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제5부 임계(臨界)
26화제36장 광산
폐광은 1980년대에 물이 나서 버린 갱이었다.
고른 이유는 세 가지였다. 갱이 도로 밑으로 들어간다는 것. 도로가 하나뿐이라는 것. 그리고 갱구가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

측량조가 먼저 들어가서 도면과 실제를 맞췄다. 도면은 1974년 것이었고 두 군데가 달랐다. 갱구에서 안쪽으로 구백 미터 지점이 도로 노면 아래 백 미터쯤에 해당했다. 측량조장이 그 지점에 흰 페인트로 가위표를 쳤다. 페인트가 젖은 벽에서 흘러내려 가위표의 아래쪽 획이 길어졌다.
갱구에서 안으로 이백 미터쯤은 동발이 성했고 그 뒤로는 썩었다. 운용 요원들은 새 동발을 스물두 개 세웠다. 레일은 남아 있었으나 녹아서 못 썼기 때문에 마지막 구간은 사람이 들었다. 여덟 사람이 들었고, 팔백 미터를 열한 번 쉬면서 갔다.
책임 기사는 마흔둘이었고 함경북도에서 두 번 이 일을 해 본 사람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을 그는 속으로 세 가지 꼽았다. 그때는 계측기가 갱 밖에 스물다섯 대 있었는데 이번에는 없다. 그때는 관측조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없다. 그때는 이것이 시험이었다.
배선은 여덟 시간 걸렸다. 선을 갱구 밖까지 끌고 나가서 감아 놓고, 접점을 하나씩 손으로 눌러 확인했다. 요원 하나가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눌렀다. 장갑을 끼면 접점이 물린 것이 손에 안 온다고 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열아홉 개를 눌렀고 열아홉 번 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점검은 9일 새벽 세 시에 끝났다.
갱 안은 밖보다 따뜻했다. 밖은 영하였고 안은 그렇지 않았다. 폐갱에는 물이 있고 물이 있는 곳은 겨울에 얼지 않는다. 공기에서는 쇠 냄새와 젖은 흙 냄새가 났고, 오래 있으면 그 두 냄새가 하나로 합쳐져서 무슨 냄새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요원들이 줄지어 나왔다. 발밑에 물이 얕게 깔린 구간이 두 군데 있었고, 그 두 군데에서만 발소리가 달라졌다. 나머지 구간에서는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2011년 3월 9일 09시 30분 ~ 11시 · 황해북도 은파 남방 4km, 포대 진지
제원표에 숫자를 옮겨 적고 있었다.
아침에 받은 좌표 셋 중에 둘은 어제 것과 같았고 하나만 바뀌었다. 나는 바뀐 줄에 밑줄을 긋고 옆에 시각을 적었다. 볼펜이 잘 안 나와서 손등에 두 번 그었다.
지호가 반합 뚜껑에 뭘 타서 가져왔다.
"이거 드십시오."
"뭐냐."
"코코아입니다. 미군들이 준 겁니다."
"어디서 났어."
"어제 그 사람들이 상자로 줬습니다."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 뜨겁고 너무 달았다. 단 게 목구멍 뒤에 붙었다.
"저 이따 앞에 갑니다."
"뭐 하러."
"탄약 추진하는 데 인원 빠진다고 해서 제가 간다고 했습니다."
"누가 시켰냐."
"제가 간다고 했습니다."
"왜."
지호가 웃었다.
"여기 앉아 있으면 시간이 안 갑니다."
나는 반합 뚜껑을 그놈한테 도로 줬다. 그놈이 그걸 받아서 옆에 있는 탄약 상자 위에 얹어 놓고 갔다. 차 한 대에 넷이 탔고 아홉 시 십오 분쯤 출발했다.
한길이 포신 밑에서 궤도 유격을 보고 있었다. 밤에 언 진창이 녹으면서 궤도 밑이 또 내려앉아 있었다. 그놈이 각목을 하나 더 대야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라고 했다.
날은 맑았다. 삼월인데 바람이 없었다. 북쪽 산 능선 위로 아무것도 안 보였다. 아침에 하늘에서 소리가 몇 번 났는데 그건 늘 나는 소리였다.
