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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제36장 은별

· 43화 중 25화 · 3,547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국숫집은 시장 입구에 있었다.

조선족 여자가 하는 집이었고 손님은 셋뿐이었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서자 주인이 국자를 든 채로 나를 봤다.

영변 25화 제36장 은별 — 헤더컷

"그런 거 사 주면 또 옵니다."

"한 그릇 주쇼."

"내 말이 그 말이 아이오. 오늘 하나 주면 내일 넷이 옵니다. 그담엔 여덟이고."

"두 그릇 주쇼. 하나는 내 겁니다."

주인은 더 말하지 않고 면을 삶았다. 물이 끓는 동안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작년 겨울에는 이만치 아이 왔슴다. 올해 봄부터 늘었지비."

"어디서 잡니까."

"역 뒤에. 여름엔 강가에서 자고. 겨울엔 역 뒤 창고 뒤쪽에 바람 안 드는 데가 있슴다. 공안이 한 달에 한 번쯤 훑어서 도로 넘겨보내는데, 사흘이면 도로 옵니다."

"넘겨보내면 어떻게 됩니까."

주인이 국자로 면을 건졌다.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아이는 문 안쪽에 서 있다가 내가 앉으라고 하자 앉았다. 의자에 앉는 게 아니라 의자 끝에 걸치고, 발은 바닥에 붙이고 앉았다.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는 자세였다.

그릇이 나왔다. 아이가 두 손으로 그릇을 잡았다. 손이 그릇보다 작았다. 잡고 나서 곧바로 먹지 않고 삼 초쯤 그러고 있었다. 뜨거워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다.

"몇 살이니."

"아홉 살입니다."

"이름은."

"은별입니다. 로은별."

"어디서 왔니."

"회령이요."

그러고는 먹었다. 빠르게 먹지 않았다. 나는 굶은 아이가 급하게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국물을 먼저 두 번 떠먹고, 그다음에 면을 조금씩 건졌다.

절반쯤 먹고 나서 손을 멈췄다.

"봉지 하나 주쇼."

주인이 나를 한 번 보고 비닐봉지를 던져 줬다. 아이가 젓가락으로 면만 건져서 봉지에 담았다. 국물이 안 들어가게 젓가락 끝으로 훑어 내리는 동작을 했다. 그 동작을 처음 해 보는 사람은 그렇게 못 한다.

봉지를 묶어서 저고리 안쪽에 넣었다. 왼쪽이었다.

그리고 남은 국물을 그릇째 들고 마셨다. 끝까지 마셨다.

"혼자니."

"아니요."

나는 누구랑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밖에 나오니 어두워져 있었다.

아이가 앞장서서 강 쪽으로 걸었다. 나더러 따라오라는 게 아니라 자기 갈 길로 가는 것이었는데 방향이 같았다. 둑길에 올라서니 바람이 정면으로 왔다. 아이가 소매 안으로 손을 더 넣었다.

"너 아까 아홉 살이라고 했지."

"열한 살입니다."

나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고쳐 묻지도 않았다. 둘 중에 어느 쪽이 맞는지 세 걸음쯤 생각하다가 그만뒀다. 어느 쪽이 맞는지 알아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둑 아래 자갈밭에 아이들이 대여섯 있었다. 불을 피운 것도 아니고 그냥 모여 있었다. 등을 안쪽으로 하고 둥글게 앉은 것도 아니고, 바람 오는 쪽에 큰 아이가 앉고 나머지가 그 뒤로 줄줄이 앉은 모양이었다. 누가 정해 준 자리 같았다.

은별이 내려가더니 뒤에서 두 번째에 앉았다. 아무도 옆으로 비켜 주지 않았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원래 그 자리였던 것이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감자였다. 얼어서 돌처럼 굳은 것이었다. 아이가 그걸 저고리 안으로 넣었다. 봉지를 넣은 쪽 말고 오른쪽이었다. 배에 대고, 팔로 눌러 고정하고, 그러고 나서 무릎을 세워 안았다.

