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제6부 망명(亡命)
33화제47장 이름
골목이 한 번 꺾이는 데서 그가 섰다.
"강도현 동무입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도현 동무입니까." 같은 속도로 한 번 더 물었다.
"……예."
어떻게 아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 이틀 사이에 나는 저 사람이 대답하지 않을 질문을 가려낼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답을 들으면 그다음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생긴다. 나는 그것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다음 말을 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면 그 사이에 한 대 붙였을 것이다. 그는 담배를 안 피웠다.
"누가 한 겁니까."
당신이 한 겁니까, 가 아니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둘이었다. 하나는 거짓말이고 하나는 모른다는 말인데, 모른다는 말은 그런 자리에서 거짓말보다 더 나쁘게 들린다.
내가 한 것은 화차 번호 두 개다. 사 분이 걸렸고 만년필 하나를 썼다. 그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남산에서 받은 종이에 파괴라는 말은 없었다. 납기 지연과 공정 불량. 그 두 마디가 거기 적힌 전부였고, 나는 그 종이를 한 번 읽고 그 방에 두고 나왔다.
그래서 대답하지 못했다. 숨긴 게 아니라 정말로 몰라서였다.
한성철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두 번 묻지도 않았다. 이름은 두 번 물었으면서 그건 한 번만 물었다.
그가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어제저녁 내내 안 하던 짓이었다.
"돌아가겠습니다. 내일 아침 비행기입니다."
"조심해 가십시오."
"강 사장도."
그는 강 사장이라고 불렀다. 십 분 전에는 다르게 불렀던 사람이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순서대로 외웠다. 최영준, 로성근, 량현식. 칠월 십구일, 팔월 십일일, 그리고 지난달.
지난달은 날짜가 아니다. 날짜가 아닌 칸이 하나 남아 있으면 그 명부는 아직 안 끝난 것이다.
골목 끝에서 그가 왼쪽으로 꺾었다. 노점 연기가 그쪽으로 흘렀고, 나는 그가 안 보이게 된 다음에도 한참을 그쪽을 보고 서 있었다.
큰길로 나와서 택시를 잡지 않았다. 사무실까지 오십 분이 걸렸다. 걷는 동안 세 이름을 몇 번 외웠는지는 세지 않았다.
1997년 10월 8일 / 11월 21일 · 베이징 / 서울 여의도
시월 팔일 오후에 라디오를 켜 놓고 아연 선적 서류를 맞추고 있었다.
라디오는 사 년째 쓰는 것이다. 저쪽 주파수 자리에 손톱으로 눌러 표시를 해 놨는데, 하도 눌러서 눈금이 닳았다.
세 시가 좀 넘어서 방송이 끊기고 음악이 나왔다. 저쪽 방송에서 음악이 길게 나오면 뒤에 뭔가가 온다. 사 년쯤 들으면 그건 안다. 구십사년 칠월에도 그랬다. 그때는 음악이 다섯 시간 갔다.
특별보도라고 했다.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이름으로, 김정일 동지를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추대한다는 것이었다. 문장이 길었고 같은 문장이 세 번 나왔다. 아나운서 목소리가 마지막에 갈라졌다.
나는 달력을 봤다. 구십사년 칠월 팔일부터 오늘까지 삼 년 세 달이다. 그동안 저쪽에는 총비서가 없었다. 죽은 사람 자리를 비워 두고 삼 년을 산 것이다.
그게 내 장사에 무슨 뜻인지 저녁 내내 생각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결재선이 정리되면 값을 깎는다.
다섯 시쯤 아래층에 내려가 담배를 샀다. 길 건너 벽돌 건물에 저쪽 사람들이 쓰는 사무실이 있다. 그날은 창마다 불이 켜져 있었고 커튼이 다 닫혀 있었다. 나는 담뱃갑을 뜯으면서 그 창을 세었다. 여섯이었다. 세고 나서 왜 셌는지 생각해 봤는데 이유가 없었다.
