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6부 세계
33화제47장 열두 발
2011년 1월 11일 ~ 3월 · 도쿄 총리관저 / 요코스카 / 사세보 / 이와쿠니
오노 사치코는 스피커 소리에 깼다.

언덕 아래 방재 스피커였다. 태풍이 오면 그 스피커가 운다. 그 소리를 삼십 년 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잠결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다만 문장이 달랐다.
여자 목소리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녀는 두 번째 반복에서 침대에서 내려왔고, 세 번째 반복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지진이면 문을 연다. 나갈 길을 확보해야 하니까. 태풍이면 욕조에 물을 받는다. 단수가 되니까.
이건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녀는 현관에서 신발을 손에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고 신었다. 선반에서 비상 배낭을 꺼내 안에 든 것을 확인했다. 물 두 병, 손전등, 건빵, 목장갑, 라디오. 삼 년마다 물을 바꿔 넣었다. 그것들을 보면서 그녀는 이 중에 지금 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갈까 하다가 나가지 않았다. 나가서 어디로 갈지 몰랐다.
한 시 이십 분쯤에 창유리가 흔들렸다. 소리는 그다음에 왔다. 항구 쪽이었다.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그녀는 라디오를 켰다. 아직 아무 말도 안 나오고 있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그녀는 현관 앞 마루에 앉아 있었다. 다섯 시쯤 위층 사람이 계단을 내려갔다. 그 발소리가 평소보다 빨랐다.
여섯 시가 지나서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갔다. 언덕에서 항구가 내려다보였다. 연기가 두 군데서 났다. 한 군데는 검고 한 군데는 희었다. 소방차 소리가 아래에서 올라왔다.
옆집 여자가 잠옷 위에 외투를 걸치고 나와 있었다.
"어디 떨어진 거예요."
"몰라요."
"우리나라에 떨어진 거 맞아요?"
사치코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말을 알고 있었는데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배 안에서는 소리가 진동으로만 온다.
후지타 3등해좌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심볼이 열두 개 떴다. 항적이 서에서 동으로 왔다. 셋으로 갈렸다. 하나는 이 만 쪽, 하나는 남서쪽, 하나는 더 남쪽이었다.
요격탄이 나갈 때 발밑이 두 번 울렸다.
넷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중 하나는 사라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고, 나머지 셋은 한 번에 없어졌다.
셋은 사라지지 않았다. 요격탄 심볼이 지나갔는데도 계속 갔다. 그것을 화면으로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그냥 갔다.
다섯은 손을 대지 못했다. 저고도로 들어왔거나, 이 배가 있는 자리에서는 닿지 않는 곳이었다.
같은 화면에 성공과 실패가 같이 떠 있었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갑판 아래 어딘가에서 뭔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그것이 그 몇 분 동안 함 내에서 난 유일한 소리였다.
"몇이냐." 함장이 물었다.
"넷입니다."
"열둘 중에."
"예."
함장은 화면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다시 돌아섰다.
"항공자위대 쪽은."
"교신 중입니다. 이와쿠니 쪽으로 두 개가 갔다고 합니다."
아침에 배가 나갔다.
부두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계류줄이 풀리고, 예인선이 붙고, 회색 선체가 안벽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물이 그 사이로 들어갔다.
언덕 위에는 사람이 서 있었다. 열댓 명쯤이었다. 그중 하나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 그가 렌즈를 맞춘 것은 배가 아니었다. 부두에 남은 계류줄이 감기는 것이었다. 굵은 밧줄이 드럼에 감기면서 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전화는 그 시각에 걸려 왔다.
"오늘 안에 안 나가면 이번 주 물자가 안 옵니다." 캘러헌 대령의 목소리가 서울에서 왔다. "저쪽이 국회를 하든 회견을 하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에요. 지금 우리 애들이 남은 탄을 세어 가며 쏘고 있어요."
제이슨 박은 수화기를 옮겨 잡고 상대에게 말했다.