손을 보지 않고 했다. 자리를 더듬지도 않았다. 옷 속에 감자 놓는 자리가 정해져 있는 사람의 동작이었다.

나는 둑 위에 서서 그걸 봤다. 몇 분이 걸리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여관에 돌아와 외투도 안 벗고 앉았다.

수첩을 폈다. 1993년 6월. 진공펌프 여섯 대, 벨로우즈 밸브 마흔 개. 그다음 줄, 그다음 줄. 나는 삼 년 반 동안 판 것들의 금액을 대충 외우고 있었다. 합치면 얼마쯤인지도 안다.

여기까지는 그냥 장부다.

그다음에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왼쪽에 금액을 놓고 오른쪽에 무엇을 놓나. 오른쪽에 놓을 수 있는 숫자가 나한테는 없었다. 그쪽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나는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면 사람을 하나 놓으면 되나. 오른쪽에 아홉 살을 놓나 열한 살을 놓나.

내가 판 것은 진공펌프와 밸브와 계기와 강관이다. 그것들은 대부분 진짜로 좋은 물건이었다. 값을 깎지 않았고 납기를 어긴 적이 없다. 서울에서 나에게 시킨 일은 지연이었다. 지시문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납기 지연과 공정 불량을 유발할 것. 나는 그 열 몇 자를 지금도 순서대로 욀 수 있다.

지연과 저 강가 사이에 무엇이 놓이는지 나는 모른다. 비가 왔고, 강이 넘쳤고, 소련이 없어졌고, 배급소가 문을 닫았다. 그중에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하나는 있다.

나는 연필을 놓았다.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하나, 둘, 셋. 세면서 피웠다. 세는 버릇은 군에서 들었고 그 버릇으로 나는 여태 밥을 먹었다. 드럼 마흔 개를 셀 때도 그렇게 셌다. 마흔까지 세는 데 걸리는 시간을 나는 안다.

복도 끝에서 누가 세숫대야에 물을 붓는 소리가 났다. 나는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가, 비벼 끈 자리를 한 번 더 밟았다.

방으로 돌아와서 수첩을 덮었다. 적은 것은 한 줄도 없었다.


영변 25화 제36장 은별 — 전환컷

1996년 12월 하순 · 지린성 훈춘 / 도문 여관

훈춘의 그 방에는 연탄난로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창가에, 하나는 문 옆에. 방이 그렇게 크지 않은데 두 개를 땠다. 나는 그것이 손님을 오래 앉혀 두려는 사람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허씨가 나를 데려간 자리였다. 명목은 콩기름이었다. 훈춘에서 러시아 쪽으로 넘기는 식용유 물량이 있는데 대금 결제가 밀려 있어서 달러 쓰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그런 얘기는 절반쯤 사실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람을 앉히기 위한 것이다. 나는 그런 자리에 삼 년 반을 앉아 있었다.

주인은 오십 줄이었고 위 앞니에 금을 씌웠다. 탁자에 계산기가 놓여 있었다. 카시오였고 액정 귀퉁이가 깨져 있었다.

콩기름 얘기는 십 분 만에 끝났다.

"강 선생은 무슨 물건 하오?"

"기계요. 계기, 밸브, 강관."

"그런 건 요새 잘 안 되지비."

"안 됩니다."

"이쪽은 됩니다."

그가 계산기를 손끝으로 돌려 나를 향하게 놓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눌렀다. 액정에 뜬 것을 나더러 읽으라는 식이었다.

이백.

"강 하나 건너다 놓는 값이오. 겨울엔 얼어서 더 싸고, 여름엔 물이 세서 더 받고."

지우고 다시 눌렀다.

오.

"조선말 하는 집에 하루 붙여 두는 값. 먹이는 것까지."

지우고 다시.

