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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제31장 사고

· 43화 중 22화 · 3,721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베이징에 돌아와서 서울에 전문을 보냈다.

회신은 나흘 뒤에 왔다. 통신과에서 타자를 친 종이 한 장이고 본문이 세 줄이었다.

영변 22화 제31장 사고 — 헤더컷

당해 인원의 신분은 민간 상사 직원으로 유지함. 신분 관계상 순직 처리 불가함. 유족 조치는 현지 법인 명의로 시행하되 경비 처리는 추후 검토함.

추후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세 번 읽었다. 세 줄 안에 오세환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당해 인원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이름을 쓰면 서류가 남고, 서류가 남으면 그 사람이 우리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보상금은 동아상사 계좌에서 나갔다. 내가 결재하고 내가 보냈고 장부에는 위로금이라고 적었다. 그 계좌의 돈은 홍콩 합자분과 서울에서 내려오는 운영비가 섞여 있으니까 절반쯤은 나라 돈이다. 나라는 그 절반을 낸 적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월 열여드렛날 김포로 들어왔다.

서울역에서 부산행 표를 샀다. 오후 두 시 새마을호였다. 유해는 먼저 내려가 있었고 나는 사람만 갔다.

승강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작년 여름 일이 떠올랐다. 사무실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데 그가 국물을 남기지 않고 다 마셨다. 부산 사람은 국물을 안 남긴다고, 예의가 아니라 습관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 웃으면서 그러면 자네는 승진 못 한다고 했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무슨 말을 할지 정해야 했다. 아드님이 회사 일로 중국에 나가 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전부가 아닐 뿐이다.

그 어머니가 회사가 무슨 회사냐고 물으면 무역회사라고 할 것이다. 무슨 무역이냐고 물으면 화공약품하고 계측기기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물을 것이 없을 것이다. 대개 거기서 끝난다.

거기서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나는 정하지 못했다.

차장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나는 담배를 비벼 끄고 올라탔다.


1996년 6월 ~ 8월 ·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감찰실 / 해외공작실 203실

감찰관은 서른두 살이었고, 앉으라는 말을 듣기 전에 앉았다.

정만호는 그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올해부터 개정된 법이 시행됐고, 조직은 새 법이 시행되는 해에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이 젊은 사람이 들고 온 것은 공작이 아니라 돈이었다.

"구십삼년 사분기부터 구십사년 이분기까지 해외 운영비 집행 내역입니다." 감찰관이 서류철을 폈다. "베이징 법인 쪽 지출에 증빙 없는 항목이 열한 건 있습니다. 금액은 큰 게 아닙니다. 다만 항목이 서로 안 맞습니다."

"어떻게 안 맞나."

"구십사년 오월 삼십일 자로 화공약품 대금이 나갔는데, 같은 건에 대한 홍콩 중개상 인보이스가 두 장입니다. 한 장은 드럼 사십, 다른 한 장은 드럼 사십에 계측기하고 관다발이 붙어 있습니다. 붙은 쪽이 왜 붙었는지가 서류로 설명이 안 됩니다."

감찰관이 종이를 한 장 더 넘겼다.

"그리고 올해 사월에 그 법인에서 위로금이 나갔습니다. 이건 증빙은 있는데 항목이 없습니다. 직원 사망 위로금인데, 그 직원이 우리 인원인지 아닌지가 서류로 확인이 안 됩니다."

"확인이 안 되는 게 맞네."

"예?"

"확인되면 안 되는 걸세." 정만호가 말했다. "그건 그대로 두게."

감찰관은 뭘 더 물으려다 말고 볼펜을 놓았다.

"자료는 다 두고 가게. 내가 보겠네."


이틀 뒤 저녁에 그는 방문을 닫고 서류 두 장을 책상에 나란히 놓았다.

왼쪽은 이 년 전 기안이었다. 구십사년 유월 초에 그가 결재한 것이다. 본문 아래 처리란에 항목이 세 줄로 적혀 있었다.

