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제1부 편승(便乘)
1화제1장 전역(轉役)
1993년 2월 24일 · 서울 용산,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 저녁 강남 안가
사유란은 두 줄이었다. 나는 거기에 네 글자를 썼다. 개인 사정.

볼펜이 첫 획에서 미끄러졌다. 용지가 두꺼웠다. 넉 달을 들여 만든 일의 마지막 절차가 이렇게 얇을 줄은 몰랐다.
창구의 중령은 서류를 받으면서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간인 자리를 확인하고, 첨부 목록을 손끝으로 훑고, 기록철을 꺼내 옆에 놓았다. 거기에는 지난달 것이 벌써 철해져 있었다. 1월 18일, 상급자에 대한 언동 부적절 — 경고. 그 아래에 채무 등재 통보 한 장. 두 장이 나란히 놓이니 사람 하나가 무너진 순서가 한눈에 보였다. 그 순서를 정한 것은 나였다.
"소령님."
"예."
"이게 반려 사유는 아닙니다. 확인만 하는 겁니다. 재고하실 의사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가 고무도장을 잉크판에 두 번 눌렀는데 접수인은 한 번만 찍혔다. 뒤쪽 책상에서 누가 혀를 찼다. 짧고 분명하게, 들으라고 찼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아는 얼굴일 것이고, 아는 얼굴이면 그 사람은 내일부터 어딘가에서 내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가 필요했다.
"퇴직급여는 일시금으로 나갑니다. 십일 년이면 연금 대상이 아니라서요." 그가 처음으로 눈을 들었다가, 마주치자 도로 내렸다. "죄송합니다. 다들 알고 오시는데 가끔 모르고 오시는 분이 있어서요."
"압니다."
십일 년은 연금이 나오지 않는 햇수다. 나는 그 햇수를 넉 달 전에 세어 두었다. 미리 세어 두면 견딜 만할 줄 알았다.
복도 끝 유리문 앞에 육사 동기 하나가 서 있다가 나를 보고 화장실 쪽으로 몸을 틀었다. 박두철이었다. 그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나는 그 등을 좀 오래 보았다.
계단참에서 삐삐가 울었다. 8282. 뒤에 붙은 네 자리는 저녁 시간이었다.
법원 앞 은행나무 아래에 정인이 서 있었다. 손에 봉투가 있었다. 그저께 낸 것의 접수증이라고 했다. 오늘 받으러 올 필요는 없는 종이였다.
유진이 제 어미 코트 자락을 쥐고 있다가 나를 보고 달려왔다. 나는 앉았다. 아이 손이 내 정복 앞섶에 닿았다.
"단추."
"응."
"하나, 둘, 셋, 넷—" 손가락이 세 번째 자리를 한 번 되짚었다. "다섯, 여섯."
여섯이 아니었다. 나는 고쳐 주지 않았다.
정인이 아이를 떼어 안았다.
"조정기일은 사월이래."
"그땐 내가 없어."
"알아."
그녀가 봉투를 주머니에 넣었다. 손등이 텄다.
"도현씨."
"응."
"이거 언제 끝나?"
"뭐가."
"묻지 말라며."
바람이 불어 아이 머리카락이 정인의 턱을 쓸었다. 나는 담배를 꺼냈다가 아이를 보고 도로 집어넣었다. 이 일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서울에 셋이었다. 그중 하나가 지금 아이를 안고 서 있었고, 안다는 것은 그녀에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관사는 언제 비워."
"삼월 십일."
"짐은."
"어머니한테 갖다 놓기로 했어."
"어머니는 뭐라셔."
"회사 옮긴다고 했어."
정인이 짧게 웃었다. 웃음이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두철이가 아까 나를 피하더라."
"그럼 잘된 거 아니야?"
그녀는 말투를 바꾸지 않았다. 그것이 이 일의 값이었다.
여덟 시에 강남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십오 층이었고 현관에 신발이 한 켤레도 없었다. 거실에는 소파와 앉은뱅이탁자와 라디오뿐이었다. 사람이 자는 집이 아니었다.
정만호는 넥타이를 풀지 않고 있었다. 퇴근한 사람의 차림이 아니라 아직 근무 중인 사람의 차림이었다. 그가 유리컵 두 개에 위스키를 조금씩 따랐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이랄 게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제일 어려운 날이 오늘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뒤에 있으니까요."
라디오는 내일 취임식 준비 상황을 읽고 있었다. 그다음이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 소식이었다. 그는 볼륨을 줄이지 않았고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가 재떨이를 내 쪽으로 밀었다. 새것이었고 쓴 자국이 없었다. 나는 담배를 붙여 첫 모금을 길게 빨았다. 그날의 첫 개비였다.
"이 집은 누가 씁니까."
"아무도 안 씁니다. 그래서 쓰는 겁니다."
그가 서류철을 탁자 위로 밀었다. 겉장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안에는 등기 예정인 회사의 개요가 있었다. 상호가 벌써 정해져 있었다. 동아상사(東亞商事). 소재지 베이징 조양구. 자본금 액수. 취급 품목이 세 줄이었다 — 화공약품, 계측기기, 특수강.

"이름은 누가 정했습니까."
"위에서요."
"위 어딥니까."
"위요."
나는 종이를 한 장 넘겼다. 사무실 임차 조건과 홍콩 합자 형식이 적혀 있었다. 내가 아는 단어가 거의 없었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파십시오."
"뭘요."
"거기 적힌 것들을요." 정만호가 잔을 들었다. "잘 파셔야 합니다. 진짜로 잘 파셔야 합니다. 다른 걸 하시면 안 됩니다."
"장사를 하라는 말씀입니까."
"장사를 하시는 겁니다."
