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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제15장 목요일의 전화

· 44화 중 11화 · 3,556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합참의장의 전화는 오후 한 시에 걸렸다.

멀린은 수화기를 들기 전에 메모지에 세 줄을 적었다. 그는 늘 그렇게 했다. 세 줄을 적고, 통화가 끝나면 그 세 줄에 표시를 했다.

확전 11화 제15장 목요일의 전화 — 헤더컷

첫 줄은 사전 협의였다. 둘째 줄은 항공작전의 범위였다. 셋째 줄은 지금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였다.

한국 합참의장은 첫 줄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설명했다. 둘째 줄에 대해서는 목록을 읽어 주겠다고 했다. 셋째 줄에서 통화가 길어졌다.

"의장님. 우리는 지금 이라크에 오만이 있고 아프가니스탄에 십만이 있습니다."

통역이 옮겼다.

"압니다."

"그 말은 우리가 안 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언제 얼마나 오는지가 계획서하고 다르다는 뜻입니다."

저쪽에서 잠깐 말이 없었다.

"의장님. 저희는 지금 그 계획서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어제 우리 섬 다섯 개가 다 맞았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전부터 전방 관측소들이 이상한 걸 보고 있습니다."

"이상한 게 뭡니까."

"갱도 진지 앞이 비어 있습니다. 포가 밖에 나와 있습니다."

멀린은 셋째 줄에 표시를 하지 않았다.

한 시간 사십 분 뒤에 그 줄은 의미가 없어졌다.


기록관은 밤 열한 시가 넘어서 통화 기록을 쳤다.

오전 여덟 시 사십 분 통화, 스물세 분. 참석자 명단. 그다음이 대화 요지였다. 그는 통역 두 사람의 노트를 나란히 놓고 대조하면서 쳤다. 문장이 두 번 오간 것은 한 번으로 줄여서 쳤다.

세 번째 항목까지 쳤을 때 옆에서 프린터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치던 손을 멈추고 그쪽을 봤다. 종이가 계속 나왔다. 한 장이 아니었다. 넉 장, 여섯 장, 여덟 장. 맨 위 장의 제목 줄에 서울과 경기라는 지명이 함께 들어 있었다.

커서가 문장 중간에서 깜박이고 있었다.


2010년 11월 25일 03시 50분 · 연평도 → 인천 앞바다

세 시 오십 분에 깼다.

깬 게 아니라 원래 반쯤 깨 있었다. 벙커 바닥에 판초를 깔고 누웠는데 등이 시려서 삼십 분마다 돌아누웠다. 옆에서 정한길이 이를 갈았다. 부산 애는 자면서도 시끄럽다.

네 시쯤 밖에 나가 오줌을 눴다. 달이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등화관제라 아래가 다 캄캄해서 별도 잘 보였다. 나는 목포 살 때 이렇게 별 많은 걸 본 적이 없다.

포상으로 돌아와 3번포 옆에 앉았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꺼내서 시계를 봤다.

네 시 사십 분이었다.


처음에는 소리가 안 났다.

땅이 먼저 움직였다. 엉덩이 밑이 한 번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그다음에 왔다.

어제하고도 그제하고도 달랐다. 그제는 하나씩 왔다. 어제는 겹쳐서 왔다. 오늘은 겹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나였다.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였다. 나는 세려고 했고, 세는 걸 이 초 만에 포기했다.

"방렬! 방렬!"

누가 소리쳤다. 김 중사인지 이 소위인지 몰랐다. 왼쪽 귀는 원래 안 들리고 오른쪽 귀도 이제 안 들렸다.

하동찬이 내 앞으로 뛰어들어 왔다. 입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나는 손짓으로 포탑을 가리켰다. 그 애가 알아듣고 올라갔다.

사격지휘반에서 제원이 왔다. 왔다는 건 아는데 어떻게 왔는지는 모른다. 그때부터는 손이 알아서 했다. 손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제 오전에 서남쪽으로 쏠 때도 같은 손이었다.

