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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제8장 목록

· 43화 중 6화 · 3,815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다 옮기고 나서 세었다.

사십일 행이었다.

영변 6화 제8장 목록 — 헤더컷

한 번 더 세었다. 사십일이었다. 세 번째로 셀 때는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다섯씩 끊어서 셌다. 사십일이었다.

내가 왜 세 번을 셌는지는 그때도 지금도 설명하지 못한다. 숫자가 틀릴까 봐 센 것은 아니었다. 세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됐다.

접기 전에 서른여덟째 줄을 한 번 더 보았다. 손목 부속 여덟 조. 여덟 조면 벽에 창이 여덟이고 자리가 여덟이다. 사람 여덟이 벽 이쪽에 서서 벽 저쪽으로 손을 넣는다.

바깥 방으로 나가 원본을 돌려주었다. 리광호가 넉 장을 세로로 다시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십오일 것 봤습니다." 그가 말했다. "십사일 저녁에 창고에 있었다고 합디다."

"오후 네 시에 넣었습니다."

"압니다." 그가 코트를 입었다. "그래서 오늘 왔습니다."

십사일에 나는 단둥 세관 창고에 직접 갔다. 오사카에서 온 상자 둘과 홍콩에서 온 상자 하나를 눈으로 확인하고, 인수증에 왕더셩의 회사 도장이 찍히는 것을 보고, 밤차를 타고 돌아왔다. 창고 안이 밖보다 추웠다. 콘크리트가 얼면 그렇게 된다. 여덟 시간 걸린 일이었고, 그 여덟 시간 때문에 오늘 이 종이가 왔다.

문 앞에서 그가 한 번 돌아섰다.

"사장 선생. 저 목록에 있는 거, 전부 있어야 합니다. 서른아홉 개만 있고 두 개가 없으면 그건 서른아홉 개가 아니라 영입니다."

"압니다."

나는 그때 정말로 안다고 생각하고 대답했다.


리광호가 나가고 나서 나는 한참 서 있었다. 소파에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고 보리차 잔이 반쯤 남아 있었다. 그는 그것도 다 마시지 않았다.

옮겨 적은 것을 나는 다시 한 번 옮겨 적었다. 두 번째 사본은 견적의뢰서 양식에 얹었다. 품목, 규격, 수량, 희망납기. 그렇게 놓고 보면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종이가 된다. 봉하지 않고 홍콩으로 가는 편에 실었다. 봉한 것은 뜯어 보고 싶어지고 안 봉한 것은 아무도 안 본다.

그날 밤에는 사무실에서 잤다. 숙소까지 이십 분인데 나가기가 싫었다. 소파에 누우니 아까 리광호가 앉았던 자리라 눌린 데가 그대로였다.

한 번 깨서 서랍을 열어 보았다. 내가 베낀 넉 장이 카탈로그 밑에 그대로 있었다. 확인하고 도로 누웠고, 내가 무엇을 확인한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에 오세환이 소포 부친 영수증을 흔들어 보이며 물었다.

"사장님, 어제 늦게까지 계셨습니까."

"응."

"무슨 일 있었습니까."

"견적 하나 받았어."

답신은 이틀 뒤 오후에 들어왔다. 팩스였고, 감열지 위쪽에 홍콩 회사 이름이 찍혀 있었다. 본문은 두 줄이었다.

전량 정상 공급할 것. 단가 경쟁력 유지.

그것뿐이었다.

나는 그 두 줄을 세 번 읽었다. 왜 전량인지, 왜 하필 단가인지, 저것들이 무엇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묻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고, 저쪽도 대답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을 것이다.

정만호가 이월에 뭐라고 했는지 생각났다. 잘 파셔야 합니다. 진짜로 잘 파셔야 합니다.

팩스 용지를 접어 서랍 맨 아래에 넣고 위에 카탈로그 세 권을 올려놓았다. 감열지는 몇 달이면 흐려질 것이고, 그러면 이 종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불을 끄고 창가에 섰다. 십이월의 베이징은 눈이 오는 게 아니라 재가 내린다. 온 도시가 석탄을 때고 밤이면 그게 도로 내려앉는다. 아래 골목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고 안장 위에 검은 것이 얇게 앉아 있었다.

