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제3부 여름
16화제22장 03시 47분
셀 안으로 나온 것은 약 이천 리터였다. 파열판이 먼저 터지고, 그것으로 부족해서 상부 플랜지가 들렸다. 들린 틈으로 용액과 용매가 함께 뿜어져 나와 벽과 천장과 바닥에 흩어졌다. 희석제는 삼십 초가 못 되게 탔다. 산소가 그만큼밖에 없었다.
그 양을 잰 사람은 없다. 그 방에는 앞으로 오랫동안 사람이 들어가지 못한다.

03시 49분까지 배기 댐퍼가 반대로 열려 있었다.
셀 안의 압력이 덕트를 거꾸로 밀었고, 밀린 것은 필터뱅크로 갔다. 일 단 필터가 찢어지는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 뒤로 굴뚝이 있었다.
로성근이 계기실에서 뛰어나왔다. 그는 배기 계통 계수관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었고, 가지 말라고 말할 사람이 그 순간 조작복도에 없었다. 최영준은 이미 안쪽 통로에 있었다. 그는 용해조 쪽 밸브를 잠그러 들어갔다가, 잠그고 나오다가, 량현식이 아직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들어갔다.
한성철이 그 두 사람의 위치를 파악한 것은 04시가 넘어서였다.
04시 20분, 건물 전원을 내렸다.
조명이 꺼지고 비상등만 남았다. 사람들이 계단으로 나왔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공기가 차가웠다. 구룡강 쪽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한성철은 건물을 돌아보았다.
서 있었다. 육 층이고 길이가 백팔십 미터인 그 건물은 조금 전과 똑같이 서 있었다. 벽에 금이 간 자리가 없었다. 창문은 하나도 깨지지 않았다. 위성이 지금 이 위를 지나간다 해도 찍을 것이 없을 것이다.
야간반장이 인원을 셌다.
"하나, 둘, 셋…" 그는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셌다. 중간에 한 번 틀려서 다시 셌다. "열아홉. 열아홉 맞습니까."
"열아홉입니다." 누군가 대답했다.
다 있었다. 아무도 모자라지 않았다.
한성철은 왼손 장갑을 벗었다. 손등에도, 손가락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폈다 오므려 보았다. 잘 움직였다.
1994년 6월 27일 ~ 7월 7일 · 베이징 / 단둥
월요일에 나는 관리실에 사람을 불렀다.
전기 담당이라는 사내가 공구가방을 들고 올라와 팩스 뒤를 뜯었다. 그는 배선을 확인하고, 벽의 단자함을 열고, 자기 시험기를 물려 신호를 봤다. 십오 분쯤 걸렸다.
"이상 없습니다."
"교환기 쪽은요."
"교환기 쪽이면 아래층도 같이 죽습니다. 아래층은 아침부터 계속 받고 있습니다."
나는 담뱃값이나 하라고 십 위안을 쥐여 주었다. 그가 나가고 나서 오세환이 물었다.
"사장님, 팩스는 왜요."
"멀쩡한 걸 확인해 두려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기계가 고장 났으면 고치면 된다. 고칠 수 있는 쪽이 항상 나은 쪽이다.
수요일에 홍콩에서 전문이 왔다. 중개상 쪽이었다. 삼사분기 예정 물량에 대한 우리 견적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발주처가 취소했다고 했다.
나는 그 종이를 두 번 읽었다.
발주처는 리광호다. 내 고객이다. 나는 그 사람과 일 년을 거래했고, 그 사람이 물건을 취소하면 나한테 먼저 말한다. 열두 번을 그렇게 했다. 취소가 아니라 연기일 때도, 수량을 반으로 줄일 때도 먼저 말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홍콩이 먼저 알았다.
오후에 나는 오세환을 데리고 차를 몰아 그쪽 사무실 앞을 지나갔다. 대외사업국 베이징 주재사무소는 간판이 없다. 삼 층 창문 두 개가 그쪽 것이고, 창틀 색이 다른 층과 다르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안다.
두 창 다 커튼이 쳐져 있었다.