첫째 줄 옆에 승인, 그리고 그의 서명.

둘째 줄과 셋째 줄 옆에는 판단 보류. 서명은 없다. 그 두 줄은 그가 손대지 않기로 한 것들이었다. 계측 계통 개입, 그리고 열교환기 관다발 강종 개입. 이 년 전 그는 그 두 줄을 읽고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는 사람 눈을 가리는 일이고 하나는 쇠를 바꾸는 일이다. 지연을 만드는 데 그것까지는 필요 없다.

그 결재는 남산 사층 회의실에서 했다. 창이 남쪽으로 나 있어서 오후 네 시면 서류에 그림자가 길게 졌다. 그날 그는 세 줄을 세 번 읽고 첫째 줄에만 서명했다. 나머지 둘에 판단 보류라고 쓴 것은 나중에 지우거나 살리려는 뜻이 아니었다. 그때는 정말로 그 두 줄이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안 들어가지는 않았다.

오른쪽은 납품 자료였다. 홍콩 중개상 인보이스 사본, 단둥 쪽 회사 명의로 된 검수조서, 그리고 감찰실이 제조사 조회로 뒤늦게 붙여 온 두 장.

온도전송기 열두 대. 일본 정유회사가 구십일년에 폐기 신고한 물건이었다. 재도장 흔적. 첨부된 교정성적서의 발행 대상은 그 일본 회사였다.

열교환기 관다발 두 조. 재질 증명서에는 이십오 크롬 이십 니켈 초저탄소로 되어 있는데, 제조사 출하 대장에는 삼백사 계열로 기재되어 있었다. 탄소 함량 영점영육.

정만호는 그 두 장을 한참 봤다.

왼쪽 종이에서 그가 승인한 것은 한 줄이다. 오른쪽 종이에는 세 줄이 다 들어가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두 가지가 저절로 들어갔다. 하나는 단둥 사람이 싼 것을 비싸게 판 것이고, 하나는 그 사람이 쇠 값 차액을 챙긴 것이다. 서류상으로는 그것뿐이다. 그 이상은 아무 데도 적혀 있지 않다.


자료 뭉치 맨 뒤에 종이 한 장이 끼어 있었다.

구십사년 칠월에 북한정보국에서 작성한 분석서였다. 배포처 목록에 203실이 들어 있었다. 그때 아무도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해 칠월에 이 건물 사람들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본문은 짧았다. 대기 시료의 크립톤-85 검출량을 역산하면 처리된 사용후연료는 일점사에서 일점팔 톤 사이다. 전량 캠페인 규모의 삼 내지 사 퍼센트다. 결론란에는 두 문장이 있었다.

성공적인 캠페인은 이 지점에서 중단되지 않는다. 그들은 시작했고, 무슨 일이 생겼다.

여백에 연필로 짧게 뭐라고 적혀 있었다. 글씨가 작고 곧았다. 정만호는 그 글씨가 누구 것인지 몰랐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영변 22화 제31장 사고 — 전환컷

윤성복이 들어온 것은 팔월 초였다.

그는 문을 닫고 서서 한참 서류를 봤다. 그러고 나서 물었다.

"실장님, 그럼 우리가 한 겁니까 안 한 겁니까."

정만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줄만 결재했으면 한 줄만 한 겁니다." 윤성복이 말했다. 자기가 자기한테 설명하는 말투였다. "나머지 두 줄은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상인이 자기 이문 챙긴 걸 우리가 책임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네 말이 맞네."

"그런데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까."

정만호가 그때 한 것은 담배를 꺼내 책상에 세워 놓는 일이었다. 세워 놓고 피우지는 않았다.

"윤 부실장." 그가 말했다. "저기 저 세 줄 중에 어느 줄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자네가 증명할 수 있나."

"…없습니다."

"나도 없어.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는 왼쪽 종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걸 위로 올리면 저쪽은 세 줄을 하나로 읽네. 우리가 셋을 다 넣었다고 읽을 거고, 그렇게 읽히면 그건 우리가 넣은 게 되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합니까."

