리가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서 앉아 있는 게 옆구리로 느껴졌다.
김선우 중사가 반대편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이병."
"예!"
"여기 와서 이거 좀 잡아."
중사는 무전기 배터리를 갈고 있었다. 잡을 게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윤지호는 가서 그걸 잡았고, 중사는 그 애한테 접점 닦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건 이렇게 하고, 이건 물 묻으면 안 되고.
십 분쯤 그러고 나서 중사가 말했다.
"오늘 한 거는 오늘 거고."
"예."
"내일 거는 내일 아침에 생각하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두 번 하는 거잖아."
"예."
"그게 손해야."
윤지호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직 애였다.
열 시 반에 이준하 소위가 벙커 입구에 왔다.
들어오지는 않고 문틀에 손을 짚고 서서 나를 불렀다. 나가 보니까 그 판때기를 아직 들고 있었다.
"오 병장."
"예."
"아까 3번포 발수 말이야."
"예."
"다시 한번 말해 봐."
나는 말했다. 소위가 그걸 종이에 대고 확인했다.
"맞네."
"맞습니다."
"어."
그는 안 갔다. 종이를 한 장 넘겼다가 도로 덮었다. 손전등을 껐다 켰다 했다.
"소위님."
"어."
"뭐 안 맞습니까."
"아니야. 맞아. 다 맞아."
그러고는 갔다.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손전등을 자기 발 앞에만 비추고 갔다.
나중에 정한길이 그러는데, 그날 밤에 소위가 사격지휘반에서 종이를 세 번 다시 정리했다고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열한 시쯤 신호가 잠깐 잡혔다.
나는 언덕 중턱까지 올라가서 문자를 보냈다. 누나한테였다.
살아 있음.
그거 하나 치고 나서 좀 더 쓸까 하다가 그냥 보냈다. 우리 남매는 원래 말이 짧다. 어머니한테는 안 보냈다. 어머니는 문자를 잘 못 읽는다. 그리고 이런 걸 문자로 알면 밤새 앉아 있을 사람이다.
답이 바로 안 왔다.
십 분쯤 기다리다가 내려왔다. 벙커 앞에서 한 번 더 꺼내 봤는데 여전히 없었다.
답은 열한 시 사십 분에 왔다.
어디 다쳤어
나는 아니라고 쳤다가 지웠다. 손이라고 쳤다가 그것도 지웠다. 결국 이렇게 보냈다.
안 다침. 자.
누나는 그다음 날 아침까지 답을 안 했다. 나중에 알기로는 그날 밤에 회사 사람들하고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서울 사람들은 그날 밤에 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정쯤 밖으로 나갔다.
담배 때문이 아니라 벙커 안이 더워서였다. 밖은 찼다. 서쪽에서 바람이 왔고 재 냄새는 아까보다 덜했다.
바다 쪽은 아무것도 안 보였다. 육지 쪽도 안 보였다. 등화관제라 이쪽이 캄캄하니까 저쪽이 더 캄캄했다.
그때 소리가 왔다.
낮게 깔린 소리였다. 포성이 아니었다. 포성은 한 번에 끝나는데 이건 계속됐다. 웅, 하고 끊겼다가 다시 웅, 했다. 오른쪽 귀로 들었다.
나는 그게 뭔지 알았다. 목포 부두에서 밤에 나던 소리하고 비슷했다. 차 소리다. 짐칸에 뭘 실은 차가 언덕을 올라갈 때 나는 소리.
한 대가 아니었다.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김선우 중사였다. 언제 왔는지 모르겠다.
"들리냐."
"예."
"몇 대 같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한참 그러고 서 있었다. 소리는 끊어졌다가 이어지고 끊어졌다가 이어졌다. 한 번은 아주 가까이 온 것처럼 커졌다가 다시 멀어졌다. 실제로 가까이 온 게 아니라 바람이 방향을 바꾼 거였을 것이다.
이십 분쯤 계속됐다. 나는 그 소리가 그칠 때까지 세다가 그만뒀다. 세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숫자였다.
중사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성냥을 손으로 감싸서 켰다. 불빛이 손가락 사이로 잠깐 붉게 새어 나왔다가 꺼졌다.
"중사님."
"어."
"저거 우리 쪽으로 오는 겁니까."
"아니."
나는 더 물으려다가 말았다. 물어도 이 사람이 알 리가 없었다.
중사가 담배를 두 모금 빨고 발로 비볐다.
"저쪽도 밤에 일하네."

2010년 11월 24일 00시 20분 · 연평도 부두·포7중대 진지
배는 불을 다 끄고 들어왔다.
기관 소리만 먼저 오고 형체는 나중에 왔다. 부두에 선 사람들도 등화관제라 손전등을 땅에만 비췄다. 그래서 첫 상자가 램프를 내려올 때 나는 그것이 상자인 줄 몰랐다. 어둠에서 네모난 것이 떨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잡아."
김선우 중사의 목소리였다. 나는 손을 뻗었고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무거웠다. 낮에 쏘던 것과 같은 물건인데도 무거웠다. 낮에는 포탑 안에서 자동장전기가 받아 주고 나는 방향만 잡았다. 여기서는 사람 손이 전부였다.
"몇 상자야."
이준하 소위가 종이를 들고 물었다. 그는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세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세고 있었다. 열둘, 열셋. 하동찬이 앞을 잡고 내가 뒤를 잡았다. 배승기가 뒤에서 손을 대는 시늉을 했다. 정선에서 온 그 애는 팔이 가늘다.
