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제6부 망명(亡命)
29화제42장 손가락 두 개
구급차는 열 시 몇 분에 도착했다. 승강기가 열네 층까지 올라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날따라 길게 느껴졌다고, 관리사무소 직원은 나중에 말했다.
이마에 관통상이었다. 구급대원이 이름을 불렀다. 그가 대답했다.

경찰관이 옆에 무릎을 꿇고 물었다.
"누가 그랬습니까."
그가 손을 들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간첩, 간첩."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경찰관은 무릎을 편 다음, 수첩에 그 두 마디를 적었다. 적고 나서 한 번 더 소리 내어 읽었다. 옆에 있던 구급대원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두 사람이 들은 말이 같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확인해 두려는 것이었다.
그 수첩의 그 줄은 그 뒤로 여러 번 옮겨 적혔다. 조서로, 보고서로, 신문 기사로. 옮겨 적을 때마다 앞뒤에 다른 문장이 붙었다. 그 두 마디만은 바뀌지 않았다.
총은 벨기에제 베이비 브라우닝이었다. 작은 총이다. 외투 주머니에 들어가고, 손 안에 감춰지고, 소리도 크지 않다. 설거지하는 물소리에 묻힐 만한 소리다.
그는 1982년에 남으로 온 사람이었다. 성혜림의 조카였고, 김정남의 사촌형이었다. 열다섯 해 동안 이 나라에서 이름을 몇 번 바꾸고 직장을 몇 번 바꾸며 살았다.
사흘 전에 베이징에서 문 하나가 닫혔다는 것을, 그가 알았는지는 기록에 없다.
수술은 그날 밤에 시작되었다.
2월 16일 일요일, 신문 사회면. 17일 월요일, 1면 아래. 18일, 다시 사회면. 스무날께에는 어느 신문에서도 그의 이름이 첫 장에 없었다.
같은 주에 신문들이 반복해서 실은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는 보호받고 있었는가. 답하는 기관은 없었고, 답이 없다는 것이 다음 날 다시 기사가 되었다.
병원 복도에는 낯선 남자들이 며칠 동안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다가, 어느 날부터 두 명이 되고 어느 날부터 없어졌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 두 번이었다. 오전 열한 시와 오후 일곱 시. 그의 가족은 두 번 다 들어갔고, 들어가는 시간보다 복도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간호사가 매일 같은 항목을 같은 칸에 적었다. 혈압, 맥박, 체온, 동공. 칸은 하루에 열두 번 채워졌고, 열흘이면 백스무 번이다.
2월 25일 화요일 저녁, 아홉 시 삼 분에 그가 죽었다.
열흘이었다. 그 열흘 동안 서울에서는 한보 수사가 이름을 하나씩 늘려 갔고, 은행들이 대출 창구를 조였고, 베이징의 공관 앞에서는 사복 숫자가 늘었다가 줄었다.
보고서는 이틀 뒤에 내곡동으로 올라왔다. 최수경은 그것을 두 번 읽었다.
"보복이래요." 차은희가 복사기 앞에서 말했다. "다들 그렇게 씁니다. 위에서도 그렇게 보고 갔고요."
"보복이면 사흘 만에 안 합니다."
"예?"
"사람 하나 죽이는 데 준비가 얼마나 드는지 아세요. 여권 만들고, 들어오고, 집을 찾고, 몇 시에 나오는지 며칠을 보고. 그게 사흘에 되는 일이 아니에요."
"그럼요?"
"이미 되어 있었다는 뜻이죠. 오래전부터 그 사람이 어느 칸에 적혀 있었고, 이월 십이일에 누가 그 칸에 동그라미를 쳤다는 뜻이에요."
차은희가 복사기 뚜껑을 닫았다. 불빛이 한 번 지나갔다.
"그러면 왜 서둘렀을까요."
"미워서 서두르지는 않아요. 새는 걸 막을 때 서두르지."
차은희가 복사물을 추려 들고 잠깐 서 있었다.
"저 사람이 뭘 알았을까요. 열다섯 해나 여기 살았는데."