여섯 시에 앞이 들어갔다고 했다. 미군 대대하고 우리 기갑여단 선두가 그 골짜기로 들어가는 시각이 여섯 시였다. 그러면 아홉 시쯤에는 사격 요청이 한 번은 올 거라고 다들 생각했다. 안 왔다.
"조용하네예."
한길이 궤도 밑에서 그랬다. 나는 쏠 게 없으면 좋은 거라고 했다.
김 중사님이 어젯밤에 앞으로 갔다는 걸 나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앞에 있는 사람 얘기를 하면 재수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을 나는 원래 안 믿었다.
그다음에 온 것을 나는 지금도 순서대로밖에 말하지 못한다.
제원표가 하얘졌다.
종이는 원래 흰데 더 하얘졌다. 글씨가 안 보였다. 눈이 부신 게 아니라 종이에서 글씨가 없어졌다. 나는 종이를 봤다가 내 손을 봤다. 손등에 그은 볼펜 자국도 안 보였다.
그리고 손 그림자가 왼쪽으로 누웠다. 아침이라 그림자는 오른쪽에 있어야 하는데 왼쪽에 있었다.
나는 소리를 기다렸다. 이 정도로 밝으면 소리가 나야 한다. 포 쏘는 것도 그렇고 폭탄 터지는 것도 그렇다. 밝은 것과 큰 소리는 같이 온다.
소리가 안 왔다.
그게 제일 이상했다. 나는 그때 무섭지 않았고 이상했다. 무서운 건 그다음이다.
엎드렸다.
누가 엎드리라고 한 게 아니고 손이 먼저 그랬다. 포미 옆 흙바닥에 얼굴을 붙이고 팔로 뒤통수를 감쌌다. 눈을 감았는데도 밝았다. 눈꺼풀 안쪽이 주황색이었다.
세었다.
하나. 이때 땅이 한 번 밑에서 위로 밀었다. 배가 흙바닥에서 살짝 떴다가 붙었다. 그런데 소리는 아직 없었다.
둘. 셋. 넷.
눈꺼풀 안쪽이 주황색에서 붉은색이 됐다가 어두워졌다.
다섯. 여섯. 일곱.
한길이 뭐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는 안 들렸다. 소리를 세고 있어서 다른 소리를 안 들었다.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왔다.
포 소리가 아니었다. 포는 딱, 하고 때리는데 이건 아니었다. 아주 큰 건물에서 아주 큰 문이 닫히는 것 같았다. 낮고 길고 끝이 안 났다. 끝이 안 나는 채로 그 위에 다른 소리가 겹쳤다.
그다음에 바람이 왔다.
흙이 먼저 왔다. 앞에서 벽처럼 왔고 나는 눈을 더 꽉 감았다. 위장망이 찢어지는 소리, 각목이 넘어가는 소리, 탄약 상자 뚜껑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열리는 소리. 포신이 흔들렸다. 사십칠 톤이 땅에 붙어 있는데 그 위에 얹힌 포신이 흔들렸다. 나는 그게 저 혼자 움직이는 걸 그때까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끝났다.
일어나 보니 사람들이 다 서 있었다.
넷째 포 쪽에서 누가 기침을 했다. 공기에 흙이 떠 있어서 삼십 미터 앞이 뿌옜다. 북쪽 산 위로 뭔가 올라가고 있는 게 보였는데 능선에 가려서 밑이 안 보였다. 나는 그게 산불이라고 생각했다.
발밑에 반합 뚜껑이 떨어져 있었다. 상자 위에 얹혀 있던 게 날아온 거였다. 코코아는 없고 뚜껑 안에 흙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걸 주워서 흙을 털고 탄약 상자 위에 도로 얹었다.
"오 병장님, 저 앞에 뭐 터진 겁니까."
한길이었다.
"몰라."
"탄약고 아입니까."
"몰라."
한길이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스위치를 껐다 켰다 했다.
"안 됩니다."
"주파수 확인해."
"확인했십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잡음도 없어예."
