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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제52장 마지막 겨울

· 43화 중 36화 · 3,484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1998년 12월 ~ 1999년 4월 · 함경남도 단천 / 무산 / 영변

무산 장은 다섯 시에 선다. 해가 뜨기 전에 자리를 잡아야 좋은 값을 받는다.

영변 36화 제52장 마지막 겨울 — 헤더컷

리향미는 가마니를 내려놓고 저울부터 폈다. 대저울 손잡이를 어깨에 걸고, 추를 왼손에 쥐고, 엄지로 밑면을 문질렀다. 갈아 낸 자리는 손끝에 잡힌다. 지난가을에 청진 사람한테 그렇게 당했다. 한 근에 삼십 그램씩 열 근이면 삼백 그램이고, 삼백 그램이면 그날 아들 한 끼다.

추는 성했다.

"소금 얼마요."

"한 킬로에 옥수수 두 킬로." 그녀가 말했다. "값 안 깎습니다. 여기서 단천까지 사흘입니다."

앞에 선 여자가 입을 삐죽했다. 그래도 갔다가 다시 왔다. 무산에는 소금이 없다. 단천에는 중국 물건이 없다. 그 사이를 사람이 걸어서 잇는다.

장에 나온 것은 소금과 강냉이와 마른 나물, 그리고 중국에서 넘어온 것들이다. 사카린, 조미료, 성냥, 신발, 감기약. 팔러 나온 사람 중에 열에 여덟이 여자다. 남자들은 돌지 않는 공장에 나가 앉아 있어야 한다.

여덟 시가 되면 판 것과 산 것을 셈한다. 그녀는 언제나 두 번 센다. 한 번은 물건으로, 한 번은 돈으로. 돈은 세 가지가 섞여 들어온다. 북조선 돈, 위안, 가끔 달러. 환산표는 머릿속에 있고 매주 바뀐다.

1996년 봄에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단속에 걸렸다. 지금은 단속 나온 사람이 자기 몫을 떼어 간다.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고, 여기 앉은 여자들은 설명을 기다리지 않았다.


려행증은 사회안전소 삼호실에서 나온다.

담당은 리찬수 소좌다. 나이는 마흔쯤이고 말이 느리다. 국경지역행에는 파란 대각선이 그어진다. 발급에 이레가 걸린다고 규정에 있지만 이레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이번에도 무산이오."

"예."

그가 서류를 넘겼다. 그녀는 봉투를 책상 모서리에 올려놓았다. 그가 그걸 보지 않고 서랍에 쓸어 넣었다. 두 사람 다 그 동작을 백 번은 했다.

값은 작년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올랐다. 올해 봄에 또 올랐다. 리찬수가 미안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그도 배급이 끊긴 지 오래고, 그의 아이도 학교에 안 간다.

"조심하시오. 요즘 길에 군인이 많소."

그것이 그가 값에 얹어 주는 것이었다.


삼월 하순, 단천 아래 마을에 부대가 내려왔다.

트럭 한 대와 스물 몇 명. 자력갱생이라고 했다. 부대는 부대가 알아서 먹으라는 명령이 겨울에 내려왔고, 그 말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뜻이 간단해졌다.

창고 문을 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창고 앞에 섰다. 처음에는 다섯이었다가, 열이 되었다가, 서른이 되었다. 여자가 더 많았다. 남자들은 공장에 출근 도장을 찍으러 갔기 때문이다. 공장은 돌지 않지만 도장은 찍어야 한다.

리향미는 뒤쪽에 서 있었다. 등에 아들을 업지 않고 손을 잡고 있었다. 한명일은 여덟 살인데 여섯 살 아이만 했다.

앞줄의 늙은 여자가 소리쳤다. "우리 것도 없소! 가져갈 게 없단 말이오!"

중대장인 듯한 젊은 군관이 뭐라고 말했다. 잘 들리지 않았다. 그의 얼굴도 말라 있었다.

