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제4부 행군(行軍)
18화제25장 시월 이십일일
십일월 말에 국제원자력기구가 영변과 태천의 공사가 멈춘 것을 확인했다는 기사가 짧게 났다. 정만호는 그 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일월에 서울에 들어갔더니 남산 청사가 이사 준비 중이었다. 내곡동으로 간다고 했다.

이사 나가는 건물은 냄새부터 달라진다. 종이 먼지와 오래된 마룻바닥 냄새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복도에 상자가 줄지어 쌓여 있었다. 사람들이 서류를 나르는데 아무도 뛰지 않았다. 어떤 방은 문이 열린 채 비어 있었고, 벽에 액자를 걸었던 자리만 네모나게 색이 달랐다. 계단참에서 여직원 둘이 파쇄기를 돌리고 있었다. 종이가 들어가는 소리가 규칙적이었다.
이층 끝 방은 우리 실이 쓰던 방이었다. 캐비닛 다섯 개가 벽에서 떨어져 나와 비스듬히 서 있었고, 그 뒤 벽에 못자국이 촘촘했다. 몇 개는 무언가 걸린 적이 아예 없는 것처럼 자국만 남아 있었다.
상자에 들어가지 않는 것들이 복도에 남았다. 다리 부러진 회전의자. 손잡이가 헐거운 캐비닛. 화분. 그리고 벽걸이 달력 하나가 상자 옆에 세워져 있었는데, 시월에서 넘어가지 않은 채였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십일에 아무 표시도 없었다. 표시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 이 층에는 없었을 것이다.
달력을 상자 위에 도로 얹어 놓고 계단을 내려왔다. 아래층에서도 종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밖으로 나오니 눈이 조금 날렸다. 남산에서는 도시가 다 내려다보인다. 나는 잠깐 서서 강 쪽을 봤다. 여기서는 다리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었다.
1995년 2월 25일 ~ 5월 · 평안북도 영변, 방사화학실험실 외곽 / 오염제거 임시본부
선량계 바늘이 올라가다 멈췄다.
멈춘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갔다. 눈금이 거기서 끝나 있었다. 한성철은 계기를 흔들지 않았다. 흔들어도 숫자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았고, 옆에 선 반원은 몰라서 두 번 흔들었다.
"과장동지, 이거 고장 아닙니까."
"상한을 넘은 겁니다." 한성철이 말했다. "이 계기는 여기까지밖에 못 셉니다. 물러서시오."
배기굴뚝 아래 필터뱅크실이었다. 문은 작년 유월에 닫고 용접해 버렸다. 그들은 문을 열지 않고 콘크리트 벽 바깥에서 쟀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계기가 끝까지 갔다면 안쪽은 셀 수 있는 물건으로 셀 수 없다는 뜻이다.
반원은 작년 시월에 배치받은 스물한 살짜리였다. 제1공정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배운 적이 없다. 그가 아는 것은 여기가 위험하다는 것뿐이고, 그 정도는 이 구내의 개도 안다.
오후에 방송이 나왔다. 인민무력부장 오진우 동지가 서거하였다고 했다. 폐암이라고 했다.
작업이 멈췄다. 사람들이 구내식당 앞에 모여 섰고, 관리부에서 검은 천을 가지러 갔다. 한성철은 필터뱅크실 벽에 등을 대고 서서 계기를 껐다. 나라가 또 장례에 들어갔다. 작년 칠월 이후 두 번째였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작년 칠월 구일 오전에 해산했다. 다시 모이지 않았다. 그가 그 위원회에 낸 종이는 넉 장이었고, 넉 장이 어디로 갔는지 그는 묻지 않았다.
제염은 삼월에 시작했다.
임시본부는 자재창고를 반으로 갈라 만들었다. 난로가 하나였다. 계획서에는 원격 세정 장치를 투입한다고 적혀 있었는데, 그 장치는 도면으로만 있었다. 도면 아래쪽에 소련 공장 이름이 인쇄돼 있었고 그 공장은 이제 없다.