"열다섯 해 전에 나온 사람이 지금 평양 일을 알겠어요? 그 사람이 아는 건 사람이에요. 누가 누구의 조카고, 누가 누구 집에 드나들었고. 그건 시간이 지나도 안 바래요."
"그게 무서운 겁니까."
"무섭기로 치면 이쪽이 더 무섭죠. 저쪽에서 보면 우리 채널이란 것도 전부 사람이니까. 사람은 말을 하고요."
말하면서 그녀는 보고서 마지막 장을 넘겼다. 유류품 목록이 있었다. 열쇠, 지갑, 손목시계, 담배. 그 아래에 총기 제원이 두 줄 적혀 있었다. 구경과 제조국. 그것으로 끝이었다.
판문점의 연락관 접촉은 그 주에도 예정대로 있었다. 북측 대표는 그 일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 쪽에서도 묻지 않았다. 접촉 기록은 A4 한 장 반이었고, 거기 적힌 것은 쌀과 비료에 관한 것뿐이었다.
최수경은 자기 수첩을 폈다. 판단은 적지 않았다. 시간만 적었다.
2월 12일, 오전. 문이 열렸다.
2월 15일, 21시 52분.
사흘.
2월 25일, 21시 03분.
열흘.
연필심이 뭉툭해져서 중간에 한 번 깎았다. 깎은 부스러기를 손바닥에 모아 휴지통에 털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 아직 시간이 적히지 않은 항목 하나를 만들어 두었다. 베이징, 이라고만 썼다. 그 옆 칸은 그해 내내 비어 있었다.
1997년 2월 말 ~ 3월 · 베이징 조양구 동아상사 / 옌징호텔
리광호의 전화는 아홉 시 사십 분에 왔다. 그 사람은 늘 그 시간에 걸었다. 자기 사무실에서 조선 사람 없는 시간을 고르는 것이라고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강 사장."
"예, 리 선생."

"삼월 물건 말이오. 그거 선적 서류가 좀 늦어질 것 같습네다."
"얼마나요."
"글쎄. 한 보름."
보름이라는 말을 그는 두 번 쓰지 않는 사람이다. 늦어지면 며칠인지를 딱 말했다. 나는 수화기를 어깨에 끼고 달력을 봤다.
"신용장은 그대로 열어 둘까요."
"기다립세다."
"리 선생, 신용장은 기다리는 물건이 아닌데."
전화기 저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아니면 그 비슷한 소리가 났다.
"강 사장, 다음에 봅세다."
"예."
끊겼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벽시계를 봤다. 사십 초였다. 이 사람과 나는 사 년 가까이 통화를 했고, 짧아도 오 분이었다. 물건 얘기만 해도 오 분은 걸린다. 값을 깎는 사람과 값을 지키는 사람이 오 분 안에 끝날 리가 없다.
그리고 그는 그날 내 이름을 한 번밖에 부르지 않았다. 늘 강 사장, 강 사장, 하고 문장마다 붙이는 사람이었다.
이월 열이틀 뒤로 이 도시가 조용해졌다.
홍콩에서 오는 신문에 사흘 만에 났다. 당 비서 하나가 베이징에서 남쪽 공관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것. 나는 그 기사를 사무실에서 두 번 읽고, 신문을 접어 책상 밑 상자에 넣었다.
같은 주 신문 안쪽에 다른 기사가 있었다. 분당에서 남자 하나가 자기 집 복도에서 총에 맞았다는 것. 열이틀에서 열닷새까지 손가락으로 짚어 보니 사흘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조선 사람들이 자주 가던 식당 하나가 보름째 문을 걸어 잠갔다. 무역대표부 쪽 사람들이 저녁에 모이지 않는다. 내가 아는 은행 지점에서 조선 회사 계좌 두 개가 닫혔다는 말을 홍콩 중개상한테서 들었다.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어제까지 전화를 받던 번호가 오늘은 신호만 간다. 그게 다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그 번호를 눌러 볼 생각조차 안 하게 된다.
