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8부 재(灰)
42화제60장 좌표
2012년 11월 · 인천 · 시청 부근 사무실
문을 밀었더니 종이 냄새가 났다.

사무실은 삼층이었고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이준하가 있는 자리는 창가에서 두 번째였다. 책상 위에 서류가 두 무더기 쌓여 있고, 그 사이에 모니터가 끼어 있어서 앉은 사람 얼굴이 반만 보였다.
내가 온다는 건 전화로 말해 놨다.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손을 들었다. 그러고 일어서려고 했다.
일어서는 데 시간이 걸렸다. 먼저 의자를 뒤로 뺐다. 그다음에 책상 모서리를 양손으로 짚었다. 왼발을 먼저 내밀고 오른발을 끌어다 붙였다. 그러고 나서야 손을 뗐다. 책상 옆에 지팡이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건 안 잡았다.
"오셨습니까."
"예."
"앉으시죠."
내가 앉으니까 그 사람도 다시 앉았다. 앉는 건 더 오래 걸렸다.
"연평도 가 보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아직요."
"저도 못 갔습니다."
책상 위에 종이컵이 두 개 있었다. 아까 누가 갖다 놓은 건지 하나는 식어 있었다. 그가 안 식은 걸 내 쪽으로 밀었다.
"배 타신다고요."
"예. 섬에 짐 나릅니다."
"어디까지."
"백령도까지 갑니다."
"연평도는요."
"항로는 있는데 저는 아직 안 갔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에 뭘 물어야 할지 서로 몰랐다. 저쪽 자리에서 전화벨이 울렸고 누가 받았다. 민원인 이름을 확인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여름에 열람하고 나서 직접 옮겨 적은 거다. 사본은 안 준다고 해서 손으로 썼다. 스물네 개의 이름과 계급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이거 봤습니다."
이준하가 그 종이를 봤다. 안 받고 그냥 봤다.
"…예."
"소위님."
"저 이제 소위 아닙니다."
"습관입니다."
"압니다." 그가 말했다. "저도 아직 오 병장님이라고 나옵니다."
물어볼 문장을 만들어 오지는 않았다. 오면서 생각은 했는데 다 마음에 안 들어서 버렸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그날 우리가 받은 좌표가 어딥니까."
이준하는 종이컵을 잡았다가 놓았다. 잡았다 놓는 데 삼 초쯤 썼다.
"개머리입니다."
나는 그 말이 나오고 나서도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사람도 안 했다. 저쪽에서 복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종이가 한 장씩 나오는 소리.
"열네 시 사십칠 분에요."
"예."
"첫 발부텁니까."
"첫 발부텁니다."
"무도가 아니고요."
"아닙니다."
이준하가 손가락을 책상 위에 폈다. 손톱이 짧았다.
"대응사격 표적은 원래 미리 정해 놓습니다. 원점을 못 잡으면 정해 놓은 데를 쏩니다. 그게 절차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날은 원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원점을 쐈습니다."
"어떻게 나왔습니까."
"열네 시 삼십육 분에 궤적이 잡혔고, 열네 시 삼십구 분에 좌표가 확정돼서 사격지휘반으로 갔습니다. 김 중사님이 그걸 받아서 불러 준 겁니다."
김 중사님이 불러 준 숫자를 나는 아직 외운다. 그날 하루에 세 번 바뀌었고 처음 것만 외웠다.
"그 좌표가 어디서 왔습니까."
"레이더입니다."
"레이더요."
"대포병탐지레이더요. 그 큰 차 있지 않습니까. 접시 같은 거 달린 거."
그 말은 처음 들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반쯤만 알아들었다. 알아들은 건 뒤에 붙은 말이었다.
그 차는 안다.
우리 진지에서 조금 내려간 데에 그 차가 있었다. 커다란 판때기 같은 게 달려 있고 케이블이 여러 갈래로 나와서 땅바닥에 뱀처럼 깔려 있었다. 우리는 그게 뭐 하는 건지 정확히는 몰랐다. 저기는 통신하는 데다, 정도로 알았다.
그 옆에 늘 붙어 있던 사람이 있었다.
작업복 무릎이 늘 젖어 있었고, 공구가방을 들고 다녔고, 밤늦게까지 그 차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십일월 이십삼일 아침에 그 사람이 우리 진지 앞길을 지나갔다. 나를 보고 손을 들었다. 그러고 가면서 그 차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이번엔 됩니다.
나는 그때 그게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몰라서 목례만 하고 말았다.
"그 사람 이름이 뭡니까." 내가 물었다.

이준하가 나를 봤다.
"레이더 정비관 말입니까."
"예. 그 사람 이름이요."
"표준호 상삽니다."
나는 손에 든 종이를 봤다. 스물네 개 중에 그 이름이 있었다. 위에서 여섯 번째였다. 나는 그 이름을 여름에 두 번 읽었고, 두 번 다 얼굴이 안 붙었다.
날짜는 11월 25일이었다.
"이십오일 새벽입니다." 이준하가 말했다. "그 자리에서 두 명 갔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내가 그다음에 물어야 할 게 하나 남아 있었는데, 물으면 그 사람이 대답을 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안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먼저 말했다.
