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3부 서울
14화제20장 물
2010년 11월 28일 · 서울 종로구 관철동 / 종로 일대
일요일 아침에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가늘어졌다.

오지원은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손을 씻고 잠갔다. 삼십 분 뒤에 다시 틀었을 때는 실처럼 나왔다. 그다음에 틀었을 때는 물 대신 공기가 나왔다. 관 안에서 무언가가 컥컥거리는 소리가 났고, 꼭지가 손바닥 안에서 덜덜 떨렸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그녀는 꼭지를 잠갔다가 다시 열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부엌에 서서 십 초쯤 있었다. 그런 다음 냄비를 꺼내고, 대야를 꺼내고, 김치통을 꺼내서 싱크대에 늘어놓았다. 늘어놓고 나서 그것들이 전부 비어 있다는 것을 봤다. 욕조에는 물이 반 뼘도 없었다.
변기 물통 뚜껑을 열어 봤다. 한 번 내릴 만큼 차 있었다. 그녀는 뚜껑을 도로 덮고, 그 위에 수건을 올려 두었다. 오늘은 쓰지 않기로 했다.
월요일에 정미연이 라면 한 상자를 들고 왔다.
"언니, 이거 스무 개예요. 어제 슈퍼에서 마지막이었어요."
지원은 상자를 받아서 현관에 놓았다. 두 사람은 그것을 내려다봤다.
"물이요?" 미연이 말했다.
"없어."
"...아."
미연은 상자를 다시 들었다가 놓았다. 그러고는 웃었다. 웃는 소리가 짧았다.
그날 저녁 관철동 골목의 편의점에는 라면이 없었고 생수도 없었다. 냉장고 안에는 캔맥주와 우유와 이온음료가 남아 있었다. 우유는 상해 가고 있었다. 전기가 하루에 네댓 시간씩 들어왔다 나갔다 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생은 그만두었고 사장이 직접 계산대에 앉아 있었다. 카드 단말기가 안 돼서 현금만 받았다.
"이거 얼마예요."
"천오백 원인데요, 오백 원만 주세요."
"왜요."
"어차피 버려요."
지원은 이온음료 여섯 캔을 샀다. 캔은 무거웠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그것을 마시지 않고 침대 밑에 넣어 두었다.
화요일에 종로초등학교 체육관이 열렸다.
지원과 미연과 박순임과 태우가 걸어서 갔다. 십오 분 거리였다. 노인은 삼십 분 걸렸다.
체육관 바닥에는 청테이프로 네모가 그려져 있었다. 한 칸에 네 명. 매트는 세 장에 하나꼴이었다. 입구에서 종이에 이름과 주소와 인원을 적게 했다. 박순임은 손이 떨려서 글씨가 칸을 넘어갔고, 지원이 두 번째 줄부터 대신 적었다.
화장실이 문제였다. 학교 화장실은 물이 안 내려갔다. 어른들이 순번을 정해서 양동이로 물을 부어 내렸는데, 그 물을 어디서 가져오는지가 다시 문제였다. 오후에 누가 화장실 문에 종이를 붙였다. 소변은 내리지 마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밤에는 기침 소리가 났다. 체육관은 천장이 높고 소리가 잘 울렸다. 누가 기침하면 그 소리가 반대편 벽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래서 다들 기침을 참으려고 했고, 참으려고 하면 더 났다.
태우는 지원의 팔을 베고 잤다. 아이는 발이 뜨거웠다.
수요일 아침 아홉 시에 급수차가 왔다.
소방서 물탱크차였다. 사람들이 그 앞에 줄을 섰는데 줄이 두 개 생겼다. 하나는 정문 쪽에서 온 줄이고 하나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온 줄이었다. 두 줄이 만나는 지점에서 십 분쯤 시끄러웠다.
한 사람당 이십 리터라고 했다.
통을 가져온 사람은 절반도 안 됐다. 나머지는 냄비를 들고 왔다. 김치통, 페트병, 주전자, 밥솥 내솥. 어떤 남자는 종량제 봉투를 두 겹으로 겹쳐서 받았고, 그것을 안고 걷다가 넘어져서 다 쏟았다. 그는 일어나서 젖은 봉투를 손에 든 채로 줄 뒤로 다시 갔다.
