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제8부 셈(算)
41화제59장 실사(實査)
수조는 영상으로 봤다.
장대 끝에 카메라를 달아 물속으로 내렸다. 조명이 켜지자 물이 초록색으로 떠올랐다. 바닥에 회색 더미가 있었다. 그것이 봉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한 개인지가 보이지 않았다. 마그네슘 피복이 부풀고 갈라져서 서로 붙어 있었다.
미국 측이 1999년에 처음 열었을 때부터 그랬다고 했다. 1996년 이후에 수질 관리가 끊겼고, 물이 나빠지면 봉이 삭는다. 여과기를 돌릴 전기가 없었고, 약품을 살 돈이 없었고, 그걸 보고할 사람이 그해 겨울에 배급을 받지 못했다. 그 순서로 물이 나빠진다.
영상은 십사 분짜리였다. 카메라가 바닥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데 중간에 한 번 흔들렸다. 조작하던 사람이 뭘 밟았는지 화면이 위로 튀었다가 내려왔다. 그 이 초 동안 물 위쪽이 보였다. 천장 조명 자리가 비어 있고 배선만 늘어져 있었다.
회의에서 누가 물었다.
"그러면 몇 개입니까."
"셀 수 없습니다." 방사선 담당이 대답했다. "우라늄 총량은 역산이 됩니다. 사십팔 톤 언저리입니다. 개수는 안 됩니다."
"팔천 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팔천은 그쪽이 십 년 동안 말한 숫자입니다. 채널이 팔백열두 개고 봉은 칠천칠백 개 근처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 안에 있는 건 봉이 아닙니다."
기록에는 이렇게 올라갔다. 계수 불가, 총량 추정치로 대체.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십 년 동안 여러 사람이 그 여덟 자리 숫자를 놓고 회의를 했다. 이제 그 자리에 계수 불가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 측이 물고 늘어진 것은 봉이 아니라 그 앞이었다.
1989년에서 1991년 사이에 분리된 플루토늄. 북측 신고는 구십 그램이었다. 폐기물 용액의 동위원소비와 아메리슘 시계로 역산하면 여덟에서 열네 킬로그램이었다.
여섯 킬로그램이 폭이었다. 그 폭 안에서 무기가 한 발이 되기도 하고 두 발이 되기도 한다고 누가 말했다.
"그 말씀은 이 년 전에도 하셨습니다." 미국 측 수석이 말했다. "우리는 그때보다 자료를 더 받았습니다. 구간은 그대로입니다."
"자료가 늘어도 원자료가 없으면 구간은 안 좁혀집니다."
"그러면 언제 좁혀집니까."
한국 측이 대답을 준비하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에어컨 소리가 났다.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폐기물 저장고 두 곳의 시료를 다시 받으면 좁혀질 수 있고, 그 두 곳은 1994년에도 접근이 거부됐던 곳이고, 지금은 관리 주체가 없어서 그 안에 뭐가 남아 있는지 모른다는 것.
에너지부에서 온 여자가 통역을 통해 물었다. 사십 대 중반이고 목소리가 낮았다.
"1994년 6월 이후 이 시설에서 처리된 양을 확정할 수 있습니까."
한국 측이 대답했다. 톤 단위로는 추정하지만 확정은 못 한다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더 묻지 않았다.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사람의 태도였다. 회의가 끝나고 복도에서 스쳤을 때 그쪽이 먼저 목례를 했고 나도 했다. 그게 전부다.
차은희가 배포 자료를 걷으면서 옆을 지나갔다.
"오늘 분석 의견서는 이쪽 겁니다." 그녀가 표지를 보여 줬다. 작성자 칸에 이름 대신 부호가 있었다. "본인은 안 오십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그 부호를 알고 있었다. 십 년 넘게 그 부호가 달린 종이를 읽었다. 표지를 넘겨 보지는 않았다.
조달 대조는 여름 내내 했다.
1993년 4월부터 1994년 6월까지 중조 국경으로 들어간 화물의 세관 신고서, 홍콩 신용장 사본, 제조사 출하대장. 러시아 명부와 달리 이쪽 서류는 진본이었다. 진본이라는 것과 사실이라는 것은 다른 말이다.
