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1부 11월 23일
3화제3장 개머리
열다섯시 삼십팔분, 오철남 대위가 무전기 앞에 앉았다.
중대장은 앉기 전에 수첩을 폈다. 소대장 셋이 불러 준 것을 옮겨 적은 종이였다. 그는 그것을 한 번 더 읽고, 연필로 두 군데를 고쳤다.

리성철은 세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서 있으라는 말을 들은 것도 아닌데 서 있었다.
대위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부호를 대고, 상급 지휘소를 불렀다. 목소리가 낮았다.
"보고합니다."
저편에서 뭐라고 했다.
"인원 피해."
또 뭐라고 했다.
"전사 열하나. 부상 열아홉."
리성철은 그 두 숫자를 들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더했다.
무전기 저편이 조용해졌다. 잡음만 나왔다. 그 조용함이 꽤 길어서, 대위는 송수화기를 귀에서 떼지 않은 채로 관측구 쪽을 한 번 봤다. 밖에서는 아직 흙먼지가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동지." 대위가 말했다. "다시 부르겠습니다. 전사 열하나. 부상 열아홉."
2010년 11월 23일 14시 34분 · 연평도 부두 / 해병대 관사 신축 공사현장 / 마을
종패 상자를 여섯 개까지 실었을 때 소리가 왔다.
최영도는 일곱 번째 상자를 들어 올린 자세로 멈췄다. 예순두 해를 이 섬에서 살았고 그중 열세 해를 굴로 살았으니 겨울 바다 소리는 다 안다. 이건 바다에서 온 소리가 아니었다.
아침에 그는 오전 사격훈련 소리를 들으면서 종패를 골랐다. 부대에서 쏘는 날은 배를 늦게 낸다. 훈련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이 섬의 하루는 부대 시간표를 따라간다. 삼십 년을 그렇게 살았으니 이제 소리가 나도 놀라지 않는다. 놀라지 않는 것이 이 섬 사람의 재주라면 재주였다.
부두 끝에 해병 몇이 앉아 있었다. 더플백을 세워 놓고 그 위에 팔꿈치를 얹은 채였다. 인천 가는 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다. 이 섬에서 나가려면 배 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부두는 늘 기다리는 사람들의 자리였다.
그중 하나가 아까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옆 아이한테 말했었다.
"야, 서정우. 배 뜬단다. 바람이 죽었대."
노인은 그 말을 등 뒤로 들었다. 바람이 죽기는. 아침에 서쪽에서 제법 왔는데.
두 번째 소리는 마을 쪽에서 났다.
그다음은 셀 수가 없었다. 부두 콘크리트가 발밑에서 한 번 튀었고, 어망 걸어 놓은 쇠기둥이 쨍 하고 울었다. 최영도는 상자를 놓쳤다. 종패가 갑판에 쏟아져 흩어졌다.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노인은 나중에 그것을 여러 번 생각했다. 뛰는 방향이 나이대로 갈렸다. 늙은 사람들은 집 쪽으로 뛰었다. 집에 뭐가 있어서가 아니라 집에 사람이 있어서다. 젊은 사람들은 배 쪽으로 뛰었다. 배가 떠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군복 입은 아이들은 언덕 쪽으로 뛰었다.
더플백을 놓고 뛰었다. 가방이 그대로 부두에 서 있었다. 한 아이가 넘어졌다가 일어나서 다시 뛰었다.
"야! 엎드려! 엎드려 있어!"
최영도가 소리를 질렀다. 목이 갈라져서 소리가 반쯤밖에 안 나갔다.
그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언덕길 초입에서 한 번 속도가 줄었다가 다시 붙었다. 등이 모퉁이를 돌았다.
노인은 거기까지 봤다.
배는 뜨지 않았다.
부두에 매인 채로 밧줄만 팽팽해졌다가 늘어졌다. 사람들이 배 쪽으로 뛰었다가 다시 마을 쪽으로 뛰었다. 최영도는 자기 배에서 내려 부두 콘크리트에 발을 디디면서, 갑판에 쏟아진 종패를 한 번 돌아봤다. 굴 종패는 물 밖에 오래 두면 못 쓴다. 그 생각을 한 자기가 그 순간 조금 이상했다.
집까지 이백 걸음이었다.
