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제8부 셈(算)
40화제57장 시월 삼일
베이징에서 다섯 해를 산 남자가 압구정 쪽에서 다리에 올라섰다.
1997년에 다시 놓은 다리였다. 상판은 네 차로였고 인도는 하류 쪽에만 있었다. 난간이 새 페인트 냄새를 아직 조금 풍겼다. 여섯 해 전 그 아침에 이 자리에서 상판 마흔여덟 미터가 내려앉았고, 그날 저녁 제네바에서는 서명이 있었다. 두 소식은 같은 날짜 신문의 다른 면에 실렸다.

그는 걸으면서 가로등을 셌다. 스물여섯에서 놓쳤고, 다시 세지 않았다.
강 위로 유람선이 지나갔다. 배에서 음악이 났다가 바람에 끊겼다. 하류 쪽으로 검은 것이 하나 떠내려가는데 거리가 있어서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앞에서 오던 남자가 그를 스쳐 지나가며 담뱃불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는 라이터가 없다고 했다. 남자가 오늘 뭐 하는 날인지 아느냐고 물었고, 그는 안다고 대답했다. 남자는 더 묻지 않고 갔다.
중간쯤에서 손에 들고 있던 호외가 채였다. 종이는 난간을 넘어 물 쪽으로 갔다. 그는 그것이 떨어지는 것을 보지 않고 계속 걸었다.
북쪽 끝, 강변도로 안쪽에 돌이 하나 서 있었다.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서른둘이었다. 그는 그 앞에서 걸음을 늦추지 않았고, 늦추지 않았다는 것을 다리를 다 건넌 뒤에 알았다.
2001년 1월 ~ 2002년 6월 · 함경남도 단천, 함흥
단천 은행 지점은 원래 수매양정사업소 창고였다. 벽에 아직 곡물 등급표가 붙어 있었고, 그 위에 새 종이를 압정으로 눌러 놓았다. 종이에는 굵은 글씨로 교환 한도가 적혀 있었다.
리향미는 앞에서 셋째였다.
창구의 남자가 봉투에서 지폐를 꺼내 부채꼴로 폈다. 새 돈은 뻣뻣했고 인쇄 냄새가 났다. 오 원, 십 원, 오십 원, 백 원. 앞면에 숫자가 크게 박혀 있고 뒷면은 옥수수와 발전소였다.
"열 장이 남쪽 돈 한 장입니다."
"십 원이 일 원이라는 소리요?"
"예. 당분간은 그렇습니다."
"당분간이 얼마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다음 사람을 불렀다.
뒤에 선 노인이 낡은 지폐 뭉치를 고무줄로 묶어 들고 있었다. 김일성 초상이 인쇄된 백 원권이었다. 창구에서 한도까지만 바꿔 주고 나머지는 접수증만 끊어 주었다. 노인이 접수증을 들여다보며 이건 뭐냐고 물었고, 남자는 나중에 처리한다고 했다. 나중이 언제냐고 노인이 물었다. 남자는 아까와 같은 얼굴로 다음 사람을 불렀다.
리향미는 그 뭉치의 두께를 눈으로 재 보았다. 1996년이었다면 저것으로 옥수수 두 자루를 샀을 것이고, 1997년이었다면 반 자루였다. 이제는 접수증 한 장이었다.
그녀는 창구를 나와 벽 쪽으로 붙어 서서 지폐를 셌다.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 엄지로 밀어 넘겼다. 열 장에서 한 번, 스무 장에서 한 번 손목을 꺾었다. 1993년에 배급표를 봉투에 나누어 넣던 손짓 그대로였다. 그때는 종이 한 장이 옥수수 몇 그램이었고 지금은 종이 열 장이 남쪽 종이 한 장이었다. 세는 손은 바뀔 이유가 없었다.
봄에 그녀는 도매 허가증을 받았다. 여섯 번째 신청에서였다. 허가증에는 취급 품목이 인쇄돼 있었다. 곡물, 식용유, 설탕, 건어물.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고, 그 도장이 그녀가 여섯 해 동안 해 온 일을 처음으로 죄가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장사하시던 분이시죠?" 남부에서 온 공무원이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
"했습니다."
