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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제62장 오차범위

· 43화 중 43화 · 4,577자 · 약 7분 · 무료

글자3 / 5

집에 와서 봉투를 뜯었다.

여든일곱 쪽이었다. 표지에 부호가 찍혀 있고 작성자 칸은 비어 있었다. 제목은 미신고 핵물질 잔량에 관한 최종 의견이었다.

본문은 내가 이미 아는 것이었다. 여덟에서 열넷. 1989년에서 1991년 사이. 자료가 늘어도 구간은 좁혀지지 않으며, 좁힐 수 있는 시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뒤쪽에 부록이 있었다. 1994년 6월 26일 03시 47분에 관한 사후 판정이었다. 문장은 두 줄이었다.

납품 로트가 사고의 필요조건이었을 확률, 사십에서 팔십 퍼센트. 구간을 좁힐 수 없음.

나는 그 두 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사십이면 절반이 안 된다. 팔십이면 거의 다다. 그 사이에 내가 있다. 열여섯 해 동안 나는 이 구간의 어느 쪽 끝에 서 있는지 알아내려고 했고, 그 사람은 열여섯 해 동안 세 번 계산해서 세 번 다 같은 폭을 냈다. 계산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틀렸으면 좁아졌을 것이다.

그다음에 나는 여백을 봤다.

한 장씩 넘기면서 위아래 왼쪽 오른쪽을 봤다. 연필 자국은 흑연이 남아서 비스듬히 들면 빛난다. 지운 자리도 종이가 눌려서 표가 난다. 나는 스탠드를 켜고 종이를 기울여 가면서 봤다.

여든일곱 장을 다 보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스탠드 전구가 뜨거워져서 손등을 데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인쇄된 글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십육 년 동안 그 사람의 문서에는 언제나 여백에 연필이 있었다. 본문에는 확정된 것만 쓰고 확정되지 않은 것은 여백에 연필로 단다는 규정이 있었고, 그 규정을 지키는 사람은 그쪽 국에서 그 사람 하나였다고 나는 들었다. 나는 그 연필 자국을 읽으려고 문서를 받았다. 본문은 어차피 남이 고쳐 쓴 것이었다.

여백이 비어 있다는 것은 더 쓸 것이 없다는 뜻이다. 더 쓸 것이 없다는 것은 더 알아낼 것이 없다는 뜻이고, 그 사람이 그렇게 판단했다는 뜻이다.


부록 뒤에 통계표가 한 장 붙어 있었다.

2001년 제1차 통일 인구총조사. 1993년 인구조사 대비 실종 인구, 187만 명. 90퍼센트 신뢰구간 132만에서 241만.

나는 이면지를 꺼내 만년필로 썼다.

1,870,000

그 밑에 썼다.

550,000

오차범위가 오십오만이었다. 사람을 세는 일에서 오차범위 오십오만이라는 것은, 오십오만 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모른다는 뜻이다. 통계표 아래에 주석이 달려 있었다. 1993년 등록부가 소실된 군이 열한 곳, 1996년 이후 이동 인구의 등록이 중단된 도가 넷.

오십오만이 얼마만 한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 나는 도시 이름을 대 봤다.

포항이 오십만쯤 되나. 전주는 육십만이 넘던가. 나는 확실히 알지 못했고, 확실히 알지 못한 채로 다른 이름이 하나 떠올랐다. 1993년 인구조사에서 청진이 오십몇만이었다. 그 표를 나는 1993년 겨울에 베이징에서 봤다.

종이에 쓴 두 숫자를 한참 봤다. 위엣것은 사람 수고 아랫것은 모른다는 뜻이다. 둘 다 사람으로 세는 단위가 붙어 있었다.

1997년 일월에 도문 강변에서 만난 아이는 자기 나이를 두 번 다르게 말했다. 아홉이라고 했다가 열하나라고 했다. 나는 고쳐 묻지 않았다. 그때는 나이를 확인하는 것이 그 애한테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그 애가 저 오십오만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를 나 혼자 판정할 방법이 없다.


같은 주 신문 국제면에 사진이 하나 실렸다.

단둥의 물류회사 회장이 성(省) 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뽑혔다는 기사였다. 세로 다섯 단짜리 사진에 그가 웃고 있었다. 예순이었다. 살이 붙었고 안경을 썼고, 1993년 유월 단둥에서 처음 봤을 때보다 등이 곧았다. 그때 그는 셈이 빠르고 속담을 많이 쓰는 장사꾼이었고, 나한테 물건은 두 번 판다고 했다. 한 번은 물건으로, 한 번은 물건 판 얘기로.

옆에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회사 부사장이라고 캡션에 적혀 있었다.

사흘 뒤에 그 부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한국말을 했는데 억양이 연변 쪽이었다.

"강 사장님 되십니까. 왕샤오밍입니다. 아버지 회사가 올해 창립 이십 주년이라 옛날 거래처를 모시는 자리를 합니다."

"멀어서 못 갑니다."

