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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제33장 마흔아홉

· 43화 중 23화 · 3,744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열흘째 되는 날 괘방산 팔부 능선에 첫서리가 내렸다.

병력은 능선을 따라 스무 걸음 간격으로 늘어서서 아래로 훑고 내려갔다. 낙엽을 발로 헤치고, 바위 밑을 들여다보고, 다시 올라갔다. 하루에 같은 능선을 두 번 훑는 날도 있었다.

영변 23화 제33장 마흔아홉 — 헤더컷

예비군복은 색이 달랐다. 얼룩무늬가 한 세대 전 것이라 낮에는 병사들 것보다 밝게 떴다. 서른아홉 살 먹은 남자가 나무에 등을 대고 앉아 군화 끈을 다시 묶었다.

"철물점 문 닫아놓고 왔는데 말이야."

옆에 앉은 이등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사흘 전부터 손등이 텄고, 트고 나서는 소총 멜빵을 잡을 때마다 손을 반대로 돌려 잡았다.

"열흘이면 잡을 줄 알았지."

"…예."

"자네 몇 살이야."

"스물입니다."

남자가 담배를 반으로 잘라 하나를 내밀었다. 이등병이 받았다.

스무날째 되는 날 들것이 하나 능선을 타고 내려갔다. 판초우의가 덮여 있었고, 앞뒤로 네 사람이 붙었다. 길이 좁아서 들것이 자주 멈췄다. 멈출 때마다 아래쪽 사람이 무릎을 굽혀 높이를 맞췄다.

수색대대 중대장은 수첩에 그날그날 남은 수를 적었다. 스물여섯에서 빼 나가는 뺄셈이었다. 그런데 그 뺄셈에는 자기 쪽 숫자를 적는 칸이 없었다. 그는 수첩 뒷장을 찢어 거기다 따로 적기 시작했다.

마흔날째, 산에 눈이 왔다.

그날 아침 철물점 남자는 능선에서 라면 봉지 하나를 주웠다. 남한 물건이었다. 상표가 지워질 만큼 손을 탄 것이 아니라 그냥 새것이었고, 누가 산 아래 가게에서 사서 들고 올라온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중대장에게 갖다줬다. 중대장은 그걸 비닐에 넣어 표시를 붙였다.

"이게 뭔데요."

"먹었으면 사람이 있었다는 거고, 안 먹었으면 버렸다는 겁니다."

남자는 그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는 마흔 날 동안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고, 매번 더 묻지 않는 편이 빨랐다.


서울에서는 처음 며칠 동안 사람들이 숟가락을 놓고 텔레비전을 봤다.

을지로의 설렁탕집 주인은 저녁 아홉 시가 되면 볼륨을 올렸다. 손님들이 화면을 보면서 뚝배기를 밀어놓았다. 강릉이라는 지명이 자막에 떴고, 산 이름이 떴고, 숫자가 떴다.

열흘이 지나자 주인은 볼륨을 원래대로 내렸다.

스무날이 지나자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자막은 계속 떴다. 숫자는 하나씩만 바뀌었다.

신문도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처음 사흘은 일면이었다. 다음 주에는 삼면으로 내려갔고, 시월에는 사회면 아래쪽에 두 단으로 붙었다. 기사 제목에 '아직'이라는 말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건너편 슈퍼 주인은 구월 하순에 라면을 스무 상자 들여놨다가, 시월 중순에 그걸 도로 창고로 옮겼다. 이 년 반 전 삼월에는 사흘 만에 동이 났던 물건이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사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섭다고 하지 않고 지겹다고 했다.

시월 말의 어느 저녁, 손님 하나가 뚝배기에 밥을 말면서 물었다.

"저거 아직도 안 끝났어요?"

주인이 국자로 국물을 뜨면서 대답했다.

"안 끝났나 보죠."


청와대 회의실에서 안기부장이 종이를 읽었다.

"승조원 열아홉을 포함해 스물여섯입니다. 사살 열셋, 생포 하나, 행방불명 하나. 나머지 열하나는 저희가 죽인 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죽였노."

"자기들이 죽였습니다. 상륙 직후 한자리에서."

