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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제27장 인공기

· 43화 중 19화 · 3,703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저녁은 강변 식당이었다. 왕더셩이 조개를 시키고 백주를 시켰다. 그는 작년 가을부터 다시 술을 마신다.

"쌀은 좋은 장사요." 그가 잔을 채우면서 말했다. "기계는 한 번 팔면 십 년을 안 사. 약품은 반년. 그런데 쌀은 매일 먹지. 사람이 매일 먹으니까."

영변 19화 제27장 인공기 — 헤더컷

"물량이 나옵니까."

"동북에 쌀은 있소. 문제는 저쪽이 돈이 없는 거지. 그런데 돈이 없어도 사는 게 쌀이오." 그가 조개를 하나 까면서 덧붙였다. "메이반파. 안 먹으면 죽으니까."

그러고 나서 그가 그 얘기를 했다.

남조선에서 배가 들어갔다고 했다. 십오만 톤을 준다고 했고 첫 배가 청진에 들어갔는데, 부두에서 배에 기를 올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인공기를.

"올렸답니까."

"올렸다지." 왕더셩이 어깨를 으쓱했다. "선원들은 그냥 사람이오. 배에서 내려야 되고 짐을 부려야 되고. 사흘 뒤에 또 무슨 배 하나가 잡혔다는 소리도 있고. 나야 부두에 있었던 게 아니니까 들은 대로만 말하는 거요."

"리 선생은요." 내가 물었다.

왕더셩이 조개껍데기를 접시 가장자리에 놓았다. "작년에 묻고 올해 또 묻소."

"작년엔 대답을 안 하셨으니까."

"올해도 안 하겠소." 그가 잔을 채웠다. "강 사장, 저쪽 사람이 없어지면 둘 중 하나요. 올라갔거나 내려갔거나. 올라갔으면 언젠가 연락이 오고, 내려갔으면 안 오지. 아직 안 왔으면 아직 모르는 거고."

나는 잔을 들었다가 놓았다.

십오만 톤. 나는 그 자리에서 셈을 했다. 저쪽 인구를 이천이백만으로 잡고, 한 사람 하루 육백 그램으로 잡으면 하루에 만 삼천 톤이 넘게 든다. 십오만 톤이면 열하루치다.

배가 몇 척이고 어느 항구로 가고 어떤 기를 올렸는지는 뉴스가 될 것이다. 열하루라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강 사장, 무슨 생각 하오."

"아무 생각도 안 합니다." 나는 잔을 비웠다. "쌀을 좀 해 봅시다."


칠월에 베이징 사무실에서 오세환이 계약서 초안을 들고 왔다. 동북산 정미 이천 톤, 그리고 겨울옷.

"사장님, 이거요."

"왜."

"우리 회사 등기가 화공약품하고 계측기기하고 특수강입니다. 여기 쌀이 왜 들어갑니까."

"업종 추가하면 돼."

그는 종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오세환은 부산 사람이고, 화가 나면 말끝이 짧아지고 목소리가 낮아진다. 낮아진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뭐가."

"작년까지 우리가 저쪽에 뭘 넣었는지 사장님이 아시잖습니까. 그거 넣던 창구로 이제 쌀을 넣는다는 게, 저는—"

"오 대리."

"저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몰라도 돼."

"사장님은 제가 뭘 모른다고 생각하시지요." 그가 말했다. "그건 사장님이 정할 일이 아닙니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창밖 조양구 도로에서 자전거 벨소리가 길게 났다.

"자네 오늘부로 그만둬." 내가 말했다.

그는 나를 이 초쯤 봤다. 그리고 종이를 책상에 놓고 나갔다. 문은 세게 닫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그가 평소보다 삼십 분 일찍 나와 있었다. 주전자에 물을 끓여 놓고 계약서 초안을 다시 타자기로 치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도 하지 않았다. 열 시쯤 내가 물었다.

"업종 추가 서류 어디 있나."

"공상국 양식 받아 왔습니다." 그가 서랍에서 꺼냈다. "도장은 홍콩 쪽 걸로 찍는 게 낫겠습니다."

우리는 그날 그 서류를 만들었다.

점심에 그가 도시락을 두 개 싸 왔다. 부산 사람이 베이징에서 김밥을 마는 게 될 일인가 싶었는데 됐다. 하나를 내 책상에 놓으면서 그가 물었다.