"언제부터요?"
"굶기 시작한 다음부터."
공무원은 그 칸을 비워 두었다.
이주 허가 신청 창구는 시 인민위원회 건물 옆에 따로 지은 조립식 건물이었다.
줄이 사백 미터였다. 앞쪽 사람들은 새벽에 왔고, 뒤쪽 사람들은 오늘 안에 못 들어간다는 걸 알면서 서 있었다. 줄 옆에서 국수를 파는 여자가 있었고, 자리를 대신 서 주는 값이 따로 있었다.
명일은 열한 살이었다. 키가 그녀 어깨에 닿지 않았다.
"어머니, 저 사람들 다 남조선 가는 거야요?"
"남조선이 아니고 남쪽이라 해라."
"남쪽 가는 거야요?"
"허가 받는 사람만."
"나는?"
"나이가 안 된다."
명일은 줄을 한참 보다가 물었다.
"몇 살이면 돼요?"
그녀는 게시판을 다시 읽었다. 국민복무단 제대자, 남부 사업체의 고용 확인서를 가진 자, 남부에 직계가족이 있는 자. 그 아래에 만 열여덟 세 이상이라고 작게 적혀 있었다.
"일곱 해."
명일은 손가락을 폈다가 접었다. 그것으로 계산이 끝난 모양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녀는 국수를 두 그릇 사서 하나를 그에게 주고 자기 것에서 절반을 덜어 그의 그릇에 옮겼다.
함흥의 국민복무단 제3작업대 숙소는 옛 비료공장 기숙사였다.
그들은 도로를 놓았다. 삽과 손수레와 콘크리트 믹서 두 대. 일당은 지역권으로 나왔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급식이었다. 아침 죽, 점심 밥과 국, 저녁 밥과 국. 하루 세 끼가 문서에 적혀 있었고 그 문서가 그들이 서명한 유일한 것이었다.
리향미는 그해 봄에 살림을 함흥으로 옮겼다. 단천은 광산이 서면 사람이 빠지고, 함흥은 항이 가깝고 도로 공사가 오래갈 자리였다. 그녀는 그 숙소에 콩기름과 소금을 댔다. 취사반장이 매달 삼 일에 현금으로 결제했다.

취사반장은 스물아홉이었고 전에 포병 중사였다. 그는 저울 눈금을 볼 줄 알았고, 처음 두 달은 그녀가 실어 온 소금을 자기가 직접 달아 보았다. 세 달째부터는 달지 않았다.
"아주머니 물건은 무게가 맞습니다." 그가 말했다.
"안 맞으면 다음 달에 안 사실 거 아니오."
"그래도 맞추는 사람이 없습니다."
2002년 6월, 결제가 오지 않았다.
"군에서 예산이 안 내려왔답니다." 취사반장이 말했다. "다음 주에 준답니다."
"쌀은 있소?"
"이틀 치."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죽이 나오지 않았다. 대원들은 그날 오전까지 삽을 들고 나갔다가 점심에 돌아와 밥통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스물 몇 살짜리들이었고, 대부분은 열일곱에 입대해서 굶어 본 사람들이었다. 굶어 본 사람은 굶는 것이 시작되는 소리를 안다.
취사장의 창이 먼저 깨졌다. 그다음은 사무동이었다. 밤에는 무기고 쪽으로 갔고, 그쪽에는 경비가 있었다.
마흔 명이 죽었다.
그날 밤 리향미는 창고 문을 안에서 잠그고 명일을 곡물 자루 사이에 앉혀 놓았다. 불은 켜지 않았다. 밖에서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가 세 번 났다. 아침에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골목에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었고, 그것을 주우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남부 뉴스는 그날 저녁 일곱 시에 함흥을 첫 꼭지로 내보냈다.
그녀는 사무실에 놓아둔 중고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부산에서 실려 온 물건이었고 화면 왼쪽 아래에 세로줄이 하나 있었다.
화면에는 부서진 창과 담요를 덮은 것들과 헬기가 나왔다. 앵커는 젊은 여자였고, 원고를 읽다가 한 번 숨을 골랐다. 그 뒤로 자막이 두 줄 지나갔다. 사망 사십 명. 부상 백여 명. 자막이 사라지기 전에 다음 문장이 올라왔다. 급식 중단 사흘째였다고.
