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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제32장 스무 살짜리들

· 44화 중 23화 · 3,732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지호가 쐈다.

그 애는 그날 개인화기를 들고 포상 오른쪽에 서 있었다. 왼쪽이 조성민이었고 조성민은 못 쐈다. 손이 안 올라갔다고 나중에 그놈이 말했다.

확전 23화 제32장 스무 살짜리들 — 헤더컷

첫 발이 나가고 나서 그다음은 셀 수가 없었다. 나는 세는 사람인데 그건 못 셌다. 탄창 하나가 다 나갔고, 그 소리가 끝나고도 지호가 방아쇠를 계속 당기고 있었다. 딸깍 소리가 세 번 났다.

"윤지호."

김 중사님이 뒤에서 그 애 어깨를 잡았다. 잡고 총을 눌러 내렸다. 총구가 땅을 보게.

"됐다. 됐어."

비탈은 조용했다.

십 분쯤 뒤에 이 소위가 올라가 보자고 했는데 강 대위가 막았다. 어두운 데를 지금 올라가면 안 된다고. 지뢰 얘기가 나왔고 그 얘기가 나오자 아무도 더 말 안 했다.

그날 밤에 나는 안 잤다. 지호도 안 잤다. 우리는 각자 안 자면서 서로 안 자는 걸 알았고, 그래서 말을 안 했다.


아침 일곱 시에 올라갔다.

밤새 서리가 내려서 마른 풀이 하얬다. 발자국이 잘 찍혔다. 우리 발자국 말고 다른 발자국도 있었다. 작았다.

둘이었다.

하나는 총이 있었다. 낡은 장총이었고 개머리판이 나무였다. 탄창에 다섯 발이 들어 있었다. 이 소위가 그것을 확인하고 병기계한테 넘겼다.

하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손에 노끈만 감겨 있었다. 나뭇단 묶는 노끈이었다.

주머니에서 수첩이 나왔다. 표지가 붉었고 물에 젖었다 말라서 종이가 울어 있었다. 이 소위가 그것을 펴서 읽었다. 그 사람은 그쪽 글자를 읽을 줄 안다. 첫 장에 이름이 있고 그 밑에 난 해가 적혀 있었다.

"천구백구십사."

이 소위가 그다음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쪽은 구십오년생입니다."

계산은 금방 됐다. 나는 그날은 두 번 안 셌다. 한 번에 나왔다. 열일곱하고 열여섯이었다. 만으로 그렇고, 우리 식으로 세면 하나씩 더다.

여덟 시쯤에 마을에서 노인이 올라왔다. 남자였고 지팡이를 짚었다. 아무도 못 오게 막았는데 그냥 지나서 왔다. 그러고는 둘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울지 않았다. 뭐라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노인이 한 아이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의 이름도 말했다. 두 번씩 말했다. 통역이 필요 없었다. 이름은 이름이라 그냥 들렸다.

그다음에 노인이 이 소위한테 뭐라고 물었다. 이 소위가 알아들었다.

"데려가도 되느냐고 합니다."

강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가는 길에 지호가 토했다.

밭고랑 옆에 무릎을 꿇고 토했고, 아침을 안 먹어서 나올 게 없는데도 오래 했다. 등이 계속 들썩거렸다. 한길이가 옆에 서서 수통을 들고 있었다.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놈이 하루에 삼백 마디를 채우는 인간인데 그날 아침에는 한 마디도 안 했다.

내려와서 지호가 나한테 물었다.

"반장님."

"어."

"저 열아홉에 왔거든요."

"알아."

"지금 스물입니다."

"알아."

그 애는 그 말을 하고 더 안 물었다. 나는 스물셋이다. 조성민이 스물하나다. 그런 걸 세는 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날 그것도 셌다.


이 소위는 수첩을 안 넘겼다.

병기계가 총을 가져갈 때 수첩도 달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나중에 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그날 하루 종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저녁 점호 끝나고 나는 그 사람이 포상 뒤에서 그걸 다시 펴 보는 걸 봤다.

내가 지나가는 걸 그 사람도 봤다. 나는 눈을 안 마주쳤다. 마주치면 뭐라고 해야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이 소위가 수첩을 접었다. 접고 나서 접힌 자국을 손톱으로 눌러서 폈다. 그 사람 버릇이다.

그러고는 아무도 안 보고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지."


