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제5부 꽃제비
24화제34장 두만강
밤에 여관 방에서 지도를 폈다.
방에 연탄 냄새가 났다. 창틀이 맞지 않아서 아래쪽으로 바람이 들어왔고, 나는 수건을 접어 그 틈에 끼웠다. 복도에서 남자 둘이 도박을 하는지 패 치는 소리가 났다. 벽 하나 너머였다.

동북 삼성 지도였다. 중국 쪽은 촘촘한데 압록강 서쪽으로 넘어가면 갑자기 비었다. 강 하나, 굵은 선 몇 개, 지명 예닐곱. 영변은 없었다.
나는 연필을 꺼내 박천 위쪽, 구룡강이 꺾이는 자리에 점을 하나 찍었다. 그 강 이름은 서류에서 봤다.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가방에서 삼각자를 꺼냈다. 도문에서 그 점까지 이십사 센티가 조금 넘었다. 축척은 이백만분의 일이었다.
사백구십 킬로미터.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가 사백십육이다. 그것보다 조금 멀었다. 나는 그 숫자를 두 번 확인했다. 자를 대고 다시 쟀고 같은 값이 나왔다.
그러니까 물건은 저 점까지 가는 데 사백구십 킬로미터를 갔다. 단둥에서 신의주로 넘어가서, 정주를 지나서, 박천에서 지선으로 갈아타고. 나는 그 경로를 서류로만 알았다. 화차 번호와 세관 신고 품목과 인수증에 찍힌 도장으로만 알았다.
오후에 다리 위에서 본 것은 백 미터가 안 되는 물이었다. 무릎까지 오는 물이었다. 아이가 옷자락을 잡고 건너는 물이었다.
지도를 개키는데 접히는 자리가 하필 연필 점 위로 지나갔다. 나는 그 자국을 엄지손톱으로 눌러 폈다. 눌러도 펴지지 않았다.
1996년 11월 ~ 12월 · 평안북도 영변 / 평양 / (닿지 못하는) 함경남도 단천
창구 유리에 성에가 안쪽으로 껴 있었다.
"영변 사람은 안 됩니다."
한성철은 신청서를 유리 밑 틈으로 반쯤 밀어 넣은 채로 서 있었다. 종이가 미끄러워서 손끝으로 눌러야 했다. 왼손을 쓰면 종이가 밀리지 않아서 오른손으로 눌렀다.
"연구소 인사과 도장 받았습니다. 보위지도원 확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 된다는 겁니다."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창구 안쪽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신청서를 도로 밀어냈다. 종이가 창구 턱을 넘어와 바닥에 떨어졌다. 한성철이 허리를 굽혀 주웠다.
"어머니가 위중하십니다. 함경남도 단천입니다."
"다들 위중합니다, 동무."
그는 이유를 설명해 줄 의무가 없었고, 설명하지 않는 것이 자기 일을 하는 방식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한성철은 그 얼굴을 삼 초쯤 봤다. 그리고 신청서를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밖으로 나오니 눈이 오고 있었다. 발자국이 다섯 걸음 만에 덮였다.
려행증에는 대각선이 그어진다. 평양행에는 붉은 선, 국경지역과 분계연선지역행에는 푸른 선. 단천은 둘 다 아니고 그냥 함경남도였다. 선이 없는 종이 한 장이었다. 그 한 장을 받는 데 보통 일주일이 걸리고, 영변 연구소 인력에게는 걸리는 것이 아니라 안 되는 것이었다. 규정에 그렇게 적혀 있는지 어떤지 그는 확인해 본 적이 없었다. 확인해 본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었다.
강태봉은 후방부 사무실 난로 옆에 앉아 있었다.
이 년 전에는 이 사람이 실장이었다. 지금은 겨울 땔감과 부식을 맞추는 자리에 있고, 사무실에는 그와 여자 사무원 하나뿐이었다. 그는 한성철에게 담배를 반 갑 내밀었다.
"한 과장, 나는 이제 도장 찍는 사람이 아니오."
