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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제45장 대표단

· 43화 중 31화 · 3,281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1997년 6월 · 베이징 창안제 회의실 / 동아상사

회의실은 한 시간에 인민폐 백이십 원이었다. 창안제 남쪽 건물 팔 층이고, 창으로 대로가 내려다보이고, 물은 공짜였다.

영변 31화 제45장 대표단 — 헤더컷

아홉 시 정각에 다섯이 들어왔다. 양복 색이 다 같지는 않은데 다 같은 데서 지은 것 같았다. 앞선 사람은 예순쯤이고 성이 허라고 했다. 명함은 내지 않았다. 명함을 안 내는 쪽하고 하는 장사가 나는 사 년째다.

통역은 새 사람이었다. 옌볜에서 왔다는 서른 몇 살짜리인데 말이 빨랐다. 빠른 것은 상관없고 자기 말을 섞는 게 문제였다. 두 번째 문장에서 알았다.

"제가 조선말은 좀 합니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은 중국말 쪽만 봐 주십시오."

통역이 나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값은 시간으로 치니까 그쪽 손해도 아니다.

카탈로그를 돌렸다. 독일 것 하나, 일본 것 하나, 중국 것 하나. 표지가 두꺼운 것부터 놓는다. 사람은 표지를 만져 보고 값을 짐작한다.

"여과기는 등급이 셋입니다. 이건 시험성적서가 매 장 붙어 나오고, 이건 로트 단위로 붙습니다. 매 장 붙는 쪽이 사십 프로 비쌉니다."

"매 장 붙는 걸로 하시오."

"이백사십 매면 성적서만 이백사십 장입니다. 통관에서 그걸 다 넘겨 봅니다."

"그러니까 그걸로 하자는 거요."

나는 그 대답을 받아 적었다. 서류가 두꺼워야 하는 쪽은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사 온 것을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다.

"덕트는 재질을 정하셨습니까." 내가 먼저 꺼냈다. "삼백사로 가시면 톤당 이 할 쌉니다. 대신 산 쪽에 쓰시면 용접부부터 갑니다. 저탄소로 가시는 게 낫고, 질산이 닿는 자리면 크롬 높은 걸로 가셔야 합니다."

"저탄소로 하시오."

"성적서는 제조사 원본으로 받아 드리겠습니다. 이 바닥에서 강종은 흔하게 바뀝니다. 종이만 보고 사시면 안 됩니다."

허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강 사장은 종이만 보고 파오?"

"저는 물건을 보고 팝니다. 그래서 사 년 했습니다."

열 시쯤에 아래층에서 차와 과자를 올려 보냈다. 접시가 두 개였다. 십 분 쉬는 동안 나는 창가에 서서 대로를 내려다봤고, 돌아섰을 때 접시 하나가 비어 있었다. 마른 쪽 젊은 사람이 냅킨을 접어 안주머니에 넣는 중이었다. 그는 내 쪽을 보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들어 한 접시 더 올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날 때까지 그 접시에 손을 대지 않았다.


사양서는 두 장이었다. 손으로 쓴 것을 타자로 옮겨 친 것인데, 친 사람이 화학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틀린 글자가 세 개 있었다.

스테인리스 덕트, 직경 팔백 밀리, 총 연장 삼백팔십 미터. 고성능 여과기 이백사십 매와 함체 여섯 조. 박리성 제염도료 이십 톤. 이온교환수지 육 톤. 원격조작기 예비부품 한 벌과 차폐 유리창 두 짝. 고압 세정기 네 대.

"덕트가 삼백팔십이면 짧은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 갑니까."

"굴뚝까지."

"굴뚝 밑에서부텁니까, 아니면 그 앞의—"

"굴뚝까지."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건 더 묻지 말라는 뜻이다.

"함체를 여섯 조 가시면 지금 것은 전부 버리는 겁니까."

"버립니다."

"여섯 조를 한꺼번에 갈면 그동안 배기가 죽습니다. 보통은 두 조씩 세 번에 나눠서—"

"한꺼번에 합니다."

나는 다음 문장을 머릿속에서 만들었고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한꺼번에 갈아도 되는 계통은 이미 안 돌고 있는 계통이다.

"대금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삼 할은 신용장, 나머지는 물건으로 합시다."

"무슨 물건입니까."

"아연괴. 마그네사이트도 됩니다."

"올해 아연 값이 작년 여름보다 아랩니다."

"압니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하고는 오래 끌 필요가 없다. 값을 아는 쪽이 물건으로 내겠다고 하면 달러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계산기로 환산가를 뽑아 종이에 적어 보였다. 허라는 사람은 그것을 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관 신고 품명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공업용 환기설비."

"여과기도 그 안에 넣습니까."

"넣으시오."

나는 그것도 받아 적었다. 사 년 동안 그 칸에 적어 본 이름이 열 개는 된다.


열한 시 반에 통역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숙소 명부였다. 방을 몇 개 잡아 달라는 것이다.

일곱 줄이었다. 온 사람은 다섯인데.

직위와 소속이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붙는 식이었다. 대외경제위원회, 대외사업국, 무역회사 이름 하나. 여섯째 줄만 길었다.

영변 원자력연구소 방사화학실험실 제1공정 기술과장 한성철.

영변 31화 제45장 대표단 — 전환컷

그 줄 끝에 연필로 칠월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두 번째는 소속만 읽었다.

"이 두 분은 다음 달입니까."

"기술 성원이오." 허라는 사람이 대신 대답했다. "물건 볼 사람은 물건 볼 때 옵니다."