한참 그렇게 서 있었다. 총을 든 쪽 스물 몇 명과, 총이 없는 쪽 서른 몇 명.

먼저 물러난 것은 총을 든 쪽이었다. 군관이 손을 한 번 젓자 병사들이 트럭에 올랐다. 트럭이 언 길을 덜컹거리며 내려갔다.

사람들이 흩어졌다. 아무도 이겼다고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말하지 않았다. 리향미는 아들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

그날 저녁 그녀는 아들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 주었다. 명일은 그릇을 다 비웠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사월 초에 최옥분이 단천까지 내려왔다.

평양 락랑구역 통일거리 32호동 인민반장. 예전에는 세대별 인원을 적어 올리고 숙박등록을 받던 사람이다. 지금은 사카린과 조미료와 중국제 양말을 받아 가는 사람이다.

"향미 동무, 이번에 얼마나 되오."

"사카린 열두 봉, 조미료 스무 갑, 양말 사십 켤레." 리향미가 보따리를 풀지 않고 말했다. "양말은 두 켤레 값이 올랐습니다. 단둥에서 오는 게 늦어졌답니다."

"올려도 나가긴 나가." 최옥분이 손가락에 침을 발라 돈을 세었다. "평양도 이제 시장에서 삽니다. 안 사면 못 먹으니까."

두 여자는 마루에 앉아 셈을 맞췄다. 최옥분은 한 번, 리향미는 두 번 세었다.

"인민반 회의는 하십니까."

영변 36화 제52장 마지막 겨울 — 전환컷

"하기는 하지." 최옥분이 돈을 봉투에 넣었다. "근데 요새는 위에서 내려오는 게 없어. 회의를 열어도 읽을 문건이 없다우. 지난달에는 두 번 열고 말았소."

"물은요."

"삼월에 사흘 안 나왔소. 십이 층까지 이고 올라가는데 반이 쏟아집디다." 그녀가 웃었다. 웃는 소리가 마른 소리였다. "그래도 평양이니까 사흘로 끝난 거지."

리향미는 그 말을 적어 두지 않았다. 적어 둘 것은 값과 무게뿐이다. 그러나 이레 뒤 무산에 갈 때 그녀는 양말을 사십 켤레가 아니라 예순 켤레 받았다.


영변에서는 전기가 하루 두 시간 들어왔다. 오후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들어오는 날이 일주일에 나흘이었다.

한성철은 손전등을 오른손에 들었다. 왼손은 주머니에 넣었다. 넣지 않아도 되지만 겨울에는 그쪽이 더 시리다.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은 손톱 자리가 매끈하다.

제1공정 조종실은 사 년 전 그대로였다. 계기판의 바늘은 전부 왼쪽 끝에 붙어 있고, 기록계의 종이는 유월 이십육일에서 끊겨 있다. 그는 그 종이를 보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다. 어디서 어떻게 꺾여 있는지 다 외운다.

캐비닛 세 번째 칸에 서류철이 있다. 1994년 유월의 공정일지, 교대근무표, 그리고 그가 결재란까지 올렸다가 되돌아온 종이 한 장. 그는 자물쇠를 두 번 흔들어 보고 손전등을 껐다.

사 년 동안 그 자물쇠는 아무도 열어 보라고 하지 않았다. 조사위원회는 1994년 칠월 구일 오전에 해산했고 다시 모이지 않았다. 그다음부터 이 건물에 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문서였다. 제염 계획서 제출 요구, 예산 미배정 통보, 인원 감축 통지.

복도에서 강태봉을 만났다. 실장은 외투 위에 또 외투를 입고 있었다.

"제염 계획서 다시 올리라던데."

"올렸습니다. 작년에도 올렸고 재작년에도 올렸습니다."

"올려." 강태봉이 손을 비볐다. "설비값을 못 대는 거지 계획서를 못 쓰는 게 아니잖나."

