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IONTOON

32화제46장 왼손

· 43화 중 32화 · 3,318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아홉 시가 좀 넘어 두 사람이 먼저 일어났다. 아침에 공장을 본다고 했다. 통역도 같이 나갔다. 숙소가 같은 방향이고, 어차피 나하고 한성철 사이에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나가면서 나이 든 쪽이 한마디 했다.

영변 32화 제46장 왼손 — 헤더컷

"한 동지, 도면 보고 오시오."

허락이 아니라 지시였다. 그 한마디로 둘이 남는 일이 규칙 안에 들어왔다. 그 지시를 누가 먼저 만들었는지는 그날 밤에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종업원을 불러 밀전병을 더 시켰다.

"그만하십시오."

"제가 먹습니다."

그는 더 말리지 않았다. 밀전병이 다시 나왔을 때 그는 한 장도 손대지 않았고 나도 한 장만 먹었다.

가방에서 도면을 꺼냈다.

여과기 함체 도면 세 장이었다. 그는 그것을 창 쪽으로 돌려 놓고 두 손으로 눌러 폈다. 왼손을 감추지 않았다. 감출 생각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도면을 볼 때는 잊는 것 같았다.

"함체는 앉힐 자리부터 봐야 합니다. 우리 쪽 바닥이 안 고릅니다."

"수평은 현장에서 잡습니다. 심을 같이 넣어 드리겠습니다. 두께 세 가지로."

"덕트 이음매는 용접입니까, 플랜지입니까."

"플랜지로 하시면 나중에 부분 교체가 됩니다. 용접이 싸긴 쌉니다."

"플랜지로 합시다."

"도료는 뿌려서 칠할 수 있습니까."

"분무기로 됩니다. 점도만 맞추면."

"붓이 안 닿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사람이 서 있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분무 장비도 같이 넣어 드리겠습니다."

"넣어 주십시오."

그는 도면 여백에 뭘 적었다. 오른손으로 썼고 글씨가 작고 반듯했다. 다 적고 나서 도면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우리 직장에 이백 명이 일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지금은 백 명이 좀 넘습니다."

"그러십니까."

"나는 그 계통을 십일 년 봤습니다. 눈 감고도 압니다."

그 말을 할 때 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커졌다. 자랑이 아니라 설명이었다.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할 때 사람 목소리는 그렇게 된다.

"선생은 우리가 이걸 왜 사는지 안 묻습니다."

"장사꾼은 안 묻습니다."

"물어도 됩니다." 그가 찻잔을 들었다. "나는 내 직장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그 건물을 아는 사람이 몇 안 됩니다. 그중 하나가 나입니다."

그 말에는 힘이 있었다. 나는 그 힘이 어디서 오는지 알 것 같았다. 물수건을 다시 집어 손을 닦았다. 손에 닦을 것이 남아 있지도 않았다.

"댁에 아이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들 하나 있습니다. 일곱입니다." 그가 찻잔을 채웠다. "여섯 살로 봅니다, 다들. 키가 안 큽니다."

그다음 말이 없었다. 설명도 변명도 붙이지 않았다. 그 사람한테 그것은 사실이지 사건이 아니었다.

"선생은."

"딸 하나 있습니다. 여덟입니다."

"자주 봅니까."

"자주는 못 봅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에 내가 한 말 중에 거짓말이 아닌 게 몇 개 없었는데 그게 그중 하나였다.


열 시 십오 분에 종업원이 접시를 치우러 왔다.

"이거 좀 싸 주십시오."

그는 나를 보고 말했다. 내가 중국말로 옮겼다. 종업원은 표정 없이 접시를 들고 나갔다가 종이봉지를 들고 왔다. 껍질과 살을 따로 담고, 밀전병 네 장을 겹쳐 넣고, 파와 장까지 작은 통에 담아 넣었다. 손이 익어 있었다. 이 도시에서 그건 흔한 일이다. 봉지 입구를 두 번 접어 누르고 손잡이를 한 번 더 꼬아 주었다. 오래 들고 갈 사람 것이라는 걸 아는 손이었다.

"고맙습니다." 한성철이 봉지를 두 손으로 받았다.

그때 그 손을 세 번째로 봤다.

물어볼 것이 있었다. 세 가지였고 순서까지 정해져 있었다. 언제였습니까. 몇 사람이었습니까. 세 번째 것은 입 밖에 내는 순간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이 된다.

나는 종업원을 불러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계산서를 가져오는 동안 한성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값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서 본 적이 있다.

오리 한 마리에 백삼십 원이었고 술값이 그 반이었다. 영수증은 두 장으로 끊어 달라고 했다. 회사 장부는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밖은 아직 더웠다. 왕푸징 큰길에 사람이 많았고 어디선가 수박 파는 냄새가 났다.

"택시 잡아 드리겠습니다."

"걷겠습니다."

"삼십 분은 걸립니다."

"걷겠습니다."

봉지 손잡이가 종이라 그는 그것을 손목에 걸지 않았다. 왼손을 밑에 대고 오른손으로 위를 잡았다. 무거운 것도 아닌데 두 손을 다 썼다.

나는 그가 사거리를 건너는 것을 보고 서 있었다. 신호가 두 번 바뀔 때까지 서 있었다. 그 사람은 걸어가는 동안 한 번도 봉지를 바꿔 들지 않았다.


