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4부 개입(介入)
18화제25장 열두 척
샤프 대장은 회의가 파한 뒤에 들어왔다. 그는 코트를 벗지 않고 벽 앞에 섰다. 데프콘 3이 열아홉 날째였고 그의 얼굴은 열아홉 날치만큼 상해 있었다.
"3주." 그가 오른쪽 종이의 빈칸을 보며 말했다. "배가 오는 데 3주면, 그동안 전선은 누가 잡나."

"한국 육군입니다." 캘러헌이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 공군이요."
"공군은 표적을 때리지 땅을 잡지 않아."
"압니다."
샤프는 왼쪽 종이의 1단계 항목을 손가락 관절로 두 번 두드렸다. 서울을 지키는 것. 그 계획이 쓰였을 때 서울은 아직 사람이 사는 도시였고, 지금 그 줄은 한국 정부가 지난주에 이만 팔천이라고 발표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숫자를 믿는 사람은 발표한 쪽에도 없었다.
"이 종이 어디에도 '늦게 온다'는 항목은 없군." 그가 말했다. "좋은 계획은 다 그래. 도착하는 날짜만 있고 도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없어."
박 대위는 오른쪽 종이의 빈칸을 봤다. 그 칸을 채우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한 줄이 늘 때마다 그는 배 한 척이나 비행기 한 대를 세는 것이고, 왼쪽 종이는 그 줄이 여섯 페이지쯤 더 있어야 완성되는 문서였다.
12월 20일, 평택. 창고는 축구장 두 개만 했고 안이 바깥보다 추웠다.
방수포를 걷자 기름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보존유는 오래되면 단내가 난다. 그 아래에 브래들리가 있었다. 포탑에 붙은 종이 꼬리표에는 2003년에 찍은 날짜와 누군가의 서명이 있었다. 서명한 사람은 아마 지금 이 나라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비행기로 옵니다." 창고를 관리해 온 군무원이 손전등으로 열을 비췄다. 예순 가까운 한국 사람이었고 영어를 쓰지 않았다. "장비는 여기 있었고요. 이십 몇 년 됐습니다, 이 짓."
불빛이 차체를 따라 갔다. 궤도, 궤도, 궤도. 그다음 열은 견인차와 연료차였다. 통로 끝에서 빛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같은 것이 이어졌다.
박 대위는 차체에 손을 얹었다. 쇠가 손바닥의 온도를 그대로 빨아갔다.
"배터리는 다 갈아야 됩니다. 그건 못 재워 놓거든요." 군무원이 손전등을 껐다. "그거만 오면 됩니다. 사람이랑 배터리."
"포병은요."
"포병은 여기 없습니다." 군무원이 잠깐 웃었다. 웃음 같지 않은 웃음이었다. "그건 원래 배로 오는 겁니다."
12월 24일, 워싱턴. 국방장관 집무실 창밖은 네 시가 조금 지났는데 벌써 어두웠다.
게이츠 앞에 폴더가 세 개 놓여 있었다. 이라크 — 새벽 작전, 약 5만. 아프가니스탄 — 약 10만. 세 번째 폴더는 3주 전에 만들어졌고 아직 표지가 임시 라벨이었다. 누가 라벨을 손으로 썼는지 글씨가 반듯하지 않았다.
"항모 두 개를 본토에서 뺍니다." 멀린이 말했다. "그러면 중동에 한 척 남습니다. 그 이하로는 못 갑니다. 호르무즈에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조건으로요."
"11월에 내가 뭐라고 했지."
"'Disproportionately aggressive'라고 하셨습니다. 한국 측 계획에 대해서요."
"전화가 하루 늦었어." 게이츠가 안경을 벗었다가 닦지 않고 도로 썼다. "이제 그 말은 회고록에나 쓸 문장이지."
멀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게이츠가 세 번째 폴더를 열고 병력 소요란을 손톱으로 짚었다.
"69만."
"예."
"이 숫자를 우리가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계산해 본 게 언제야."
"1999년입니다, 장관님. 그 뒤로는 갱신만 했습니다."