나는 항목을 하나씩 대조표에 옮겼다. 진공펌프 육 대. 벨로우즈 밸브 사십 개. 계측용 전송기 십이 대. 열교환기 관다발 이 조. 수소화 케로신 사십 드럼, 팔천 리터. 인산트리부틸 십이 드럼.
수취인은 전부 왕더셩의 회사였다.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케로신 항목에서 손이 한 번 멈췄다. 화차 번호가 신고서에 그대로 인쇄돼 있었다. 옆자리 연구원이 그 줄을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이건 왜 두 대로 나눠 실었을까요."
"드럼이 무거우니까요. 한 대에 마흔 개는 안 실립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는 다음 장을 넘겼다. 나도 넘겼다.
복사기는 못 쓰게 돼 있었다. 반출 금지 자료라 손으로 옮겨야 했다. 나는 만년필로 베꼈다. 왼팔로 종이를 누르고 고개를 옆으로 조금 기울이고, 1993년 12월에 베이징 사무실에서 목록을 베끼던 자세 그대로였다. 그때는 마흔한 행이었다. 다 베낀 다음에 세 번 세어 봤다.
이번에는 세지 않았다.
다 옮기고 나서 표 아래쪽 여백에 뭔가 적으려고 만년필을 들었다가 도로 뚜껑을 닫았다. 그 표에는 품목과 수량과 날짜를 적는 칸만 있었다. 나는 뚜껑을 닫은 만년필을 한참 손에 쥐고 있었다.
2004년 10월 ~ 2006년 4월 · 서울 내곡동 · 빈 · 로스앨러모스
계산기는 바뀌었다. 방법은 바뀌지 않았다.
1993년에 최수경은 386 앞에 앉아 있었고 옆에 방안지를 펴 놓고 있었다. 2004년에는 노트북이 있었고 방안지는 없어졌다. 화면에서 곡선이 다시 그려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때는 사십 초였고 지금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것 말고는 같았다.
플루토늄-241은 십사 년 남짓 만에 절반이 아메리슘-241이 된다. 아메리슘-241은 사백삼십이 년을 산다. 분리한 날부터 아메리슘이 쌓이기 시작하므로, 쌓인 양을 재면 분리한 날이 나온다. 이것을 시계라고 부른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시계는 해가 갈수록 좋아졌다. 1992년에는 1989년과 1990년을 가르기가 어려웠다. 2004년에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잴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IAEA가 시료를 받은 것은 1992년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 십이 년 동안 새 시료는 한 톨도 없었다. 폐기물 저장고 두 곳은 1994년에 접근이 거부됐고, 1999년 이후에는 거부할 주체가 없어졌는데 그때는 이미 안에 무엇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없게 돼 있었다.
여덟에서 열넷.
그녀는 1993년 7월에 열에서 열넷을 냈다. 그때 보류당했다. 십일 년이 지나 구간은 아래쪽으로 두 킬로그램 넓어졌다. 자료가 늘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세상이 몰랐던 불확실성을 그녀가 계산에 넣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다른 파일을 열었다. 1994년 가을에 만들고 1998년에 한 번 손댄 것이었다. 이름은 붙이지 않았다. 세 개의 결함, 무리한 운전 속도, 냉각 코일 격리, 열 주짜리 연료. 어느 것이 없었으면 그날 새벽에 아무 일도 없었을까.
납품 로트가 필요조건이었을 확률. 사십에서 팔십 퍼센트.
세 번째 계산이었고 세 번째로 같은 폭이 나왔다. 그녀는 숫자를 지우고 다시 넣어 보았다. 방향족 함량을 규격치로 되돌리면 아래쪽이 올라갔고, 전송기 편향을 없애면 위쪽이 내려갔고, 둘을 동시에 없애면 계산이 서지 않았다. 셋 중 둘만 있어도 그날 새벽이 나올 수 있는 조합이 열한 가지였다.
폭이 줄어드는 조건은 하나뿐이었다. 셀 안에 남은 것을 재는 것. 그 셀은 그해에도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다.