취사반장의 이름은 자막에 나오지 않았다. 죽은 사람 이름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 뒤에 나온 남자는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는 통일 이후 이 년 동안 북부에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를 말했다. 숫자가 커서 그녀는 절반쯤 놓쳤다. 그다음 화면에 여론조사가 떴다. 통일이 잘된 일이라고 답한 남부 사람의 비율이 넉 달 전보다 열아홉 점 내려가 있었다.
그녀는 계산기를 꺼냈다.
남쪽에서 도로 놓는 사람 월급이 백만 원이라고 신문에 났었다. 여기 같은 일 하는 사람은 지역권으로 백십만 원을 받는다. 곱하기 영 점 일. 십일만 원.
아홉 분의 일이었다.
그녀는 그 숫자를 종이에 적고 그 밑에 이달 콩기름 단가를 적었다. 아홉 분의 일을 받는 사람들에게 파는 값이었다. 값은 지난달과 같았다. 내릴 이유가 없었고, 내리면 다음 분기에 물건을 못 받았다.
폭동이 난 숙소는 그해 팔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급식은 하루 세 끼로 돌아왔고, 납품업자는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트럭을 한 대 더 샀고, 그해 가을부터 평양의 최옥분에게 물건을 대기 시작했다.
굶어 본 사람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굶다가 죽은 사람들은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 둘을 가른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날 저녁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2003년 4월 ~ 2005년 6월 · 서울, 정부청사 별관 6층
신원조회에서 걸린 것은 1993년부터 1998년까지였다.
담당자가 서류를 두 번 넘겨 보고 나를 올려다봤다. 나보다 열 살은 어렸다.
"이 기간에 소득 신고가 없으신데요."
"없습니다."
"직장은요."
"없습니다."
"해외 체류 기록은 있는데 입국 목적이 사업으로 돼 있고, 사업자 등록은 확인이 안 됩니다."
"그럴 겁니다."
그는 볼펜 뒤꼭지로 책상을 두 번 두드렸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나쁜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그런 칸을 만든다.
결과는 열흘 뒤에 나왔다. 실사단 계약직 채용, 자료대조 담당, 일 년 단위 갱신, 현장 출입 대상 제외. 마지막 줄에 사유가 적혀 있었다. 신원 확인 미완.
들어가지 못하는 건물의 물건을 세는 일이었다.
별관 6층 상황실 벽에 그 건물의 입면도가 붙어 있었다.
축척 이백분의 일이었다. 종이 위에서 구십 센티미터였다. 육 층이고, 창이 거의 없고, 왼쪽 끝에 배기굴뚝이 서 있었다. 도면 아래쪽에 러시아에서 넘어온 원본의 도장이 찍혀 있었고 연도가 1985년이었다. 그 도면과 소련 기술자 명부가 2002년에 들어왔다. 명부에는 육십 명이 넘는 이름과 근무 기간과 담당 계통이 적혀 있었다. 그중 절반은 이미 죽었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기억이 서로 어긋났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백팔십 미터를 가늠해 보려고 했다. 종이로는 되지 않았다.
점심때 복도로 나갔다. 별관 6층 복도는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여든여덟 걸음이었다. 내 보폭이 대충 칠십오 센티다. 두 번 왕복하면 백삼십 미터쯤 되고, 세 번째 왕복의 절반에서 백팔십이 된다. 나는 세면서 걸었다. 백스물아홉에서 뒤에서 누가 불렀다.
"강 선생님, 미국 측 자료 왔습니다."
나는 돌아섰다. 그 뒤로 다시 세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 도면을 한 번 더 봤다. 굴뚝 옆에 손글씨로 러시아 글자가 적혀 있었다. 번역해 달라고 했더니 배기 계통 도면 별책 참조라는 뜻이라고 했다. 별책은 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 도면을 한 번 더 봤다. 굴뚝 옆에 손글씨로 러시아 글자가 적혀 있었다. 번역해 달라고 했더니 배기 계통 도면 별책 참조라는 뜻이라고 했다. 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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