게이츠는 폴더를 덮었다. 갱신이라는 말을 그는 오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숫자를 다시 세지 않고 날짜만 바꾼다는 뜻이다.
12월 28일 아침, 다시 지하 회의실. 밤사이 북한 공군의 마지막 가동 편대가 지상에서 정리됐다는 보고가 올라와 있었다. 벽의 오른쪽 종이에 줄이 두 개 늘었다. 왼쪽 종이는 그대로였다.
박 대위가 압정을 뽑으려고 손을 뻗었다. 왼쪽 것을 떼려는 참이었다. 자리가 모자랐다.
캘러헌이 종이컵으로 그 종이를 가리켰다.
"놔둬, 대위. 저건 계획이 아니야. 저건 우리가 갖고 있다고 믿었던 군대야."
2010년 12월 20일 ~ 2011년 1월 4일 · 강화 교동 축선 임시 진지
새벽에 맨손으로 포신을 만지면 손바닥이 붙는다. 그걸 한 번 배우면 다시는 안 만진다. 나는 12월 초에 배웠고, 윤지호는 12월 20일 아침에 배웠다. 소리를 안 내려고 이를 악무는 걸 보고 알았다.
성에는 포신 위쪽에만 낀다. 아래쪽은 밤새 땅에서 올라온 김이 얼어서 서릿발처럼 서 있다. 아침마다 그것을 마대로 쓸어 내리는 게 3번포의 첫 일과였다. 쓸면 다시 낀다. 그래도 쓴다.
교동은 섬인데 섬 같지가 않았다. 물이 좁고 건너편이 가깝다. 맑은 날은 저쪽 논둑이 보였다. 우리가 판 진지는 논 가장자리를 밀어서 만든 것이고, 12월 중순에 땅이 얼면서 삽이 안 들어갔다. 곡괭이로 찍으면 흙이 사기그릇처럼 튀었다. 그래서 방호벽은 아직도 규정 높이가 아니다.

"반장님, 연평도에 오늘 아무도 없답니다." 정한길이 마대를 털면서 말했다. 부산 놈이라 말이 항상 앞으로 나온다. "개도 없다카데예. 배 한 척도 안 뜬다고."
"누가 그러던데."
"저기 통신에서예."
하동찬이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한길아, 니 하루에 몇 번을 말하냐."
"세지 마이소."
나는 세지 않았다. 세는 습관은 있는데 그건 세고 싶은 것만 센다. 나는 이 진지에서 사흘에 한 번 쌓이는 눈의 깊이를 셌고, 유류 드럼이 몇 개 남았는지를 셌고, 3번포 반원이 다섯인 것을 하루에 열 번쯤 셌다. 다섯. 아직 다섯이다.
여기 와서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사람은 무서운 걸로 안 망가진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걸로 망가진다.
하루가 이렇게 간다. 다섯 시 반에 깨서 성에를 쓸고, 포를 돌려 보고, 사격제원을 확인하고, 무전 감도를 확인하고, 유류를 확인한다. 그러고 나면 아홉 시다. 아홉 시부터 저녁까지는 대기다. 대기는 아무것도 아닌데 여덟 시간이다. 그동안 위에서 사격 명령이 내려오면 열두 발쯤 쏘고, 안 내려오면 안 쏜다. 12월 중순부터는 안 내려오는 날이 더 많았다.
그 여덟 시간에 사람들이 이상해진다. 스물넷 먹은 상병이 열아홉 먹은 이병한테 침낭 개는 방법으로 삼십 분을 떠든다. 밥 먹는 순서로 싸운다. 누가 누구 장갑을 신었는지로 싸운다. 한 명은 말을 아예 안 하기 시작했는데 그건 싸우는 것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
밥은 나온다. 취사장이 뒤에 있어서 통에 담아 오는데, 오는 동안 국이 식고 여기서 다시 언다. 국 위에 기름이 하얗게 뜬 걸 숟가락으로 걷어 내고 먹는다. 짬통은 사흘에 한 번 곡괭이로 깬다.
발이 문제였다.
12월 하순에 보충병이 열둘 들어왔다. 신병이 아니라 다른 부대에서 뽑혀 온 애들인데, 전투화가 다 젖어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사흘이 걸렸고 그동안 한 번도 못 말렸다고 했다.