"방은 칠월 것으로 따로 잡아 두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돌아갈 때 그는 카탈로그 세 권을 다 가져갔다. 무거운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물건을 살 사람이다. 나는 승강기 앞까지 배웅하고, 문이 닫히는 동안 웃고 있었다.


사무실에 돌아온 게 여덟 시가 넘어서였다.

서랍을 열고 종이 뭉치 하나를 꺼냈다. 1993년 12월에 리광호가 불러 준 것을 내가 손으로 베낀 것, 마흔한 행. 그것을 오른쪽에 놓고 오늘 받은 사양서 두 장을 왼쪽에 놓았다.

오른쪽에는 온도전송기 열두 대, 조절기 넉 대, 관다발 두 조, 인산트리부틸 열두 드럼, 희석제 마흔 드럼이 있다. 왼쪽에는 덕트 삼백팔십 미터, 여과기 이백사십 매, 도료 이십 톤이 있다.

같은 건물이다.

도료 이십 톤이면 제곱미터당 일 킬로로 잡아 이만 제곱미터다. 육천 평. 바닥만 그런 것이 아니라 벽하고 천장까지 칠하는 넓이다. 방 하나에 쓰는 양이 아니다. 층 하나에 쓰는 양도 아니다.

덕트 삼백팔십 미터는 계통 하나가 아니라 계통 전부다.

차폐 유리창을 두 짝 간다는 것은 창 너머를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뜻이고, 원격조작기 예비부품을 한 벌 산다는 것은 아직 사람이 못 들어간다는 뜻이다. 들어갈 수 있으면 사람 손으로 고친다. 사람 손이 제일 싸다.

여기까지는 계산이고, 계산 다음은 계산이 아니다.

저쪽은 삼 년을 기다렸다. 삼 년 동안 안 산 게 아니라 못 산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돈이 없어서 아연으로 낸다. 없는 돈으로 사는 물건은 순서가 정직하다. 제일 급한 것부터 산다.

나는 견적서 양식을 꺼내 손으로 채웠다. 품목, 규격, 수량, 단가. 총액은 백구십이만 달러가 나왔다. 납기는 계약 후 구십 일로 썼다. 비고란은 비워 두었다.

열 시가 넘어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야간 근무자가 받았다.

"칠월에 두 분이 더 오십니다. 방 두 개를 더 잡아야 합니다."

"칠월 며칠입니까."

"모릅니다."

"그럼 날짜 나오면 다시 걸어 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책상 위에 종이 두 장이 아직 나란히 있었다. 나는 오래된 쪽을 뒤집어 놓았다.


1997년 7월 14일 · 베이징 왕푸징, 취안쥐더

"오리는 사십 분 걸립니다." 종업원이 그렇게 말하고 갔다.

여섯 시 십 분이었고 우리는 다섯이었다. 이 층 창가 방이었는데 칸막이가 나무라서 옆방 소리가 다 넘어왔다. 창 아래 골목에 자전거가 스무 대쯤 세워져 있었다. 방이 더웠다. 천장 선풍기가 돌았고 벽에 걸린 오리 그림 액자에 김이 서려 있었다.

통역이 소개를 했다.

"이번에 기술 성원으로 오신 한성철 동지입니다."

나는 명함을 꺼냈다. 동아상사 대표. 종이는 홍콩에서 찍었고 이름은 내 것이 아니다.

그는 두 손으로 받았다.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에 손톱이 없었다. 자리가 매끈했고 색이 나머지 손가락과 달랐다. 새살이 덮인 지 오래된 자리다. 손등에도 한 군데 가죽 색이 다른 데가 있었고 경계가 흐렸다.

명함을 읽고 안주머니에 넣는 데 삼 초가 걸렸다. 삼 초는 짧다. 명함 한 장 읽는 데 드는 시간이고, 나는 그 삼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그가 말했다.

"먼 길 오셨습니다."

나는 그 손을 다시 보지 않으려고 물수건을 집었다.


오리는 앞에서 썰어 준다. 흰 모자 쓴 사람이 수레를 밀고 와서 도마를 놓고, 껍질부터 저며 접시에 편다.

"한 마리에 백여덟 점이 나옵니다." 통역이 옮겼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접시를 봤다. 세어 보려다가 말았다. 그런 걸 세는 버릇이 있는데 오늘은 그 버릇을 안 쓰기로 했다.

대표단 두 사람은 잘 마셨다. 얼궈터우를 시켰고, 도수가 높아서 한 잔에 얼굴이 붉어졌다. 통역이 농담을 옮겼고 나도 웃었다. 웃는 것은 값이 안 드는 접대다.

한성철은 술을 반 잔만 받았다.

밀전병 한 장을 펴서 파를 놓고 장을 찍어 껍질 두 점을 얹었다. 싸는 데 오래 걸렸다. 손이 굼떠서가 아니라 순서를 다 지켜서였다. 다 싸고 나서 한입에 넣지 않고 두 번에 나눠 먹었다.

두 장째를 반쯤 먹고 젓가락을 놓았다.

"드십시오." 내가 말했다.

"먹고 있습니다."

이마에 땀이 조금 나 있었다. 기름진 것을 오래 안 먹은 사람이 기름을 먹으면 땀부터 난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눌렀다. 오른손으로 눌렀다.

국이 나왔다. 오리뼈를 고아서 배추를 넣은 것이다. 그것은 두 그릇 먹었다.

국이 나왔다. 오리뼈를 고아서 배추를 넣은 것이다. 그것은 두 그릇 먹었다.

남은 12화 · 약 43,877자 · 약 6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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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전 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