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4부 개입(介入)
22화제31장 상륙
2011년 2월 12일 ~ 2월 14일 · 서해 · 옹진반도 남단
포 한 문을 배에 넣는 데 스물두 분이 걸렸다.

경사판 위에서 궤도가 미끄러지지 않게 유도수가 손짓을 하고, 조종수는 그 손짓만 본다. 47톤짜리가 쇳덩이 위를 기어 올라가면 배 전체가 한 번 내려앉았다가 올라온다. 그 순간에 갑판에서 사람들이 다 발바닥으로 그걸 느낀다.
우리는 새벽에 실었다. 실어 놓고 하루를 기다렸다. 물 때문이었다.
"여기가 물이 팔 미터씩 든다 아입니꺼." 정한길이 난간을 잡고 말했다. "아침에 뭍이던 데가 점심에 바다라예."
"말 좀 그만해라." 하동찬이 말했다.
이상하게 그날은 한길이도 오래 안 떠들었다. 배 안이 조용했다. 백 몇 명이 한 칸에 앉아 있는데 소리가 안 났다. 파도가 배 옆구리를 때리는 소리하고, 어디선가 쇠사슬 흔들리는 소리하고, 누가 침낭 지퍼 올리는 소리만 났다.
저녁때 강민수 대위가 내려와서 지도를 폈다. 코팅한 종이였고 접힌 자리가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우리는 뒤에 붙는다. 앞에 보병이 먼저 올라가고, 공병이 길을 내고, 그다음에 우리다. 방렬 지점은 여기다." 대위가 손톱으로 한 점을 눌렀다. "물때가 안 맞으면 하루 더 배에 있는다. 그러니까 오늘 밤에 잘 자둬라. 자둬야 내일 손이 움직인다."
"중대장님." 김선우 중사가 물었다. "앞에 뭐가 있습니까."
"모른다." 대위가 지도를 접었다. "위에서도 모른다고 했다. 여기는 정찰 사진이 낡았다."
그 말을 하고 대위가 올라간 뒤에도 아무도 안 물었다. 물어봐야 나올 게 없다는 걸 다들 알았다.
윤지호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반장님, 배 처음 타 봅니다."
"멀미하냐."
"아닙니다. 그냥 처음이라고요."
나는 목포에서 컸다. 배는 지겹게 탔다. 아버지가 2005년에 배에서 안 돌아왔고 그 뒤로 나는 배가 싫어졌는데, 싫은 거하고 무서운 거는 다르다. 그날 나는 무섭지 않았다. 무서운 건 내리고 나서였다.
한 번, 밖이 잠깐 밝아졌다. 문틈으로 보니까 멀리 큰 배가 있었고 거기서 포를 쏘고 있었다.
"저거 이지스함입니다." 누가 말했다. "우리나라에 한 척밖에 없는 거."
2월 12일 오후에 뭍에 올랐다.
내가 배에서 내려서 처음 밟은 것은 갯벌이 아니라 자갈이었다. 공병이 먼저 들어와서 깔아 놓은 것이었다. 자갈 밑에 뻘이 있어서 발을 디디면 물이 배어 나왔다.
방렬 지점까지 삼백 미터를 기어 올라가서, 우리는 흙 위에 포를 앉혔다.
방렬은 늘 하던 대로였다. 방위각 잡고, 수평 잡고, 주퇴복좌 확인하고, 사격지휘반하고 유선을 연결한다. 손이 알아서 한다. 손이 알아서 하는 동안 머리는 딴생각을 한다.
나는 장갑을 벗고 흙을 한 줌 쥐어 봤다.
흙이었다. 색이 좀 붉은 편이었고 자갈이 많이 섞여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렸더니 그냥 흘렀다. 나는 무슨 다른 걸 기대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다르다는 게 이상했다. 스물세 해 동안 여기는 지도에서 색깔이 다른 데였는데, 손에 쥐어 보니까 목포 뒷산 흙이랑 구별이 안 됐다.
"뭐 하냐." 김선우 중사가 지나가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흙 만지지 마라. 여기 뭐 묻혀 있는지 몰라."
그날 저녁에 첫 사격을 했다. 배급이 여덟 발인데 열한 발이 나갔다. 상륙 첫날은 한도를 안 따진다고 했다.
