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IONTOON

15화제21장 이달 안에

· 43화 중 15화 · 3,455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사흘째 되는 날 계면이 달라졌다.

추출탑 시료를 받아 유리관에 세워 놓으면, 정상일 때는 위아래가 칼로 자른 것처럼 갈라진다. 유기상은 맑은 등황색이고 수상은 거의 투명하다. 그 사이에 선이 하나 있다.

영변 15화 제21장 이달 안에 — 헤더컷

이제 그 선이 층이 되어 있었다. 갈색이고, 걸쭉하고, 두께가 손가락 두 마디였다.

"기사 동지." 최영준이 시료대 앞으로 왔다. 스물여덟 살이고, 이 직장에서 소리로 공정을 읽는 유일한 사람이다. "용해조 소리도 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가."

"거품 터지는 게 잘아졌습니다. 전에는 뚝뚝 하고 굵게 터졌는데 지금은 자잘하게 부글거립니다."

한성철은 유리관을 들어 불빛에 비춰 보았다. 갈색 층이 유리벽에 붙어서 내려오지 않았다.

"연료가 너무 뜨거워서 그렇습니다." 최영준이 말했다.

절반은 맞는 말이었다. 열 주짜리 연료는 방사선이 세다. 방사선이 세면 유기 용매가 상한다. 상한 용매는 이렇게 된다.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다.

문제는 나머지 절반이었다. 이 정도로 상하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한성철은 그 문장을 속으로 두 번 만들어 보았고, 두 번 다 뒤를 잇지 못했다.

"용매세정탑 부하가 얼마인가."

"한계입니다. 지금 속도로 다 통과시키면 장입을 못 맞춥니다."

"우회한 게 몇 회분인가."

최영준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

"몇 회분인가, 동무."

"어제 야간에 네 번, 오늘 낮에 두 번입니다." 최영준이 시료대만 보고 말했다. "반장 동지가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한성철은 유리관을 시료대에 도로 세웠다. 세정하지 않고 돌린 용매는 계통 어딘가에 그대로 남는다. 남은 것이 가벼우면 위로 뜨고, 무거우면 아래로 간다. 이 계통에서 아래는 산 회수 쪽이다.


유월 이십일일 아침, 한성철은 요청서를 손으로 썼다.

기계로 칠 수도 있었지만 손으로 썼다. 제목은 「제1공정 온도계통 이중확인 요청」이었다. 내용은 세 줄이었다. 산 회수 증발기 및 추출탑 계통의 온도전송기 열두 대에 대하여 별도 기준기로 현장 이중확인을 요청함. 특히 백십도 이상 구간. 확인 완료까지 야간 단독 운전 보류를 건의함.

그는 그것을 들고 계기실로 갔다. 로성근이 납땜인두를 내려놓고 안경을 밀어 올렸다.

"기사 동지, 그 열두 대는 작년에 다 검사했습니다."

"교정성적서 말인가."

"내가 직접 대조했습니다." 로성근은 서른여섯이었고, 이 건물에서 계기를 가장 오래 만진 사람이었다. "성적서에 적힌 기기 번호하고 본체 명판 번호가 다 맞았습니다. 원 제작사 성적서고, 날짜도 유효기간 안입니다."

"백십도 위에서도 봤나."

"현장 기준기가 백십도까지밖에 없습니다." 로성근이 잠깐 웃었다. "그 위로 올라갈 일이 없지 않습니까. 운전 상한이 백이십인데."

"그러니까 보자는 겁니다."

로성근은 요청서에 자기 이름을 넣어 주었다.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들어간 종이는 그날 오후에 올라갔고, 다음 날 아침에 돌아왔다.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반려. 사유란에는 여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공정 지연 우려.

한성철은 그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버리지 않았다. 사무실 벽의 철제 캐비닛을 열고, 위에서 세 번째 칸의 미결 서류 묶음 맨 앞에 그것을 끼웠다.


야간조 야식은 밀가루 국수였다. 국물에 돼지비계가 몇 점 떠 있었다. 캠페인 기간이라 특별 배식이라고 했다.

량현식이 두 그릇째를 받아 왔다. 스물세 살이고 삼월에 배치받았다.

"동무는 배가 안 차나." 최영준이 웃었다.

"집에서는 이런 거 못 먹습니다."

오정민 자재과장이 맞은편에 앉아 수첩을 넘기고 있었다. 그는 젓가락을 들지 않고 숫자만 봤다.

"기사 동지, 희석제 남은 게 열아홉 드럼입니다. 이 속도로 가면 다음 주에 바닥납니다."

"청구는 넣었습니까."

"넣었습니다. 언제 오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요즘 국경 쪽이 조용합니다."

"조용한 게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자재과장한테는 나쁩니다." 오정민이 수첩을 덮었다.

식탁 끝에서 량현식이 국물을 마시고 있었다. 최영준이 그 애의 그릇에 자기 비계를 덜어 주었다.

한성철은 자기 몫을 반쯤 남기고 일어섰다. 사무실로 돌아와 불을 켜지 않은 채 앉아 있다가, 캐비닛을 열어 반려된 종이가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있었다.

문을 닫자 철판이 한 번 울리고 걸쇠가 걸렸다.


영변 15화 제21장 이달 안에 — 전환컷

1994년 6월 25일 22시 40분 ~ 6월 26일 04시 30분 · 영변, 제1공정 조종실 및 조작복도

22시 40분, 수상 밀도가 떨어졌다.