지원은 자기 몫과 박순임 몫을 받았다. 이십 리터짜리 물통 두 개.
물차 뒤쪽에서 소방관 둘이 호스를 잡고 있었다. 나이 든 쪽이 젊은 쪽에게 뭐라고 묻는 소리가 줄 앞쪽까지 들렸다.
"야, 이거 몇 대 더 온다니?"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지. 나도 몰라. 불나면 어쩌냐."
젊은 쪽이 호스 끝을 다음 통에 옮기면서 대답했다.
"소화전에도 물 없습니다. 압이 빠져서 안 나와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젊은 쪽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물이 제일 먼저 끊겨. 사람들이 그걸 몰라." 그러고는 호스를 툭 쳤다. "폭탄 무서워하는데, 폭탄은 떨어진 데만 떨어지거든요. 물은 다 끊깁니다. 가압장에 전기 나가면 십오 층까지 못 올려요. 관 터지면 압 빠지고. 고치러 가야 되는데 못 갑니다. 길이 저 모양인데 어떻게 갑니까."
앞줄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물었다. "그럼 언제 나와요?"
소방관이 고개를 들었다. 헬멧을 벗어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고, 얼굴이 젊었다. 서른쯤 돼 보였다.
"고치면 나옵니다." 그가 말했다. "지금 고치고 있어요. 아주머니 통 그거 뚜껑 있죠? 뚜껑 꼭 닫으세요. 들고 가다 쏟는 사람이 제일 많아요."
차경석은 그날 오후 다섯 시에 소방서로 돌아왔다.
물탱크차 두 대가 하루에 열한 곳을 돌았다. 돌고 나면 다시 채워야 하는데, 채우는 데가 두 군데밖에 안 남아서 왕복에 시간이 다 갔다. 그는 장갑을 벗어 난간에 걸고 상황실 벽의 화이트보드를 봤다.
보드에는 구급 요청이 적혀 있었다. 접수 시각, 주소, 내용. 스무 줄이 넘었고 그중 열몇 줄 옆에 아무 표시가 없었다.
"이거 안 나간 겁니까." 그가 물었다.

"차가 없어." 당직 팀장이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두 대는 병원 왔다 갔다 하는데 병원이 안 받아. 발전기 돌리고 있는 데는 수술을 못 한대."
"그럼 이 사람들은요."
"전화로 설명하고 있어. 물수건 대라고. 그거 말고 할 말이 없어."
차경석은 보드 앞에 서서 열몇 줄을 위에서 아래로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손가락으로 맨 위 줄을 짚었다.
"팀장님, 이거 우리 서 뒤쪽이잖아요. 걸어서 사 분."
"그래서."
"제가 걸어갔다 오겠습니다. 어차피 물차 채우는 데 사십 분 걸립니다."
"들것은 어떻게 하고."
"업고 오죠. 저 힘 좋습니다. 헬스 삼 년 했어요."
"삼 년 했으면 나만큼은 하겠네."
"팀장님보다 잘합니다."
팀장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잠깐 보고 다시 서류로 내려갔다.
"장갑 끼고 가."
그날 밤에 체육관 구석에서 노인 한 사람이 죽었다.
이틀 전부터 누워 있던 사람이었다. 며느리로 보이는 여자가 계속 이마를 짚었다. 새벽 두 시에 그 여자가 일어나 입구 쪽으로 갔고, 자원봉사 완장을 찬 사람이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다. 사람은 오지 않았다.
세 시쯤 지원이 잠깐 깼을 때 그쪽에서 나던 숨소리가 없었다.
아침에 그 자리가 정리되는 방식은 이랬다. 담요를 하나 더 덮었다. 남자 넷이 매트째 들어서 체육관 뒤편 창고 쪽으로 옮겼다. 완장 찬 사람이 입구의 종이에 이름을 찾아 옆에다 시각을 적었다. 05:40이라고 적었는데, 그건 그가 확인한 시각이었다.