쏘고 나서 나는 포구 앞쪽을 오래 봤다. 여기서는 우리 포탄이 떨어지는 데가 언덕 하나 너머다. 연평도에서는 바다 건너였다. 그게 얼마나 가까워진 건지 나는 잘 계산이 안 됐다. 다만 여기서는 소리가 돌아온다. 나갈 때 한 번 듣고, 몇 초 뒤에 저쪽에서 한 번 더 듣는다.
사흘째 되던 날 오후 두 시쯤이었다.
하동찬이 유선을 새로 깔러 갔다. 원래 통신병이 하는 건데 통신병 둘이 다른 데 붙어 있었고, 하동찬은 그걸 할 줄 알았다. 익산 놈은 손재주가 있었다.
소리가 났다.
작았다.
그게 제일 이상했다. 나는 그때까지 사람이 죽을 때 나는 소리를 크게만 들었다. 155가 떨어지면 땅이 통째로 들렸다 놓인다. 그런데 그건 그냥 툭, 하는 소리였다. 나무판자 부러지는 소리하고 비슷했다. 왼쪽으로는 그마저도 한 겹 얇게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도 이 초쯤 아무것도 안 했다. 그게 뭔지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알아들었는데 몸이 안 움직였다.
한길이가 먼저 뛰었다.
위생병이 오는 데 사 분이 걸렸고, 그 사 분 동안 우리는 아무 데도 못 갔다. 지뢰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하동찬이 지나간 자국을 따라서만 걸으라고 김 중사가 소리쳤다. 발자국을 밟고 가는데 발자국이 잘 안 보였다. 마른 풀이 눌렸다 일어난 자리를 보고 가야 하는데, 그날은 해가 나서 풀이 다 서 있었다.
나는 손으로 갔다. 무릎을 꿇고 앞을 손바닥으로 쓸면서 갔다. 그게 맞는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안 했다. 나는 그냥 손이 빠른 사람이라서 손을 썼다.
지호는 못 왔다. 오려고 하다가 김 중사가 뒷덜미를 잡아서 앉혔다.
한길이는 하동찬 옆에 먼저 가 앉아 있었다. 뭐라고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부산 말이라 빨랐고 무슨 말인지는 안 들렸다. 나중에 물어봤는데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세 시 반쯤에 이준하 소위가 무전으로 보고했다. 나는 그 옆에 서 있었다.
"3번포 사수, 상병 하동찬. 1404시경. 대인지뢰 추정. 이상."
그게 다였다. 소위가 수첩에 적은 것도 그 세 줄이었다. 계급, 이름, 시각. 우리 반은 다섯이었다가 넷이 됐다.
그날 밤에 나는 제원을 세 번 틀렸다.
한 번은 장약을 잘못 들었다. 한 번은 방위각을 복창할 때 숫자 하나를 바꿔 말했고, 지호가 그걸 잡아냈다. 세 번째는 내가 나를 못 믿어서 아예 손을 놨다.
"반장님." 지호가 나를 불렀다. "반장님,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됐다."

"아닙니다, 제가—"
"됐다고."
나는 포상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손이 떨리는 건 아니었다. 손은 멀쩡했다. 그런데 숫자가 머리에 안 들어왔다. 여섯이 여덟으로 보이고 다시 보면 여섯이었다.
나는 세는 사람이다. 탄약 상자를 세고, 유류 드럼을 세고, 반원을 센다. 그날 저녁 인원 보고를 할 때 나는 넷이라고 말했다. 말해 놓고 나서 손가락을 접어 가면서 다시 셌다. 나, 한길이, 지호, 성민이. 그리고—
거기서 손가락이 하나 남았다. 남은 손가락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그걸 주먹 안에 넣었다.
김선우 중사가 왔다. 아무 말 안 하고 내 옆에 쭈그리고 앉더니, 무전기를 자기 쪽으로 당겨 갔다.
"3번포, 사격지휘반 수신. 다음 제원 내가 받는다."
그리고 그가 읽었다. 그 목소리로 읽으면 숫자가 숫자로 들린다. 나는 그걸 앉아서 들었다.
한참 뒤에 그가 일어서면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두드리지 않았다. 그냥 얹었다. 손이 무거웠고, 그는 그 손을 치우지 않았다.
2011년 2월 20일 ~ 2월 28일 · 황해남도 내륙 · 이름 없는 마을
마을에 개가 없었다.
