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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제26장 겨울 진지

· 44화 중 19화 · 3,527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1월 3일 밤 근무 교대 전이었다. 윤지호가 침낭 안에서 나를 불렀다.

"반장님."

확전 19화 제26장 겨울 진지 — 헤더컷

"자라."

"저 아직 사람 안 죽여봤습니다."

컨테이너 안이 조용해졌다. 다섯 명이 다 깨어 있는 소리가 났다. 깨어 있는 데도 소리가 있다.

"그게 왜."

"연평도에서요. 저 탄약수였잖습니까. 저는 상자만 들었습니다." 애가 침낭 안에서 몸을 뒤척였다. "근데 애들이 그러는데 우리가 백몇 발 쐈다고. 그럼 저기 뭐가 있었을 거 아닙니까."

"있었겠지."

"반장님은 죽여보셨습니까."

나는 천장을 봤다. 컨테이너 천장에 물방울이 맺혔다가 떨어지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지호 머리맡이었다. 그래서 저 애는 늘 젖은 채로 잔다.

"모른다."

"예?"

"내가 쏜 게 어디 떨어지는지 나는 본 적이 없다. 한 번도 없어. 그러니까 모른다." 나는 침낭 지퍼를 턱까지 올렸다. "자라. 여섯 시에 제원 확인이다."


2011년 1월 5일 ~ 1월 20일 · 강화 교동 진지 / 대대 탄약 집적소

"너 숫자 잘 세지." 김선우 중사가 말했다. 그게 인사고 그게 명령이었다.

그래서 나는 1월 6일부터 탄약 집적소에 나갔다. 진지에서 팔백 미터쯤 뒤, 야산 북쪽 사면을 깎아 만든 자리였다. 위장망 아래 팔레트가 열을 지어 있고, 그 위에 방수포가 덮여 있고, 방수포 위에 눈이 덮여 있었다. 눈을 털면 아래가 하얬다.

군수 담당관은 상사였고 목이 쉬어 있었다. 그가 대장을 내밀었다.

"오늘부터 니가 적어라. 나는 세 군데를 뛰어야 돼. 규칙 세 개만 지켜라. 첫째, 눈으로 세라. 서류로 세지 말고. 둘째, 젖은 건 따로 빼라. 셋째, 없는 걸 있다고 적지 마라. 그거 하면 사람 죽는다."

"예."

"진짜로 죽는다. 나 그거 본 적 있어."

나는 그날 오후 내내 셌다.

탄약은 종류대로 떨어뜨려 놓는다. 고폭탄이 한 구역, 장약이 한 구역, 신관이 한 구역이다. 신관은 제일 작고 제일 멀리 둔다. 그게 원칙이다. 그런데 여기는 야산 사면이라 거리가 안 나와서, 상사가 흙둑을 하나 더 파서 사이에 세워 놨다. 삽으로 판 게 아니라 굴착기를 빌려서 팠다고 했다.

세는 방법은 이렇다. 팔레트 하나에 몇 발이 올라가는지가 정해져 있으니까 팔레트를 세면 된다. 그런데 뜯어 쓴 팔레트가 문제다. 뜯은 건 뜯은 대로 열어서 눈으로 봐야 한다. 상사가 눈으로 세라고 한 게 그 얘기였다.

방수포 아래는 눈보다 습했다. 상자 밑면에 닿는 나무 받침이 젖어서 거뭇해져 있는 게 몇 개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표시해서 한쪽으로 뺐다. 젖은 나무 냄새가 났다. 오래된 창고 냄새하고 기름 냄새가 섞이면 그렇게 된다.

나무 상자에는 금속 밴드가 두 줄 둘러져 있고, 옆면에 검은 잉크로 글자가 찍혀 있다. 로트 번호, 제조년월, 그리고 지명.

한국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다. 아닌 것에는 영어가 찍혀 있었다. SCRANTON, PA. 그 밑에 MIDDLETOWN, IOWA. 제조년월은 어떤 건 2004년이었고 어떤 건 1987년이었다. 1987년이면 내가 태어나기 전이다.