"대령님께서는 이번 주 보급 일정이 오늘 출항에 달려 있다고 하십니다. 그쪽 사정도 물론 이해한다고 하십니다."
일본 측 연락장교가 대답했다. 영어가 조심스러웠다.
"조정할 시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제이슨 박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대령 쪽 회선으로 돌아갔다.
"안 된다는 뜻입니다, 대령님."
"안 된다고 했어요?"
"그렇게는 말 안 했습니다."
"그럼 뭐라고 한 겁니까."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제이슨 박이 말했다. "그건 여기서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대령님, 오늘 배는 나갈 겁니다."
배는 나갔다.
그 뒤로도 나갔다. 2월에도 나가고 3월에도 나갔다. 언덕 위에 서는 사람 수가 달라졌다. 1월에는 열댓 명이었고, 2월에는 백 명쯤 됐고, 3월에는 언덕이 아니라 정문 앞에 섰다. 서명 용지를 든 사람들이 아침마다 나왔고, 사치코도 한 장 받아 이름을 적었다. 이름 적는 칸 위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그녀는 두 번 읽었다.
배가 나가는 것을 막자는 것이 아니었다. 왜 나가는지를 설명하라는 것이었다.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배는 계속 나갔다.

1월 11일 아침, 관저의 그 방에는 조약문 사본이 놓여 있었다.
외무성에서 온 사람이 손가락으로 제5조 위치를 짚었다. 일본의 시정 아래에 있는 영역이 공격받은 경우에 관한 조항이었다. 이번에 떨어진 다섯 발은 그 조건에 다 들어간다고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미국이 우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겁니까." 방위대신이 물었다.
"문언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럼 물어봐야겠군요. 뭘 어떻게 해 주실 건지."
"그 전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제6조가 있습니다. 저쪽이 우리 기지를 쓰는 조항이요. 오늘 저쪽이 우리한테 원하는 건 5조가 아니라 6조입니다."
간 나오토는 그 말을 듣고 있었다.
"항구를 닫으면요." 그가 물었다.
방이 조용해졌다.
"닫으면 저쪽이 못 싸웁니다." 방위대신이 말했다. "탄약이 사세보하고 요코스카로 들어와서 나갑니다. 여기서 막으면 저기서 멈춥니다."
"열어 두면 우리한테 계속 날아옵니까."
"그건 저쪽이 정하는 일이라서 저희가 답을 못 드립니다."
"그럼 답할 수 있는 것만 말해 주세요."
"닫으면 동맹이 끝납니다." 외무성 사람이 말했다. "그건 답할 수 있습니다."
책상에는 종이가 두 장 있었다. 한 장은 피해 집계였다. 아침 여섯 시에 받은 것과 여덟 시에 받은 것의 숫자가 달랐고, 여덟 시 것이 훨씬 컸다.
다른 한 장은 비서관이 방금 프린트해 온 것이었다. 두 달 전 그가 한 발언이었다. 민간인이 사는 지역에 포를 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잔학한 행위이며 강력히 규탄한다. 그때는 다른 나라 섬 이야기였다.
그는 그 종이를 회견 원고 밑에 끼워 넣었다.
원고는 여섯 장이었다. 셋째 장 두 번째 문단이 빨간 볼펜으로 세 번 고쳐져 있었다. 항구를 계속 연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항구를 계속 열겠다고 말하는 문단이었다.
"총리, 십 분 남았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셋째 장 오른쪽 아래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눌러 들어 올렸다. 종이가 반쯤 섰다.
2011년 6월 · 황해북도 진지
주파수를 맞추는 건 내 일이다.
라디오는 겨울에 위문품으로 들어온 것 중 하나다. 손바닥만 하고, 안테나가 한 번 부러져서 철사로 이어 놨다. 밤 아홉 시쯤 되면 나는 그걸 참호 흙벽 위에 올려놓고 다이얼을 아주 천천히 돌린다.