"어제 저 자른 건 취소입니까."

"자른 적 없어."

"자르셨습니다."

"기억 안 나."

그해 여름에 내가 판 쌀은 천구백 톤이었다. 그 쌀을 먹은 사람이 몇인지 나는 모른다. 셈을 해 본 적도 없다. 열하루라는 숫자는 그날 저녁 이후로 다시 계산하지 않았다.

영변 19화 제27장 인공기 — 전환컷

칠월 말에 단둥에서 얘기를 하나 더 들었다. 청진에 들어갔던 배의 기관사가 부산에 내려서 했다는 말이라고 했다. 부두에 하역 인부가 나와 있는데 지게가 있어도 사람이 못 지더라고. 한 포대를 둘이 들었다고. 그 말을 전한 사람은 통관 브로커였고 그도 누구한테 건너 들은 것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서울에 보내는 보고에 적지 않았다. 확인할 방법이 없었고,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은 적지 않는 것이 규정이었다.

같은 창고, 같은 배, 같은 세관원. 작년에 드럼을 통과시켜 준 사람이 올해 쌀 포대를 통과시켜 준다. 도장을 찍는 손이 같고 봉투를 받는 손도 같다.

나는 그것이 뉘우치는 일인지 감추는 일인지 그해에는 정하지 못했고, 그 뒤로도 정하지 못했다.

칠월 마지막 주에 그 창고에 다시 갔다. 도려낸 상표 조각들이 마대에 담겨 한쪽에 쌓여 있었다. 태우려고 모아 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마대에서 한 조각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인쇄가 반쯤 잘려 무슨 글자였는지도 알아볼 수 없는 천 쪼가리였다.


1995년 7월 26일 ~ 8월 20일 · 황해북도 평산 / 함경남도 단천

평산 관측소의 우량계는 이백 밀리까지 눈금이 있다.

그날 당직은 우량계를 비우고 다시 받았다. 비우고, 적고, 다시 받았다. 일곱 시간 동안 네 번 넘게 비웠고 마지막 두 번은 비운 시각을 적을 겨를이 없었다. 나중에 합산한 수는 팔백칠십칠이었다.

그 숫자를 적어 올린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적었는지 몰랐다. 우량계는 세는 물건이고, 세는 물건은 셀 수 있는 것까지만 센다.


단천의 친정집 마당에는 장독대가 있다.

콘크리트로 세 단을 쳐 놓은 것인데, 리향미는 스무 해 동안 그 단을 발판으로 썼다. 첫날 밤에 물이 첫 단을 덮었다. 이튿날 아침에 두 번째 단이었다.

비는 소리로 왔다. 처음에는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였다가, 뒤에는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라 한 덩어리로 눌러 대는 소리가 됐다. 문을 열면 소리가 커지고 닫으면 작아지는데,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명일이가 자다 깨서 물었다. "엄마, 비 언제 그쳐."

"자라."

처마 밑에 대야를 받쳐 두었다. 첫날은 물이 떨어졌다. 사흘째부터 대야 바닥에 누런 것이 가라앉았다. 나흘째 아침에 대야를 들어 보니 물보다 흙이 무거웠다. 벽이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리향미는 그 대야를 비우면서 벽을 손바닥으로 눌러 봤다. 젖은 벽은 눌리는 데가 있고 안 눌리는 데가 있다. 눌리는 자리가 어제보다 넓었다.

닷새째 밤에 물이 세 번째 단까지 왔다. 리향미는 자지 않고 마루에 앉아 그것을 봤다. 두 시간에 손가락 한 마디쯤 올라왔다. 올라오는 속도를 알면 언제 마루까지 오는지 셈할 수 있다. 셈해 보니 새벽 네 시쯤이었다.

네 시가 조금 못 되어 비가 약해졌다. 물은 마루 밑 받침돌에서 멈췄고, 아침에는 두 마디가 내려가 있었다.

이 집은 그렇게 넘어갔다. 강 아래쪽 세 집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친정어머니가 부엌에서 아궁이 불을 살리려고 애를 썼다. 나무가 다 젖었다.