밤 열한 시에 그녀는 창을 열었다. 내곡동은 산 아래라 시월이면 밤바람이 벌써 찼다. 그녀는 마흔한 살이었고, 이 파일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서른한 살이었다.
빈의 회의실은 천장이 높고 통역 부스가 유리로 되어 있었다.
한국 대표가 한국어로 읽었다. 그녀가 쓴 문단이었다.
"추가 시료 없이는 구간을 좁힐 수 없음."
이어폰에서 영어가 나왔다.
"The range cannot be narrowed at this time."
최수경은 이어폰을 조금 뺐다. 그녀가 쓴 문장에는 시점이 없었다. 지금은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시료가 새로 생기지 않는 한 안 된다는 뜻이었다. 통역이 넣은 두 단어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만 문을 하나 열어 두었다.
미국 대표가 그 문으로 들어왔다. 그러면 언제쯤 가능한지 일정을 제시해 달라고 했다. 한국 대표가 자료를 뒤적였다.
그녀는 손을 들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발언권을 가진 사람은 대표였고, 그녀는 대표단 명부의 열한 번째 줄에 분석관으로 올라 있었다.
옆자리 사무관이 속삭였다.
"저희가 언제 된다고 못 박으면 나중에 곤란해지지 않습니까."
"곤란해집니다."
"그런데 왜 가만두십니까."
"통역이 틀리게 옮긴 게 아니라서요."
점심때 대표가 미안하다고 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하고, 다음부터는 그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쓰겠다고 했다. 주어가 있는 문장으로 쓰면 통역이 시점을 넣을 자리가 없어진다. 그녀는 종이 냅킨에 그 두 문장을 미리 써 보고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로스앨러모스의 그 방은 창이 없었다.
엘런 그레이브스는 1999년 9월에 찍은 사진을 다시 꺼냈다. 삼백여든 장이었고, 그중 열아홉 장은 서류를 찍은 것이었다. 오 층 복도 끝 사무실, 철제 캐비닛 세 번째 칸. 방진복 장갑 낀 손으로 서랍을 열었고 안은 젖어 있지 않았다.
백열여덟 번째 사진. 종이 한 장.
날짜는 1994년 6월 21일. 제목은 계기 이중확인 요청. 본문은 여섯 줄이고, 요지는 증발기 온도 전송기의 고온역 지시를 별도 계기로 대조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래에 반려 도장이 찍혀 있었다. 사유란은 한 줄, 공정 지연 우려.
서명은 제1공정 기술과장 한성철.
그녀는 1999년 8월 말에 그 사람과 사흘을 같이 있었다. 왼손에 장갑을 끼지 않으려 해서 실랑이가 있었다. 손톱이 두 개 없는 손이었고, 그는 그것을 감추지도 내보이지도 않았다. 통역을 거쳐 그가 한 말 중에 그녀가 적어 둔 것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오 층부터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삼 층 복도는 아직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둘 다 맞았다.
그가 문을 열어 주지 않았으면 그 캐비닛까지 가는 데 몇 달이 걸렸을 것이다.
그녀가 이 년에 걸쳐 낸 값은 여덟에서 열네 킬로그램이었다. 서울에서 온 분석 의견서의 값과 같았다. 그녀는 그 문서의 작성자 칸을 본 적이 없었다. 부호 하나가 찍혀 있었고, 국무부를 거쳐 오면 그 부호도 지워져 있을 때가 있었다.
그녀가 좁히지 못한 것은 다른 쪽이었다. 계기가 왜 그 모양이었는가. 중고를 신품으로 판 것인가, 누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인가, 그 둘이 같은 물건에서 동시에 일어났는가. 1993년 봄에 톰스크에서도 비슷한 것이 터졌고, 거기에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메모의 마지막 줄에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기전(機轉)은 규명되었고, 행위자는 규명되지 않았다.
사진은 도로 봉투에 넣었다. 백열여덟 번째 것만 한 장 더 뽑아 책상 유리 밑에 끼웠다.
사진은 도로 봉투에 넣었다. 백열여덟 번째 것만 한 장 더 뽑아 책상 유리 밑에 끼웠다.
남은 2화 · 약 8,011자 · 약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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