사천.

"이건 다른 값입니다."


그다음부터 그는 계산기를 쓰지 않고 입으로 불렀다.

스무 살 안팎이면 사천에서 육천. 스물다섯 넘으면 삼천. 서른 넘으면 이천. 서른다섯이 넘으면 천오백을 부르는데 그 값에 가는 데는 정해져 있고, 마흔이 넘으면 값을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사람은 식당 설거지 자리로 넘기고 소개비만 받는다고.

아이는 값이 없다고 했다. 사는 사람이 없어서.

그는 값만 부른 게 아니라 값이 그렇게 되는 이유도 설명했다. 산둥이나 헤이룽장 쪽 농촌에 장가 못 간 남자가 많고, 한족 여자를 데려오려면 예단이며 집이며 해서 그 열 배가 든다는 것. 그러니까 저 값은 싼 값이 아니라 그쪽 시세에 맞춰 매겨진 값이라는 것. 자기는 소개만 하고 삼 할을 받는다는 것. 나머지 칠 할이 어디로 어떻게 갈라지는지도 그는 알고 있었고, 나는 그것까지 들었다.

허씨는 창가 난로 쪽에 앉아서 손을 쬐고 있었다. 그가 이 자리에 나를 데려올 때 무엇을 팔 생각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콩기름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듣고 있었다. 듣고 있었는데 머릿속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천 위안이면 사백팔십 달러쯤이다. 육천이면 칠백이십. 이천이면 이백사십.

나는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한 적이 없다. 위안을 들으면 달러가 뜬다. 십 년 넘게 그렇게 살았다. 계약서를 볼 때, 신용장을 끊을 때, 세관 신고 금액을 맞출 때. 숫자가 들어오면 환산이 나간다. 그것이 내 직업이었고 나는 그 반사신경이 좋은 편이었다.

그날 그 방에서도 반사신경은 정확하게 작동했다.


나가는 길에 복도를 지났다.

문이 하나 반쯤 열려 있었다. 안에 여자가 셋 앉아 있었다. 아랫목에 나란히 앉아서 벽 쪽을 보고 있었고, 방에는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는데 소리가 없었다. 중국 방송이었다.

하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나이는 모르겠다.

"아저씨, 지금 몇 십니까."

"네 시 반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러고 다시 벽 쪽을 봤다. 그게 다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허씨는 내 뒤에서 앞을 보고 걸었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나는 돌아섰다.

주인이 문간까지 따라 나와 있었다. 나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백 달러짜리 다섯 장을 뽑았다. 사백팔십쯤을 맞추려다가 오백을 놓았다. 그것을 탁자가 아니라 그의 손에 쥐여 줬다.

"뭐요, 이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돈을 세지 않고 반으로 접었다. 접어서 앞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나를 위아래로 봤다. 이상하게 보는 눈이었는데,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말하지 않아서 이상해하는 눈이었다.

"그럼 계약금으로 압니다. 어떤 걸로 보내드리까."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강 선생, 여기서 돈을 그냥 놓고 가는 사람은 없소."

나는 계단을 내려왔다. 밖에 나오니 눈이 뿌리고 있었고 차 유리에 성에가 껴 있었다. 허씨가 카드를 꺼내 유리를 긁었다. 위에서 아래로 긁고, 긁은 자리를 손등으로 쓸어냈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 한참 뒤에 그가 물었다.

"강 선생, 아까 그거 왜 그랬소."

"모르겠소."

"모르면서 오백 달러를 놓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창밖을 봤는데 성에가 다시 껴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 사람은 그 돈을 안 돌려줍니다. 나중에 물건을 안 받으면 강 선생이 손해 본 걸로 칩니다. 여기서는 그렇게 셈합니다."

"압니다."

도문까지 오는 두 시간 동안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도문까지 오는 두 시간 동안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남은 18화 · 약 65,030자 · 약 1시간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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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전 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