"차편은 저희가 봅니다." 잠깐 뜸을 들이더니 그가 물었다. "혹시 1990년대에 저희 아버지하고 무슨 일 하셨습니까? 옛날 장부에 사장님 성함이 여러 번 나오는데, 아버지는 강관 팔았다고만 하십니다."

"강관 팔았습니다."

"아, 예."

그는 고맙다고 하고 끊었다. 오세환이 죽은 것은 1996년 4월 3일 단둥이고, 그 건은 지금도 교통사고로 남아 있다. 나는 그 부사장이 그때 스물두 살이었겠다고 계산해 봤다.

신문을 접어서 봉투 위에 얹었다.

책상에 종이가 두 장 놓여 있었다. 한 장에는 구간을 좁힐 수 없다고 인쇄돼 있었고, 다른 한 장에는 내 글씨로 오십오만이 적혀 있었다. 둘 다 모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앞엣것은 누가 열여섯 해 동안 세 번 세어 보고 나서 쓴 말이고, 뒤엣것은 아무도 세어 본 적이 없어서 남은 말이다.

나는 두 장을 겹치지 않고 나란히 놓아두었다.


2010년 10월 9일 · 평안북도 영변, 방사화학실험실 제염 현장

출입증 사유란에 두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입회.

직함 칸은 비어 있었다. 사업단 총무가 뭘 넣을까요 하고 물었을 때 비워 두라고 했더니, 그러면 규정상 성명만 나간다고 했다. 그렇게 하십시오.

승인은 열흘 걸렸다. 2003년에 걸렸던 신원 조회가 이번에는 걸리지 않았다. 걸릴 서류가 그동안 더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버스는 평양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반을 갔다. 강이 크게 휘는 자리에 초소가 있었다. 물이 얕고 넓게 퍼져 흘렀고 건너편 자갈밭에 소를 세워 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거기서 사업단 차로 갈아탔다. 젊은 직원이 선량계를 목에 걸어 주며 번호를 불렀다. 십칠 번. 성냥갑보다 작았다.

구내에는 건물이 많았다. 사백 동쯤 된다고 했다. 대부분 창이 없거나 지붕이 내려앉아 있었고, 사람이 드나드는 것은 열 몇 동이었다.

내가 볼 것은 하나였다.

차에서 내려 이백 미터쯤 걸어 들어갔다. 길가에 덕트 토막이 야적되어 있었다. 잘린 단면이 은색이 아니라 흰색이었다. 안쪽에 뭘 발라 굳혀 놓은 것이라고 했다.

육 층이고, 창이 거의 없고, 왼쪽 끝에 굴뚝이 서 있었다. 굴뚝은 2004년에 새로 세운 것이라고 했다. 아래위 색이 달랐다.

나는 남쪽 끝에서부터 걸었다. 내 보폭은 대충 칠십오 센티다. 칠 년 전 서울 별관 복도에서 백스물아홉까지 세다가 그만둔 적이 있다.

이번에는 끝까지 셌다.

이백마흔넷이었다. 곱하면 백팔십삼 미터다. 도면에는 백팔십으로 나와 있다. 셋이 남는데 내 걸음이 짧아진 것인지 도면이 끊어 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셋을 어느 쪽으로도 넘기지 않았다.


북쪽 끝에 낮은 부속동이 붙어 있었다. 제염 폐수를 받아 처리하는 데라고 했다.

문 앞에서 소리를 들었다.

낮고 고르고, 이십 초쯤에 한 번씩 잠깐 숨을 고르는 소리. 나는 그 소리를 안다. 다섯 해 동안 카탈로그로 팔았다.

작업반 사람이 문을 열어 주었다. 넉 대가 나란히 앉아 돌고 있었다. 도색을 세 번쯤 덧칠했는데 명판 자리만 피해서 칠했다. 오사카에서 나온 물건이다.

"여섯 대 들어온 걸로 압니다." 내가 말했다.

"두 대는 오래전에 섰습니다. 부속이 없어서 뜯어다 이쪽에 넣었습니다."

1993년 유월 십일일이었다. 단둥. 그것이 내가 판 첫 물건이었다. 값을 후려치지 말고 납기를 어기지 말라고 들었고 나는 그대로 했다.

이 펌프들은 지금 저 건물을 씻어 낸 물을 퍼 올린다.


조립식 사무실은 난로를 벌써 피워 놓고 있었다.

오후 일은 목록 대조였다. 이번에 꺼내는 물건이 열한 점인데 그중 아홉이 1994년 전에 들어간 것이다. 차폐 용기에 담겨 나오니 사진에 박힌 명판 번호를 내 표와 맞추면 됐다.

한성철은 마흔여덟이었다. 머리가 반쯤 셌고 작업복 위에 남색 조끼를 입었다.

"오셨습니까."

"예."

그가 주전자를 올리고 서랍에서 봉지를 두 개 꺼냈다. 남쪽 것이었다. 봉지 끝을 이로 뜯지 않고 가위로 잘랐다.

"여기서는 손님 오면 이걸 냅니다."

같은 일을 하는 남쪽 기술자의 팔분의 일을 받는다고 들었다. 이 한 봉지가 여기서 며칠 치인지 계산하다가 그만두었다.

