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3부 서울
13화제18장 육지
집결지는 시내 구민회관이었다.
강당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매트가 모자라서 뒤쪽 절반은 그냥 마루였다. 우리는 뒤쪽이었다. 화장실은 두 칸이었고 남자 스무 명이 줄을 섰다. 세면대 물은 나왔다. 나는 손을 씻는데 물이 검게 흘러내리는 걸 보고 손을 계속 씻었다. 한길이가 옆에서 "행님 손 다 벗겨지겠다"고 했다.

밥은 컵라면이었다. 주는 사람이 뜨거운 물을 부어 주면서 삼 분이라고 했다. 나는 삼 분을 셌다. 백팔십까지. 세다가 백사십쯤에서 잊어버려서 처음부터 다시 셌다.
이준하 소위가 명단을 들고 왔다. A4 용지 넉 장이었고 프린터 토너가 떨어져서 끝 줄이 흐렸다. 소대별로 이름이 인쇄돼 있고 옆에 빈칸이 있었다. 볼펜으로 자기 이름 옆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3번포는 다섯 줄이었다.
오태석. 하동찬. 정한길. 배승기. 윤지호.
나는 내 칸에 서명하고 볼펜을 하동찬에게 넘겼다. 동찬이가 서명하고 한길이한테 넘겼다. 한길이가 서명하고 손을 멈췄다. 그다음 줄이었다.
"그냥 넘겨."
한길이가 지호한테 볼펜을 넘겼다. 지호가 서명을 하는데 손이 떨려서 글씨가 두 칸에 걸쳤다.
이준하 소위가 명단을 걷어 갔다. 다 걷고 나서 종이를 한 번 세로로 훑어봤다. 빈칸이 몇 개인지 세는 것 같았다. 세다가 그만두고 클립을 꽂았다.
전화는 저녁에 됐다.
낮에는 계속 안 됐다. 신호가 가다가 끊기거나, 아예 안 가거나, 통화량이 많다는 녹음이 나왔다. 강당 창가 쪽이 그나마 잘 터진다는 말이 돌아서 거기에 사람이 몰렸다. 어떤 병사는 팔을 창밖으로 뻗고 통화했다. 그러면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서 자기도 안 들리는데, 그래도 다들 그렇게 했다.
회관 계단참에서 다들 순서대로 걸었다. 나는 세 번째였다. 누나 번호를 눌렀는데 한 번에 갔다. 신호가 두 번 갔다.
"어."
"태석아."
"어."
"너 어디야."
"인천."
"인천 어디."
"몰라. 회관."
누나가 뭐라고 했는데 뒤에서 사람 소리가 커서 안 들렸다. 나는 준비했던 말이 있었다.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 목포로 가라는 말, 회사 그만두라는 말. 하나도 안 나왔다.
"누나."
"응."
"엄마는."
"연락 안 돼. 어제부터."
"어."
"너 안 다쳤어?"
"어."
"어라고 하지 말고."
전화기에서 삑 소리가 두 번 났다. 그리고 잡음이 되고 끊겼다. 이십 몇 초쯤 됐을 것이다.
나는 다시 걸었다. 안 갔다. 한 번 더 걸었다. 안 갔다.
뒤에 지호가 서 있었다. 나는 비켜 주려고 몸을 돌렸는데, 손은 아직 그대로였다. 전화기가 귀에 붙어 있었다. 플라스틱이 따뜻했다. 내 체온이었다.
2010년 11월 26일 · 서울 용산 합동참모본부 /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캐비닛 세 번째 칸에서 나온 것은 세 종류였다.
산업동원. 인력동원. 물자동원.
한지환 중령은 세 개의 파일철을 회의 탁자에 나란히 놓았다. 표지의 결재란에는 도장이 찍혀 있었고, 가장 최근 것이 재작년 것이었다. 그는 첫 번째 것을 펴서 목차를 읽었다. 공장을 어떻게 군수로 돌리는가. 두 번째. 예비군을 어떻게 소집하는가. 세 번째. 유류와 식량을 어떻게 걷는가.
"사람을 빼는 건 없습니다." 작전1처 소령이 말했다.
"없어?"
"넣는 계획은 다 있는데요. 빼는 건 없습니다."
한지환은 파일을 덮었다. 표지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가 뗐다. 그러고는 다른 칸을 열었다.
거기에는 목록이 하나 있었다. 「민방위 대피시설 현황」. 인쇄물이 아니라 시디였고, 옆 컴퓨터에 넣으니 표가 열렸다. 행이 수천 개였다. 시설명, 주소, 수용인원, 시설유형.
시설유형 칸을 정렬해 봤다.
지하주차장. 지하주차장. 지하상가. 지하주차장. 아파트 지하. 지하철역. 지하주차장.
소령이 화면을 아래로 굴렸다. 굴러도 같았다.
"수용인원 합계는 나옵니까."
"함수 걸면 나오는데요." 소령이 마우스를 몇 번 눌렀다. 셀 하나에 숫자가 떴다. 그는 그것을 한참 봤다. "이게 맞을 리가 없습니다. 이 목록은 그냥 등록된 걸 다 더한 겁니다. 문이 잠겨 있는지, 차가 들어차 있는지, 안에 사람이 설 자리가 있는지는 아무 데도 안 적혀 있습니다."
한지환은 옆에 있던 다른 서류를 집었다. 통계 담당관이 아침에 올린 한 장짜리였다. 첫 줄에 수도권 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만 단위로 반올림하지 않은, 끝자리까지 나온 숫자였다.
그는 그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봤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에 정부중앙청사 회의실로 옮겼다.