2011년 3월 1일 ~ 3월 5일 · 황해북도 사리원 남방 도로

도로 옆에 견인포 한 문이 포미를 연 채 서 있었다. 견인차는 없었다. 포다리는 벌어진 그대로였고 조준경도 그대로 붙어 있었다. 사람만 없었다.

여섯 문째였다. 나는 세는 버릇이 있어서 어제부터 그것들을 셌다. 이틀 동안 견인포 여섯 문, 트럭 아홉 대, 장갑차 두 대. 장갑차 한 대는 엔진 뚜껑이 열려 있었고 그 위에 겨울 외투가 접혀 있었다. 접혀 있는 것이 이상했다. 급하게 가는 사람은 옷을 접지 않는다.

"저거 왜 안 부수고 갔십니까."

한길이 궤도 덮개 위에 앉아서 말했다. 그놈은 하루에 삼백 마디를 채워야 잠이 오는 인간이다.

"부술 시간이 없었겠지."

"아니 그기, 부수는 게 더 빠릅니다. 저 조준경만 떼도 못 쓰는 건데예."

"그럼 니가 가서 떼 와라."

"제가 왜예."

지호가 뒤에서 킥킥 웃었다. 그 애는 요즘 웃음소리가 커졌다. 겨울에는 그렇지 않았다.

도로가 꺾이는 데서 야전 취사장 자리를 봤다. 가마솥 두 개가 걸린 채로 있었고 밑에 재가 하얗게 식어 있었다. 솥 안은 비었다. 국자도 걸려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밥을 짓다 만 게 아니라, 지을 것이 없어서 그만둔 자리 같았다.

길가에 콘크리트 표지석이 하나 서 있었다. 붉은 글씨가 위에 있고 밑에 숫자가 있었는데 위쪽 글씨는 총알 자국으로 한가운데가 뜯겨 나갔다. 숫자만 남았다. 그 앞을 우리 포 다섯 문이 차례로 지나갔다. 다섯 문 다 지나가는 데 사 분쯤 걸렸다.


사흘째부터 하루에 두 번씩 진지를 옮겼다.

옮기는 일이 쏘는 일보다 많았다. 방렬하고, 제원 받고, 몇 발 쏘고, 다시 걷고, 십 킬로쯤 가서 또 방렬한다. 삼월의 황해도 땅은 낮에 녹고 밤에 언다. 아침에 딴딴하던 밭이 열한 시쯤 되면 죽처럼 되고, 궤도가 그 죽 속으로 반 뼘씩 들어간다. 각목을 깔고 판때기를 깔고 그 위에 또 각목을 깐다. 손이 그것을 기억한다. 머리가 아니라 손이다.

이틀 동안 사격 임무는 세 번 왔다. 세 번 다 짧았다. 좌표를 받고 장약을 맞추고 여섯 발쯤 보내면 곧 중지가 걸렸다. 한 번은 세 발 쏘고 끝났다. 표적이 없어졌다는 뜻이라고 한길이 말했는데, 없어졌다는 게 무슨 말인지는 그놈도 나도 몰랐다. 사라진 건지 애초에 거기 없었던 건지.

한 번은 배수로 옆에서 포가 주저앉아 두 시간을 썼다. 그때 이 소위가 지도를 들고 와서 우리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오 병장님, 여기서 북쪽으로 십이 킬로가 사리원입니다."

"사리원이 뭡니까."

확전 23화 제32장 스무 살짜리들 — 전환컷

"도청 소재지 같은 데예요. 큰 도시."

"거기까지 갑니까."

이 소위는 지도를 접었다. 접을 때 그 사람은 항상 접힌 자국을 손톱으로 눌러서 편다.

"가라면 가는 거죠."

그러고는 한참 있다가 덧붙였다.

"어제 앞에서 백 명 넘게 손 들고 나왔답니다. 총 놓고. 밥을 못 먹은 지 오래됐다고."

"어느 부대랍니까."

"부대가 없대요. 그게 이상한 거예요."

밤에는 포 밑에서 잤다. 침낭을 깔고 방수포를 덮으면 위는 견딜 만한데 등이 언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수포 안쪽에 서리가 붙어 있어서, 접을 때 그게 얼굴에 떨어졌다. 지호는 그걸 매일 처음 겪는 사람처럼 놀랐다.


옮기는 길에 산 밑을 여러 번 지났다. 그 동네는 산이 낮고 여기저기 굴을 팠던 자리가 있었다. 탄광이었다고 누가 그랬다. 도로에서 이십 미터쯤 안쪽에 굴 입구가 하나 있었는데 나무판자를 대각선으로 대서 막아 놓았다. 판자에 흰 글씨가 적혀 있었지만 페인트가 다 벗겨져서 무슨 자인지 몰랐다.

