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3부 서울
17화제24장 셈이 맞지 않는다
2010년 12월 9일 ~ 12월 12일 · 경기 김포 · 해병대 제2사단 배속 임시 포대 진지
라디오는 건전지가 반쯤 죽어서 소리가 늘어졌다.

취사장 천막 기둥에 못을 박고 거기 걸어 놓은 것이었다. 배식 줄이 그 밑을 지나가니까 다들 한 번씩 듣게 됐다. 밥 받는 데 이십 초쯤 걸리고, 이십 초면 한 문장 반이 들린다.
12월 9일 저녁 배식 때 여자 아나운서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가 오늘 오후 브리핑에서 사망자를 이만 팔천여 명으로 발표했다고 했다. 다음 문장은 잘 안 들렸다. 국자 소리 때문이었다. 그다음 문장부터는 다른 얘기였다.
아일랜드가 어떻게 됐다고 했다. 유로가 어떻게 됐다고 했다. 기름값이 배럴당 얼마라고 했고 원 달러 환율이 몇 원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이재민 등록 안내가 나왔다. 시설명을 하나하나 읽었다. 대전 어디, 청주 어디, 천안 어디. 읽는 데 오래 걸려서 내가 밥을 다 받고 나서도 아직 읽고 있었다.
한길이가 뒤에서 말했다.
"행님, 저 아일랜드가 어데 있는 나랍니까."
"몰라."
"기름은 와 오릅니까. 우리가 안 쓰는데."
"몰라."
"모르는 게 많으시네예."
지호가 킥킥거렸다. 나는 국그릇을 들고 자리로 갔다.
이준하 소위가 옆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배식판을 앞에 놓고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신문이 나흘 전 것이었다. 진지에 들어오는 신문은 늘 며칠 늦다.
"소위님." 한길이가 숟가락으로 라디오 쪽을 가리켰다. "환율이 오르면 우리한테 뭐가 안 좋습니까."
이 소위가 신문에서 눈을 뗐다.
"기름을 달러로 사니까."
"기름이야 우리 거 있잖습니까."
"드럼에 든 거 말고. 나라 전체가 쓰는 거."
"그거는 누가 삽니까."
이 소위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신문을 접었다. 접을 때 그 사람은 접힌 자국을 손톱으로 눌러서 편다.
"정한길."
"예."
"밥 식는다."
나는 그 대화를 다 들었고 하나도 이해를 못 했다. 다만 이 소위가 접힌 자국을 누르는 걸 봤다. 그 사람은 대답이 없을 때 손을 쓴다.
그날 밤에 나는 계산을 시작했다.
연평도에서 한 시간 칠 분이었다. 그건 내가 정확히 안다. 열네 시 삼십사 분에 시작해서 열다섯 시 사십일 분에 끝났다. 그 한 시간 칠 분 동안 우리 쪽에서 넷이 죽었다. 해병 둘하고, 공사장 아저씨 둘.
넷이다.
서울은 십일월 이십오일 새벽부터다. 오늘이 십이월 구일이니까 보름이다. 보름이면 삼백육십 시간이다. 그건 금방 나왔다.
한 시간에 넷씩이면 천사백사십이다.
이만 팔천이라고 했다.
나는 침낭 안에서 다시 했다. 이만 팔천을 삼백육십으로 나누면 얼마인가. 삼백육십에 팔십을 곱하면 이만 팔천팔백이다. 그러니까 대충 여든이다. 한 시간에 여든 명.
여든 명.
우리 중대가 백 몇 명이다. 한 시간에 중대 하나가 없어진다는 소리다. 그게 삼백육십 시간 동안.
나는 그게 안 그려졌다. 사람이 죽는 걸 나는 봤다. 열네 시 삼십사 분에 첫 탄이 왔을 때 나는 흙을 먼저 맞았고 소리는 나중에 들었다. 열여섯 시 사십이 분까지 백육십팔 발을 쐈고 그건 내가 셌다. 그 오후 전체에 넷이었다. 한 시간에 여든이 되려면 그 오후가 스무 개쯤 겹쳐 있어야 한다.
