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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제28장 선을 넘다

· 44화 중 20화 · 3,361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1월 22일, 용산. 샤프 대장의 방에는 세 개의 직함이 걸려 있고 그날은 그중 두 번째가 문제였다.

"유엔군사령관으로서 나는 정전협정의 이행을 감독한다." 그가 말했다. "그 협정은 11월 25일에 사실상 끝났다고 우리가 통보했지. 그럼 이제 나는 뭘 감독하지?"

확전 20화 제28장 선을 넘다 — 헤더컷

제이슨 박은 통역할 대상이 없다는 걸 알았다. 방에는 미국 사람만 있었다.

"그런데 웃긴 건," 샤프가 계속했다. "군사분계선은 그 협정이 그은 선이야. 협정이 죽었는데 선은 살아 있어. 왜냐하면 그 선을 넘는 순간 다른 나라가 자기네 조약을 꺼낼 거니까."

"그쪽 조약은 저희 협정하고 무관합니다, 장군님." 캘러헌이 말했다.

"법적으로는. 그런데 법적으로 무관한 걸로 사람이 죽은 적이 있나."

박 대위는 그날 저녁에 조약 전문을 찾아 읽었다. 한국어 본문과 영어 번역본을 화면 좌우에 놓고 한 줄씩 내렸다.

한국어 쪽은 무겁고 넓었다. 침략을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취할 의무. 영어 쪽은 좁고 조건이 많았다. 무력공격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했을 때, 그리고 — by all means at its disposal.

그는 그 마지막 다섯 단어에서 커서를 멈췄다.

한국어로 옮기면 '가진 모든 수단으로'가 된다. 그런데 영어의 disposal은 '내가 처분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즉 이 문장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까지만 하면 되는지를 정하고 있었다. 1961년에 이 문장을 쓴 사람들은 그때 자기들이 가진 것이 얼마나 적은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 다섯 단어를 형광펜으로 칠하고, 캘러헌에게 보내는 메일 초안에 붙였다가, 보내지 않고 껐다. 이건 미8군 작전처가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1월 25일, 청와대.

외교통상부 조약국 서기관이 A4 한 장을 들고 서 있었다. 조약의 제2조였다. 1961년 7월 11일 베이징에서 체결됐고 그해 9월 10일에 발효했다. 서명자는 김일성과 저우언라이다.

"한국어 본문 앞부분입니다." 서기관이 읽었다. "체약 쌍방중 어느 일방에 대한 어떠한 국가로부터의 침략이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취할 의무를 지닌다."

"'방지하기 위하여'라." 천영우가 말했다. "그럼 아직 안 맞았어도 발동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뒷부분이 다릅니다." 서기관이 종이를 내렸다. "뒷부분에는 조건이 붙습니다.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었을 때라야 원조 의무가 생긴다는 취지입니다. 널리 통용되는 영문본은 그 대목을 이렇게 옮겨 놨습니다 — 지체 없이, 자기가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가진 모든 수단으로." 김성환이 되풀이했다.

"예. 문언 그대로 보면,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은 만큼만 해도 조약 위반이 아닙니다."

방이 잠깐 조용해졌다. 그 문장은 중국을 묶는 밧줄이면서 동시에 중국의 변명이었다.

"두 달 동안 안 나왔습니다." 국정원장이 말했다. "서해에서 그렇게 치고받았는데도 베이징은 조약을 입에 안 올렸습니다. 왜겠습니까. 섬 몇 개 갖고는 '전쟁상태'라고 못 쓰기 때문입니다."

"그럼 뭐가 전쟁상태입니까." 대통령이 물었다.

아무도 먼저 대답하지 않았다. 김관진이 자료를 덮었다.

"우리 지상군이 선을 넘는 것입니다."

수석 하나가 서류철에서 종이를 한 장 뽑았다. 지난달 인사청문회 속기록이었다.

"장관님께서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북한은 전면전으로 확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확실하게 응징하면 추가 도발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했습니다." 김관진이 말했다. 변명도 아니고 사과도 아닌 어조였다. "그 판단은 12월 3일 것입니다. 오늘 제가 드릴 판단은 다릅니다. 넘지 않으면 이 전쟁은 안 끝납니다. 저쪽 갱도 포병은 우리 공군으로 다 못 없앱니다. 두 달 해 봤습니다."

"넘으면 중국이 옵니다." 천영우가 말했다.

"올 수 있는 만큼 옵니다." 김관진이 서기관이 놓고 간 종이를 손끝으로 밀었다. "저 조항 그대로요."

대통령은 창 쪽을 보고 있었다. 그가 뭐라고 말했는데 뒷줄에서는 잘 안 들렸다. 앞줄 사람들의 기록에는 이렇게 남았다. 그럼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냐고 하문하심.


1월 28일 04시. 합참 지하 지휘소.

명령은 03시 40분에 하달됐고, 04시에 선두 대대가 통문을 통과했다. 소리는 없었다. 이 방에 소리가 들어오는 일은 없다.