그가 서류철 뒤쪽에서 종이 한 장을 반쯤 뽑아 보였다. 조회 결과지 사본이었다.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와 연체 원금이 인쇄되어 있었다. 숫자 아래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내가 그은 것이 아니었다.
"이거 진짜지요."
"진짜입니다."
"이게 앞으로 제일 좋은 서류가 될 겁니다." 그가 종이를 도로 끼워 넣었다. "저쪽 사람들은 애국심을 안 믿습니다. 파산은 믿습니다."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물건을 좋은 걸로 넣으십시오. 값을 후려치지 마시고, 납기를 어기지 마시고, 일 년에 한 번쯤은 손해를 봐 주십시오. 그게 제일 빠릅니다."
"그게 일입니까."
"그게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삼 년쯤 뒤에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는 다시 등을 붙이고 앉았다.
"삼월부터는 봉급이 아니라 활동비로 나갑니다. 영수증은 받지 않습니다."
"기록이 남으니까요."
"예."
나는 잔을 비우지 않고 내려놓았다.
"그럼 제 기록은 어떻게 됩니까."
"무슨 기록 말입니까."
"제 기록이요. 십일 년 치."
정만호가 한 모금 마셨다. 라디오는 아직 이사회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대답 대신 서류철을 덮고 겉장을 손바닥으로 한 번 문질렀다. 먼지가 없는데도 그렇게 했다.
"여권은 다음 주 수요일에 나옵니다. 사진은 넥타이 매고 찍으십시오. 군인처럼 찍으시면 안 됩니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는데 그가 뒤에서 한마디를 보탰다.
"삼월 십일에 관사 비우실 때, 오전에 하십시오. 오후엔 사람이 많습니다."
나는 그가 그 날짜까지 알고 있다는 데에 놀라지 않았다.
1993년 3월 8일~12일 · 서울 남산, 안기부 해외공작실 203실
남산의 3월은 산 쪽에서 바람이 내려와 창틀을 울렸다. 203실 벽에는 이 년째 같은 도표가 붙어 있었고, 종이마다 압정 자국이 열댓 개씩이었다.
도표는 왼쪽이 만드는 곳, 오른쪽이 쓰는 곳이었다. 오사카와 함부르크와 톈진에서 나온 화살표가 홍콩에서 한 번 모였다가 베이징에서 갈라졌고, 단둥에서 다시 하나가 되어 강을 건넜다. 화살표 위에 얹힌 것은 무기가 아니었다. 진공펌프. 벨로우즈 밸브. 열전대. 인산트리부틸. 스테인리스 관다발.
정만호는 이 앞에 설 때마다 같은 것을 생각했다. 저 물건은 전부 카탈로그에 실려 있고, 값이 매겨져 있고, 돈만 내면 누구한테나 팔린다.
"준전시상태랍니다." 윤성복이 문틀에 기대며 말했다. "어제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내렸다는데요."
"팀스피리트 때문이겠지."
"그것만은 아닐 겁니다."
정만호는 책상 아래 칸에서 표지가 바랜 계획서를 꺼냈다. 1990년에 만들어 그대로 넣어 둔 것이었다. 그때는 소련이 아직 있었다. 소련이 다 대 주는데 조달선을 끊자는 말은 하나 마나 한 소리였다.
지금은 소련이 없었다.
계획서의 요지는 세 문장이었다. 하나, 저 라인은 이미 굴러가고 있다. 둘, 만들 필요가 없고 올라타면 된다. 셋, 올라타려면 사는 쪽이 아니라 파는 쪽이 되어야 한다.
윤성복이 표지를 넘겨 보고 말했다. "편승이네요."
"그것 말고 방법이 없어. 우리가 저 안에 사람을 넣을 수는 없으니까."
1983년 10월 9일 아침의 랑군은 비가 그친 참이었다. 정만호는 그때 서른다섯이었고 서류상으로는 대사관 소속이었다.
폭발은 소리로 오지 않았다. 가슴을 한 번 밀고 지나갔고, 그다음에 소리가 왔고, 그다음에 지붕이 내려앉았다. 정만호가 기억하는 것은 냄새다. 화약이 아니라 젖은 나무 타는 냄새였다.
들것이 모자랐다. 그는 세 사람을 옮겼다. 두 번째가 강만식 서기관이었다. 등판에 파편이 박혔는데 의식이 있었고 말도 했다. 손이 정만호의 소매를 잡았다가 놓았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십 년이 지나도 확실하지 않았다. 물이라고 들었지만 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름표는 그날 저녁에 만들었다. 병원 복도에 앉아 종이를 찢어 이름을 적고 옷핀으로 꽂았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붉은 볼펜, 아닌 사람에게는 검은 볼펜.
명단이 확정된 것은 사흘 뒤 밤이었다. 서울에서 전문이 왔다. 순국자 열일곱 명. 이름마다 추서 계급과 훈격이 붙어 있었다. 강만식은 그 안에 없었다. 그때 그는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무이틀 뒤 서울에서 죽었다.
명단은 고쳐지지 않았다. 고칠 이유가 없었다. 그 명단은 그날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의 명단이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정만호는 누구에게도 항의한 적이 없다. 다만 그 뒤로 열일곱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하나를 더 세는 버릇이 생겼다.
장례식은 11월 초 서울에서 있었다. 정만호는 뒤쪽에 서 있었다. 유족석에 중위 계급장을 단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울지 않았다. 조문객이 손을 잡으면 잡힌 채로 있다가 놓으면 팔을 내렸다. 그러고는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섰다. 세 시간 동안 그 동작만 반복했다.
정만호는 그 얼굴을 잊었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잊었으면 십 년 뒤에 인사기록 사진에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정만호는 그 얼굴을 잊었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잊었으면 십 년 뒤에 인사기록 사진에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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