"한자리에서."

"예. 같은 자리에서 열한 명입니다."

대통령이 안경을 벗어 탁자에 놓았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물었다.

"우리 쪽은."

합참 정보본부에서 온 소령이 서류를 폈다. 박두철은 자기가 정리한 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이런 자리에서 얼마나 이상하게 들리는지 알고 있었지만, 읽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군인 열둘, 경찰 하나, 예비군 하나, 민간인 넷입니다. 부상은 스물일곱."

"민간인이 넷이가."

"예. 산에 올라갔던 사람들입니다."

대통령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한 번 눌렀다. 누르기만 하고 소리는 내지 않았다.

"국민한테 뭐라 캅니까, 이걸."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서류 맨 뒤에는 붙임 자료가 두 장 더 있었다. 경수로 사업 추진 현황과, 중유 인도 일정. 회의는 그 두 장까지 가지 않고 끝났다.


십일월 오일, 작전 종료가 발표됐다.

발표문에는 '완료'라는 단어가 있었고 '승리'라는 단어는 없었다. 부대가 산에서 내려왔다. 예비군들은 각자 자기 가게와 논으로 돌아갔고, 철물점 남자는 셔터를 올리기 전에 셔터 앞에 쌓인 낙엽을 먼저 쓸었다.

생포된 자는 조서에서 인원수를 말했다. 스물여섯. 그가 부른 숫자와 산에서 센 숫자가 처음으로 맞아떨어졌다. 마흔아홉 날 동안 그 숫자는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었다. 스물여섯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았지만, 아는 것과 세어서 채우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박두철은 사무실로 돌아와 수첩 뒷장을 폈다. 구월 십팔일부터 십일월 오일까지를 손가락으로 짚어 세었다. 두 번 세고, 한 번 더 셌다.

마흔아홉.

그는 그 숫자를 적고, 서류철을 덮고, 붙임 자료 두 장을 뽑지 않은 채로 캐비닛에 밀어 넣었다.


영변 23화 제33장 마흔아홉 — 전환컷

1996년 10월 ~ 11월 · 지린성 도문 / 삼합 대안

다리 한가운데에 선이 그어져 있었다.

흰 페인트였고, 여러 번 덧칠한 자국이 났고, 가장자리가 부풀어 있었다. 나는 그 선까지 걸어갔다. 세면서 걸었다. 백스물세 걸음이었다.

선 저쪽으로 이십 미터쯤 되는 곳에 초소가 있었다. 창문 안쪽에 사람 형체가 하나 앉아 있었는데, 그가 나를 보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선 앞에 서서 신발코를 내려다봤다. 신발코가 선에서 한 뼘쯤 떨어져 있었다. 그 한 뼘을 좁힐 생각은 없었다.

중국 쪽 다리 입구에서는 관광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옌지에서 온 단체가 사진을 찍었다. 여자 둘이 선 위에 한 발씩 걸치고 서서 웃었고, 사진사가 하나 둘 셋을 셌다. 나는 그 옆으로 비켜섰다.

건너편 강둑 위로 남양이 보였다. 회색 건물 몇 채, 슬레이트 지붕, 굴뚝. 오후 세 시였는데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시월에.

다리 밑을 화물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난간 쪽으로 가서 내려다봤다. 화물차가 아니라 물이었다. 물이 여울에서 돌을 굴리는 소리를 나는 그렇게 들었던 것이다.

나는 삼 년 반 동안 저 땅에 물건을 팔았다. 진공펌프, 벨로우즈 밸브, 계기, 강관, 드럼. 화차에 실려 압록강을 건너간 것들이었다. 나는 그 물건들의 규격과 값과 납기를 외우고 있었고 지금도 외운다. 그런데 저 땅을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돌아설 때 백스물세 걸음을 다시 세지는 않았다.


구월 이후로 일이 없었다.

잠수함 한 척이 강릉 앞바다에 얹힌 뒤로 라인이 통째로 얼어붙었다. 리광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은 신호가 갔고 세 번째부터는 아예 없는 번호가 됐다. 단둥의 왕더셩은 전화를 받기는 받았다.