윤지호가 상자를 들고 왔다가 넘어졌다. 일어나서 또 들고 왔다. 그 애 헬멧 끈이 풀려서 턱 밑에서 덜렁거렸다. 나는 손을 뻗어 그걸 잠가 줬다. 그 이 초가 그날 내가 한 일 중에 제일 쓸데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포구에서 나가는 것이 하나도 안 들렸다. 발 밑이 밀리는 걸로만 알았다.

우리는 쐈다. 몇 발 쐈는지 모른다. 그건 내가 못 세는 유일한 것이다.

이 소위가 포상 뒤에서 손가락으로 방향을 계속 가리켰다. 목이 쉬어서 소리가 안 나오니까 손으로 했다. 그 사람이 가리킨 데는 그제 그 자리가 아니었다. 더 오른쪽이었고 더 멀었다.


두 번째로 제대로 맞은 건 다섯 시 조금 전이었다.

그제 한 번 맞았다. 그때는 옆이었다. 이번엔 아니었다.

몸이 떴다.

떴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정신이 든 것은 자갈 위였고, 얼굴 한쪽이 젖어 있었고, 왼손에 뭔가 뜨거운 게 붙어 있었다. 나는 그걸 흙으로 문질러 껐다.

일어나려는데 다리가 안 펴졌다. 손으로 땅을 밀어서 일어났다.

배승기가 포탑 뒤쪽에 있었다.

그 애는 탄약수라 밖에 있었다. 상자를 대고 있었을 거다. 나는 그쪽으로 갔다. 네 걸음이었다. 네 걸음이 되게 멀었다.

가서 그 애 군장 멜빵을 잡았다. 힘이 안 들어가서 두 번 놓쳤다. 세 번째에 잡고 끌었다.

"승기야."

그 애 이름을 불렀다. 몇 번 불렀는지 모르겠다.

뒤에서 누가 내 허리를 껴안았다.

김선우 중사였다. 그 사람이 나를 뒤로 당겼다. 나는 놓지 않으려고 버텼고, 그 사람이 내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손가락을 펴면서 내 얼굴에 대고 뭐라고 계속 말했다. 안 들렸다. 입 모양만 봤다.

가야 된다고 했다.


확전 11화 제15장 목요일의 전화 — 전환컷

여섯 시가 넘어서야 하늘이 밝아졌다.

밝아지니까 보였다. 능선이 없어져 있었다. 어제까지 있던 모양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연기가 나는데 연기 색깔이 다 달랐다.

레이더 차 쪽에서도 났다.

그 접시 달린 차가 있던 자리였다. 사람들이 몇 서 있었고,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거기까지가 내가 본 거다. 나는 그때 그게 누구인지 몰랐다. 그날 저녁에도 몰랐다.

어제 새벽에 담배를 같이 피운 사람이라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그보다 더 뒤에 알았다.


배는 열한 시쯤 왔다.

부두가 아니라 다른 쪽이었다. 부두는 못 썼다. 우리는 걸어서 갔고, 못 걷는 사람은 들것으로 갔다.

이준하 소위가 종이를 들고 이름을 불렀다. 그 사람 얼굴 한쪽이 까맸는데 닦을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았다. 이름을 부르고, 대답을 들으면 볼펜으로 옆에 표시를 했다. 대답이 없으면 표시를 안 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오태석."

"예."

"하동찬."

"예."

"정한길."

"예."

"윤지호."

"…예."

그다음 이름에서 이 소위가 멈췄다.

멈춘 게 아니라 부르지 않았다. 부르지 않고 볼펜 뒤끝으로 종이를 한 번 눌렀다가 다음 줄로 갔다. 그 종이는 아까 것하고 다른 종이였다. 아까 것은 우리 중대 명부였고, 그건 오늘 아침에 새로 만든 거였다.

강민수 대위가 마지막에 탔다. 중대장은 배에 오르기 전에 섬 쪽을 한 번 봤다. 오래 안 봤다. 두어 초였다.

배에는 우리 중대만 탄 게 아니었다. 다른 중대 사람들도 있고, 팔에 붕대 감은 사람도 있고, 아예 못 앉고 누운 사람도 있었다. 갑판에 자리가 모자라서 다들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하동찬이 내 옆에 앉아서 물었다.