한금례는 마루에 앉아 있었다. 앉아서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있었는데 텔레비전은 꺼져 있었다.
"뭐 혀."
"안 나와요."
"나오고 자시고, 나와."
노인은 아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아내가 냉장고 쪽을 돌아보길래 등을 밀었다. 마당을 나서는데 옆집 지붕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기와가 아니라 슬레이트라 냄새가 고약했다.
대피소는 마을회관 아래에 있다. 계단이 가팔라서 노인들이 늘 욕을 하던 계단이다. 그날은 아무도 욕을 안 했다.
안에 사람이 삼십 명쯤 있었다. 형광등이 하나 나가서 반쪽만 밝았다. 누가 아이를 안고 있었고 아이는 울지 않았다. 그게 더 안 좋았다.
"영감, 물."
"물이 어딨어."
"저기 있잖유, 저 통에."
한금례가 물통 쪽으로 가서 뚜껑을 열었다. 안이 비어 있었다. 아내는 뚜껑을 도로 닫고 돌아왔다.
"비었네."
"그러게."
"작년에 채워 놨다고 하지 않았나, 이장이."
"작년이 언젠데."
한금례는 벽에 등을 붙이고 앉더니 옆에 앉은 젊은 새댁한테 말을 걸었다. 애기 몇 개월이냐, 이 시간에 자면 밤에 안 잔다, 우리 애들은 어릴 때 어땠다. 이 여자는 예순이 다 되도록 이런 데서도 말을 만들어 냈다. 최영도는 그게 늘 부아가 났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밖에서 또 왔다. 천장에서 회가루가 떨어져 사람들 어깨에 앉았다. 누가 짧게 소리를 냈다가 스스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영감."
"왜."
"배는 어쨌슈."
"부두에 있지."
"종패는."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시가 넘어서 스무 살쯤 된 청년이 대피소로 들어왔다.
이장 조카였다. 발전소 사잇길로 올라갔다 왔다고 했다. 그쪽 능선에 관사 짓는 공사현장이 있는데 거기서 연기가 크게 난다고, 사람들이 있었을 거라고.
"그래서."
"못 올라갔어요. 불이 길을 먹어서."
청년은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안전모였다. 흰 것이 그을려서 회색이 돼 있었고, 챙 안쪽에 매직으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작업반장들은 안전모에 이름을 적는다.
"길가에 있길래."
그는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옆에 스테인리스 도시락 통도 놓았다. 뚜껑이 눌려서 잘 안 닫히는 통이었다. 밥이 반쯤 남아 있었다.
점심을 먹고 일을 시작한 참이었을 것이다. 열두 시 반에 밥을 먹고 한 시부터 일하면 두 시 반은 한창때다. 최영도는 젊어서 미장 일을 몇 해 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안다.
그 사람들은 이 섬 사람이 아니었다. 배로 들어와서 일하고 배로 나가는 사람들이다. 관사 짓는 일이라 겨울 전에 골조를 올려야 한다고 했다. 최영도는 그중 하나하고 지난주에 담배를 나눠 피웠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들었는데 지금 생각이 안 났다.
아무도 그 두 물건을 치우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옆을 돌아서 다녔다.
부대 상황실은 마을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거기서는 종이가 채워지고 있었다. 무전이 들어올 때마다 통신병이 받아 적었다. 손실 보고는 정해진 순서가 있다. 소속, 계급, 이름. 그 뒤에 붙는 칸이 있는데 그날 오후에는 그 칸이 자주 비었다.
"군수지원대 수송반."
통신병이 연필을 고쳐 잡았다.
"일병 문광욱."
그는 그것을 적었다. 획을 잘못 그어서 한 번 지우고 다시 적었다. 지우개가 종이를 조금 밀었다.
옆에 서 있던 부사관이 물었다.
"확인됐나."
"확인됐습니다."
부사관은 더 묻지 않았다. 통신병도 더 말하지 않았다. 다음 무전이 들어왔고 종이는 계속 채워졌다.
네시 이십분, 최영도는 대피소 문가에 나와 서 있었다.
바깥이 벌겠다. 산 쪽이 그랬다. 마을 지붕 몇 개가 아직 타고 있었고 그 연기는 곧게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 누웠다.