그게 제일 먼저 이상했다. 사람 사는 데는 개가 있다. 목포 뒷동네에도 있고 연평도에도 있었다. 여기는 스무 채가 넘는 동네인데 짖는 소리가 한 번도 안 났다.
지도에는 마을 이름이 없었다. 숫자만 있었다. 이 소위가 그 숫자를 두 번 읽어 줬는데 나는 두 번 다 안 외웠다.
우리는 마을 뒤 밭에 포를 앉혔다. 밭고랑이 얼어서 궤도가 잘 물었다. 방렬하고 유선 깔고 나니까 해가 기울었다.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 있었다.
숨지 않았다. 도망도 안 갔다. 그냥 담벼락에 붙어 서서 봤다. 눈이 마주치면 보통은 고개를 돌리는데 이 사람들은 안 돌렸다. 계속 봤다. 나는 그게 노려보는 건 줄 알았는데 며칠 있어 보니까 아니었다. 그냥 다음에 뭐가 오는지 기다리는 눈이었다.
조성민이 전투식량을 하나 들고 할머니한테 갔다. 밀어 줬는데 안 받았다.
"안 받습니다."
"놔두고 와."
"바닥에 놓고 옵니까."
"담 위에 놔둬."
이십 분 뒤에 가 보니까 없어져 있었다. 담 위에 종이 껍데기도 안 남았다.
이상한 건 아무도 달라고 안 한다는 거였다. 인천 부두에서는 사람들이 배급 상자 앞으로 왔다. 여기는 안 온다. 준다고 손짓하면 받는데, 먼저 오지는 않는다. 그게 사흘 동안 한 번도 안 바뀌었다.
대신 사람들은 자기 일을 했다. 아침이면 여자들이 마당을 쓸었다. 쓸 것도 없는 마당을 빗자루로 쓸었다. 어떤 집은 담벼락 무너진 자리에 돌을 하나씩 다시 쌓고 있었다. 하루에 서너 개씩. 그 속도로는 봄까지 해도 안 될 것 같았다.
한 노인은 우리 포를 매일 같은 시각에 보러 왔다. 열 시쯤이었다. 와서 십 분쯤 보고 갔다. 조성민이 손을 흔들었더니 그다음 날부터 고개를 한 번 숙이고 갔다.
한길이가 그날 저녁에 말했다.
"행님, 북쪽에 중국이 들어왔다 캅디다."
"그래."
"강 건너서 왔답니다. 통신병이 그러던데예."
"그래."
"근데 그기 다 우리 또래라 카데예. 스무 살, 스물한 살."
나는 대답을 안 했다. 강이 어디 있는 강인지도 몰랐고, 거기가 여기서 얼마나 먼지도 몰랐다. 한길이도 몰랐을 거다. 그놈은 모르는 걸 말하는 데 재주가 있다.
2월 24일 저녁이었다.
여섯 시 반쯤이었고 아직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마을 뒤가 비탈이고 그 위로 잡목이 있는데, 경계 서던 애가 거기서 움직임을 봤다고 했다.
무전이 왔다. 짧았다.
이 소위가 뛰어왔다. 그 사람은 뛸 때 팔을 안 젓는다.
"몇 명."
"둘입니다. 아니, 셋일 수도 있습니다."
"뭐 들었어."
"…모르겠습니다. 긴 게 하나 보였습니다."
긴 것. 총일 수도 있고 삽일 수도 있고 나뭇가지일 수도 있다. 그날 낮에 마을 여자 둘이 그 비탈에서 나뭇단을 지고 내려왔다. 나도 봤다.
이 소위가 야시경을 받아 썼다. 오래 봤다. 벗고 나서 다시 썼다.
"수하."
경계병이 소리쳤다. 정지. 소속. 한 번, 두 번.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세 번째를 하는데, 하는 도중에 비탈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위로 올라가는 소리였다. 아니면 옆으로 가는 소리였다.
이 소위가 무전기를 입에 댔다. 대고 나서 아무 말도 안 나왔다. 나는 그 사람 목이 움직이는 걸 봤다.
두 번째로 댔을 때 소리가 나왔다.
"사격."
한 번 더 말했다. 두 번째는 갈라져서 앞 글자가 반쯤 없어졌다.
한 번 더 말했다. 두 번째는 갈라져서 앞 글자가 반쯤 없어졌다.
남은 22화 · 약 78,210자 · 약 1시간 52분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