1997년 7월 15일 ~ 17일 · 베이징 숙소 / 산리툰

십오일 오후에 도면 수정본을 가져다주러 숙소로 갔다.

영변 32화 제46장 왼손 — 전환컷

동쪽 삼환 안쪽 호텔이었고 방은 삼 층이었다. 그는 문을 반쯤 열어 두었다. 저쪽 사람들은 외국에서 남과 이야기할 때 문을 안 닫는다. 복도에서 청소차 바퀴 소리가 났다.

창턱에 어젯밤 그 종이봉지가 놓여 있었다. 네모지게 접혀 있었고 비어 있었다. 버리지 않고 접어 둔 것이다.

도면 세 장을 책상에 폈다. 어제 말한 대로 이음매를 플랜지로 고쳤고, 심 두께를 세 가지로 표에 넣었다.

"이대로면 됩니다."

"계약서는 내일 오전에 하시지요."

"예."

나는 도면을 접어 봉투에 넣었다. 봉투를 그쪽으로 밀어 놓고 말했다.

"오늘 밤에 이 도시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열두 시간이면 다른 나라에 있습니다. 서류는 그쪽에서 만듭니다. 가족은 나중에 방법이 있습니다. 있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확실하다고는 안 하겠습니다."

짧게 말했다. 길게 하면 파는 것처럼 들린다.

이 제안을 나는 서울에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면 하지 말라고 할 것이고,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나면 하지 않은 것이 명령이 된다. 명령으로 안 한 일은 나중에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복도에서 청소차가 지나갔다. 바퀴 하나가 삐걱거렸다.

"아니오." 그가 말했다.

"오늘 밤만 있는 게 아니라—"

"아니오."

두 번째 아니오는 첫 번째와 크기가 같았다.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나는 이유를 아는 것 같았지만 아는 것과 들은 것은 다르다. 그 사람은 끝까지 나한테 들려주지 않았다.

"그 말은 안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마울 일이 아닙니다. 내가 들었다고 말하면 나도 같이 조사받습니다."

나는 봉투를 도로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댁 식구들은 평양에 계십니까."

"있습니다."

"연락은 됩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턱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쪽에는 접힌 종이봉지밖에 없었다.


십육일 오전에 계약서에 서명했다.

대표단 명의였고 서명은 허라는 사람이 했다. 기술 성원은 서명란에 없다. 물건을 볼 사람과 종이에 이름을 쓰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 저쪽 방식인데, 이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사 년 동안 주문서에 내 이름을 써 본 적이 없다.

서명이 끝나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통역이 사진기를 들었다. 다섯이 섰고 나는 끝에 섰다. 한성철은 반대쪽 끝에 서서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왼손이 오른손 밑으로 갔다.

두 장 찍었다. 한 장은 저쪽이 가져갔고 한 장은 인화되면 찾으러 오라고 했다. 나는 찾으러 가지 않았다.

조건은 삼 할 신용장에 나머지는 아연괴로 정해졌다. 선적은 시월과 이듬해 삼월로 나눴다. 총액 백구십이만 달러였고 그중 내 몫이 얼마인지는 계약서에 도장이 찍히기 전에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런 계산은 손이 알아서 한다.


십칠일 저녁 여섯 시 반에 호텔 로비 전화로 그가 걸었다.

"강 사장, 잠깐 걷겠습니까."

"어디로 갈까요."

"아무 데나."

산리툰 뒤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대사관 구역이라 저녁에는 조용하고, 담장 밑으로 노점이 몇 개 나와 있었다. 양꼬치 굽는 연기가 낮게 깔려 있었다.

그가 걸으면서 말했다. 앞을 보고 말했다.

"최영준. 육십육년생. 용해공정 조작공. 구십사년 칠월 십구일."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말을 그만둘 것 같았다.

"로성근. 오십팔년생. 계기공. 그해 팔월 십일일."

세 걸음쯤 아무 말이 없었다.

"량현식. 칠십일년생. 조작공. 지난달부터 병원에 있습니다."

노점 주인이 꼬치를 뒤집었다. 기름이 숯에 떨어져 소리가 났다.

"칠월 십구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압니다."

"그날 온 나라가 울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 사람 어머니도 울었는데, 아들 때문에 운 건지 아닌 건지는 그 자리에서 아무도 몰랐습니다."

"…"

"약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내가 말했다. "그건 물건이니까 제가 넣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나를 봤다.

"백혈병에 넣는 약을 압니까."

"모릅니다.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다시 걸었다.

"공식으로는 연구소 사고로 순직입니다. 인원수는 안 적혔습니다. 유가족한테는 설비사고라고만 했습니다."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걸음을 늦췄다.

"나는 그 세 이름을 적어 두었습니다. 적어 두면 어딘가에 있는 겁니다."

그 말은 내가 아는 말이었다. 내 서랍에도 종이가 두 뭉치 있고, 그것 말고는 내가 사 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적힌 데가 없다.

그 말은 내가 아는 말이었다. 내 서랍에도 종이가 두 뭉치 있고, 그것 말고는 내가 사 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적힌 데가 없다.

남은 11화 · 약 40,559자 · 약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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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전 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