그래서 사람이 들어갔다.
방호복은 스물두 벌이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인데 씻어서 다시 썼다. 필름배지가 모자라 두 사람이 하나를 나눠 달았다. 이십 분 교대로 넣었다가 뺐다. 들어가는 사람은 걸레와 세척액 통을 들고 갔고, 나오는 사람은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못했다. 닦으면 오염수가 생긴다. 그 물을 담을 드럼이 삼백 개 필요했는데 구내에 있는 것이 마흔여덟 개였다.
한성철은 그것을 계산해서 올렸다. 답신은 오지 않았고, 대신 사월에 드럼 열두 개가 왔다.
량현식이 자기도 들여보내 달라고 했다. 작년 삼월에 배치받은 조작공이고 올해 스물넷이다. 요즘 아침이면 잇몸에서 피가 났다. 도 병원에서 두 번 봤는데 진단서에는 빈혈이라고 적혀 있었다.
"과장동지, 저는 배지 안 달고도 들어갑니다."
"안 됩니다."
"저는 이미 작년에—"
"그러니까 안 됩니다." 한성철이 말했다. "동무는 창고에서 드럼이나 세시오. 그것도 일입니다."
량현식은 그날 드럼을 세 번 세었고 세 번 다 다른 수를 말했다.
강태봉이 한 번 왔다. 작년 구월에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이 서류를 넘기러 온 것이었다. 차가 없어서 구장 쪽에서 걸어 들어왔다고 했다. 외투 어깨에 흙먼지가 앉아 있었다.
"동무는 조서에 뭐라고 썼소."
"본 대로 썼습니다." 한성철이 말했다. "지시 온도, 실지 비등 상태, 코일 격리 시각. 넉 장입니다."
강태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말했다. "나도 위에서 들은 대로 말한 것뿐이오."
"압니다."
"안다고 하지 마시오." 강태봉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가 곧 낮췄다. "그 말은 아무한테도 하지 마시오."
오월에 제염을 중단했다. 표면 선량은 처음의 절반쯤에서 더 내려가지 않았고, 계통 안쪽은 손도 대지 못했다. 배기덕트는 열어 보지도 않았다. 라인 2는 아직 완성된 적이 없는데도 같이 죽었다. 덕트를 같이 쓰기 때문이다.
사월 중순에 자재과장 오정민이 불려 갔다.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둘이 왔다.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오정민은 자기 캐비닛에서 서류철을 꺼내 안았다. 발주서, 검수조서, 인수증. 그가 사 년 동안 도장을 찍은 종이들이었다.

임시본부 앞마당을 지나면서 그가 한성철 쪽을 봤다.
"나는 서류대로 했습니다."
한 번 더 말했다. 두 번째는 앞을 보고 말했다.
한성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정민은 물건을 고르지 않았다. 규격을 정한 것은 기술과였고, 값을 정한 것은 대외사업국이었고, 사 오라고 한 것은 그보다 위였다. 오정민이 한 일은 도장을 찍은 것이다. 도장이 제일 많이 찍힌 사람이 제일 많이 안 사람으로 되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삼층 자재과 사무실 캐비닛에는 아직 서류가 남아 있었다. 작년 유월 이십일일에 한성철이 올렸다가 반려된 요청서도 거기 있다. 계기 이중확인. 반려 사유는 공정 지연 우려. 그는 그것을 꺼내 볼까 하다가 캐비닛 문을 닫았다. 지금 꺼내면 자기가 꺼냈다는 사실만 남는다.
오월 말에 최영준의 집에 갔다.
사택 삼호동 일층이었다. 방이 하나였고 아이가 둘이었다. 큰애가 다섯 살쯤 됐다.
아내는 그를 앉히고 물을 내왔다. 그리고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왔다. 사망통지서였다. 연구소 사고로 순직. 도장 두 개.
그 여자가 그것을 읽었다. 다 읽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과장동지." 두 번째를 다 읽고 나서 말했다. "여기 이 칸이 비어 있습니다."
사인란이었다.