"거기 몇 명 있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
"확인된 게 없습니다. 그건 아무도 못 셌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흔한 명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열아홉이 죽고 스물둘이 다쳤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이 사람이 그걸 갖고 살아야 한다. 이 사람은 그날 사격 명령을 내린 사람이고, 두 다리가 저렇고, 지금 삼층 사무실에서 남의 서류를 넘기고 있다.
내가 갖고 있으면 된다.
"소위님."
"예."
"그 차가 그해에 세 번 고장 났었다고 들었습니다."
"세 번 정비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중 마지막이 이십이일 밤이었습니다."
"그럼 그 사람이 그거 고쳐 놓고…"
거기서 내 말이 끊겼다. 뒷말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몰라서 끊긴 거다. 이준하는 그 뒤를 채워 주지 않았다. 나도 그게 나았다.
"여기서는 무슨 일 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섬 일 합니다."
"섬이요."
"옹진군 쪽이요. 귀향하신 분들 주택 복구하고, 어업권 정리하고, 그런 겁니다." 그가 서류 무더기 하나를 손등으로 밀었다. "연평도만 사백 세대가 넘습니다. 지금 절반쯤 들어가 계십니다."
"들어가셨습니까, 벌써."
"작년 봄부터요. 노인분들이 먼저 들어가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애들 학교 때문에 안 들어갑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좀 이상했다. 나는 그 섬을 열아홉 달 동안 매일 봤는데, 그 섬에 사람이 다시 산다는 걸 오늘 처음 들었다.
"굴은 어떻게 됐습니까."
"굴이요?"
"거기 굴 하는 집들 있었습니다."
이준하가 서류를 뒤졌다. 뒤지다 말고 그만뒀다.
"그건 제 담당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근데 하시는 분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다섯 시가 되니까 사무실 사람들이 하나씩 일어났다.
이준하가 시계를 봤다가 나를 봤다. 나가자고 하지 않았다. 그 사람도 안 일어났다.
창이 조금 열려 있었다. 밖에서 소리가 들어왔다. 버스가 정류장에서 문을 여는 소리, 어디선가 철판을 내려놓는 소리, 그리고 아이들 소리. 학원 차가 오는 시간인 것 같았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떠들었다가 차 문이 닫히면서 뚝 끊겼다.
전부 오른쪽에서 들어왔다.
나는 종이를 접어서 안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넣고 나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2012년 3월 ~ 2012년 10월 · 인천 임시수용시설 → 연평도
짐을 싸는 데 한 시간이 걸렸고 그중 사십 분은 신발 때문이었다.
최영도는 방 한가운데 앉아서 아내의 신발을 들고 있었다. 회색 운동화였다. 뒤축이 한쪽만 닳아 있었다. 아내는 걸을 때 오른발을 조금 끌었고 본인은 그걸 인정한 적이 없었다.
그는 신발을 상자에 넣었다가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한금례가 죽은 것은 그 전해 일월이었다.
남동구의 옛 연수원 건물을 임시로 쓰던 때였다. 강당에 칸막이를 세워서 열여덟 세대가 들어갔고, 밤이면 다른 집 기침 소리가 다 넘어왔다. 아내는 십이월부터 기침을 했다. 마른기침이었다가 젖은 기침이 됐고, 일월 둘째 주에 열이 올랐다.
병원은 밀려 있었다. 그해 겨울 인천의 병상은 남쪽에서 올라온 환자와 북쪽에서 내려온 부상자로 차 있었다. 접수하고 나흘을 기다렸다.
일월 이십이일 아침에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손이 차서 그는 자기 손으로 감쌌다. 손등에 검버섯이 세 개 있었고 그중 하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있던 것이었다. 손톱은 짧았다. 아내는 평생 손톱을 길러 본 적이 없었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뭐라고 했다. 그는 못 알아들었다. 다시 말해 줬을 때 알아들었다.
그는 손을 놓았다.
놓을 때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새끼손가락부터 폈고, 마지막에 엄지를 뗐다. 뗀 손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 뒤로 일 년 하고 두 달을 인천에서 살았다.
임시수용시설에서 나와 남동구의 임대아파트 십사층으로 옮겼다. 방이 두 개였고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겨울에 따뜻했다. 아들이 얻어 준 집이었다.
노인이 하루를 쓰는 방법은 몇 가지 안 됐다.
여섯 시에 일어난다. 물을 끓인다. 텔레비전을 켜 놓고 안 본다. 아홉 시에 경로당에 간다. 경로당에는 연평도 사람이 넷, 대청도 사람이 둘 있었다. 그들은 화투를 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누가 섬 얘기를 꺼내면 나머지가 듣고, 아무도 대꾸를 안 하고, 그러다 화제가 바뀌었다.
부엌 옆 벽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물때표였다. 재작년 것이라 날짜가 안 맞았다. 그래도 그는 아침마다 그것을 봤다. 만조와 간조의 시각이 매일 오십 분씩 밀린다는 것은 종이가 없어도 아는 것이었지만, 그는 종이를 봤다.
십사층 창으로는 바다가 안 보였다. 건물 사이로 회색 띠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다가 아니라 고속도로였다.
십사층 창으로는 바다가 안 보였다. 건물 사이로 회색 띠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다가 아니라 고속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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