여섯 시에 단둥에서 전화가 왔다.
"강 사장, 아연은 십일월로 미룹시다."
"값이 또 내렸는데요."
"그러니까 미루자는 거요." 왕더셩이 웃었다. "떨어지는 칼은 자루가 없소."
십일월에 서울에 들어간 것은 은행 일 때문이었다.
홍콩 신용장 한 건에 서울 은행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그 은행이 이상해졌다는 말을 중개상한테서 들었다. 창구에 앉은 과장은 서류를 세 번 넘겨 보고 나서 다음 주에 다시 오라고 했다. 다음 주에 무엇이 달라지는지는 그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 주에는 환율이 하루에 십 프로씩 움직였다. 아침에 천백 원이던 것이 오후에 얼마가 되는지 창구 사람도 몰라서, 옆자리에 물어보고 답했다.
나는 달러를 받는 사람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다 손해를 보는 달에 내 쪽 숫자는 앉아서 올라간다. 창구에서 나오면서 그 계산이 저절로 되는 것을 나는 알았고, 그게 저절로 된다는 게 그날 제일 마음에 안 들었다.
이십일일 저녁에 박두철을 만났다. 여의도에서 보자고 한 건 그쪽이었다.
이 층 호프집이었고 텔레비전이 구석에 걸려 있었다. 소리는 작았다. 앞 꼭지는 유세 화면이었다. 두 사람이 각각 다른 도시에서 손을 들고 있었고 자막에 이름이 나왔다. 이회창, 김대중. 십이월 십팔일까지 한 달이 남아 있었다.
열 시가 넘어 화면이 바뀌었다.
부총리가 나와서 읽었다. 국제통화기금에 유동성 조절 자금 지원을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원고를 보고 읽었고, 중간에 한 번 물을 마셨다.
술집이 조용해졌다. 소리가 작은데도 다 들렸다. 카운터에 있던 주인이 리모컨을 들어 소리를 키웠고, 키우고 나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건너편 자리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나가더니 계단참에서 전화를 걸었다. 회사 이름 하나를 두 번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옆 탁자에서는 넷이 앉아서 아무도 잔을 안 들었다. 주인이 소리를 도로 줄였다.
박두철이 잔을 내려놓았다.
"야. 우리 나라 망하는 거냐."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작년에 오이시디 들어간다고 신문마다 났잖아. 일 년도 안 됐다."
"열한 달 됐다."
"세고 있었냐."
"세는 버릇이 있다."
그가 웃었다. 웃고 나서 한참 있다가 다시 말했다.
"너 중국에서 뭐 파냐."
"화공약품하고 계측기. 강관도 좀."
"돈은 되냐."
"됐다."

"북쪽은 요새 조용하다며."
"신문에서 봤다."
"조용한 게 제일 무서운 거다." 그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 번 쳤다. "근데 요새는 그거 보는 사람이 없어. 위에서도 딴 데 본다."
"…"
"삼 년 전 여름에는 안 그랬는데."
그는 그 말을 하고 더 잇지 않았다. 잔을 들었다가 도로 놨다.
"그래도 너는 밖에 있으니까 낫지." 그가 잔을 비웠다. "야, 네가 그때 빚 때문에 옷 벗었을 때 나는 네가 우리 기수에서 제일 못난 놈인 줄 알았거든. 근데 지금 보니까 네가 제일 먼저 나간 거였다."
나는 웃었다.
"미안하다. 취해서 그런다."
"아니다."
"우리도 내년 예산 깎인단다." 그가 말했다. "훈련 연료부터 깎는대. 연료 깎으면 안 나가는 거야, 그냥 안 나가."
"…"
"애가 둘인데 큰애가 내년에 중학교 간다."
그는 그 말을 하고 젓가락으로 마른안주를 뒤적였다. 안주는 거의 그대로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다시 유세 화면이 나왔다. 이번에는 아무도 안 봤다.