시어머니 김순덕은 읍에서 걸어 삼십 분 거리에 산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 노인이 물에 잠긴 길을 돌아서 왔다.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왔는데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성철이한테서는 소식 없니."

"없습니다, 어머니."

"연구소는 배급이 나온다. 거긴 나라 일 하는 데니까." 노인이 마루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 애는 굶지 않는다."

리향미는 대답하지 않고 노인의 발을 씻겼다. 발등에 진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물은 팔월 초에 빠졌다.

빠지고 나서 보이는 것이 물보다 무서웠다. 강 옆 옥수수밭이 없어졌다. 없어졌다는 말이 정확하다. 쓰러진 것도 아니고 잠긴 것도 아니고, 흙이 통째로 쓸려 나가서 밭이었던 자리에 자갈이 깔려 있었다. 밭과 강의 경계가 어디였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물이 빠진 다음 날 동에서 사람이 나와 세대를 세었다.

공책을 들고 집집이 다니면서 물이 어디까지 찼는지, 지붕이 나갔는지, 사람이 다 있는지를 적었다. 리향미네 차례가 됐을 때 그 사람이 물었다.

"이 집에 세대주 말고 몇입니까."

"넷입니다."

"평양 사람이오?" 려행증을 보자고 했다. 흙물 든 손으로 종이를 받아 붉은 대각선을 확인했다. "숙박등록은 유월에 했지요."

"했습니다."

그 사람은 공책에 적고 다음 집으로 갔다. 마당이 통째로 내려앉은 집에도 들어가서 같은 것을 물었다. 곡식은 없고 나무는 젖었고 선로는 나갔는데 세는 일은 굴러갔다.

방송에서는 온 나라가 물에 잠겼다고 했다. 압록강이 사흘 동안 사십팔억 톤을 흘려보냈다고 했다. 이재민이 오백이십만이라고 했다. 사망자는 예순여덟 명이라고 했다.

리향미는 그 대목에서 손을 멈췄다. 오백이십만이면 나라 사람 넷 중 하나다. 넷 중 하나가 집을 잃었는데 죽은 사람이 예순여덟이라는 것이다. 그 두 수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는 세어 본 수고 하나는 세지 않은 수다.

동네 사람들이 강가에 나가 흙에 박힌 옥수수를 주웠다. 아직 여물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고 물을 먹어 껍질이 벗겨진 것도 있었다. 사흘 동안 주워서 여섯 말쯤 됐다.

삶았다.

삶는 냄새가 나빴다. 옥수수 냄새가 아니라 젖은 걸레를 삶을 때 나는 냄새였다. 부엌 문을 열어 놓고 삶았는데도 냄새가 방까지 들어왔다. 친정어머니가 소금을 조금 넣었다. 넣어도 같았다.

명일이가 두 알을 먹고 나서 그릇을 밀어 놓았다.

"먹어라."

"안 먹고 싶어."

리향미는 다시 먹으라고 하지 않았다. 아이는 마루 끝에 가서 앉았다. 다리를 늘어뜨리고 마당을 봤다. 배고프다고 하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 명일이는 하루에 열 번쯤 배고프다고 했다. 그 말은 아이가 하는 요구다. 요구는 들어줄 사람이 있다고 믿을 때 나온다. 아이는 그 말을 그만두었고, 그만두었다는 것을 마당에 앉은 자세로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것도 그때 알았다. 명일이는 그 여름에 한 번도 뛰지 않았다. 마당에서 마루로 갈 때도 걸어서 갔고, 마루 끝에서 내려설 때는 손으로 짚고 내려섰다. 다섯 살짜리가 뛰지 않는 것을 리향미는 팔월이 되어서야 알아차렸다. 밥이 줄어드는 것은 눈에 보이는데 아이가 조용해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며칠 지나고 나서 뒤늦게 보인다.

리향미는 부엌에 들어가 남은 옥수수를 자루째 들어 무게를 가늠했다. 여섯 말. 세 사람이 하루에 한 되씩 쓰면 두 달이 못 간다. 시어머니 몫을 넣으면 더 짧다.

리향미는 부엌에 들어가 남은 옥수수를 자루째 들어 무게를 가늠했다. 여섯 말. 세 사람이 하루에 한 되씩 쓰면 두 달이 못 간다. 시어머니 몫을 넣으면 더 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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