오세환이 죽은 게 작년 사월이다. 그 뒤로 이 사무실에는 나 혼자다. 혼자라는 게 이럴 때는 셈이 편하다. 잃을 사람을 세지 않아도 되니까.
사흘 뒤에 나는 그 사람을 봤다.
사무실에서 나와 큰길까지 걸어 나가는데, 신문 가판대 옆에 회색 점퍼가 서 있었다. 신문을 사지는 않고 보고만 있었다. 베이징에서 그건 흔한 자세다.
택시를 탔다. 내려서 골목으로 한 번 꺾고, 시장 안으로 들어가 자전거 사이를 지나 반대편으로 나오고, 그다음에 지하도를 건넜다. 세 번 꺾은 셈이다.
지하도 계단을 올라오니까 회색 점퍼가 위쪽 난간에 팔을 얹고 서 있었다.
숨기지 않는 것이 그쪽 방식이다. 서울에서라면 이건 실수지만 여기서는 문장이다. 우리가 당신을 보고 있고, 당신이 그걸 알기를 바란다는.
나는 소매부에 들어가 홍탑산 한 갑을 샀다. 점원 여자가 거스름돈을 세는 동안 유리문에 비친 바깥을 봤다. 회색 점퍼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와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그도 붙였다. 성냥을 썼다. 라이터를 쓰지 않는 사람이 요즘 몇이나 되나.
옌징호텔 로비에서 세 시에 홍콩 사람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 소파 쪽으로 걸어가는데, 기둥 옆 의자에 그가 앉아 있었다. 언제 앞질러 온 건지 모르겠다.
눈이 마주쳤다. 이 초쯤. 그는 눈을 돌리지 않았고 나도 돌리지 않았고, 그러다 둘 다 동시에 다른 데를 봤다. 그는 무릎 위의 신문을 폈고 나는 홍콩 사람과 악수를 했다.
마흔쯤. 얼굴이 마르고 어깨가 넓었다. 구두가 좋았다. 그 옷차림에 그 구두는 안 맞는다. 조선족인지 북에서 온 사람인지는 겉으로 갈라지지 않는다. 다만 조선족은 저 자리에 저렇게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홍콩 사람이 서류를 펴 놓고 값을 말하는 동안 나는 세 번쯤 그쪽을 봤다. 그는 신문을 한 장도 넘기지 않았다.
그날 밤 왕더셩이 단둥에서 전화를 걸어 왔다.
"강 사장, 살아 있소?"
"덕분에요."
"삼월 물건 어찌 됐소. 나는 창고비를 내고 있는데 물건이 안 움직이면 그게 다 내 살이오. 하루에 얼마인지 셈해 봤소? 나는 셈해 봤소."
"보름 늦어진답니다."
"보름." 그가 웃었다. "강 사장, 요새 리 선생 봤소?"
"통화는 했습니다."
"통화 말고."
"못 봤습니다."
잠깐 아무 말이 없었다. 왕더셩은 침묵을 파는 데도 값을 매길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요새 밤에 문을 두 번 잠그오. 개도 눈 오면 안 나온다는데 사람이 왜 나가겠소."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사무실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 종이가 두 뭉치 있었다. 하나는 1993년 12월에 리광호가 불러 준 것을 내가 손으로 베낀 목록이다. 마흔한 행. 계측기, 특수강, 인산트리부틸, 희석제. 다른 하나는 그 뒤로 사 년 동안 동아상사가 실제로 넘긴 물건의 장부다. 날짜, 품목, 수량, 그리고 오른쪽 끝에 화차 번호.
재떨이가 책상 위에 있었다. 성냥도 있었다.
나는 마흔한 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었다. 세지는 않았다. 세지 않아도 마흔하나인 걸 안다.
태우면 없어진다. 없어지면 내가 여기서 무엇을 했는지도 없어진다. 서울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적어 두지 않는다. 그게 규칙이고 나는 그 규칙에 서명했다. 그러니까 이 서랍이 내가 존재한다는 유일한 서류다.
나는 서랍을 닫고 열쇠를 돌렸다.
나는 서랍을 닫고 열쇠를 돌렸다.
남은 14화 · 약 50,254자 · 약 72분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