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2부 마흔여덟 시간
10화제14장 열다섯 시 이십 분
"와아아아."
하동찬이 소리를 질렀다.

그 애는 탄약 상자 위에 올라서서 두 팔을 들었다. 익산 사투리로 뭐라고 계속 지껄였는데 나는 절반도 못 알아들었다. 정한길이 헬멧을 벗어서 흔들었다.
"됐다! 됐다고!"
윤지호가 따라 웃었다. 그 애는 웃는 게 아니라 웃는 흉내를 내는 것처럼 웃었다. 형들이 웃으니까 웃었다. 그러다가 진짜로 웃었다.
배승기는 안 웃고 서 있다가 나를 봤다.
나는 아무 소리도 안 냈다.
솟은 흙이 가라앉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저 흙 밑에 뭐가 있는지 나는 안다. 어제 김 중사가 읽어 준 숫자가 저기였다. 우리가 백예순여덟 발을 저기에 넣었고, 오늘 누가 또 저기에 넣었다.
"형님은 왜 안 좋아합니까."
하동찬이 물었다.
"좋아."
"좋은 얼굴이 아닌데."
"내 얼굴이 원래 이래."
그 애가 웃으면서 내 어깨를 쳤다. 나는 맞고 웃어 줬다. 웃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조금 뒤에 하늘에 하얀 선이 생겼다.
구름이 있는데도 보였다. 선이 두 개였다가 네 개가 됐다가, 서로 엉켰다가 갈라졌다. 아주 높은 데였다. 소리는 안 났다. 소리 없이 선만 그어졌다.
선 하나가 갑자기 굵어졌다.
굵어진 데서 검은 것이 났다. 그 검은 것이 하얀 선에서 떨어져 나와서 아래로 갔다. 처음에는 천천히 갔고 그다음에는 빨리 갔다. 바다 쪽이었다.
포상에 있던 사람들이 다 조용해졌다.
"뭡니까, 저거."
윤지호가 물었다.
"몰라."
"떨어진 겁니까?"
"떨어졌어."
"누구 겁니까."
나는 그걸 몰랐다. 지금도 그때 그게 누구 거였는지 내가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다. 나중에 들은 건 나중에 들은 거다. 그때 내가 안 것은 하나였다. 저 위에 사람이 타고 있었고, 지금 떨어졌다.
한참 있다가 하늘에서 흰 점이 하나 폈다.
작았다. 그게 뭔지는 알았다. 그건 훈련 때 사진으로 봤다.
"살았습니까?"
"저건 폈잖아."
"펴면 삽니까?"
"펴면 반은 산 거야."
정한길이 헬멧을 다시 썼다.
그 흰 점은 오래 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였다. 아무도 말을 안 하고 그것만 봤다. 하동찬도 안 떠들었다. 점이 수평선 쪽으로 조금씩 밀려가다가 어느 순간 안 보였다. 안 보인 게 물에 닿아서인지 눈이 놓쳐서인지 알 수 없었다.
"형님."
"어."
"저 사람 우리 편이죠."
"우리 편이니까 우리 쪽으로 왔겠지."
"그럼 됐네요."
정한길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부산 애가 조용한 건 드문 일이었다.
나는 포탑 쪽으로 돌아섰다. 정리하던 탄이 아직 반이 남아 있었다.
열여섯 시 오 분에 다시 왔다.
이번에는 경보가 먼저 울렸다. 어제는 흙이 먼저 왔는데 오늘은 소리가 먼저 왔다. 그게 더 무서웠다.
"대피! 대피!"
이준하 소위가 뛰면서 소리쳤다. 그 사람은 뛰면서도 손에 종이를 들고 있었다.
우리는 벙커로 들어갔다. 열두 명이 들어가는 데 열여덟 명이 들어갔다. 어깨가 서로 닿았고 누가 내 군화를 밟고 있었는데 누군지 몰랐다.
어제하고 밀도가 달랐다. 어제는 셀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하고 셀 수 있었다. 이번엔 안 세어졌다. 세려고 하면 다음 게 겹쳐서 왔다.
천장에서 흙이 떨어졌다. 전구가 두 번 꺼졌다가 켜졌고 세 번째에는 안 켜졌다. 손전등 두 개가 켜졌는데 하나는 배터리가 다 돼서 노랬다.
윤지호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넣고 있었다. 어깨가 계속 움직였다. 나는 그 애 뒷목을 손으로 잡았다. 잡고 눌렀다. 어제 김 중사가 나한테 한 대로 했다.
"지호야."
"예."
"숨 쉬어."
"쉬고 있습니다."
"내쉬는 걸 길게 해."
그 애가 내쉬었다.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하동찬은 아까 웃던 사람이 아니었다.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서 한 손으로 다른 손을 잡고 있었다. 잡은 손이 떨렸다. 그 애는 그걸 감추려고 손을 더 세게 잡았고, 세게 잡으니까 팔뚝까지 떨렸다.
무전에서 다른 섬 이름이 나왔다.
백령. 대청. 소청.
"백령도도 맞았답니다."
누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게 무전에서 들은 건지 그 사람이 지어낸 건지 몰랐다. 다만 그 이름들이 무전에서 나온 건 맞았다. 나는 그 세 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짚을 데가 없어서 무릎에 짚었다.
김선우 중사가 벙커 문 옆에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안 앉았다. 한 손으로 문틀을 잡고 밖을 보다가 안을 보다가 했다. 그러다 나하고 눈이 마주쳤다.
내가 손가락으로 무릎을 짚고 있는 걸 봤을 거다.
"오 병장."
"예."
"너 아까 안 웃더라."
"…예."
"계속 그래라."

2010년 11월 24일 01시 20분(워싱턴) · 백악관 상황실 / 국방부 / 국무부
당직표는 벽에 붙어 있지 않고 클립보드에 끼워져 있었다.