빈 네모 칸에는 아침 열한 시에 다른 가족이 들어왔다. 세 명이었다. 청테이프는 그대로였다.
박순임이 그쪽을 보고 있었다. 지원이 물통을 들면서 말했다.
"할머니, 저희 집 가서 씻고 오세요. 물 있어요."
"물이 어딨어."
"받아 놨어요."
계단은 한 층에 열여덟 개였다.
지원은 오른손에 물통을 들고 올라갔다. 열여덟. 서른여섯.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가 감각이 없어졌다.
3층 계단참에서 손을 바꿨다. 오른손을 펴는 순간 통이 잠깐 아무 데도 걸려 있지 않았고, 그다음에 왼손에 걸렸다. 같은 통이었다. 같은 물이었다. 왼팔에서는 그것이 처음 들었을 때보다 무거웠다.
2010년 12월 3일 ~ 12월 6일 · 경기 김포 · 해병대 제2사단 배속 임시 포대 진지
포가 밤에 왔다.
트레일러 두 대가 논둑길로 들어왔다. 헤드라이트를 끄고 미등만 켠 채였고, 유도하는 사람이 손전등으로 원을 그렸다. 우리는 그걸 다섯 시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앉지 않았다.
내리는 데 또 한 시간이 갔다. 경사판에 서리가 앉아서 궤도가 한 번 미끄러졌다. 각목을 대고, 모래를 뿌리고, 다시 각목을 댔다. 사십칠 톤은 한번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사람이 못 세운다.
두 번째 차에 실려 온 게 내 것이었다.
나는 손으로 확인한다. 순서가 있다. 누가 정해 준 게 아니고 내가 정한 거다. 제퇴기, 포신 아래쪽, 주퇴복좌 실린더 두 개, 폐쇄기 손잡이, 장전장치 레일, 유압 배관 이음매. 만지면서 세지는 않는데 다 만지고 나면 몇 개였는지 알고 있다.
만져 보니까 다 있었다. 다 있는데 다 달랐다.
연평도 것은 사 년을 탄 거였다. 폐쇄기 손잡이에 페인트가 벗겨져서 쇠가 드러나 있었고 그 자리가 손바닥 모양으로 반들거렸다. 비 오는 날이면 포탑 안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화약 그을음이 배면 그런 냄새가 난다.
이건 아무 냄새도 안 났다. 아니, 페인트 냄새가 났다. 그게 더 나빴다.
안에 들어가 조종수 자리에 앉아 봤다. 내 자리가 아닌데 앉아 봤다. 방석 스펀지가 안 눌려 있었다. 사람이 오래 앉았던 자리는 가운데가 꺼져서 엉덩이가 저절로 그리로 간다. 이건 평평했다. 나는 그 위에서 자세를 두 번 고쳤다.
번호를 봤다. 끝 세 자리가 연평도 것하고 달랐다. 외우려고 한 게 아닌데 외워졌다.
인계하러 온 상사가 종이를 내밀었다. 부수기재 목록이었다. 청소봉, 소화기, 공구함, 견인고리, 방수포. 나는 세면서 따라갔고 공구함 안에 스패너 한 개가 없었다.
"하나 모자랍니다."
"거기 그냥 사인해라."
"없는데 어떻게 사인합니까."
상사가 나를 한 번 봤다. 오십 넘어 보였고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그거 어차피 이제 안 온다. 없는 걸 없다고 적어 놓으면 니가 물어내야 돼."
나는 사인했다.
상사가 종이를 반으로 접어 점퍼 안에 넣으면서 물었다.
"섬에서 왔다며."
"예."
"거기 포는 어떻게 됐나."
나는 대답을 안 했다. 대답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됐는지를 내가 봤기 때문이다. 상사도 더 안 물었다. 그 사람은 손전등으로 포신을 위에서 아래로 한 번 훑고 갔다. 훑는 것도 순서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대답을 안 했다. 대답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됐는지를 내가 봤기 때문이다. 상사도 더 안 물었다. 그 사람은 손전등으로 포신을 위에서 아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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