"승기야, 힘 빼고 무릎으로 들어."
"예."
"허리로 들면 내일 못 쏜다."
윤지호는 아예 상자를 놓쳤다. 나무 모서리가 자갈에 부딪는 소리가 부두 끝까지 갔다. 부천에서 온 이병, 자대 온 지 사십 일. 어제 오후에 그 애는 포탑 바깥에서 탄을 나르다가 귀에서 피가 났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괜찮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 말고 할 말이 없었다.
섬은 아직 탔다.
산 쪽에서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아, 능선을 따라 주황색 점이 몇 개 남아 있었다. 바람이 남서에서 왔다. 그래서 냄새가 부두까지 왔다. 나무 타는 냄새하고, 나무가 아닌 것이 타는 냄새하고.
정한길이 상자를 내려놓으며 코를 훌쩍였다.
"형님, 이거 오늘 밤 안에 다 올립니까."
"올려야지."
"저 배에 저게 다입니까?"
"저 배에 저게 다면 좋겠지."
한 시 반쯤 두 번째 배가 들어왔다. 장약은 따로 왔다. 탄이랑 장약을 같은 배에 안 싣는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이 섬에 온 뒤로 배에서 탄이 내려오는 걸 본 건 그 밤이 처음이었다.
세다가 놓쳤다. 마흔넷까지는 확실했다. 그다음부터는 손이 세고 머리는 안 셌다.
강민수 대위가 부두에 두 번 내려왔다. 처음에는 뒷짐을 지고 왔다가, 두 번째에는 아무 말 없이 상자 한쪽을 잡았다. 중대장이 상자를 드는 걸 보고 정한길이 나를 팔꿈치로 쳤다. 나는 못 본 척했다.
"중대장님, 저희가 하겠습니다."
"됐어."
"각 나옵니다, 그러다."
"각은 무슨."
그는 상자를 트럭 짐칸까지 밀어 올리고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그러고는 이 소위를 불러 종이를 받아 들고 손전등으로 비춰 봤다. 한참을 봤다. 오래 볼 만한 종이가 아니었다. 숫자 몇 줄이었다.
"이거 다 올리면."
"예."
"올리면 몇 발이야."
이 소위가 숫자를 말했다. 강 대위는 그 숫자를 되받아 말하지 않았다. 종이를 접어서 돌려주고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진지로 올라가는 길에 의무대 앞을 지났다.
천막 옆에 야전침대가 몇 개 나와 있고, 그 위에 모포가 덮여 있었다. 모포 끝에 종이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끈으로 묶은 것도 있고 테이프로 붙인 것도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지나갈 때 글씨가 잠깐 보였다.
계급하고 이름하고 군번이었다.
나는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게 아니라 그냥 발을 안 멈췄다. 앞사람 뒤통수를 보고 걸었다. 앞사람은 하동찬이었고 하동찬은 목이 굵다.
뒤에서 누가 말했다.
"우리 중대는 없대."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 말이 맞는지 틀린지 그때는 몰랐다.
천막 안에서 사람이 하나 나왔다. 위생병인지 군의관인지 모르겠는데, 앞치마 같은 걸 두르고 있었다. 그가 야전침대 사이에 서서 종이 하나를 고쳐 붙였다. 테이프가 잘 안 붙는지 두 번 눌렀다. 그러고는 손을 옆구리에 문지르고 다시 들어갔다.
부천 애가 걸음이 느려졌다. 나는 뒤로 손을 뻗어 그 애 군장 멜빵을 잡고 앞으로 당겼다.
"보지 마."
"안 봤습니다."
"봤잖아."
"…예."
"봤으면 됐어. 걸어."
세 시가 넘어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표준호 상사를 봤다.
접시 같은 안테나가 달린 차 옆이었다. 상사는 바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무릎 사이에 손을 넣고, 담배는 입에 물기만 하고 잘 안 빨았다. 재가 길게 붙어 있었다.
"고생하십니다."
"어."
나는 옆에 서서 같이 피웠다. 그 차는 늘 저기 있었고 늘 정비 중이었다. 내가 전입 왔을 때도 있었고 봄에도 있었고 여름에도 있었다. 정비관들이 그 차 밑에 들어가 있는 걸 여러 번 봤다.
"그거 고쳤어요?"
상사가 담배를 손가락으로 털었다. 재가 떨어졌다.
"됐지."
"언제요."
"이십이일 밤에."
그는 그 말만 하고 더 안 했다. 나도 더 안 물었다. 그때 나는 그 차가 무슨 일을 하는지 대충만 알았고, 어제 오후에 우리가 쏜 좌표가 어디서 왔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좌표는 사격지휘반에서 온다. 사격지휘반은 김 중사 목소리다. 나한테 세상은 거기까지였다.
상사는 일어나서 함체를 손등으로 한 번 쳤다. 쇳소리가 짧게 났다. 손을 대고 잠깐 그대로 있었는데, 온도를 보는 사람 같기도 하고 그냥 짚고 선 사람 같기도 했다.
"몇 년 됐어, 이 섬에."
"일 년 반 넘었습니다."
"어디야, 집이."
"목포입니다."
"멀다."
"배 타면 금방입니다."
그는 웃지 않고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꽁초를 발로 비볐다.
"자라, 병장."
"예."
"자둬. 진짜로."
그는 웃지 않고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꽁초를 발로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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