나는 다시 계산했고 이번엔 삼백육십이 아니라 삼백사십오로 나왔다. 어디서 틀렸는지 찾다가 하루를 스물넷이 아니라 스물셋으로 곱한 걸 알았다. 다시 했다. 이번엔 곱은 맞는데 나눗셈이 안 됐다. 이만 팔천이 큰 수다. 종이에 적으면 되는데 종이가 없었고, 손전등을 켜면 지호가 깬다.
세 번째로 다시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답을 알면서 또 했다.
새벽 두 시쯤에 지호가 뒤척이면서 말했다.
"반장님, 안 주무십니까."
"자."
"반장님 아까부터 입술 움직이십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물고 나서도 머릿속에서는 삼백육십에 뭘 곱하고 있었다.
이만 팔천을 사람으로 세우면 얼마나 되는지도 해 봤다. 우리 중대 백 몇 명이 연병장에 서면 그게 어느 정도 넓이인지 나는 안다. 그 연병장을 이백팔십 개 놓으면 된다. 그런데 연병장 이백팔십 개가 어느 정도인지는 안 그려졌다. 목포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이십 분이었는데, 그 길 양옆에 다 세우면 되나. 거기까지 가서 나는 멈췄다.
12월 11일 오전에 사격지휘반 벙커에 갔다.
탄약 잔량을 올려야 했다. 김선우 중사님이 야전책상에 앉아서 사격일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자를 대고 줄을 긋는다. 손으로 그으면 삐뚤어진다고.
"3번포 잔량 올렸습니다."
"몇 발."
"고폭 사십일, 조명 여섯입니다."
"응."
나는 안 나갔다. 서 있었다.
"뭐."

"중사님."
"어."
"라디오에서 이만 팔천이라고 했습니다."
김 중사님이 자를 놓았다. 그리고 나를 봤다. 오래 봤다. 그 사람은 사람을 볼 때 눈이 아니라 턱 밑을 본다.
"그거 몇 번 셌냐."
"…세 번입니다."
"틀렸지."
"예."
"당연히 틀리지. 그거 만든 사람들도 틀렸어. 어제는 다른 숫자였고 내일은 또 다를 거다."
"그러면 진짜는 뭡니까."
"몰라." 그가 자를 다시 집었다. "야, 세지 마."
나는 잠깐 있다가 말했다.
"저 그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김 중사님이 자를 종이 위에 놓고 손가락으로 눌렀다. 줄을 긋지는 않았다.
"셀 거면 있는 걸 세라. 탄약 세고, 유류 세고, 니 반원 세고. 그건 세면 맞아. 없는 걸 세니까 안 맞는 거야."
"예."
"나가."
나가는데 뒤에서 그 사람이 한 마디 더 했다.
"오태석."
"예."
"다음 주에 눈 온단다. 방수포 새로 타 가라."
문자는 12월 12일 밤에 왔다.
진동이 두 번 울렸다. 나는 그때 포상에서 조성민한테 사격일지 적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발수 적는 칸에 숫자를 쓰고, 시각을 쓰고, 밑에 서명을 하는 거다. 그놈은 숫자를 자꾸 칸 밖으로 나가게 썼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나 부산 왔어 밥 먹어
여덟 자였다. 띄어쓰기까지 세면 열두 자였다.
나는 두 번 다 세어 봤다. 그리고 세 번째로 셌다. 세 번째는 뭘 세고 있는지도 모르고 셌다.
발신 시각이 스무 시 사십일 분이었다. 지금이 스물한 시 몇 분이니까 오는 데 삼십 분쯤 걸린 거다. 그것도 셌다.