"형님, 승기 어느 배로 갑니까."

나는 대답을 안 했다.

"먼저 갔습니까?"

"…어."

"먼저 갔으면 됐네요."

그 애는 그러고 나서 고개를 무릎에 박고 안 들었다. 어깨가 안 움직였다. 우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러고 있었다. 나는 그 애 등에 손을 얹었다가 뗐다. 얹고 있으면 내 손이 떨리는 게 전해질 것 같았다.


배 위에서 나는 계속 동쪽을 봤다.

인천 앞바다에 들어섰을 때가 오후 다섯 시쯤이었다. 해가 등 뒤로 넘어갔는데, 앞쪽이 안 어두워졌다.

동쪽 하늘이 밝았다.

노을하고 다른 색이었다. 노을은 위가 밝고 아래가 어둡다. 그건 아래가 밝았다. 수평선 위로 주황색 띠가 길게 깔려 있고 그 위로 검은 게 올라가 있었다. 한 군데가 아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여러 군데였다.

조타실에서 라디오를 틀어 놨다.

바람 소리 때문에 다 안 들렸다. 들린 건 몇 단어였다. 사이렌. 지하. 서울. 오전 다섯 시. 그리고 숫자가 나왔는데 진행자가 그 숫자 뒤에 잠정이라는 말을 붙였다.

우리 누나가 종로에서 일한다.

나는 김 중사한테 갔다. 그 사람은 뱃전에 기대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흘 동안 잔 시간을 다 합치면 다섯 시간도 안 될 거다.

"중사님."

"어."

"전화 좀 빌리겠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주머니에서 꺼내 줬다. 액정에 금이 가 있었다.

번호를 눌렀다. 누나 번호는 외우고 있다.

신호가 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가 가다가 끊겼다. 뚜, 하는 소리가 나고 여자 목소리가 나오려다 말고 그것도 끊겼다.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신호도 안 가고 바로 끊겼다.

세 번째로 걸었을 때는 손이 떨려서 번호를 두 번 잘못 눌렀다.

배는 밤이 되어도 안 들어갔다. 앞바다에서 계속 돌았다. 부두를 못 쓴다고 했다가, 순서를 기다린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했다. 열한 시가 다 돼서 갑판등이 꺼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 한 번 더 걸었다.

끊기는 소리가 짧았다. 딸깍, 도 아니고 뚝, 도 아니었다. 그냥 소리가 있다가 없어졌다.

배가 옆으로 한 번 크게 기울었다. 나는 난간을 잡았고, 반대쪽 손에 든 전화기가 뱃전에 부딪혔다.


2010년 11월 25일 04시 40분 · 서울 종로구 관철동

유리가 한 번 휘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지원은 눈을 떴고, 몸을 낮추는 대신 창문을 봤다. 4층 창은 골목 쪽으로 나 있었다. 건너편 간판에 아직 불이 들어와 있었고, 유리에는 금 하나 가지 않았다. 두 번째가 왔을 때 새시가 덜컹거렸다. 소리는 그다음에 왔다. 밀려 있던 것이 한꺼번에 도착하듯이.

휴대폰 액정에 04시 41분이라고 떠 있었다.

목포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지 않았다. 지역번호부터 다시 눌렀다. 지금은 통화량이 많아 연결할 수 없다고, 녹음된 여자 목소리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지원은 문자를 썼다.

나 괜찮아.

전송 중이라는 표시가 떴고, 십 분 뒤에도 그대로 떠 있었다.

그녀는 세면대로 가서 이를 닦았다. 닦으면서 소리를 셌다. 스무 번쯤에서 그만뒀다. 사이가 일정하지 않았다.

패딩, 운동화, 지갑, 충전기. 통장은 회사 서랍에 있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다시 들어가 가스 밸브를 잠갔다.

패딩, 운동화, 지갑, 충전기. 통장은 회사 서랍에 있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다시 들어가 가스 밸브를 잠갔다.

남은 33화 · 약 116,248자 · 약 2시간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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