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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제57장 인천

· 44화 중 40화 · 3,486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인천에 남은 건 배를 타려고 그런 거였다.

배가 안 떴다. 여객선은 서해 쪽으로 아직 안 나가고, 화물은 몇 척 다니는데 사람을 안 뽑았다. 연안부두 앞 사무실 유리에 붙은 종이는 작년 걸 그대로 두고 있었다. 날짜가 지워져 있었다.

확전 40화 제57장 인천 — 헤더컷

그래서 부두에서 짐을 날랐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고, 겨울이라 그것도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많았다. 손은 금방 익었다. 손이 하는 일은 뭐든 금방 익는다.

시멘트 포대는 사십 킬로다. 두 장 겹쳐 든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한 장씩 들었다. 반장이 지나가면서 나한테 뭐라고 했는데 왼쪽에서 말해서 못 들었다. 두 번 물으니까 반장이 목소리를 키웠다.

"군대 갔다 왔냐고."

"예."

"어디."

"해병대요."

"그럼 두 장 들어야지."

나는 그날부터 두 장씩 들었다.

십이월 말에 한길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수화기를 오른쪽에 붙였다.

"형님예. 살아 계십니까."

"살아 있다."

"저 지금 부산인데예. 용접 배웁니다."

"용접."

"아크부터 한다 카데예. 눈이 아파 죽겠십니다. 근데 이거 배워 놓으면 어디든 간다 카더라고예."

"잘했다."

"아 참, 형님. 소대장님 다치싰답니다."

"…언제."

"지난달 말이라예. 우에 남은 애들이 전화를 했는데, 지뢰 치우러 나갔다가 그랬다 카데예. 다리랍니다."

"많이."

"모릅니다. 죽지는 안 했고 병원에 있다 캅니다."

"그래."

"형님은예."

"부두에서 짐 나른다."

"배는예."

"안 뜬다."

한길이가 잠깐 조용했다. 삼 초를 못 참는 놈인데 그날은 참았다.

"뜰 겁니다." 그놈이 말했다. "안 뜨는 배가 어딨십니까."


임시청사는 사층짜리 건물이었다.

원래 무슨 사무실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일층 유리문에 다른 회사 이름이 아직 붙어 있었다. 그 위에 종이를 덧대서 새 이름을 써 붙였다. 종이가 젖었다 말라서 가장자리가 우글거렸다.

줄은 밖에서부터 시작됐다. 아침 여덟 시에 가면 계단 밑까지 차 있었다.

사람들이 사진을 들고 있었다. 코팅한 사람도 있고 봉투에 넣은 사람도 있고 그냥 손에 든 사람도 있었다. 손에 든 사람 것이 제일 상해 있었다. 접힌 자리가 하얬다.

내 앞에 선 여자는 사진을 두 장 들고 있었다. 한 장은 정면이고 한 장은 옆에서 찍은 거였다. 옆에서 찍은 건 뒤통수가 반쯤 나왔다.

"이빨 보이는 거는 없어요." 여자가 옆 사람한테 그렇게 말했다. "웃는 사진이 없어."

옆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도 사진을 들고 있었다.

"치과는 가 보셨어요?" 옆 사람이 물었다.

"거기가 없어졌어."

"우리는 있더라고요. 삼십 년 된 데라서 종이로 갖고 있었어요. 그걸 냈는데 아직 연락이 없어요."

두 사람은 그 뒤로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줄이 반 걸음 앞으로 갔다가 다시 섰다.

나는 찾을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목포에 있고 누나는 서울로 돌아갔다. 우리 반원들은 어디 있는지 다 안다. 아는 것하고 있는 것은 다르지만, 어쨌든 나는 이 줄에서 물어볼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매주 갔다.


계단은 한 층에 스물이었다.

열 개 올라가면 꺾이고 열 개가 더 있었다. 처음 갔을 때 세지 않으려고 했는데 발이 먼저 셌다. 두 번째 갔을 때는 그냥 셌다.