행정안전부 사무관이 목록에서 무작위로 세 곳을 뽑았다. 마포, 노원, 영등포. 스피커폰으로 걸었다.
첫 번째는 신호만 갔다. 마흔 번쯤 가고 끊겼다.

두 번째는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
세 번째는 받았다. 나이 든 남자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행정안전부입니다. 거기가 민방위 대피시설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예?"
"지하 2층에 수용인원 육백이십 명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사람 들어와 있습니까."
잠깐 조용했다.
"여기 차 대는 뎁니다."
"압니다. 사람이 들어와 있냐고요."
"차가 있으니까 사람은 못 들어오죠. 차를 빼요?"
사무관이 스피커를 손으로 막고 옆 사람을 봤다. 옆 사람은 서류를 보고 있었다.
"일단 그대로 두시고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그가 목록의 그 행에 노란 형광펜을 그었다. 그리고 위아래를 봤다. 같은 유형이 화면 하나 가득이었다. 그는 형광펜 뚜껑을 닫았다.
이튿날 아침 회의에는 세 팀이 들어왔다.
각자 종이를 한 장씩 냈다. 한지환은 세 장을 나란히 놓았다. 맨 아래 줄의 숫자가 서로 열 배쯤 달랐다.
"가정부터 말씀하시죠." 한민구 의장이 말했다.
첫 번째 팀은 불발률을 이야기했다. 연평도에서 확인된 비율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했다. 넷 중 하나는 터지지 않는다. 그리고 갱도 포병은 처음부터 전부 나오지 않는다. 예비를 남긴다. 그래서 세 문 중 두 문만 쏜 것으로 잡았다.
두 번째 팀은 그 가정을 쓰지 않았다.
"이번엔 예비를 안 남깁니다." 사십대 연구원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저쪽은 이게 마지막인 걸 압니다."
"근거는."
"근거는 없습니다. 판단입니다."
세 번째 팀은 대피 속도를 다투었다. 종이에 그린 그래프가 세 시간 지점에서 꺾여 있었다. 지표면 인구의 절반이 그때쯤 지하로 들어간다는 곡선이었다.
"이 절반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김태영 장관이 물었다. 그는 이틀째 같은 옷이었다.
"미국 연구소 가정입니다."
"우리 건 없고요."
"없습니다."
장관은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안경을 벗어서 손수건으로 닦았다. 닦고 나서 다시 쓰지 않고 탁자에 놓았다.
회의실 구석 텔레비전에는 소리가 꺼져 있었다. 자막이 지나갔다.
정부, 사망자 3만여 명 추정 … 그저께 3천여 명에서 크게 늘어
아무도 그쪽을 보지 않았다.
오후에는 서울시에서 온 사람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는 화이트보드에 세 개의 선을 그렸다. 경부, 중부, 서해안. 각 선 옆에 시간당 통과 대수를 적었다. 그다음에 승용차 한 대에 몇 명이 타는지를 적었다. 그다음에 나눗셈을 했다.
한 번 하고, 지우고, 다시 했다.
"이게 맞나요." 누가 물었다.
"차가 전부 있고, 기름이 전부 있고, 아무도 안 서고, 사고가 한 건도 안 나면 이겁니다."
"그러면 며칠입니까."
서울시에서 온 사람은 대답 대신 마커를 보드에 대고 그대로 있었다. 잉크가 번져 점이 커졌다. 그는 그 점을 손등으로 문질러 지웠다.
"열차는요." 다른 쪽에서 물었다.
"철도는 노선이 정해져 있어서 더 셉니다. 대신 한 군데만 끊기면 그 노선 전체가 없어집니다."
공항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인천공항은 설계된 것보다 이미 많이 처리하고 있었고, 여유분이라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국제선은 전날부터 서지 않았다. 활주로는 멀쩡했다. 보험이 문제였다.
"외국 항공사들이 안 뜬다는 게 아니라, 못 뜬다는 겁니다." 국무총리실에서 온 국장이 말했다. "보험사가 구역을 지정하면 기장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대사관들은요."
"자기들 전세기를 부르고 있습니다. 어제 세 나라가 붙였는데, 자국민 명단을 먼저 달라고 우리한테 요청이 왔습니다. 우리가 그 명단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누가 도시락을 들여왔다. 스무 개쯤 되는 상자를 탁자 끝에 쌓아 놓고 나갔다. 아무도 집지 않았다. 삼십 분쯤 뒤에 한 사람이 일어나 하나를 집었고, 그러자 네 사람이 따라 일어났다. 뚜껑 여는 소리가 회의 중에 계속 났다.
한지환은 저녁에 상황판 앞으로 돌아왔다.
민간 피해란은 비어 있었다. 그는 검은 마커로 숫자를 하나 적었다. 오후에 올라온 것이었다.
한 시간 뒤에 그것을 지웠다. 마른 지우개가 잘 먹지 않아서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질렀다. 그 자리가 조금 번들거렸다.
밤 열 시가 넘어 새 종이가 올라왔다. 앞의 것보다 작은 숫자였다. 위에서 다시 계산한 것이라고 했고, 계산을 다시 한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상황실 뒤쪽에서 야간 근무자가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물 끓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전화 두 대가 동시에 울렸고 한 대는 아무도 받지 않았다.
한지환은 마커의 뚜껑을 열었다. 번들거리는 자리에 펜 끝을 갖다 댔다. 첫 획을 긋기 전에 손이 멈췄다.
그는 뚜껑을 다시 닫았다. 마커를 판 아래 선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그는 뚜껑을 다시 닫았다. 마커를 판 아래 선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남은 31화 · 약 109,305자 · 약 2시간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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