"내려서 확인해 볼까요." 오세환이 말했다.
"거기 뭘 확인하러 가."
"그냥 물건 얘기 하러 온 걸로 하면—"
"세환아." 나는 차를 세우지 않고 지나갔다. "장사꾼이 돈 얘기 아니고 다른 이유로 남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면, 그때부터 장사꾼이 아닌 거다."
오세환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그 순간에는 그 말을 규칙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규칙이 아니라 내가 그 문을 두드리기 싫었던 것이다.
목요일에 단둥으로 갔다. 침대칸을 못 구해서 열두 시간을 앉아서 갔다.
왕더셩의 사무실은 압록강에서 두 블록 안쪽에 있다. 그는 늘 하던 자리에 앉아 있었고, 늘 하던 대로 나를 반겼고, 늘 하던 것을 하지 않았다.
술을 안 냈다.
"강 사장, 차 한잔 하시오."
일 년 동안 이 방에 여섯 번 왔다. 여섯 번 다 낮 세 시 전에 술이 나왔다. 백주를 작은 잔에 따르고, 자기가 먼저 마시고, 마시면서 물건값을 부른다. 그게 이 사람의 방식이다. 오늘은 보온병에서 차를 따랐다. 잎이 컵 안에서 돌았다.
"요새 술을 끊으셨습니까."
"위가 좀." 그가 배를 두드렸다. "나이를 먹으니까."
우리는 삼십 분쯤 아무 쓸모 없는 얘기를 했다. 환율, 날씨, 그의 아들 학교 얘기. 그는 계속 셈을 했다. 이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하든 숫자로 마무리한다. 그런데 그날은 셈의 끝이 자꾸 흐려졌다.
일어서려는데 그가 말했다.
"강 사장."
"예."
"저쪽에서 사람이 안 나오오."

"저쪽이 어딥니까."
"영변 쪽." 그는 컵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우리 쪽에 늘 나오던 검수반이 있소. 열흘에 한 번씩 나와서 물건 보고 도장 찍고 갔지. 지난주에 안 나왔고 이번 주에도 안 나왔소. 전화도 안 받고."
"휴가철입니까."
"조선에 휴가가 어디 있소." 그가 웃었는데 웃음이 짧았다. "위에서 큰일 있으면 사람을 묶어 놓기는 하지. 회담이니 뭐니 하니까 그럴 수도 있고."
"그럴 겁니다."
"그럴 게요." 그가 나를 문까지 배웅했다. 배웅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저녁에 나는 세관 쪽으로 걸어가 봤다.
삼호 창고 뒤에 인입선이 있다. 조선 쪽으로 넘어가는 화차가 대기하는 자리다. 유월 칠일 밤에는 거기 세 량이 서 있었다.
비어 있었다.
레일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침목 사이에 잡풀이 자라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다리 쪽에서 불빛이 몇 개 보였다. 건너편은 어두웠다.
그날 밤 여관에서 나는 이걸 생각했다.
들켰다.
그 생각이 오면 그다음은 순서가 있다. 어디서 들켰나. 로트 번호인가. 인수증인가. 창고 야간조 중에 누가 봤나. 들켰으면 저쪽은 어떻게 하나. 물건을 세우고, 라인을 끊고, 중간에 있는 사람부터 부른다. 리광호가 먼저 불려 갔을 것이다. 그다음이 왕더셩이고, 그다음이 나다.
나는 그 순서를 밤새 세 번 돌렸다. 세 번 다 같은 자리에서 끝났다.
새벽에 창을 열었다. 강 건너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원래 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여섯 번 와서 알고 있었는데, 그날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로 생긴 일처럼 느껴졌다.
여관 벽에 달력이 걸려 있었다. 유월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칠일에 동그라미를 치지 않았다. 그런 표시를 남기는 사람은 오래 못 한다.
내가 그때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물건이 도착했고, 들어갔고, 쓰였고,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 그런 것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내가 서명한 것은 납기 지연이었다. 지연은 사람을 부르지 않는다.