사십일 행 중에서 내가 뜻을 아는 것은 스물두 개였다. 서른여덟째 줄은 그중에 들어 있었다.


1994년 3월 19일 ·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 서울 청와대 / 용산 한미연합사

난방은 오전 내내 한쪽만 돌았다. 남측이 앉은 창 쪽 유리에는 아직 서리가 남아 있었고, 북측 좌석 뒤의 라디에이터는 손을 대면 뗄 만큼 뜨거웠다. 회의실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군사분계선은 탁자 위에서 마이크 선 두 가닥으로만 표시된다.

열한 시 오십오 분, 여덟 번째 실무접촉이 재개되었다.

의제는 특사 교환의 절차였다. 누가 먼저 가고, 몇 명이 가고, 무엇을 들고 가는가. 오전 내내 그 셋을 두고 같은 문장이 여섯 번 오갔다.

북측 단장 박영수가 서류철을 덮었다. 그는 원래 서류를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귀측은 자꾸 제재를 입에 올립니다."

남측 수석대표가 볼펜 뚜껑을 닫았다.

"제재는 우리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손에 없는 것을 왜 말합니까."

박영수가 상체를 조금 앞으로 냈다. 마이크가 그 움직임을 받아 잡음을 한 번 냈다.

"우리는 대화에도 전쟁에도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남측 대표단 가운데 셋이 동시에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것까지는 전에도 있던 말이었다.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박영수가 창 쪽으로 턱을 조금 들었다. 그쪽에는 서리 낀 유리와 3월의 마른 논밖에 없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맙니다. 귀측 대표도 아마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영변 6화 제8장 목록 — 전환컷

받아 적던 세 자루가 멈췄다.

몇 초가 지나갔다. 라디에이터가 한 번 딸깍했다. 남측 수석대표는 대꾸를 준비하지 않았고, 대신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 돌렸다. 벽 앞, 삼각대 위. 카메라의 붉은 점이 켜진 채였다.

그가 확인한 것은 상대의 얼굴이 아니라 테이프였다.

박영수는 다시 서류철을 열었다.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자는 사람의 동작이었다. 그의 왼쪽에 앉은 젊은 수행원이 그 말을 받아 적을지 말지 몰라 연필을 든 채 멈춰 있다가, 결국 적지 않았다.

회담은 스물여덟 분 뒤에 정회되었다. 북측은 오후 회의에 나오지 않았다. 남측 대표단이 자리에서 일어설 때 기록병이 카메라를 내리고 테이프를 뺐다. 손바닥만 한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겨드랑이에 끼고 밖으로 나갔다.


테이프는 오후 네 시 이십 분에 통일원을 거쳐 청와대에 들어왔다.

본관 회의실에는 사람이 아홉 명 있었다. 재생기는 두 번 걸렸다. 세 번째에 화면이 잡혔고, 여섯 초가 흘렀고, 누군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이거, 그대로 내보내야 합니다." 공보 쪽 국장이 먼저 말했다.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이게 저쪽 실체입니다."

"내일 아침에 슈퍼마켓 라면 매대가 빕니다." 통일원에서 온 사람이 말했다. "작년 팀스피리트 때 이미 한 번 봤습니다. 사흘이면 생수가 없어집니다."

"그럼 국민을 속이자는 말입니까."

"속이자는 게 아니라 순서를 정하자는 겁니다."

외교안보수석 정종욱은 재생기 옆에 서서 테이프 케이스의 라벨을 보고 있었다. 손으로 쓴 날짜 밑에 회차 번호가 적혀 있었다.

"공개하면 저쪽 말이 우리 국내에서 유통됩니다." 그가 말했다. "한번 유통되기 시작하면 회수가 안 됩니다. 그리고 저쪽도 똑같이 합니다."

"수석님, 저쪽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달 초에 사찰단이 들어갔다가 재처리시설 문 앞에서 돌아섰습니다." 통일원 사람이 다시 말했다. "그 얘기를 하려면 순서가 있는데, 지금 이걸 먼저 내보내면 국민이 듣는 건 사찰이 아니라 불바다입니다."

"국민이 사찰이라는 말을 언제 궁금해한 적이 있습니까."