벽에 계통도가 붙어 있었다. 그가 왼손으로 짚었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손톱이 없었다. 열세 해 전 베이징에서는 그 손을 내밀기 전에 반 박자가 있었는데, 이제는 없었다.

"덕트는 2006년에 다 갈았습니다. 필터뱅크는 통째로 들어냈습니다. 삼 층까지는 걸어 다닙니다."

"셀은요."

"셀은 기계로 합니다." 그가 도면의 한 칸을 짚었다. "사람은 못 들어갑니다."

"칠 년째입니까."

"칠 년째입니다."

그가 1999년에 미국 사람들과 섰던 자리 얘기를 했다. 원격조작기 관통부 아래. 그때 시간당 일점일 시버트였다.

"지금은 이십 밀리시버트쯤 됩니다. 몇 분은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몇 분이요."

"몇 분입니다."

그는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미국 보고서에 원인이 셋으로 돼 있습니다. 희석제, 계기, 관다발." 그가 말했다. "셋 중에 어느 게 없었으면 그날 새벽에 아무 일도 없었겠는지, 나는 열여섯 해를 생각했습니다. 아직 모릅니다."

나는 다음에 그가 무엇을 물을지 알고 있었다. 1997년 칠월에 한 번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대답하지 못했고, 대답하지 못한 이유가 정말로 몰라서라는 것을 그가 믿었는지는 모른다.

그는 묻지 않았다.

나는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이름과 전화번호뿐이었다. 상호도 직함도 없다. 열일곱 해 전에 상자를 처음 열었을 때 나는 거기 찍힌 것이 내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번 것에는 이름 말고 아무것도 없다.

그는 두 손으로 받아 가슴주머니에 넣었다. 읽지 않았다. 읽을 것이 없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안전모가 흰 것과 노란 것이 섞여 있었고 노란 쪽이 외곽 작업조라고 했다.

"저기 셋째가 우리 아들입니다."

줄에서 제일 작았다. 스무 살이라고 했다. 1997년 여름에 이 사람은 아들이 일곱 살인데 여섯 살만 하다고 했었다.

"남쪽에 가고 싶어 합니다. 작년에 신청했다가 안 됐습니다."

그러고는 그 얘기를 더 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해가 낮았다.

차 있는 데까지 그가 따라 나왔다. 자갈을 밟는 소리가 두 사람 몫으로 났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서서 기다렸다.

"최영준. 1994년 칠월 십구일. 로성근. 1994년 팔월 십일일. 량현식. 1997년 구월 십육일."

띄어 읽는 자리가 일정했다.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어 본 사람의 간격이었다.

"량현식이는 진단서에 영양실조라고 나왔습니다."

"압니다."

"어디든 좋습니다. 남는 데다 적어 주십시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산했다.

오늘 내가 채운 표에는 품목 칸과 수량 칸과 날짜 칸이 있었다. 사람 칸은 없다.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접수하려면 사망을 확인하는 종이가 있어야 하는데, 유가족이 받은 것은 설비사고라고만 적힌 통지서 한 장이고 사인란은 비어 있다. 미국 보고서에는 번호가 셋 붙어 있고 그 셋은 사람이 아니라 원인이다. 1994년 유월 이십육일은 어느 나라 공식 기록에도 없다.

1983년 시월 구일에 랑군에서 열일곱이 죽었다. 아버지는 스무이틀 뒤에 서울에서 죽어 그 열일곱에 못 들어갔다. 그 명단은 그날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의 명단이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실이어서 고칠 수가 없었다.

오늘이 시월 구일이다.

"적어 두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한성철이 나를 봤다.

"적는 것 말고요. 남는 데다요."

"그건 못 합니다."

그는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화를 내지 않았고 다시 묻지도 않았다.

"그러면 적어 주십시오."

나는 저고리 왼쪽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앞쪽은 견적과 납기와 화물 번호로 차 있다. 뒤쪽 빈 장에 이름이 하나 있었다. 1997년 일월에 도문에서 적은 것이다.

로은별. 그 옆에 나이 칸과 날짜 칸을 그어 놓고 열세 해째 비워 두었다.

우리 쪽에서 배운 첫 번째가 이름은 적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적어 두면 남는다고 배웠다.

그 아래에 세 줄을 그었다. 그가 다시 한 번 불러 주었고 나는 만년필로 받아 적었다. 이번에는 이름 칸도 날짜 칸도 다 찼다.

그는 돌아서서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악수는 하지 않았다.

1993년 이월에 나는 정만호에게 내 기록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십일 년 치였다. 그는 대답 대신 서류철을 덮고 겉장을 손바닥으로 한 번 문질렀다. 먼지가 없는데도 그렇게 했다.

차에 오르기 전에 수첩을 한 번 더 폈다. 이름이 넷이었고, 날짜가 적힌 것은 셋이었다.

차에 오르기 전에 수첩을 한 번 더 폈다. 이름이 넷이었고, 날짜가 적힌 것은 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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