나는 그날 저녁 대장에 처음으로 총계를 적었다. 숫자가 컸다. 컸는데도 나는 그게 며칠치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에 몇 발을 쏘는지 정해져 있지 않았으니까.


1월 9일에 미군이 왔다.

우리 뒤쪽 도로에 트럭이 서고, 헬멧을 쓴 애들이 내려서 담배를 피웠다. 어깨에 노란 무늬가 있는 마크를 붙이고 있었다. 나는 무슨 부대인지 몰랐다. 그중 하나가 우리 쪽으로 걸어와서 손을 들었다.

"어이."

"어이."

말이 안 통했다. 그놈이 담뱃갑을 흔들어 보였다. 나는 한 대 받았다. 맛이 달았다. 우리가 피우는 것보다 종이가 두꺼웠다. 정한길이 자기 것을 꺼내서 바꿔 주려고 했는데 그놈이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그놈이 우리 포를 가리키고 엄지를 들었다. 나도 엄지를 들었다.

"코리안." 그놈이 자기 가슴을 두드리고 나를 가리켰다. "미, 코리안. 마더."

나는 못 알아들었다가 알아들었다.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는 얘기 같았다. 아니면 자기가 한국계라는 얘기거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이 더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보였는데 둘 다 방법이 없었다.

트럭 쪽을 봤다. 트럭은 열 몇 대가 있었고 그 뒤에 걸린 게 없었다. 포가 없었다. 나는 그게 그날 제일 이상했다.

저녁에 이준하 소위가 지나가면서 말했다.

"저기 보병여단이 들어왔답니다. 하와이에서 온 부대라고."

"포병은요." 김선우 중사가 물었다.

"안 왔습니다."

"왜요."

"배로 온답니다." 소위가 장갑을 고쳐 꼈다. "사람은 비행기로 오고 대포는 배로 오니까요."

김 중사가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나는 그때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저 미국 애들이 저기 서 있는데, 저 앞에서 무슨 일이 나면 쏴 주는 건 우리 포다. 우리 포는 여섯 문이고 그중 다섯 문이 산다.


확전 19화 제26장 겨울 진지 — 전환컷

1월 12일 아침에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취사장 뒤에 낡은 라디오가 하나 있어서 밥 먹을 때 틀어 놓는다. 그날은 일본 얘기를 하고 있었다. 미사일이 일본에 떨어졌다고 했다. 요코스카라는 데하고, 또 두 군데. 사람이 천 명 넘게 죽었다고 했다.

숟가락 소리가 줄었다.

"일본이 왜 나옵니까." 윤지호가 물었다.

"우리 편이니까 그렇지." 정한길이 아는 척을 했다. "일본이 우리 편이라 아이가."

"일본이 우리 편입니까?"

"…아이라예. 미국 편이지예."

김 중사가 국을 뜨면서 말했다. "미군 배가 거기 있다."

그게 다였다. 그 뒤로 아무도 안 물었다.

그날 밤에 나는 잠이 안 왔다. 발이 안 따뜻해졌다. 침낭 안에서 발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데 심장이 목에서 뛰었다. 무서운 게 아니었다. 무서운 건 소리가 나고 흙이 튀고 그다음에 오는 건데 이건 아무 소리도 안 났다.

나는 지금까지 이 전쟁이 저 논 건너편에 있는 줄 알았다. 맑은 날 보이는 저 논둑까지가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가 본 적도 없는 나라에 미사일이 떨어졌다고 했다.

나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집적소까지 걸어가서, 손전등도 안 켜고, 눈 덮인 팔레트를 손으로 짚으면서 셌다. 하나, 둘, 셋. 세다 보면 손이 시린 것만 남는다. 그게 좋았다.


배급 명령이 내려온 건 1월 18일이었다.

이준하 소위가 종이를 들고 왔다. 대대에서 온 건데 문장이 짧았다. 155밀리 1일 사용 한도, 포당 열두 발.

"이거 상한선입니까, 아니면 그만큼은 준다는 겁니까." 김 중사가 물었다.

"상한선입니다."

