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2부 마흔여덟 시간
8화제11장 섬을 비우는 순서
여덟 시쯤 마을 위쪽에서 실랑이 소리가 났다.
최영도 어르신이었다. 철 되면 우리 중대 사람들한테 굴을 한 자루씩 들려 보내던 분이다. 그 집 아주머니가 옷 보따리를 들고 앞장서 있고, 어르신은 마당에 서서 안 움직였다.

"영감, 배 놓쳐."
"놓치라 그래."
"뭐?"
"저기 물 밑에 뭐가 들어 있는 줄 알고 그런 소리를 해. 종패를 넣은 게 언젠데."
"종패가 사람이여?"
"사람은 못 되지."
"그럼 됐어. 가."
"내가 없으면 저거 다 죽어."
아주머니는 보따리를 땅에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어르신 등을 한 번 쳤다. 세게 친 것도 아니었다.
"당신이 있어도 죽어."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려다가 결국 인사를 했다.
"어르신, 배 곧 뜹니다."
어르신이 나를 봤다. 아, 하고 알아보는 얼굴이었다.
"자네는 안 가나."
"저희는 남습니다."
"그럼 나도 남아야지."
"그건 안 됩니다."
"그건 안 되고 자네는 되나."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어르신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구십구 년에도 시끄러웠고 그담에 또 시끄러웠어. 작년에 대청 앞바다에서 붙었을 때도 나는 배 띄웠어. 그때도 다들 나가라 그랬지."
"어르신."
"그때는 아무 일 없었잖나."
아주머니가 보따리를 다시 들고 어르신 팔을 끌었다.
"영감, 이번엔 마을에 떨어졌어. 마당에. 알아?"
두 사람은 그렇게 내려갔다. 어르신은 세 번 뒤를 돌아봤다. 세 번째에는 집이 아니라 바다 쪽을 봤다.
열한 시가 넘어서 발전소 사잇길 쪽으로 심부름을 갔다.
그쪽은 관사 짓던 데다. 능선 7부쯤에 철근하고 거푸집이 서 있었고, 어제 그 근처에 두 발이 떨어졌다는 말은 들었다.
멀리서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해경 특공대라고 했다. 다섯인가 여섯인가가 흩어져서 땅을 보고 걷고 있었다.
한 사람이 멈췄다.
멈춘 다음에 손을 들어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세 사람이 모였다. 그중 하나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나는 백 미터쯤 떨어진 길에 서 있었고, 거기서 보이는 것은 등이었다. 검은 등이 셋. 그리고 그 옆에 파란 것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작업복 같았다. 그 옆에 노란 안전모가 하나 굴러 있었다. 안전모 뒤통수에 흰 글씨로 이름이 적혀 있는 것 같았다. 거리가 있어서 글자는 안 보였다.
무릎 굽히고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서 무전기를 잡았다. 잡고 나서 바로 말하지 않았다. 무전기를 든 채로 다시 앉았다. 헬멧을 벗어서 무릎에 올려놓고, 장갑 낀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나는 돌아섰다. 심부름 온 걸 잊어버릴 뻔했다.
내려오는 길에 소나무 밑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부두 위쪽 비탈이었다. 나무가 여남은 그루 있는데 그중 한 그루 둥치에 뭔가 박혀 있었다. 어제 그쪽에서도 터졌다고 했다.
부사관 한 분이 손을 올렸다. 키가 커서 팔을 다 안 뻗어도 닿았다. 손끝으로 그 자리를 만졌다. 손톱으로 긁어내려다가 그만두고, 그냥 엄지로 한 번 문질렀다. 나무껍질 부스러기가 조금 떨어졌다.
그러고는 손을 내렸다. 아무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오후에 정리 인원 차출이 있었다.
우리 반에서 나하고 하동찬이 갔다. 우리 중대가 아니라 다른 데였다. 생활관에 들어갔더니 관물대가 스무 개 넘게 있었고 그중 몇 개 앞에 종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름표 확인하고, 사복하고 개인 물품만 담으십시오. 관급품은 따로."
병기병 하나가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하동찬이 문간에서 안 들어오고 서 있었다.
"들어와."
"예."
"장갑 껴."
"손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세 번째 관물대 앞에 섰다. 명찰이 붙어 있었다. 계급하고 이름. 그 아래 소속이 적혀 있었는데 우리 중대가 아니었다. 수송 쪽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해 보려다가 그만뒀다. 이 섬에 있는 사람은 다 어디선가 한 번은 봤다. 취사장 줄이나 목욕탕이나 부두에서.
안에는 개어 놓은 체육복, 세면도구, 편지 봉투가 몇 장, 그리고 손톱깎이가 있었다. 체육복은 각을 잡아 개어져 있었다. 자대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개는 방식이었다. 반년쯤 지나면 다들 대충 접는다.
편지 봉투는 뜯긴 것이 두 장, 안 뜯긴 것이 한 장이었다. 안 뜯긴 것은 어제 들어온 우편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읽지 않았고 뒤집어 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상자에 넣었다. 순서를 바꾸지 않고 있던 대로 넣었다. 손톱깎이를 마지막에 넣고 상자 뚜껑을 접었다.
문을 닫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문 안쪽에 사진이 한 장 붙어 있었다. 테이프 네 귀퉁이가 다 눌려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뗄지 말지 몰라서 손을 그대로 두었다.
2010년 11월 24일 03시 00분 · 4군단 지휘소 / 평양 총참모부·국방위원회
명단은 두 장이었다.