문이 열렸다. 다들 일어섰다.

대통령은 앉지 않고 화면 앞에 섰다. 그는 브리핑을 듣지 않고 손가락으로 재생기를 가리켰다.

"틀어 봐라."

여섯 초가 지나갔다.

"다시."

두 번째에도 그는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화면이 멈춘 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내보내라."

정종욱이 반 걸음 나섰다. "각하, 이건 협상 상황이—"

"협상이 어디 있노." 대통령이 그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저쪽이 카메라 앞에서 저래 말하는데."

그날 저녁 아홉 시 뉴스에 그 여섯 초가 나갔다. 앵커는 발언 앞뒤를 잘라 쓰지 않았다. 자를 필요가 없었다.


용산의 지하 회의실에는 창이 없어서, 몇 시인지는 커피 주전자의 온도로 알 수 있었다.

작전부장 토미 프랭크스 소장은 브리핑 내내 서 있었다. 스크린에는 영변의 판독 사진이 걸려 있었다. 180미터짜리 건물의 그림자가 오른쪽으로 길게 누워 있었고, 지난 삼월 초 사찰단이 끝내 들어가지 못한 곳이 그 건물이었다.

"타격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가 영어로 말했다. 통역은 붙지 않았다. 이 방에서 통역이 필요한 사람은 없었다.

한국군 연락장교 정경영 중령이 손을 들었다. 그는 이 방에서 세 번째로 계급이 낮았다.

"부장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말해."

"개성 이북에 장사정포가 있습니다. 사거리 안에 서울이 들어옵니다. 영변을 때리는 순간부터 그 진지들은 자유사격입니다. 장사정포 대책이 없으면 북한 핵시설 폭격은 불가합니다."

프랭크스가 지시봉을 탁자에 놓았다.

"불가하다는 단어는 이 방에서 쓰지 마라."

"동시제압이면 가능합니다." 정경영이 계속했다. "7공군 F-16에 랜턴을 답니다. 야간에 저고도로 들어가서, 영변과 장사정포 진지를 같은 시각에 칩니다. 순서가 아니라 동시여야 합니다. 한 시간 차이가 나면 그 한 시간에 서울에—"

프랭크스가 탁자를 돌아 그의 뒤로 왔다. 손이 정경영의 목덜미에 얹혔다. 세게 쥐지는 않았다. 쥘 필요가 없었다.

"그 말 하지 말랬잖아."

손이 떨어졌다. 프랭크스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지시봉을 다시 집었고, 브리핑은 끊긴 자리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정경영은 앉은 채로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 방금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이 회의에서만 세 번째로 적고 있었다.

회의실 뒤쪽에서 누군가 종이를 넘겼다. 그날 오후 7공군 조종사들이 작전과에 올린 의견이 그 종이에 있었다. 투입 전투기의 50퍼센트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숫자를 스크린에 띄우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회의는 아홉 시 십 분에 끝났다.

정경영이 계단을 올라갈 때 당직실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화면에 판문점 회의실이 보였다. 탁자, 마이크 선 두 가닥, 상체를 조금 앞으로 내는 남자. 당직 하사가 볼륨을 올렸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흑석동 어귀 슈퍼에 들렀다. 우유 한 통을 집어 들었을 때, 앞쪽에서 사내 하나가 라면 상자 두 개를 카운터에 올려놓고 있었다. 계산하는 여자가 계산기를 두드리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저녁부터 저래요." 그녀가 말했다. "아홉 시 뉴스 끝나고부터."

사내는 돈을 치르고 상자 두 개를 한꺼번에 안아 들었다. 문턱에서 한 번 비틀거렸지만 내려놓지는 않았다. 정경영은 우유값을 꺼내다가 잔돈이 모자라 지폐를 내밀었고, 여자가 거스름돈을 세는 동안 진열대 쪽을 한 번 보았다. 생수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사내는 돈을 치르고 상자 두 개를 한꺼번에 안아 들었다. 문턱에서 한 번 비틀거렸지만 내려놓지는 않았다. 정경영은 우유값을 꺼내다가 잔돈이 모자라 지폐를 내밀…

남은 37화 · 약 133,344자 · 약 3시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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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전 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