야간반장이 계기를 두 번 두드렸다. 바늘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는 시료를 받아 비중을 재고, 재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냉각 코일 어딘가에서 냉각수가 계통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번 것도 확인해 보십시오." 로성근이 계기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확인할 게 뭐 있나. 물이 새는 거지."

"어느 관인지는 알아야—"

"이 호실 코일이야. 이번 주 내내 이 호실만 이상했어." 반장은 이미 밸브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조종실 전화는 어제부터 잡음이 심했다. 그는 통로 끝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호 격리한다! 일 호로 붙여!"

복도 저쪽에서 누가 알았다고 소리쳤다.

한성철은 십 분 뒤에 그 사실을 들었다. 그때는 이미 밸브가 잠겨 있었다.

"기사 동지, 누수는 멎었습니다."

"냉각능력이 얼마 남습니까."

반장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육 할쯤 됩니다."

"장입은요."

"위에서 이달 안에라고 했지 않습니까."


01시 10분.

최영준이 조종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호복 위에 땀이 배어 있었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기사 동지. 비등 소리가 이상합니다."

"증발기 말인가."

"예. 아까부터 굵게 한 번씩 칩니다. 물 끓는 소리가 아니라 뭐가 안에서 부딪히는 소리 같습니다."

한성철은 조작반으로 갔다. 산 회수 증발기 온도지시계는 백십육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압력은 정상 범위였다. 액위도 정상이었다. 그는 옆의 기록계 종이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잉크 선이 완만하게 올라가다가 평평해져 있었다.

"백십육도야."

"그렇습니까." 최영준이 계기판을 보았다. 그도 숫자를 읽을 줄 알았다. "그럼 제가 잘못 들은 겁니다."

"운전 상한이 백이십이다. 아직 사 도 남았어."

최영준은 문 앞에서 잠깐 서 있다가 나갔다. 나가면서 한 번 뒤를 돌아봤는데, 한성철은 그때 기록계 종이를 보고 있어서 그것을 보지 못했다.

02시 반쯤 한성철은 기록계 종이를 처음부터 다시 훑었다. 저녁 여섯 시부터 지금까지, 선은 백사도에서 백십육도까지 여섯 시간에 걸쳐 올라와 있었다. 계통이 무리하고 있다는 뜻이었지만 어느 눈금도 넘지 않았다.

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야간 운전을 세울 근거는 없다. 그는 그 문장을 닷새 전에 종이에 써서 올렸고, 그 종이는 지금 자기 사무실 캐비닛에 들어 있었다.


03시 12분, 지시 온도가 백십팔도가 되었다.

한성철은 조작복도로 나갔다. 셀 벽은 두께 일 미터가 넘는 콘크리트다. 안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납유리 창으로 보거나, 원격조작기를 써서 안의 것을 창 앞으로 옮기거나.

납유리 창은 이 년 전부터 뿌옜다.

그는 왼손을 원격조작기 조종부에 넣었다. 팔뚝까지 들어가는 통 모양이고, 안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면 벽 너머에서 집게가 움직인다. 그는 차폐 시료병을 집어 창 앞으로 끌어오려 했다. 산 회수 계통에서 한 번 뽑아 보고 싶었다. 무엇을 확인하려는지 자기도 정확히 몰랐다.

집게가 병을 잡았다.

그 시각 증발기 안에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여러 날에 걸쳐 그 안에 쌓인 유기물은 진한 질산과 만나 착물을 이루고 있었고, 그 착물은 어떤 온도 위에서 스스로 분해하기 시작한다. 분해할 때 나오는 열이 다음 분해를 앞당기고, 앞당겨진 분해가 다시 열을 낸다. 한 번 시작되면 바깥에서 멈출 방법이 없다.

계기는 백십팔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03시 47분.

먼저 소리였다.

폭음이 아니었다. 큰 통 안에서 무거운 것이 한 번 자리를 바꾸는 소리였다. 콘크리트를 통해 오느라 낮은 부분만 남은 소리. 한성철은 그것을 발바닥으로 먼저 들었다.

다음이 압력이었다.

귀가 막혔다. 조작복도의 문이 안쪽에서 밀려 삐걱했고, 벽에 붙여 놓은 공정도가 한꺼번에 뒤집혔다. 원격조작기 조종부에서 그의 왼팔이 밀려 나왔다. 밀려 나온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그 통로를 따라 반대 방향으로 밀고 나온 것이었다. 뜨겁지 않았다. 젖었을 뿐이었다.

그다음이 냄새였다.

질산과 등유. 그리고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세 번째 냄새. 무언가가 아주 짧게 탔다가 꺼진 냄새.

경보가 울린 것은 그다음이었다. 배기 계통 쪽에서 먼저 울리고, 조종실 쪽에서 나중에 울렸다. 두 소리의 높이가 달라서 겹치면 귀가 아팠다.

"창 닫아!" 누군가 소리쳤다. 닫을 창이 없었다.

한성철은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다. 왼쪽 장갑에 액체가 묻어 있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그것을 훑어 내렸다. 훑어 내린 손을 어디에 닦아야 할지 몰라서 방호복 옆구리에 문질렀다.

계기가 백십팔도였다.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됐다. 백십팔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백십팔도는 상한보다 이 도 아래다. 그러니까 지금 일어난 일은 온도 때문이 아니다. 온도 때문이 아니면 무엇인가. 수소인가. 압축공기 계통인가. 아니면 냉각수가 들어가서.

셀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셀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남은 28화 · 약 101,512자 · 약 2시간 25분

내 서재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

영변전 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