"감사 소견은 자네가 쓰게. 증빙 미비 열한 건, 소명 완료, 특이사항 없음."

윤성복은 잠깐 서 있다가 서류를 집었다. 문을 열기 전에 한 번 돌아섰다.

"베이징에는 통보합니까."

"안 하네."

"그 사람은 알 권리가—"

"알면 어떻게 되나." 정만호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 사람이 그만두겠나? 안 그만두네. 계속하되 다르게 하지. 다르게 하는 게 제일 위험한 거야."

그것이 그가 입으로 댄 이유였다.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그것은 대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확실히 아는 순간부터 무너진다. 정만호는 그것을 십삼 년 전 시월에 랑군에서 봤고, 그 뒤로 부하를 쓸 때 언제나 그것을 계산에 넣었다.


그는 기안 원본을 감찰실로 넘기기 전에 사본을 한 부 떴다.

버릴 수도 있었다. 파쇄기는 복도 끝에 있고 그해 여름에 그 건물에서 갈려 나간 종이가 몇 톤이었다. 그는 사본을 서류봉투에 넣고, 봉투 겉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책상 오른쪽 아래 서랍에 넣었다.

그 서랍은 잠기지 않는 서랍이었다.

창가로 갔다. 남산 청사에서는 창을 열면 도시가 통째로 내려다보였다. 종로가 보이고 한강이 보이고 다리들이 보였다. 여기서는 산이 보인다. 나무가 있고 능선이 있고 그 너머에 또 능선이 있다. 사람 사는 데가 어느 쪽인지 창만 봐서는 알 수 없다.

같은 시각에 베이징에서는 그가 데리고 있는 사람이 겨울 물량 견적서를 쓰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한 사람인지 여전히 한 줄로만 알고 있었고, 앞으로 삼 년을 더 그렇게 알 것이었다.


1996년 9월 17일 ~ 11월 5일 · 강원도 강릉 안인진리 해안 / 서울

택시기사는 그것을 처음에 바위로 봤다.

새벽 다섯 시 반이었다. 안인진리에서 손님을 내려주고 빈 차로 돌아 나오는 길, 해안도로 오른쪽으로 물이 빠져 있었고 갯바위 사이에 검고 긴 것이 얹혀 있었다. 그는 속도를 줄이면서 그것을 두 번 봤다. 한 번은 지나가면서, 한 번은 백미러로.

차를 세우고 내렸다. 바람이 육지 쪽으로 불어서 소금 냄새가 도로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는 갓길에 서서 그것을 다시 보았다. 차 열쇠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창이 없었다.

배는 창이 있다. 아무리 작은 배도 조타실에는 유리가 있고, 유리에는 새벽빛이 걸린다. 저것에는 걸리는 데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갯바위에 얹혀 있는 게 아니라 갯바위를 타고 올라앉아 있었다. 물이 더 빠지면서 옆구리가 드러났다. 강판을 이어 붙인 자리가 세로로 죽 나 있었다. 배를 그렇게 짓지는 않는다.

그는 차로 돌아가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다. 공중전화까지 사 킬로미터였다.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는 데 손이 두 번 미끄러졌다.

"고기잽이 배 아이래요?" 지서 순경이 물었다.

"창문이 없어요."

"뭐가 없어요?"

"창문이요. 배는 창문이 있잖소."

수화기 저쪽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날이 완전히 밝았을 때 지서 차와 군용 지프가 차례로 도착했다. 기사는 도로에 서서 사람들이 갯바위 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봤다. 그가 먼저 본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는 오전 내내 거기 붙잡혀 있었고, 열한 시쯤 누군가 와서 오늘 영업은 접으시라고 했다. 그는 접수증 같은 것을 한 장 받았다. 그 종이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배 이름 자리는 비어 있었다.

날이 완전히 밝았을 때 지서 차와 군용 지프가 차례로 도착했다. 기사는 도로에 서서 사람들이 갯바위 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봤다. 그가 먼저 본 사람이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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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전 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