"압니다."
"안다면서 왜 왔소."
"방법을 아실 것 같아서 왔습니다."
강태봉이 웃었다. 웃는데 이가 두 개 없었다.
"방법은 있지. 려행증 떼는 데 요새 얼마 드는지 아오? 강냉이로 치면 이십 킬로쯤이오. 사람 봐서 더 받고. 그런데 동무는 영변 특수인력이라 그 값이 아니야. 그 값의 세 배는 줘야 될 게고, 세 배 준다고 떼 준다는 보장도 없소."
"기차는 섭니까."
"평양행은 이틀에 한 번쯤 서고 함경도 쪽은 나도 모르오. 지난달에 청진 간 사람이 아홉 밤 걸렸다고 하더구만."
한성철이 담배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피우지 않았다.
강태봉이 난로 문을 열고 삽으로 재를 긁었다. 재 밑에서 아직 붉은 것이 나왔다.
"동무."
"예."
"나는 그때 위에서 내려온 말을 그대로 아래로 옮긴 사람이오. 그것 말고는 한 게 없소."
한성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태봉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편지는 십이월 이십삼일에 왔다.
평양에서 영변까지 오는 데 열이틀이 걸린 편지였다. 봉투 귀퉁이가 젖었다가 마른 자국이 있었다. 리향미의 글씨는 작고 반듯했다. 그 사람은 종이를 아꼈다.
첫 줄에 석탄 얘기가 있었다. 인민반에서 세대당 백 킬로씩 배정이 나왔는데 실제로 나온 것은 사십 킬로였다고. 둘째 줄에 명일이가 학교에 나간다고 썼다. 겨울에도 나간다고.
셋째 줄이었다.
어머님이 십이월 삼일에 돌아가셨습니다.

넷째 줄부터는 다시 실무였다. 단천 외숙이 알려왔고, 장례는 이웃들이 치렀고, 자기가 내려가려 했으나 려행증이 나오지 않았다고. 사망통지서를 외숙이 보관하고 있는데 사인란이 비어 있더라고. 그 말을 그 사람은 형용사 없이 썼다.
한성철은 편지를 접었다가 다시 폈다. 셋째 줄만 다시 읽었다. 십이월 삼일이면 그가 창구에서 신청서를 주워 든 날보다 나흘 뒤였다.
그 나흘 동안 그는 창구를 두 번 더 찾아갔다. 두 번째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고 같은 말을 했다.
그날 저녁 그는 사무실에 남아 봉투 뒷면에 이십 일이라고 썼다. 십이월 삼일에서 이십삼일까지가 이십 일이었다. 그는 그 계산을 두 번 했다. 두 번 다 맞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나라의 큰일을 한다고 이웃에 말하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작년 봄 평양 집에서였다. 그때 그 사람은 아들의 왼손을 끌어다 등불 아래 놓고 손톱이 왜 이러냐고 물었다. 그는 화학약품을 다뤄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량현식이 도면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스물다섯이었고, 이 년 전 여름에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신입 조작공이었고, 지금은 조작할 계통이 없어서 서류 심부름을 했다.
"과장 동지, 배기계통 도면은 삼 호실에 있답니다."
"수고했소."
량현식이 돌아서다가 멈추고 손수건을 꺼내 입을 닦았다. 두 번 닦고, 손수건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접을 때 안쪽이 안으로 가게 접었다.
"이가 좀 흔들립니다. 잇몸이 상했는지."
"병원에 가 봤소?"
"영양이 부족해서 그렇답니다. 다들 그렇다고."
"가 보시오. 내가 말해 두겠소."
"예."
량현식이 문고리를 잡고 한 번 더 돌아섰다.
"과장 동지, 삼 호실 도면은 언제 쓰는 겁니까. 계통을 다시 돌리는 겁니까."
"아직 아니오."
"예. 알겠습니다."