"그건." 한성철이 말했다. "그건 나도 모릅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는 최영준이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 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적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런 이름을 가진 칸이 이 나라의 서식에 있는지도 모른다.
큰애가 문지방에 앉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여자가 아이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유가족 배급은 나옵니까."
"연구소에서 나옵니다."
"지난달엔 절반만 나왔습니다."
한성철은 그것도 알고 있었다. 구내 배급이 작년 가을부터 조금씩 줄었다. 줄었다는 말은 쓰지 않았다. 조절이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로성근의 사택 앞을 지났다. 유리창이 신문지로 막혀 있었다. 그 집 식구는 이월에 다른 데로 옮겼다고 했다. 전근 형식이라고 했다.
그날 밤 임시본부에서 왼손 붕대를 풀었다.
여섯 번쯤 다시 감았던 자리였다. 아물었다가 벌어지기를 되풀이했고, 이번에는 붙었다. 손등 가죽 색이 나머지와 달랐다.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은 매끈했다. 손톱이 있어야 할 자리에 얇은 껍질만 덮여 있었다.
두 손가락은 다시 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숫자가 맞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둘이고, 셋째는 살아서 걸어 다니는데 병원에서 병명을 못 붙이고 있다. 잡혀간 사람은 하나인데 그 사람은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캠페인을 시키라고 말한 사람들은 다 자리에 있다. 어느 쪽으로 더해도 남거나 모자랐다.
한성철은 푼 붕대를 난로에 넣었다. 종이보다 오래 탔다.
1995년 6월 ~ 7월 · 랴오닝성 단둥 / 베이징
여자들이 칼로 포대의 글자를 도려내고 있었다.
압록강 하구 쪽 창고였다. 지붕이 낮고 문이 넓어서 바람이 통째로 들어왔다 나갔다. 쌀 포대가 벽까지 쌓여 있고, 그 앞에 스무 명쯤이 앉아 작업을 했다. 상표가 박힌 자리를 네모로 도려내고, 구멍 난 자리에 무지 천을 대고 재봉틀로 박는다. 글자가 아주 크게 박힌 것은 도려낼 수가 없어서 새 포대에 옮겨 담았다.
한 여자가 삼십 초에 한 장을 했다. 옆 여자는 조금 느렸다.
"한 포대에 이 마오." 왕더셩이 손가락 두 개를 폈다. "하루에 사백 장 하는 사람도 있소. 팔십 원이지. 단둥에서 그만한 일자리가 어디 있소."
"글자 지우는 데 돈을 냅니까."
"강 사장." 그가 웃었다. "물건값보다 글자값이 비쌀 때가 있소. 물건이야 어디서 나든 쌀이지만, 글자는 어디서 왔는지를 말해 버리니까."
나는 쌓인 포대를 봤다. 어떤 것은 중국 량식공사 도장이 찍혀 있었고, 어떤 것은 이미 도려낸 뒤라 앞뒤가 다 무지였다. 옮겨 담기를 기다리는 무더기에는 한글이 인쇄된 것도 섞여 있었다. 나는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은 것은 그때 내 습관이었다. 나는 이 년 동안 묻지 않는 것으로 밥을 먹었다.
오세환은 창고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간에 서 있었다.
"몇 장이나 됩니까." 그가 물었다.
"세어 봤나."
"아뇨. 그냥 많아 보여서요."
강 건너가 신의주다. 여기서 보면 굴뚝 두 개하고 낮은 지붕들이다. 저쪽에서 이쪽을 보면 단둥은 밤에 불이 켜져 있고, 이쪽에서 저쪽을 보면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차이는 재작년보다 작년이 컸고 작년보다 올해가 컸다.
강 건너가 신의주다. 여기서 보면 굴뚝 두 개하고 낮은 지붕들이다. 저쪽에서 이쪽을 보면 단둥은 밤에 불이 켜져 있고, 이쪽에서 저쪽을 보면 밤에 아무것도 보…
남은 25화 · 약 90,202자 · 약 2시간 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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