열한 시 반에 삐삐가 울렸다. 번호 뒤에 팔이팔이가 찍혀 있었다.
계단 아래 공중전화에서 걸었다. 두 번째 신호에 받았다.
"실장님."
"봤나."
"봤습니다."
"이제 우리 돈이 없다."
그게 다였다. 끊겼다.
통화는 십 초가 안 됐다. 그 뒤로 내가 수화기를 들고 서 있었던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 사람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말하는 사람이다. 그날 필요한 것은 한 문장이었다.
그 말은 두 가지로 읽힌다. 내년에 물건을 못 산다는 뜻이거나, 나를 못 쓴다는 뜻이거나. 나는 부스 안에서 어느 쪽인지 재 보려고 했는데 잴 것이 없었다. 숫자가 있어야 세는데 그 문장에는 숫자가 하나도 없었다.
동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다른 번호를 눌렀다.
세 번째 신호에 받았다.
"나야."
"…응."
"서울 들어와 있어서."
"그래."
잠깐 아무 말이 없었다.
"중국은 괜찮아? 여긴 난리던데."
"거기는 다르니까."
"그렇겠네."
"유진이는."
"자."
여덟 살이면 열한 시 반에 잔다. 물어볼 필요가 없는 걸 물었다.
"학원 하나 줄였어. 피아노."
"그건 내가—"
"됐어."
됐어, 라는 말을 그 사람은 오래전부터 그 속도로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몸조심해."
"응."
끊고 나서 동전 반환구에 손가락을 넣어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부스 유리에 김이 서려 있었다. 손바닥으로 한 군데를 닦았다. 닦은 자리로 길 건너 전광판이 보였다. 숫자가 줄줄이 바뀌는 중이었고 붉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 숫자들을 세지 않았다.
부스 밖에 남자 하나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나오니까 고개를 까딱하고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손바닥의 동전을 세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박두철이 계산대에 서 있었다. 자기가 낸다고 했다. 값은 사만 얼마였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세는데 손이 느렸다. 다 세고 나서 한 번 더 셌다. 두 번 다 넉 장이었다.
나는 그가 다 셀 때까지 옆에 서 있었다.
1998년 3월 ~ 4월 9일 · 서울 내곡동 / 여의도
종로 지하도 입구 가판대에서 신문을 세 종류 샀다. 주인이 잔돈을 세는 동안 나는 1면을 세고 있었다. 이름이 여섯이었다. 사진이 둘, 직함이 넷, 괄호 안에 나이가 붙어 있었다. 마흔둘, 마흔넷, 쉰하나.
그중 하나는 아는 얼굴이었다. 1995년 겨울 홍콩에서 두 번 같이 밥을 먹었다. 그때 그는 자기 이름을 다른 걸로 말했고 나도 그랬다. 우리는 서로의 가짜 이름으로 건배했다.
내 이름은 없었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종이컵 테두리를 손가락 두 개로 잡았다. 세 신문의 이름 순서가 조금씩 달랐다. 다섯은 세 군데 다 있고 하나는 한 군데에만 있었다. 그 하나가 제일 먼저 정리되겠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커피를 마시다 혀를 뎄다.
없다는 것이 안심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명단에 없다는 건 두 가지 뜻이다. 아직 안 나왔거나, 애초에 셈에 들어간 적이 없거나.
기사 안쪽에는 접촉한 상대편 이름도 있었다. 직책까지 붙여서. 그걸 활자로 만든 사람은 서울에서 신문이 팔리는 것까지만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그 이름 두 개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았다. 저쪽에서 신문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나흘이다. 나흘 뒤에 저 두 사람이 어디에 있을지는 여기 어느 신문에도 실리지 않는다.
기사 안쪽에는 접촉한 상대편 이름도 있었다. 직책까지 붙여서. 그걸 활자로 만든 사람은 서울에서 신문이 팔리는 것까지만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그 이름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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