잡음이 없다는 게 걸렸다. 무전기는 안 될 때도 소리는 난다. 지지직 하는 게 난다. 그게 없다는 건 다른 뜻이다.
이 소위가 뛰어왔다. 그 사람은 모자가 없었고 왼쪽 어깨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유선 걸어. 지금."
"소위님, 앞에가—"
"유선부터."
우리는 유선을 깔았다. 중대 지휘소까지 사백 미터. 그것도 안 됐다. 저쪽에서 안 받았다.
십 분쯤 지나서 강 대위가 왔다. 걸어서 왔다. 차가 시동이 안 걸린다고 했다.
사람들이 강 대위를 봤다. 강 대위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북쪽을 봤다. 우리도 북쪽을 봤다. 아무도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몰랐다.
우리는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명령이 안 왔다. 명령이 없으면 부대는 자기가 있던 자리에 있는다. 우리는 위장망을 다시 치고 넘어진 탄약 상자를 세우고 각목을 다시 깔았다. 할 일을 만들어서 했다.
인원 점검을 두 번 했다. 두 번 다, 앞에 나간 넷을 빼고 다 있었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포대 어디에서도 사람이 안 다쳤다. 그게 이상하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 정도로 큰 게 터졌으면 누구는 다쳐야 하는데, 사 킬로는 아무도 안 다치는 거리였다.
그러니까 사 킬로 안쪽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느냐 하는 것이 그다음에 오는 생각인데, 나는 그 생각을 하다가 멈추고 각목을 들었다.
열 시 반쯤에 북쪽에서 차가 한 대 내려왔다.
우리 쪽 장갑차였다. 흙을 뒤집어써서 위장 무늬가 안 보였고, 뒤쪽 문이 열린 채로 달렸다. 도로에 우리가 서 있었는데 그 차는 속도를 안 줄였다. 지나가면서 안이 잠깐 보였다.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앉은 자세가 이상했다. 그게 다였다.
차가 남쪽으로 가서 안 보이게 됐다.
"세워야 되는 거 아입니까."
한길이 그랬다.
"무슨 권한으로 세워."
"그래도예."
그놈은 그러고 나서 뭔가 우스운 소리를 하려고 했다.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놈이 농담을 만들다 말고 그만두는 것도 그날 처음 봤다.
나는 제원표를 찾았다. 십 미터쯤 날아가서 배수로에 떨어져 있었다. 주워서 폈더니 글씨는 다 있었다. 밑줄도 있고 시각도 있었다. 아까 안 보였던 건 종이가 아니라 내 눈이었다.
그걸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포 옆에 앉았다. 시계를 보니 열한 시였다. 아직 아무 명령도 없었다.
앉아 있으니까 등 위로 흙이 떨어졌다. 위장망에 얹혔던 게 조금씩 흘러내리는 거였다. 어깨에 한 번, 목 뒤에 한 번, 그리고 등에.
나는 그것을 털지 않았다.
2011년 3월 9일 11시 ~ 3월 14일 · 은파 남방에서 후방 제독소까지
열한 시 사십 분에 누가 뛰어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가스! 가스! 가스!"
세 번이었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면 손이 먼저 간다. 나는 방독면을 아홉 초 만에 썼다. 아홉 초면 잘한 거다. 쓰고 나서 숨을 세게 내뱉어 안에 남은 걸 빼고 손바닥으로 정화통을 막아 밀착을 확인했다. 옆에서 한길이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에 썼다.
가스는 아니었다.
가스였으면 다음 구령이 있다. 보호의를 입으라는 구령이 오는데, 그날은 그게 십 분 뒤에 왔다. 십 분은 긴 시간이다. 그 십 분 동안 아무도 우리한테 뭐라고 안 했다.
보호의를 입고 덧신을 신고 보호장갑을 꼈다. 삼월인데 안이 금방 더워졌다. 방독면 안경에 김이 서려서 앞이 잘 안 보였다.
보호의를 입고 덧신을 신고 보호장갑을 꼈다. 삼월인데 안이 금방 더워졌다. 방독면 안경에 김이 서려서 앞이 잘 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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