두 사람은 잠깐 서 있었다. 창밖으로 구룡강 쪽이 보였다. 얼음 위에 사람 자국이 있었다.

"단천 아래에서 부대가 창고에 갔다가 그냥 왔답니다." 강태봉이 말했다. "북쪽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고."

"그렇습니까."

"그렇다더군."

강태봉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한성철도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 자기 방향으로 갔고, 복도 끝에서 한성철은 손전등을 다시 켜서 계단을 내려갔다.


1999년 6월 ~ 8월 15일 · 평양 / 함경북도 청진 / 서울 / 워싱턴

통일거리 32호동에 전기가 나간 것은 유월 십사일 저녁 여덟 시였다.

처음에는 늘 있는 일이었다. 두 시간, 길면 반나절.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도 안 들어왔고, 그날 밤에도 안 들어왔고, 사흘째 되는 날 수도가 멎었다.

가압펌프가 서면 오 층 위로는 물이 올라오지 않는다. 32호동은 십오 층이다.

최옥분은 반원 명부를 들고 층계를 올라갔다. 세대별로 양동이 수를 적었다. 십이 층 김 노인네는 두 개, 그 옆집은 세 개. 물은 뒤편 소방용 수도에서 나왔고, 줄은 새벽 네 시부터 섰다.

계단은 캄캄했다. 사람들이 벽을 손으로 짚고 내려갔다가 물을 이고 다시 올라갔다. 십이 층까지 올라오면 양동이의 절반이 계단에 쏟아져 있다. 넘어진 사람이 이틀 동안 넷이었다.

이레째 되던 날 아침, 최옥분은 명부에 적힌 스물여덟 세대 가운데 여섯 세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문이 잠겨 있고 신발이 없었다. 어디 갔는지 묻는 것은 오래전에 그만두었다. 그녀는 그 여섯 칸에 줄을 긋는 대신 연필로 점을 찍었다. 돌아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둘이 돌아왔다.

예순 시간 만에 전기가 들어왔을 때, 복도에서 누가 손뼉을 쳤다. 한 사람이 쳤고 아무도 따라 치지 않았다. 그날 밤 최옥분은 인민반 회의를 열려다 말았다. 읽어 줄 문건이 없었다.


칠월, 청진 수남구역 배급소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배급소는 두 해 넘게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배급소 앞으로 갔다. 갈 데가 거기밖에 없다.

처음에는 스물쯤이었다. 오후에는 이백이 넘었다. 누가 조직한 것이 아니라 소문이 돌았다. 항구에 배가 들어왔다더라, 창고에 옥수수가 있다더라.

인민군 제6군단 소속 경비중대가 왔다. 스물여덟 명. 소대장이 해산하라고 두 번 방송했다.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앞줄 여자들이 앉아 버렸다.

소대장은 세 번째 방송을 하지 않았다. 그는 부대를 백 미터 물려 세우고, 저녁까지 그 자리에 있다가, 어두워지자 데리고 돌아갔다.

그날 밤 도당에서 평양으로 전화가 올라갔다. 신호는 갔는데 받는 사람이 없었다. 담당자는 그것을 야간이라 그렇겠거니 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받지 않았다.

칠월 하순부터, 도에서 올라간 보고 가운데 회신이 오는 것은 열에 하나가 안 되었다. 전화선이 끊긴 것이 아니었다. 선은 살아 있었다. 받는 자리에 사람이 없거나, 사람은 있는데 대답할 권한이 없었다.

수남구역 소대장은 사흘 뒤에도 처벌받지 않았다. 처벌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부대 안에서 조용히 퍼졌다. 그다음 주에 라남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그때는 방송을 두 번이 아니라 한 번만 했다.

수남구역 소대장은 사흘 뒤에도 처벌받지 않았다. 처벌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부대 안에서 조용히 퍼졌다. 그다음 주에 라남에서도 비…

남은 7화 · 약 26,528자 · 약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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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전 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