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8부 재(灰)
41화제58장 아무도 세지 않은 것
국회 조사특별위원회의 열한 번째 청문회는 2013년 1월 17일이었다.
한지환은 그달에 군을 떠났다. 군에 있은 지 스물두 해째였다. 증인석에 앉은 그는 양복을 입고 있었고, 넥타이 매듭이 목을 조금 조였다.

"증인은 2010년 11월 23일 오후 합참 작전본부에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14시 47분의 대응사격 표적이 무도가 아니라 개머리였습니다. 그 결정은 누가 했습니까."
"현장 지휘관입니다. 연평부대장."
"합참은 관여하지 않았습니까."
"그 시각에 합참이 현장에 준 것은 없습니다. 현장이 합참에 올린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좌표입니다."
위원이 서류를 넘겼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마이크에 들어갔다.
"증인. 그 좌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한지환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컵을 내려놓을 때 받침에 소리가 났다.
"그건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모른다는 뜻입니까."
"모릅니다."
다른 위원이 자료를 들었다. 전쟁 전에 나온 두 개의 추정이었다. 하나는 첫 일제사격에 삼천 명이 죽는다고 했고, 다른 하나는 삼만 명이 죽는다고 했다. 하나는 시간당 사천 발이 한계라고 했고, 다른 하나는 만사천 발을 상정했다.
"이 두 개 중에 어느 쪽이 맞았습니까."
"둘 다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었습니까, 증인."
한지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청석 뒤쪽에서 누가 기침을 했다.
"우리는 범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범위는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청문회는 다섯 시간 걸렸고, 그날 그가 대답하지 못한 것은 여섯 가지였다. 나올 때 아무도 그를 붙잡지 않았다. 계단에서 그는 휴대폰을 켰다가 껐다. 그의 아들 이름은 그 위원회의 조사 범위 밖이었다. 육군 손실 보고는 다른 위원회 소관이었다.
서울 중구의 피해자 등록 창구는 오후 여섯 시에 닫는다.
오지원 앞에 앉은 남자는 종이 두 장을 갖고 왔다. 하나는 등기부등본이고 하나는 사망진단서였다. 진단서 발급일이 2011년 3월이고 사망일이 2010년 12월이었다.
"이 석 달 차이는 뭡니까."
"찾는 데 걸렸어요."
"어디서요."
"아현동이요."
지원은 더 묻지 않았다. 그 동네 이름은 하루에 서너 번씩 나온다. 그녀는 신청서에 남자의 이름을 옮겨 적고, 관계 칸에 아들이라고 쓰고, 확인란에 표시했다.
"이거 언제 나옵니까."
"심사가 넉 달입니다."
"넉 달."
"밀려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남자는 죄송하다는 말에 손을 저었다. 저은 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나가면서 문을 잡아 뒤에 오는 사람에게 넘겨줬다.
지원은 접수 대장에 그날의 마지막 번호를 적었다. 사백열둘. 이름이 사백열두 개다.
그녀가 지금 하는 일도 명단을 만드는 일이었다. 창구가 다르고 양식이 다를 뿐이다.
접수 도장은 목재 손잡이가 달린 것이었다. 잉크판에 두 번 누르고, 종이 위에 한 번 찍는다. 찍는 소리는 생각보다 작다. 종이가 얇을수록 소리가 높아진다.
오늘 마지막 장은 두꺼운 축이었다. 소리가 낮게 떨어졌고, 지원은 도장을 놓고 그 종이를 옆으로 넘겼다.
2012년 9월 · 인천 · 정착 지원 사무소 근처 식당
새로 온 놈은 짐을 세지 않고 셌다.
우리 배는 이백 톤짜리 연안 화물선이고, 인천에서 나가서 섬에 시멘트하고 철근하고 기름을 부린다. 짐을 실을 때는 검수원이 종이를 들고 하나씩 찍는다. 그날 검수원이 늦게 와서 반장이 짜증을 냈다.
"몇 장이야, 이거."
새로 온 놈이 갑판에서 파레트를 한 번 훑고 말했다.
"사백스물입니다."
반장이 종이하고 맞춰 보더니 아무 말 안 했다. 맞았다는 뜻이다.
나중에 내가 물었다.
"어떻게 셌냐."
"한 단이 이십사 장이고, 열일곱 단하고 열두 장 남았습니다."
"그걸 보고 안 거냐."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이 새끼는 말을 하다가 중간에 삼킨다. 그게 버릇이다. 말투도 좀 달랐다. 억양이 아니라 순서가 달랐다. 스물두 살이라고 했고, 정착 지원 사무소에서 소개해 줘서 왔다고 했다.
리성철.
이름표를 작업복에 매직으로 썼는데 글씨가 반듯했다.
배에서는 말을 많이 안 한다.
엔진 소리가 있으니까 말을 하려면 소리를 질러야 하고, 소리를 지르면 짧게만 말하게 된다. 나는 그게 편했다. 왼쪽으로 오는 말은 어차피 못 듣는다.
닷새쯤 같이 일했다. 그놈은 손이 느렸는데 물어보는 게 없었다. 한 번 보고 그다음부터 했다. 밧줄 감는 걸 사흘 만에 익혔다. 사흘이면 빠른 거다.
대청도에 짐을 부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놈이 난간에 붙어 서 있었다. 물이 아니라 북쪽을 보고 있었다. 그쪽에는 아무것도 없고 흐린 날이라 수평선도 안 보였다.
내가 옆에 가서 섰더니 그놈이 자세를 고쳤다. 군대에서 배운 자세였다. 배운 건 안 빠진다.
"저쪽에 뭐 있냐."
"…없습니다."
우리는 한참 그러고 있다가 각자 갔다.