야간 근무 장교는 그것을 세 번째로 넘겨 봤다. 이번 주는 칸이 비어 있었다. 화요일까지 채워져 있고, 수요일 오후부터 사선이 그어져 있고, 목요일은 이름이 넷이었다.
목요일은 추수감사절이었다.
한반도 담당 실무자 하나는 볼티모어에 있었다. 국가정보국에서 파견 나온 분석관은 화요일 저녁에 노스캐롤라이나로 차를 몰고 내려갔다. 둘 다 전화는 받는다. 다만 받는 것과 방에 있는 것은 다르다.
새벽 한 시 이십 분에 첫 전문이 들어왔다.
한국 공군기 넉 대가 서해에서 지상 표적에 무장을 투하했다는 것이었다. 야간 근무 장교는 그것을 두 번 읽고, 두 번째에 '투하'라는 단어에 형광펜을 그었다. 그가 이 자리에 앉은 지 열한 달 되었고, 한국이 무장을 투하했다는 문장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위로 올렸다. 올린 다음에 시계를 봤다. 새벽 한 시 사십 분이었다.
전화를 받은 부보좌관이 물은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 승인 받고 한 거야?"
"그런 표시는 없습니다."
"그럼 다시 확인해서 알려 줘."
확인에 세 시간이 걸렸다. 세 시간 뒤에도 답은 같았다.
국방부의 아침은 여섯 시 반에 시작됐다.
게이츠는 서서 브리핑을 받았다. 그는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쁜 소식일수록 서서 들었다.
"열여섯 발입니다. 그리고 순항형 네 발."
"표적은."
"해안포 진지 두 곳. 그리고 그 뒤쪽입니다."
"뒤쪽이라는 게 뭐야."
"한국 측 표현으로 지원세력입니다. 관측소, 갱도 입구, 차량 집결지."
게이츠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정부에 들어오기 전 정부에서도 이 자리에 있었고, 그전에는 다른 일을 했다. 어떤 문장은 처음 들을 때 이미 결론이 나 있다.
"이건 불균형하게 공격적이야."
그는 그 말을 참모에게 먼저 했다. 대통령에게 하기 전이었다.
"Disproportionately aggressive. 적어 놔."
"장관님, 한국 측은 어제 민간인이 죽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알아. 그 점은 옳아."
"그러면."
"옳은 것하고 현명한 것은 다르지."
그는 창 쪽으로 두 걸음 갔다가 돌아왔다.
"의장한테 전화하라고 해. 한국 합참의장한테 직접. 오늘 안에."
"의장님은 오후에 일정이 있으십니다."
"그 일정 취소해."
통화는 여덟 시 사십 분에 연결됐다.
대통령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였다. 오후에 로즈가든에 나가는 행사가 하나 잡혀 있었고, 그 행사는 두 시간 뒤로 밀렸다가 다시 밀렸다.
통역이 둘이었다. 이쪽에 하나, 저쪽에 하나. 그래서 문장 하나가 오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대통령이 한 문장을 말하고, 이쪽 통역이 옮기고, 저쪽에서 대통령이 듣고, 저쪽 통역이 옮겨서 돌아왔다. 짧은 문장에 이십 초, 긴 문장에 사십 초가 걸렸다.
그 사십 초 동안 방 안의 사람들은 서로를 안 봤다.
"대통령님. 우리는 한국 방위 공약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십 초.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함께 관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십 초.
한국 대통령의 대답이 돌아왔다. 통역이 옮긴 문장은 이랬다. 어제 우리 국민이 자기 집 마당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 원점에 대응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영토와 국민에 대한 방어입니다.
대통령은 잠시 손가락으로 탁자를 짚었다.
"이해합니다. 다만 오늘 오후의 항공작전에 대해 우리는 사전에 협의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십 초.
돌아온 대답은 두 문장이었다. 첫 문장은 유감이었고, 둘째 문장은 유감이 아니었다.
통화가 열아홉 분째로 접어들었을 때 문이 열렸다.
보좌관 하나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들어와서 국가안보보좌관 앞에 놓았다. 국가안보보좌관이 그것을 읽고 대통령 쪽으로 밀었다. 대통령은 통역이 말하는 동안 그것을 읽었다.
한국 서해의 다섯 개 섬 전체가 포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였다. 서울 시각으로 열여섯 시 오 분에 시작됐다고 적혀 있었다. 그것은 일곱 시간 전이었다.
대통령은 종이를 뒤집어 놓았다.
"대통령님. 우리 합참의장이 오늘 중에 귀국 합참의장과 통화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연합훈련을 함께 검토했으면 합니다."
이십 초.
"좋습니다."
그게 그날 두 사람이 합의한 유일한 항목이었다.
국무부는 그날 오후 세 시에 베이징 채널을 받았다.
동아태 차관보가 전화 내용을 받아 적어 장관실로 올라갔다. 요지는 두 가지였다. 중국은 양측의 자제를 요구한다. 그리고 중국은 이번 주에 사람을 서울로 보낼 것을 검토하고 있다.
"북측을 규탄한다는 말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움직이고는 있습니까."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은 있습니다. 다만 그쪽 표현이 조심스럽습니다."
장관은 종이를 넘겨보고 시계를 봤다. 그쪽 사람이 서울에 도착하려면 사흘이 걸린다. 사흘은 이번 주에 남아 있지 않은 시간이었다.
"국장님한테 물어보세요. 저쪽이 지금 평양에 사람을 넣을 수 있는지."
"이미 물었습니다."
"뭐랍니까."
"넣을 수는 있는데, 받는 쪽이 지금 회의 중이랍니다."
'넣을 수는 있는데, 받는 쪽이 지금 회의 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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