문이 닫혔다. 한성철은 책상에 놓인 발주 목록 초안을 내려다봤다. 원격 세정 장치, 이온교환 흡착제, 고성능 필터 사십 조, 배기덕트 교체용 강재. 품목마다 규격을 그가 직접 적어 넣었다. 이 목록은 베이징으로 갈 것이고, 물건은 오지 않을 것이고, 그래도 규격은 정확해야 했다.
캐비닛 셋째 칸 뒤쪽에 반려 서류철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꺼내 뒤에서부터 넘겼다. 찾는 것은 앞쪽에 있었다. 1994년 6월 21일. 산 회수 증발기 계통 온도지시 이중확인 요청. 그의 필적, 그의 서명. 오른쪽 위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고 그 밑에 사유가 한 줄 적혀 있었다.
공정 지연 우려.
그는 그 다섯 글자를 오래 봤다. 그 다섯 글자를 쓴 사람의 필적을 그는 알고 있었고,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 종이가 무엇을 막았을지 그는 알지 못했다. 계기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셀 안에 있고, 셀 안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그는 그것을 여러 번 생각했고 매번 같은 자리에서 멈췄다. 남은 것은 종이 한 장뿐이었다.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은 비어 있었다.
연필로 썼다.
최영준.
로성근.
량현식.
거기서 손이 멈췄다. 세 사람 중 둘은 죽었고 하나는 살아서 서류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같은 줄에 세워도 되는 것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한 줄을 비웠다.
그다음 줄에 자기 이름을 썼다. 쓰고 나서 다시 봤다. 비운 한 줄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하지 않은 채로 비워 둔 것이었다. 아직 아니라는 뜻인지, 나는 저쪽이 아니라는 뜻인지.
그는 연필을 놓고 종이를 도로 뒤집었다. 앞면이 위로 오게 놓고, 서류철에 끼우고, 캐비닛 문을 닫았다. 문이 잘 닫히지 않아서 두 번 밀었다.
1996년 12월 · 지린성 도문, 시장 뒷골목과 강변
아이들은 앉아 있었다.
도문 시장 뒤쪽, 생선 상자를 쌓아 놓은 골목 안이었다. 벽에 등을 붙이고 나란히 넷이 앉아 있었는데, 서 있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나이 아이들은 보통 서 있거나 뛰거나 둘 중 하나다.
옷은 어른 것이었다. 소매를 접어 올린 게 아니라 그냥 손이 안 보이게 두고 있었다.
그중 둘은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자세는 아니었다. 자는 사람은 고개가 옆으로 떨어지는데 그 둘은 턱을 가슴에 붙이고 있었다.
상자를 실은 손수레가 골목으로 들어왔는데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미는 남자가 손잡이를 꺾어서 아이들 앞으로 반 미터쯤을 비켜 갔다. 비키면서 아래를 보지 않았다. 그 반 미터는 아주 익숙한 반 미터였다.
상인들은 쫓지 않았다. 주지도 않았다. 국수 파는 데서 그릇을 부시고 남은 물을 버릴 때, 골목 쪽으로 버리지 않고 반대편 하수구에 버렸다. 그것이 정해진 규칙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십 분쯤 서 있으면서 그 규칙이 언제부터 있었을지 생각했다.
시장을 빠져나오는데 하나가 따라왔다.
열 걸음쯤 뒤였다. 내가 서면 섰다. 걸으면 걸었다. 두 번 서 봤고 두 번 다 그랬다. 세 번째에 내가 돌아섰다.
여자아이였다.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가위로 자른 게 아니라 뜯어낸 것처럼 길이가 제각각이었다. 신은 어른 운동화였고 끈 대신 노끈을 꿰어 발목에 둘렀다.
"밥 먹었니."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봤다. 눈이 컸다. 얼굴이 작아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손을 내밀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손을 내밀면 얼마를 줄지 그 사이에 정해 놓기까지 했다. 십 위안. 아이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나는 아이가 손을 내밀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손을 내밀면 얼마를 줄지 그 사이에 정해 놓기까지 했다. 십 위안. 아이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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