"그럼 다음 주엔 얼마입니까."

소위가 종이를 접었다. "다음 주 건 아직 안 왔습니다."

"소위님." 김 중사가 포상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 앞에서 보병이 얻어맞고 있으면 열두 발로 뭘 합니까. 관측이 표적 세 개를 불러 주면 저는 뭘 지웁니까."

"제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압니다. 그러니까 물어보는 겁니다. 위에서 뭐라고 정해 준 게 있냐고요."

이준하는 규정집을 다 외운 사람이다. 나는 소위가 무슨 항목을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나왔다.

"우선순위는 지휘관 판단이라고 돼 있습니다." 한참 있다가 소위가 말했다. "그 말은, 저더러 고르라는 뜻입니다."

김 중사가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그다음 주 것은 20일에 왔고, 여덟 발이었다.

나는 그날 대장을 들고 집적소에 갔다. 재고를 여덟로 나눠 봤다. 숫자가 나왔다. 생각보다 큰 숫자였는데도 나는 그게 위로가 안 됐다. 다음 주에 다섯이 되면 그 숫자는 또 달라지니까. 나는 나눈 것을 지웠다. 대장에 적을 칸이 아니었다.

방수포를 다시 덮다가 상자 옆면이 눈에 들어왔다. 손이 시려서 장갑을 낀 채였는데, 장갑을 벗고 검은 글자 위에 손가락을 댔다. 잉크가 도톰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그 글자를 하나씩 따라갔다. 에스, 시, 알, 에이, 엔.


2011년 1월 20일 ~ 1월 28일 · 합참 지하 지휘소 / 용산 / 청와대

브리핑의 네 번째 장에 배 사진이 한 장 떴다.

회색이고, 갑판이 비어 있고, 부두에 매여 있었다. 다롄이었다. 정보본부 대령이 레이저 포인터로 갑판을 훑었다.

"바랴그 선체입니다. 개장 중이고, 시험항해 기록이 없습니다. 함재기 부대도 없습니다. 조종사 양성 과정이 이제 막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결론은, 이 배는 올해 안에 뜨지 않습니다."

"올해가 아니라 언제 뜹니까." 한민구가 물었다.

"빠르면 내년으로 봅니다, 의장님."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중국 해군 수상함 세력, 잠수함, 항공기 표. 그다음 장은 지상군이었다.

"선양군구입니다. 랴오닝·지린·헤이룽장 3개 성을 관할하고, 예하에 창춘의 제16, 랴오닝의 제39, 진저우의 제40집단군을 둡니다. 총 25만 선으로 봅니다. 기갑 2개 사단, 기계화 1개, 차량화 4개, 포병 1개."

"동원에 얼마나 걸립니까." 작전본부장이 물었다.

"3개 집단군 전부라면 3주 이상 봅니다. 다만 선두 제대만이면 훨씬 짧습니다."

"얼마나 짧습니까."

대령이 잠깐 서류를 봤다. "며칠입니다."

그 아래 결론 한 줄이 굵게 찍혀 있었다. 원거리 전력투사 능력 제한적. 대규모 개입 시 항공·해상 우세 확보 곤란.

한지환 중령은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맞는 말이었다. 절반은.

그는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투사(投射)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바다를 건너온다고 가정하고 있다.

브리핑이 끝나고 사람들이 나갈 때 그는 자리에 남아 벽지도를 봤다. 압록강에 다리가 있었다. 1943년에 놓인 것이고, 트럭이 지나간다. 그 위를 지나가는 데는 배가 필요 없다. 항모도, 상륙함도, 함재기도.

그는 노트를 덮었다. 브리핑 문서에 그 얘기를 쓰면 문장이 길어지고, 길어지면 결론이 흐려진다. 결론이 흐려지면 아무도 안 읽는다.

그는 노트를 덮었다. 브리핑 문서에 그 얘기를 쓰면 문장이 길어지고, 길어지면 결론이 흐려진다. 결론이 흐려지면 아무도 안 읽는다.

남은 25화 · 약 88,486자 · 약 2시간 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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