이층 스물. 삼층 마흔. 사층 예순.

사층까지 예순이다. 그건 늘 예순이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그것 말고는 그 건물 안에서 같은 숫자로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창구는 사층 복도 끝이었다. 번호표가 없고 그냥 줄이었다. 앞사람이 앉아 있으면 뒷사람은 서서 기다렸고, 앉은 사람 얘기가 다 들렸다. 다들 듣고 있으면서 안 듣는 척했다.

나이 든 남자가 창구 앞에서 서류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이거 지난번에도 냈는데."

"이건 다른 겁니다, 선생님. 저희가 새로 받은 자료가 있어서요."

"몇 번을 내라는 거요."

직원이 대답을 안 했다. 대답을 안 하고 도장을 하나 찍었다.


이월 어느 날 내 차례가 왔다.

창구 직원은 여자였고 나보다 몇 살 위로 보였다. 손목에 고무줄을 하고 있었는데 서류 묶을 때 쓰는 거였다.

"성함이요."

"오태석입니다."

"찾으시는 분 성함은요."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어떤 분 찾으러 오셨어요?"

"…없습니다."

확전 40화 제57장 인천 — 전환컷

여자가 볼펜을 놓았다. 뒤에 선 사람이 신발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저는 연평도에 있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포7중대."

여자가 나를 봤다. 이 사람은 하루에 백 명씩 사람 얼굴을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놀라지 않았다.

"군인이셨어요?"

"예."

"지금은요."

"전역했습니다. 작년 십일월에."

여자가 서랍을 열었다. 안에 서류철이 여러 개 있었는데 손이 곧장 한 군데로 갔다. 종이 한 장을 꺼내서 책상에 놓고 손가락으로 돌려서 내 쪽을 보게 했다.

"이건 여기서 접수하는 게 아니고요. 부대별로 조회 신청하시는 거예요."

"부대별."

"소속하고 기간 적으시면, 그 부대 인원 중에 사망·부상 확인된 분들 명단을 열람하실 수 있어요. 유족 아니시면 열람만 되고 사본은 안 나갑니다."

"열람만."

"예."

나는 종이를 봤다. 칸이 여섯 개였다. 소속, 기간, 신청 사유. 사유 칸이 제일 컸다.

"사유는 뭐라고 씁니까."

여자가 잠깐 있다가 말했다.

"그냥 아시고 싶다고 쓰시면 됩니다. 그거 반려 안 해요."


밖으로 나오니까 다섯 시가 조금 넘었고 벌써 어두웠다.

줄은 아직 계단 밑까지 있었다. 나는 그 옆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는 세지 않았다. 내려갈 때는 안 세도 됐다.

일층 유리문 앞에서 종이를 폈다. 밖에서 보니까 칸이 더 커 보였다. 손이 시려서 볼펜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종이를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어서 안주머니에 넣었다. 두 번 접으니까 딱 맞게 들어갔다.

길 건너에서 버스가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내렸다. 나는 그쪽으로 건너가지 않고, 부두 쪽으로 걸었다. 바람이 바다에서 왔다.


2012년 4월 ~ 2013년 1월 · 서울

문제는 칸이었다.

우 사무관의 책상 위에는 A3 용지가 세 장 붙어 있었고 거기 그려진 표에는 세로로 열한 개의 칸이 있었다. 직접 피탄. 건물 붕괴. 화재. 압사. 저체온. 교통. 의료 접근 불가. 기타.

기타 칸이 제일 넓었다. 처음 만들 때는 제일 좁았다.

"이건 어디로 넣습니까." 주무관이 서류를 밀어 놓았다.

2010년 12월 3일 서대문. 지하 주차장. 사망 열아홉. 그 건물은 포탄에 맞은 적이 없다. 옆 건물이 맞았고, 그 충격으로 배관이 터졌고, 물이 찼고, 정전으로 배수 펌프가 안 돌았다.