"강 사장, 지금 물건 얘기 하지 마시오. 지금 그쪽은 물건보다 사람이 급해."

"무슨 사람."

"자기들끼리 서로 급하다는 거지. 아이고, 나야 모르지."

그는 모른다는 말을 할 때 목소리가 제일 밝았다.

베이징 사무소에 앉아 있어 봐야 전화가 오지 않았다. 사무실에는 나 혼자였다. 오세환이 쓰던 책상은 봄부터 그대로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서류를 올려놓지 않았다.

서울도 조용했다. 여름 내내 조용했다. 분기 보고서를 올리면 받았다는 회신만 왔고 질문이 없었다. 예전에는 윤성복이 줄마다 토를 달아 되보냈다. 질문이 없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나는 정하지 못했다.

시월 중순에 나는 기차표를 끊었다. 창춘에서 갈아타고 옌지까지, 옌지에서 버스로 도문까지. 명분은 있었다. 조선족 무역상 몇을 만나 새 거래처를 찾는다는 것. 명분은 언제나 있다.


강은 좁았다.

다리 아래로 내려다볼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도문에서 하류로 삼십 분쯤 걸어 내려가니 물이 아주 얕아지는 데가 나왔다. 거기서는 강폭이 사십 미터도 안 됐다. 사람이 무릎까지 걷어붙이고 건널 수 있었다.

건너오고 있었다. 낮에.

여자 하나가 앞장서고 뒤에 아이가 둘 붙었다. 여자는 보따리를 머리에 이지 않고 가슴에 안고 있었다. 물이 종아리쯤에서 왔다. 아이 하나는 여자 옷자락을 잡았고 다른 하나는 혼자 건넜다.

건너편 둑에 초소가 있었다. 거기 경비병 하나가 총을 세워두고 앉아 있었다. 그도 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일어서기를 기다렸다. 그는 일어서지 않았다.

중국 쪽 둑길로 자전거 탄 남자가 지나갔다. 그는 강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여자는 이쪽 둑에 올라와서 제일 먼저 아이들 바짓단을 짜 주었다. 물을 손으로 훑어 내리고, 두 번 짜고, 옷자락으로 종아리를 닦았다. 그러고 나서 자기 것을 했다. 그다음에 보따리를 열어 안을 들여다보고 다시 묶었다. 젖었는지 확인한 것이다.

셋이 옥수수밭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큰 아이가 뒤를 한 번 돌아봤는데, 강을 본 게 아니라 나를 봤다.

나는 서 있었다. 서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삼합에서는 회령이 보였다.

강 건너로 읍이 통째로 보이고, 언덕에 집들이 층층이 붙어 있고, 흰 글씨로 쓴 구호판이 산비탈에 걸려 있었다. 글자가 다 안 읽혔다. 두 자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나를 데리고 다닌 사람은 허씨였다. 옌지에서 물건 심부름을 해 주는 조선족인데 말수가 적고 셈이 빨랐다.

"강 선생, 저기 보이는 데까지가 팔백 미터쯤 됩니다."

"건너오는 사람이 많소?"

"많지요."

"값이 있소?"

허씨는 담배를 붙이고 나서 대답했다. 값이 있었다. 건너는 걸 도와주는 값이 있고, 건너온 사람을 하룻밤 재우고 먹이는 값이 따로 있고, 한 달 데리고 있는 값이 또 따로 있었다. 조선말을 하는 사람을 찾아 붙여주는 값도 있었다. 그는 그 값들을 위안으로 불렀다. 세 자리를 넘지 않았다.

나는 계산하지 않았다. 나는 숫자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날은 하지 않았다. 하지 않으려고 애쓴 것은 아니고 그냥 되지 않았다.

"강 선생은 뭐 하는 사람이오."

"장사요."

"무슨 장사."

"기계."

허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는 두 번까지 묻고 세 번은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 예의로 삼 년 반을 먹고살았다.

강가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저쪽 강가였다. 앉아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 자세가 아니라 앉아 있는 자세였다.

강가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저쪽 강가였다. 앉아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 자세가 아니라 앉아 있는 자세였다.

남은 20화 · 약 72,193자 · 약 1시간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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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전 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