부산이면 배가 있다. 아버지가 목포에서 배를 탔으니까 부산에도 배는 있을 거다. 그 생각이 왜 제일 먼저 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어 나도 밥 먹었어, 까지 쓰고 지웠다. 누나 다리 안 다쳤어, 까지 쓰고 지웠다. 알겠어, 하고 쓰고 그것도 지웠다.
조성민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반장님, 여기 서명 어디다 합니까."
"밑에."
나는 다시 화면을 봤다. 글자를 한 번 더 읽었다. 읽고 나서 위로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첫 번째 문자였다.
화면이 저 혼자 어두워졌다.
액정이 까매지고 나서 거기 얼굴이 하나 있었다. 이마하고 코까지만 보였고 눈은 안 보였다. 나는 그것을 밝히려고 손가락을 대려다가, 대지 않았다.
2010년 12월 12일 ~ 12월 28일 · 용산 한미연합사 지하 / 평택 / 워싱턴 국방부
압정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제이슨 박 대위는 세 번째 압정을 엄지로 밀어 넣다가 손톱 밑이 하얘지는 것을 봤다. 벽은 이 건물을 지은 1970년대의 콘크리트였고, 그 위에 덧댄 코르크판은 압정 자국으로 이미 벌집이었다.
"왼쪽 먼저." 캘러헌 대령이 종이컵을 든 채 말했다. "왼쪽에 계획, 오른쪽에 실제."
왼쪽 종이는 오래된 것이었다. 작전계획 5027의 전개 일정표. 90일 안에 미군 69만 명, 함정 160척, 항공기 1,600대. 1단계는 서울을 지키는 것, 2단계는 요충지를 확보하고 적을 더 죽이는 것, 3단계는 북한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것. 세 줄이 종이 아래쪽에 나란히 인쇄되어 있었다. 인쇄체가 요즘 쓰는 서체가 아니었다.
오른쪽 종이는 박 대위가 그날 아침에 뽑은 것이었다. 제목은 붙이지 않았다. 날짜와 부대와 숫자가 세로로 내려갔다.
주한미군 28,500 — 이미 있음. 조지워싱턴 전단, 요코스카 — 전개. 괌 앤더슨, B-52·B-1B — 출격 중. 제31해병원정단, 오키나와 — 도착. 25보병사단 1개 여단전투단과 82공정사단 신속대응여단 — 1월 5일 예정.
그 아래는 비어 있었다.
한국군 연락장교 셋이 들어와 벽 앞에 섰다. 그들은 왼쪽을 읽고 오른쪽을 읽고 다시 왼쪽을 읽었다. 아무도 두 종이를 소리 내어 비교하지 않았다. 그걸 하는 순간 이 회의가 다른 회의가 되기 때문이었다.
오후에 수송 회의가 화상으로 붙었다. 스콧 기지의 소령이 화면 안에서 서류를 넘겼다. 대형 수송함은 서부 해안에서 나오면 3주, 걸프에서 돌리면 그보다 길다. 항공수송은 이미 배분이 끝났다 — C-17은 아프가니스탄 병참선을 돌고 있고, 그 회전율을 깨면 칸다하르가 사흘 만에 연료를 센다.
"30일 안에 부산이나 평택에 댈 수 있는 게 몇 척입니까." 캘러헌이 물었다.
소령이 잠깐 화면 밖을 봤다. "열두 척입니다, 대령님."
박 대위는 옆에서 통역하고 있었다. 한국군 중령이 손에 든 볼펜을 놓았다. 그가 아주 낮게 말했다. "열두 척이라."
"What'd he say?" 캘러헌이 고개를 돌렸다.
박 대위는 그 문장을 알았다. 시카고의 토요일 한국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 사백 년 전에 어느 장군이 임금에게 올린 글이고, 한국 사람이면 그 여덟 글자를 다 안다. 그는 그것을 영어로 옮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옮기면 배 열두 척과 배 열두 척이 되고, 그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He says twelve isn't many, sir."
'He says twelve isn't many, sir.'
남은 27화 · 약 95,620자 · 약 2시간 17분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