한지환은 상황판 앞에 섰다. 왼손에 자석 마크를 들고 있었다. 육군 1사단. 파란 직사각형에 흰 글자.

그는 그것을 선 아래에서 떼서, 선 위에 붙였다.

선은 검은 실선이고 폭이 1밀리쯤 된다. 종이 위에서는 그 선을 넘는 데 아무 힘도 들지 않았다.

붙이고 나서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확전 20화 제28장 선을 넘다 — 전환컷

2011년 2월 1일 ~ 2월 4일 · 베이징 중난하이 / 중앙군사위원회

종이가 생각보다 작았다.

외교부 조약법률사 사장이 회의탁자 위에 펼친 것은 사륙배판만 한 책자였다. 표지는 붉은 천이고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1961년 7월 11일 베이징. 서명 두 개. 하나는 김일성, 하나는 저우언라이.

"보존본입니다. 원본은 서고에 있습니다." 사장이 장갑 낀 손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그해 9월 10일에 평양에서 비준서를 교환했고, 발효했습니다. 그 뒤로 폐기된 적이 없습니다."

"읽으시오." 후진타오가 말했다.

"제2조는 두 부분입니다. 앞부분은 이렇습니다. 체약 쌍방중 어느 일방에 대한 어떠한 국가로부터의 침략이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취할 의무를 지닌다."

"뒷부분은."

"뒷부분은 조건절입니다." 사장은 그것을 읽지 않고 요약했다. 그편이 오해가 적기 때문이었다. "일방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면, 타방은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취지입니다. 원조의 범위에는 한정이 붙어 있습니다. 자기가 처분할 수 있는 수단의 범위 안에서, 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두 부분이군." 다이빙궈가 말했다. "앞은 언제나 발동되고, 뒤는 조건이 붙는다."

"그렇습니다."

"11월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뒷 문장을 입에 올리지 않은 이유를 말해 보시오."

사장은 준비한 답이 있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무력침공을 당하여'입니다. 11월 23일에 먼저 쏜 것은 조선입니다. 그 사실이 기록에 남아 있는 한, 우리가 뒷 문장을 적용하면 우리 스스로 침략의 정의를 무너뜨립니다. 둘째, 조선 영토 안에 외국 지상군이 없었습니다. 폭격은 있었습니다만, 폭격은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1월 28일 이후에는."

"둘째가 사라졌습니다." 사장이 책자를 덮었다. "지금 조선 땅 위에 외국 군대가 서 있습니다. 그것을 침공이라고 부르지 않으려면 우리는 '침공'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원자바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조항이 우리를 묶는 것이오, 아니면 우리에게 여는 것이오?"

"조약은 스스로 발동하지 않습니다, 총리 동지." 사장이 대답했다. "원용하는 쪽이 있어야 발동합니다. 조선은 12월에 두 번 요청했고 우리는 접수만 했습니다."


이튿날 오후. 같은 방, 사람이 더 늘었다.

시진핑이 먼저 말했다. 그는 지도를 자기 앞으로 당겨 놓고 있었다.

"군의 판단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1950년에 우리는 압록강까지 밀린 다음에야 움직였습니다. 그때 우리가 치른 값을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아십니다. 완충지대라는 것은 있을 때는 아무 값이 없고, 없어진 다음에 값이 매겨집니다. 지금 그 지대가 얇아지고 있습니다. 사리원까지 오는 데 저들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건 군의 이유요." 원자바오가 말했다. "내 이유는 다르오."

그는 서류를 넘기지 않고 말했다.

"랴오닝과 지린의 국경 상황을 보고받고 있소. 1월 한 달에 넘어온 사람이 우리가 작년 한 해 동안 처리한 수의 몇 배요. 겨울이라 강이 얼어서 어디로든 건너오오. 국경경비대로는 못 막소. 막으려면 군을 붙여야 하는데, 군을 국경에 붙이는 것과 강 건너에 두는 것은 비용이 다르지 않소. 다만 결과가 다르오. 이쪽에 두면 우리가 먹여야 하고, 저쪽에 두면 저쪽에서 먹소."

"먹을 것이 저쪽에 없습니다." 누군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져가야지." 원자바오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조금 올렸다. "그게 내 이유요. 안으로 들이지 않으려면 밖에서 붙잡아야 하오."

다이빙궈는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안경을 벗었다.

"두 분 말씀이 다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걸 셉니다."

방이 조용해졌다.

"그 정권이 무너집니다. 올해가 아니면 내년입니다. 무너질 때, 그들이 가진 장치가 몇 개고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우리 중에 있습니까."

"없소." 후진타오가 말했다.

"미국은 압니다. 적어도 우리보다 압니다. 위성이 다르고 사람이 다릅니다." 다이빙궈가 안경을 도로 썼다. "완충지대는 잃어도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난민은 시간이 지나면 줄어듭니다. 그런데 장치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정권이 무너지면, 그건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세 가지 이유 중에서 그것이 이겼다.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세 가지 이유 중에서 그것이 이겼다.

남은 24화 · 약 85,125자 · 약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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