목요일에 갑판장이 컵라면을 먹으면서 그놈한테 물었다.

"군대는 갔다 왔나."
"…예."
"어디."
그놈이 대답을 안 했다. 갑판장이 웃었다.
"아, 참. 미안하다."
그리고 나를 턱으로 가리켰다.
"쟤는 해병대야. 연평도. 거기 있었어."
리성철이 나를 봤다. 그 눈이 반 초쯤 길었다. 나는 그걸 봤는데 그때는 뭐라고 생각 안 했다.
그날 저녁에 그놈이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사무소 근처에 백반집이 하나 있다. 육천 원짜리를 시키면 국하고 반찬이 여섯 개 나오고 밥은 더 준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고 소리는 작았다.
소주를 시킨 건 그놈이었다.
"형님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불러라."
한 병을 반쯤 비울 때까지 별말 안 했다. 그놈은 술을 천천히 마셨다. 잔을 비우고 나서 꼭 젓가락으로 뭔가를 한 번 집었다.
"형님."
"어."
"저는 이천십일년 이월에 잡혔습니다."
"들었다."
"그전에는 서해 쪽에 있었습니다."
나는 국을 떠먹었다. 그놈이 말을 이었다.
"해안포중대였습니다. 장전수 했습니다."
"어디."
"개머리입니다."
젓가락이 내 손에서 그릇 위로 갔다. 나는 그걸 상에 내려놓았다. 놓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손끝이 아니라 팔뚝이 이상했다.
개머리는 안다.
우리 진지에서 북쪽으로 보면 육지 끝자락이 하나 나온다. 맑은 날에는 능선이 보이고 흐린 날에는 회색 덩어리로만 보인다. 지도에서 봤고, 사격지휘반에서 부르는 걸 들었고,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 섬에 있는 사람이면 다 안다.
이등병 때 초소에서 그쪽을 보고 있으니까 고참이 저기가 개머리라고 알려 줬다. 이름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생긴 게 그렇다고 했다. 나는 아무리 봐도 개머리처럼 안 보였다.
"이천십년 십일월 이십삼일에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놈이 말했다.
텔레비전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 들었다.
"우리가 열네 시 삼십사 분에 쐈습니다."
리성철은 숫자를 말할 때 목소리가 낮아지지 않았다. 다른 얘기 할 때랑 똑같이 말했다.
"방사포하고 평사포입니다. 나는 두 번째 포에서 장전을 했습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훈련 때랑 손이 똑같았습니다."
"…그래."
"그러다 우리 쪽에 떨어졌습니다."
"언제."
"열네 시 사십칠 분입니다."
나는 젓가락을 다시 잡지 않았다.
"처음 온 게 진지 안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게 그렇게 올 줄 몰랐습니다. 예전에는 저쪽이 우리 있는 데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놈이 잔을 채웠다. 자기 것만 채우고 내 것은 안 채웠다. 내 잔이 안 비어 있어서 그랬다.
"중대장 동지가 밖에 나가서 소리를 질렀는데, 나는 그 말을 못 들었습니다. 귀가 안 들렸습니다. 그날부터 한 달 동안 오른쪽이 잘 안 들렸습니다."
나는 왼쪽 귀 쪽으로 잠깐 손이 갔다가 내렸다.
"중대장 동지는 이튿날 죽었습니다. 비행기가 왔습니다."
그놈은 그 뒤 얘기는 짧게 했다. 겨울에 남쪽으로 내려갔고, 이월에 바닷가에서 잡혔다고 했다. 총을 버린 게 아니고 총알이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웃지도 않고 변명도 안 했다.
"그때 같이 있던 사람이 다섯이었는데 셋만 왔습니다."
"두 명은."
"모릅니다."
"마흔한 명입니다."
그놈이 그렇게 말했다.
"열아홉이 죽고 스물둘이 다쳤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내가 셌습니다." 리성철이 말했다. "그날 밤에 세라고 해서 센 게 아니고, 그냥 셌습니다. 나중에 위에서 물어봤을 때 내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적었습니다."
"…"
"이름도 다 적었습니다. 우리 중대는 마흔여덟이었으니까 다 압니다."
밥집 주인이 다른 상을 치우면서 그릇을 포개는 소리가 났다. 오른쪽에서 났다. 그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나는 그날 백육십팔 발을 셌다. 그중에 우리 포가 몇 발인지도 안다. 나는 그걸 십일월 이십삼일 저녁부터 알고 있었고, 알고 있는 동안 그게 어디로 갔는지는 몰랐다.
이 새끼도 세는 놈이다.
우리 사격지휘반은 그날 무도를 안 쐈다. 김 중사님이 불러 준 좌표는 무도가 아니었다. 나는 그걸 작년 봄에 소위님한테 한 번 물어봤고 대답을 못 들었다. 그 뒤로는 안 물어봤다. 물어볼 사람이 앞에 없었으니까.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놈은 그 좌표 위에 서 있던 놈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그 좌표를 모른다. 모르는 채로 이 얘기를 듣고 있다.
말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미안하다고 하면 그건 내가 했다고 하는 거고, 나는 아직 내가 했는지 모른다. 몰랐다고 하면 그건 더 나쁜 말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소주를 마셨다.
리성철이 내 잔을 봤다가 병을 들었다. 채워 주고 자기 잔도 채웠다. 그러고는 상 위에 놓인 내 젓가락을 나란히 맞춰 놓았다. 아까 내가 아무렇게나 놓은 걸 자기가 맞춘 거다.
그러고 물었다.
"형님. 내일 몇 시에 나옵니까."
'형님. 내일 몇 시에 나옵니까.'
남은 3화 · 약 10,055자 · 약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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