첫 장에 열아홉, 둘째 장에 스물둘. 등사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쓴 것이었다. 개머리 해안포중대에서 올라온 원본을 군단 참모부가 그대로 옮겨 적었고, 옮겨 적는 사이에 종이가 두 번 접혔다.
김격식은 접힌 자리를 손바닥으로 눌러 폈다. 종이가 오래된 것이라 잘 안 펴졌다. 그는 같은 자리를 세 번 눌렀다.
"중대장은."
"오철남 대위는 무사합니다. 관측소에 있었습니다."
"관측소가 살았나."
"관측소는 온전합니다. 포상이 맞았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참모장이 지도 위에 손가락을 놓았다.
"군단장동지, 저쪽 첫 사격이 두 시 사십칠 분입니다. 그때 이미 우리 포진지에 떨어졌습니다."

"무도가 아니고."
"무도에도 왔습니다만 나중입니다. 처음부터 개머리에 왔습니다."
김격식은 그 말을 두 번 듣고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1938년에 났고 전쟁 때 아이였다. 포병이 원점을 잡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평생 알고 지냈다.
"열세 분 만에."
"예."
"열세 분 만에 원점을 잡았다는 말이오, 지금."
"그렇게 봐야 합니다."
"그건 우연이 아니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격식은 다시 명단을 봤다. 첫 장 위에서 여섯 번째 이름 옆에 나이가 적혀 있었다. 스무 살.
"고향들이 어디요."
참모장이 다른 종이를 넘겼다.
"강원도 쪽이 많습니다. 열아홉 중에 여섯이 한 군(郡)입니다."
"여섯이."
"예."
김격식은 손을 명단 위에 그대로 얹어 두었다.
"동무. 한 군에서 여섯이면, 그 군은 사흘이면 다 압니다."
평양의 책상 위에는 두 장의 종이가 나란히 있었다.
왼쪽은 대외 성명 초안이었다. 남조선 괴뢰가 먼저 우리 영해에 포탄을 쏘았고, 우리 군은 즉시 섬멸적 타격으로 응징했으며, 우리 측 피해는 없다. 세 문장이었고 세 번째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오른쪽은 4군단 보고였다. 41.
정만복 소장은 두 장을 나란히 놓고 오래 봤다. 총참모부 작전국에서 이십 년을 있었고, 그 이십 년 동안 왼쪽과 오른쪽이 다른 종이를 여러 번 봤다. 다른 정도가 문제였다.
"부국장동지."
작전국 참모가 문 앞에서 말했다.
"통지 문제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통지."
"유가족 말입니다. 열아홉 명입니다."
정만복은 왼쪽 종이를 손끝으로 밀었다.
"이걸 내보내고 통지를 하면."
"예."
"통지를 안 하면."
"…시신이 이미 부대에 없습니다."
정만복은 그 문장을 오래 들었다. 어젯밤 열한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개머리 후사면에서 차량 두 대가 오갔다는 보고를 그는 이미 읽었다. 운행 일지에는 목적이 '수송'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참모."
"예."
"이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오."
국방위원장은 여섯 시 조금 전에 방에 들어왔다.
왼쪽 발이 먼저 나오지 않아서 문턱에서 한 박자 쉬었다. 아무도 부축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쪽을 보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오른손으로 왼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총참모장이 보고했다. 인민무력부장이 이어서 보고했다. 두 사람 다 41이라는 숫자를 한 번씩 말했고, 두 번째 사람은 그 숫자를 말할 때 목소리를 낮췄다.
"열아홉이라."
김정일이 말했다. 말끝이 조금 뭉개졌다.
"동무들. 어제 저녁에 내가 뭐라고 했소."
"동수 이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오늘 아침에 계획으로 만들어 오라 그랬는데."
총참모장이 서류를 폈다. 서해 5도의 표적 목록이었다. 항목이 위에서 아래로 스물 몇 줄 있었고, 아래로 갈수록 섬이 아니었다.
노동당 행정부장이 손을 들었다.
"위원장동지. 중국 쪽에서 오늘 오전에 사람이 옵니다. 만나 보고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나서 뭘 하나."
"들어는 봐야 합니다."
"들어 보는 건 언제나 해도 되오."
방 끝에 젊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두 달 전에 대장이 되고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앞에 놓인 명단을 손으로 넘기지도 않았다. 다만 첫 장을 한 번 들어서 각도를 바꿔 봤는데, 그것은 글씨가 흐려서 그런 것 같기도 했고 나이 칸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총참모장이 그쪽을 봤다. 인민무력부장도 봤다. 두 사람이 본 것은 얼굴이었고,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장동지 의견은 어떻소."
김정일이 물었다.
그는 명단을 내려놓고 말했다.
"피해가 없다고 이미 냈습니다."
"냈지."
"그러면 저것들은 우리가 낸 종이를 믿습니다. 우리 군단 하전사들의 집은 안 믿습니다."
"그래서."
"밖에 대고는 없다고 하고, 안에서는 갚아야 합니다. 갚지 않으면 다음에 저것들이 또 열세 분 만에 잡습니다."
인민무력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장동지, 갚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시일을 두고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시일을 두면."
"소란이 가라앉습니다."
"가라앉는 게 아니라 4군단 안에서 말이 돕니다. 부대는 마을입니다. 열아홉이 어디서 왔는지 하전사들이 서로 압니다."
말이 짧았다. 그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더 묻지 않았다. 방 안의 사람들이 읽으려 한 것은 그의 말이 아니라 그 말의 길이였다.
김정일이 오른손으로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그게 끝이라는 뜻이었다.
김정일이 오른손으로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그게 끝이라는 뜻이었다.
남은 36화 · 약 126,903자 · 약 3시간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