노인은 자기 손바닥을 봤다.
종패 상자 모서리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한 상자가 스물몇 킬로다. 여섯 개를 실었으니 손이 그 무게를 여섯 번 기억하고 있는 셈이었다. 일곱 번째는 놓쳤다.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아침 내내 서쪽에서 오던 것이 이제 산에서 마을 쪽으로 내려왔다. 냄새가 그쪽에서 왔다.
2010년 11월 23일 14시 55분 · 연평도 포7중대 진지
조용해진 걸 나는 귀로 안 게 아니라 발바닥으로 알았다.
땅이 그만 흔들렸다. 그게 다였다. 소리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없었는데, 그건 조용해서가 아니라 내 귀가 그렇게 된 거였다.
세상이 물속 같았다. 물속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사람 소리가 나긴 나는데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다들 입을 벌리는데 말이 안 됐다. 왼쪽이 더 그랬다.
하동찬이 포탑에서 내려와 내 앞에 서더니 뭐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그놈이 얼굴을 내 얼굴 앞까지 가져와서 다시 말했다. 입 모양이 커졌다.
끝. 났. 나. 요.
"몰라."
내 목소리도 안 들렸다. 목에서 뭔가 울리는 것만 느껴졌다.
정한길이 손등으로 코를 문질렀는데 손등에 코피가 묻어 나왔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놈 소매를 잡아 손등을 보여 줬다. 정한길이 그걸 보고 웃었다. 웃는 게 소리는 안 났다.
포상 밖으로 나가 보니 하늘이 낮았다. 연기가 낮게 깔려서 그렇게 보인 거였다.
나는 세고 있었다.
아까부터 우리 포가 몇 발 나갔는지 세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게 아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세는 놈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 전봇대를 셌고 아버지 배가 들어올 때 갈매기를 셌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했다.
세면 뭐가 좀 나아진다. 뭐가 나아지는지는 모르겠는데 나아진다.
2번포 쪽에서 사람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와 보라는 뜻이었다. 나는 갔다. 지금 생각하면 왜 갔나 싶은데, 그때는 조용하니까 갈 수 있는 시간이라고 몸이 판단한 것 같다.
2번포 옆구리 판이 열려 있었다. 정비병 하나가 그 안에 상반신을 넣고 있었고 다리만 밖에 나와 있었다. 2번포 포반장이 손전등을 들고 있었는데 손이 떨려서 불빛이 자꾸 어긋났다.
"끊어졌다."
포반장이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말이 됐다.
"어디."
"여기."
케이블 다발이었다. 겉이 벗겨지고 속이 끊어져 있었다. 한 가닥이 아니라 여러 가닥이 한꺼번에 갔다. 파편이 지나간 것 같았다.
옆에 탄이 하나 서 있었고 그 밑에 불이 붙어 있었다. 불이라기보다 뭔가가 벌겋게 남아 타는 거였다. 나는 옆에 굴러다니던 방수포를 집어서 그걸 덮고 밟았다. 두 번 밟으니까 꺼졌다.
그때 손바닥이 뜨거웠다. 뜨거운 걸 아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나중에 보니까 오른손 새끼손가락 밑이 익어 있었다.
케이블은 손이 하는 일이다.
나는 장갑을 벗었다. 벗어야 손끝이 보인다. 가닥을 하나씩 찾아서 색을 맞추고, 겉을 이로 벗기고, 꼬아서 절연테이프를 감았다. 테이프가 끈적거려서 잘 안 풀렸다. 손이 검어졌다.
정비병이 안에서 나와 스위치를 넣었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왔다. 들어왔다가 한 번 깜빡이고 다시 들어왔다.
2번포 포반장이 뭐라고 소리쳤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그는 나를 두 번 때렸다. 어깨를 두 번. 아프게.
수동으로 제원을 넣는다고 했다. 자동이 안 되면 사람이 넣는 것이다. 열다섯시 육분이었다. 나는 그 시각을 나중에 사격지휘반 사람한테 들었다. 그때는 시계를 볼 생각을 못 했다.
수동으로 제원을 넣는다고 했다. 자동이 안 되면 사람이 넣는 것이다. 열다섯시 육분이었다. 나는 그 시각을 나중에 사격지휘반 사람한테 들었다. 그때는 시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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