칠월 초에 나는 서울로 보낼 문장을 썼다.
우리 쪽 전문은 상용문으로 위장한다. 물건 이름과 수량과 결제 조건으로 된 문장이고, 정해진 자리에 정해진 단어를 넣으면 그게 다른 뜻이 된다. 나는 그 형식을 일 년 넘게 썼고, 그날 처음으로 형식이 모자랐다.
첫 번째로 쓴 것.
거래처 연락 두절. 원인 파악 불가. 지시 바람.
지웠다. 지시 바람은 겁먹은 사람이 쓰는 말이다.
두 번째.
거래처 이 주간 무응답. 삼사분기 물량 취소 통보. 확인 요망.
이것도 지웠다. 확인 요망이면 저쪽이 확인해 줄 게 있다는 뜻이다. 확인해 줄 게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걸 물은 사람이 된다.
세 번째로 쓴 것을 나는 그대로 보냈다. 두 번째 것과 거의 같았다. 확인 요망 앞에 한 단어를 더 넣었다.
긴급 확인 요망.
부호로 바꾸고 회선에 태우는 데 사 분이 걸렸다. 유월 칠일 밤에 만년필로 숫자를 고치는 데 걸린 시간과 같았다.
서울 남산의 어느 방에서 그 문장을 받아 종이에 옮겨 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 얼굴을 모른다. 여자라는 것과, 오타가 없다는 것과, 내 문장 습관을 나보다 잘 안다는 것만 안다. 일 년 넘게 그 사람이 친 종이를 나는 한 장도 본 적이 없다.
답신은 이튿날에도 오지 않았고 그다음 날에도 오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회선 문제로 생각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전기 담당이 이미 확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칠월 칠일 저녁에 오세환이 사무실 불을 끄면서 물었다.
"사장님, 서울에서 아무 말도 없는 게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지난달에 내가 이 친구한테 한 말이 그거였다. 사는 쪽이 조용하면 잘 간 거라고. 그때는 물건 얘기였다.
"세환아, 조용한 건 정보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말해 놓고 스스로 고쳤다. "아니, 정보다. 제일 정확한 정보인데 읽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거지."
"그럼 어떻게 읽습니까."
"둘 중 하나야. 알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거나."
"아니면요."
나는 서랍을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니면 저쪽도 모르는 거지."
1994년 7월 8일 ~ 7월 19일 · 서울 남산 분석실 / 여의도 / 평양 금수산의사당 앞
칠월 구일 정오, 분석실 텔레비전에 검은 한복 차림의 방송원이 나왔다.
최수경은 그때 연필을 쥐고 있었다. 손을 멈추지 않고 화면을 봤다. 방송원의 목소리는 처음 두 문장 동안 평소와 같았고, 세 번째 문장에서 갈라졌다. 그다음부터 실내가 조용해져서, 옆방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렸다.
누군가 볼륨을 올렸다.
"칠월 팔일 새벽 두 시라는데요." 뒷자리 분석관이 말했다. "지금이 구일 정오니까."
"서른네 시간." 최수경이 말했다.
"예?"
"서른네 시간 만에 발표한 겁니다." 그녀는 연필로 종이 귀퉁이에 34라고 적었다. "그동안 저쪽에서 뭘 했는지가 저쪽 체제에 대해 알려 주는 게 많습니다."
남쪽 방송의 자막이 바뀌는 데는 그보다 훨씬 짧게 걸렸다. 정오 뉴스가 시작되고 십 분도 안 되어 화면 아래에 붉은 띠가 깔렸다. 그날 오후에 전군과 경찰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졌고, 청와대에서 국가안보회의가 열렸다.
칠월 이십오일부터 이십칠일까지 평양에서 열리기로 한 회담은 열이레를 앞두고 없어졌다. 없어졌다는 발표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한쪽 당사자가 없었다.
칠월 이십오일부터 이십칠일까지 평양에서 열리기로 한 회담은 열이레를 앞두고 없어졌다. 없어졌다는 발표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한쪽 당사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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