"붕괴는 아니고요."

"익사입니다."

"익사 칸이 없는데요."

우 사무관이 볼펜 뒤로 표를 두드렸다. 기타 칸을 두드렸다.

"거기다 쓰고, 옆에 사유 적어."

또 하나. 2011년 1월 22일 인천. 임시수용시설. 여자, 예순. 폐렴.

"이건 명확합니다. 소개 과정 사망이죠."

"이 사람 연평도 주민이에요." 주무관이 말했다. "11월 26일에 나왔고, 시설에 두 달 있었고, 원래 지병 없었습니다."

"그럼 소개 칸."

"근데 폐렴은 겨울에도 죽습니다. 전쟁 없어도요."

우 사무관이 한참 있다가 말했다.

"소개 칸에 넣어. 이 사람은 두 달 전에 자기 집에 있었어."

그것이 그날 오후에 있었던 유일한 논쟁이었다. 이름은 표에 남지 않았다. 표에는 숫자만 남는다.


수도권 포격 15일에 대한 최종 집계는 2012년 6월에 확정되었다. 사만 천.

2010년 12월 9일에 정부가 발표했던 수는 이만 팔천이었다. 그사이 열여덟 달치의 사망신고와 실종 선고와 신원확인이 그 차이를 메웠다. 확정에 두 해가 걸렸다.

인쇄된 표지에는 붉은 도장이 하나 찍혀 있었다. 잠정.

우 사무관은 그 도장을 빼자고 두 번 건의했고 두 번 반려당했다. 세 번째는 하지 않았다.

그 보고서에 들어가지 않은 표가 하나 더 있었다. 통계청에서 온 것이었다. 2010년 12월부터 2011년 9월까지, 전국의 사망신고 건수를 앞선 다섯 해 같은 달 평균과 비교한 것. 차이가 육만 오천칠백이었다.

폐렴, 패혈증, 신부전, 뇌졸중. 투석을 못 받은 사람. 겨울에 난방이 없던 집. 수술이 밀린 사람. 상수도가 끊긴 동네에서 설사로 죽은 아이.

이 표는 대책본부에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사망신고를 뺄셈한 것이다. 누구도 이 사람들을 세러 가지 않았다. 세러 갈 창구가 없었다.

우 사무관은 그 종이를 보고서 뒤에 붙이지 않고 캐비닛에 넣었다. 넣기 전에 한 번 더 봤다. 육만 오천칠백은 사만 천보다 큰 수였다.


재건기금 사무국의 첫 배분 회의는 2012년 9월에 열렸다.

순위 초안 첫 항목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천과 청주와 기흥의 반도체 생산라인 복구였다.

"이건 못 씁니다." 보건복지 쪽에서 온 국장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국민이 이걸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병원이 아직 천막입니다. 천막에서 애를 받고 있어요."

"압니다." 기획재정부 쪽 실장이 말했다.

"아는 사람이 이런 걸 첫 줄에 올립니까."

"라인은 열여덟 달 세워 두면 못 살립니다. 장비가 죽고 사람이 흩어져요. 그 사람들이 지금 대만하고 미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안 돌아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이걸 살리면 삼 년 뒤에 병원을 짓습니다. 안 살리면 삼십 년 뒤에도 천막입니다."

방이 조용해졌다. 창밖에서 크레인이 도는 소리가 났다. 광화문 쪽은 아직 공사 중이었다.

"기록에 남깁니까." 누가 물었다.

"남깁니다." 실장이 말했다. "반대 의견도 그대로 남기세요."

국장은 반대에 서명했다. 그리고 표결에서 찬성했다. 두 개가 같은 회의록에 나란히 적혔다.

국장은 반대에 서명했다. 그리고 표결에서 찬성했다. 두 개가 같은 회의록에 나란히 적혔다.

남은 4화 · 약 13,624자 · 약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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