"저거 안에 뭐 있겠십니까."

"물."

"예?"

"폐광은 물 찬다."

우리는 지나갔다. 뒤에 오는 탄약차가 판자 앞에서 흙먼지를 한 번 일으켰고, 그게 가라앉기 전에 나는 앞을 봤다.


미군 대대가 우리 앞에 있었다.

넷째 날 오후에 그쪽 부사관 하나가 우리 진지에 왔다. 통역이 없었다. 우리 중대에 영어 하는 사람은 이 소위뿐인데 그때 이 소위는 앞에 나가 있었다.

그 미군은 몸집이 크고 목이 짧았다. 지도를 펴고 손가락으로 한 점을 찍었다. 그리고 자기 손목시계를 가리키고 손가락 셋을 펴 보였다. 나는 세 시간이라고 알아들었다. 그가 다시 손가락 셋을 펴고 이번엔 좌우로 흔들었다. 세 시간이 아닌 모양이었다.

강 대위가 왔다. 강 대위도 영어는 안 됐다. 두 사람이 지도 위에서 손가락을 겹쳤다 뗐다 하는 걸 나는 옆에서 봤다. 미군이 뭐라고 길게 말하고 강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강 대위가 뭘 알아듣고 끄덕인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사람 턱이 그렇게 움직일 때는 모를 때다.

결국 종이에 주파수를 적었다. 숫자는 서로 알아봤다. 미군이 종이 밑에 뭐라고 더 적었는데 필기체여서 아무도 못 읽었다. 그가 씩 웃고 그 줄을 볼펜으로 죽 그어 지웠다. 그리고 엄지를 세워 보이고 갔다.

"뭐라 캤을까예."

"몰라."

"물어봐야 되는 거 아입니까."

"물어볼 사람이 없잖아."

한길이 뭐라고 더 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그날 저녁까지 그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지워진 줄이 볼펜 자국 밑에서 두 군데쯤 비쳐 보였는데, 알파벳은 알아도 단어는 몰랐다.

저녁 점호 때 강 대위가 우리를 모아 놓고 말했다.

"앞에 미군 있다. 앞으로 쏠 때 각별히 주의한다. 좌표 받으면 두 번 복창하고 두 번 확인한다. 알겠나."

"예."

"두 번이다. 세 번 해도 된다."


밤에 김 중사님과 담배를 피웠다.

그 사람은 포반장 시절 버릇이 남아서 담배를 궤도 뒤에서 손으로 가리고 피운다. 여기는 가릴 이유가 없는데도 그런다.

"태석아."

"예."

"우리 애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두 살 아닙니까."

"두 살이면 하지. 니는 두 살에 말 못 했나."

"기억이 안 납니다."

김 중사님이 웃었다. 웃을 때 어깨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다.

"애 엄마가 전화로 그러는데, 첫마디가 무, 라 그랬다는 거야. 무."

"무요?"

"무. 그래서 내가 무가 뭐냐 그랬더니, 물이래. 물 달라는 거래. 애 엄마는 물이 확실하다고 우기고."

"…물이 맞겠네예."

"근데 나는 아직도 무로 들려. 녹음해서 보내 줬거든. 백 번 들었는데 무야."

담뱃불이 손바닥 안에서 한 번 밝아졌다가 죽었다.

"대전 집이 이 층인데, 애가 계단을 못 내려온다. 엉덩이로 내려온대. 나는 아직 그걸 못 봤어."

"휴가 나가시면 보시겠지예."

"그래야지."

그 사람이 나를 한 번 봤다.

"니는 어머니 통화했나."

"지난달에요."

"뭐라시데."

"별말 안 하십니다. 밥 먹었냐고."

"목포는 조용하다고 하고?"

"조용하답니다."

"조용한 데가 좋은 거다."

그 사람은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흙 위에서 두 번, 세 번.

"물이면 좋겠는데."

나는 입 모양만으로 그 소리를 내 봤다. 무. 소리를 내지 않고 무. 그리고 한 번 더, 이번엔 소리를 내서.

"무."

나는 입 모양만으로 그 소리를 내 봤다. 무. 소리를 내지 않고 무. 그리고 한 번 더, 이번엔 소리를 내서.

남은 21화 · 약 74,478자 · 약 1시간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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