빨리 돌리면 지나간다. 아주 천천히 가야 한다.
잡음 속에서 말소리가 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잡히면 그때 손을 뗀다. 손을 떼면 또 흐려진다. 그래서 손가락을 다이얼에 얹어 놓은 채로 듣는다. 손을 떼는 순간 소리가 달아나는 게 있다.
라디오는 오른쪽 귀에 대고 듣는다.
한길이하고 고 이병하고 남 일병이 옆에 붙어 앉는다. 잘 안 들리니까 다들 자연히 조용해진다. 하루 중에 우리가 제일 조용한 시간이다.
여름이 왔다. 참호에 풀이 자라서 남 일병이 그걸 뽑는 게 일과가 됐다. 요즘은 사격이 별로 없다. 없는데 끝난 건 아니다. 그게 제일 이상하다. 3월까지는 매일 뭐가 일어났고, 지금은 며칠씩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아무도 이게 끝나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제 우리 포대가 쏜 건 다 해서 아홉 발이다. 나는 세고 있다.
다이얼을 돌리다 보면 다른 것도 잡힌다. 북쪽 방송이 제일 세게 들어온다. 여자 목소리인데 말이 아주 또박또박하고 사이사이가 길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겠는데 듣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져서 나는 그냥 지나친다. 중국말도 잡히고, 일본말도 잡힌다. 일본 방송은 밤에 아주 잘 들어온다.
한번은 노래만 나오는 데를 잡았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노래였다. 그날은 그거 틀어 놓고 다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름들을 나는 반도 모른다.
이집트. 리비아. 아일랜드. 대만.
이집트는 안다. 피라미드 있는 데다. 리비아는 들어는 봤다. 아일랜드는 잘 모르겠고, 대만은 안다. 그건 우리 옆이다.
그런데 그 나라들 이야기가 왜 우리 얘기 앞뒤에 붙어서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아나운서는 그걸 다 한 번에 붙여서 읽는다.
지도는 위문품 상자에서 나온 거다. 어린이용이라서 나라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집트에는 피라미드, 어디에는 캥거루, 어디에는 소나무 같은 게 있다. 종이가 넉 장으로 접혀 있어서 접힌 자리가 하얗게 닳았다.
나는 그걸 참호 바닥에 펴 놓고 손전등으로 비췄다.
이집트를 찾았다. 리비아는 그 옆이었다. 붙어 있는 줄 몰랐다.
아일랜드는 한참 걸렸다. 유럽 쪽에서 위로 올라가다가 왼쪽 끝에서 찾았다. 섬이었다. 섬인 줄도 몰랐다.
대만은 못 찾았다. 우리 옆인데 못 찾았다. 지도가 어린이용이라 글씨가 커서, 큰 나라 이름이 작은 섬을 덮고 있었다.
"여기 아입니꺼." 한길이가 손톱으로 짚었다.
"여긴 글씨 없는데."
"그러니까 여기지예."
우리나라는 지도에서 금방 찾았다. 그림이 없었다. 위쪽하고 아래쪽이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고, 가운데 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나는 지금 그 선 위쪽에 앉아 있다. 그 생각을 하니까 좀 이상했다. 지도를 만든 사람은 이렇게 될 줄 몰랐을 거다.
내가 있는 자리는 지도에서 손톱 하나만도 안 된다. 이집트하고 우리 사이에는 손바닥이 세 개쯤 들어간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사람이 또 그 말을 했다고 아나운서가 전했다. 육이오 끝나고 나서 가장 심각한 사건 중에 하나라고. 그 말을 나는 작년 겨울에도 들었다. 반년이 지났는데 같은 문장을 쓴다.
"저 사람 우리나라 사람 아입니꺼." 한길이가 말했다.
"맞다."
"그라믄 저 말 할 때마다 좀 그렇겠네예."
나는 대답을 안 했다. 라디오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는 대답을 안 했다. 라디오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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