양말은 세 켤레가 최소다. 하나는 신고, 하나는 품에 넣어 말리고, 하나는 침낭 안에 넣어 둔다. 품에 넣는 게 제일 빨리 마른다. 사람 가슴이 히터보다 낫다. 그걸 아무도 안 가르쳐 줘서 나는 열두 명을 세워 놓고 한 번 말했다.
그중 하나가 이틀 뒤에 절뚝거렸다. 스무 살쯤 됐고 말투가 충청도였다. 위생병이 전투화를 벗기는데 양말이 살에 붙어서 안 벗겨졌다.
"됐다, 가위." 위생병이 말했다.
발가락 네 개가 회색이었다. 회색인데 어딘가 노랬다. 위생병이 그걸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문지르면 안 된다고, 문지르면 살이 떨어진다고 중얼거리면서.
"아픕니까." 내가 물었다.
"안 아픕니다." 그 애가 말했다. "그게 이상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이준하 소위가 와서 그 발을 보고, 후송 절차를 말하고, 동상 예방 규정을 말했다. 야전교범에 나오는 대로였다. 젖은 양말을 갈고, 발을 조이지 말고, 하루 두 번 발을 말리고, 담배를 줄이고. 소위는 그걸 다 외우고 있었다.
"소위님." 김선우 중사가 옆에서 말했다. "여기 하루 두 번 말릴 데가 어딥니까."
이준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대답을 못 할 때는 턱에 힘이 들어간다. 김 중사는 사람을 그런 걸로 기억한다. 나를 부를 때도 이름 대신 "야, 장갑 벗는 놈" 할 때가 있다.
12월 31일 밤에 나는 편지를 썼다.
편지를 써 본 적이 없다. 훈련소에서 강제로 쓴 것 말고는 없다. 그런데 전화가 안 됐다. 12월 들어 통제가 걸렸고, 걸린다 해도 목포 집 전화가 받는 날이 드물었다. 누나는 이번 달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 뒤로 누나 소식은 문자 한 통이 마지막이었다. 여덟 글자였다. 나는 그걸 지우지 않았다.
종이는 탄약 상자 안에 들어 있던 포장지 뒷면을 잘랐다. 볼펜이 얼어서 손안에 쥐고 한참 녹였다.
어머니, 저는 잘 있습니다.
'잘'을 지웠다. 잘 있는 게 아니라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그 글자를 읽으면 거짓말인 걸 알 것 같아서였다.
어머니,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이상했다. 다시 지웠다. 종이가 얇아서 두 번 지우니까 구멍이 났다.
밥은 나옵니다. 발은 안 젖었습니다. 누나한테서 연락 오면 저한테 알려 주십시오.
세 문장을 쓰고 나니까 더 쓸 게 없었다. 아버지 얘기는 안 썼다. 11월이 아버지 기일인데 올해는 아무도 그 말을 안 했다.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서 폈다. 마지막 줄을 지웠다. 어머니가 그 줄을 읽으면 그때부터 전화기 앞에 앉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다시 두 문장이었다.
옆에서 하동찬이 자기 편지를 쓰고 있었다. 익산에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놈은 앞뒤로 꽉 채워 썼다. 한 장 반을 쓰고도 모자라서 여백에 세로로 썼다.
"뭘 그렇게 쓰냐."
"별거 아닙니다." 하동찬이 손으로 종이를 가렸다. 익산 놈은 말끝이 늘 조금 늘어진다. "여기 밥 뭐 나왔는지 그런 거요. 그거 쓰믄 한 장 나와요."
나는 밥 얘기를 한 줄 썼다는 걸 그때 생각했다. 같은 걸 써도 저놈은 한 장이고 나는 한 줄이다.
"반장님 것도 같이 부칠까요."
"놔둬라."
나는 그 편지를 1월 4일에 부쳤다. 답장은 이월 중순에 왔다. 그때는 우리가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그 편지를 1월 4일에 부쳤다. 답장은 이월 중순에 왔다. 그때는 우리가 그 자리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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