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제3부 여름
13화제18장 65만
용산의 연합사 지하 회의실은 창이 없어서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브리핑 스크린에 영변 단지의 도면이 떠 있었고, 그 옆 스크린에는 다른 것이 떠 있었다. 군사분계선 이북의 야포와 방사포 진지들이었다. 붉은 점이 너무 많아서 개별로는 보이지 않고 띠처럼 보였다.
"이백사십밀리 방사포와 백칠십밀리 자주포입니다." 정경영 중령이 지시봉을 들었다. "갱도에 들어가 있고, 사격 후 다시 들어갑니다. 서울 도심까지 사거리 안입니다."

프랭크스 소장이 팔짱을 낀 채로 그를 보았다.
"중령, 그 얘기는 지난달에 들었소."
"장사정포 대책이 없으면 북한 핵시설 폭격은 불가합니다." 정경영이 같은 문장을 다시 말했다. "폭격과 동시에 저것을 제압해야 합니다. 칠공군 F-16의 랜턴이면 야간 저고도로 갱도 입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해야 합니다. 순차로는 안 됩니다."
"불가라는 말을 이 방에서 쓰지 마시오." 프랭크스가 팔짱을 풀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러 여기 앉아 있는 거요."
"저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경영이 지시봉을 내리지 않았다. "첫 삼십 분입니다. 삼십 분 뒤에 우리가 그 진지들을 다 잡는다고 해도, 그 삼십 분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방 뒤쪽에서 미군 대령 한 사람이 수첩을 펴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경영이 말한 것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사거리, 갱도, 동시. 세 단어에 밑줄을 그었다.
럭 사령관은 회의가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며칠 전에 워싱턴으로 올려 보낸 숫자는 이미 그의 손을 떠났고, 지금 그것은 그가 앉아 있는 방보다 훨씬 먼 곳에서 읽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도, 다음 날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예비군 소집 통지는 인쇄되지 않았다. 항모는 항로를 바꾸지 않았다. 정경영의 수첩은 그의 서랍으로 돌아갔고, 미군 대령의 수첩은 어딘가로 갔다. 레이니의 종이는 서랍 안에서 잠긴 채로 있었고, 청와대 응접실의 메모지는 정종욱이 접어서 안주머니에 넣었다.
용산의 지하 회의실에서 불이 꺼졌다. 스크린 두 개가 동시에 어두워지면서, 영변의 도면과 붉은 점의 띠가 같은 속도로 사라졌다.
1994년 6월 15일~18일 · 평양 금수산의사당 / 대동강 유람선
콘크리트 턱은 생각보다 낮았다. 높이가 발목쯤 되는 그 선을 넘는 데 필요한 것은 한 걸음이었다.
지미 카터는 로절린의 팔을 잡지 않았다. 잡으면 사진이 달라진다는 것을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아내가 먼저 넘고 그가 뒤따랐다. 남쪽에 남아 있던 미군 헌병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고, 북쪽에서는 인민군 장교 둘이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
주머니 속에 국무부의 지시가 접힌 채로 들어 있었다. 협상하지 말 것. 그는 그 종이를 워싱턴을 떠나기 전에 세 번 읽었고, 세 번 다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협상하지 말라는 말은 듣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대통령 부부를 모시겠습니다." 장교 하나가 말했다.
"전직입니다." 카터가 정정했다. "저는 지금 아무 직책이 없습니다."
장교는 그 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다시 인사를 했다.
승용차가 개성을 지나 평양으로 달리는 동안 그는 창밖을 보았다. 논은 물이 잡혀 있었다.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있었고, 소가 아니라 사람이 끄는 쟁기가 두 번 지나갔다.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어서, 이따금 마주 오는 트럭 한 대가 사건처럼 느껴졌다.
"칠십 년대 우리 조지아하고 비슷하군요." 그가 통역에게 말했다.
통역은 그 말을 옮기지 않았다.
로절린이 그의 소매를 짧게 건드렸다. "직책이 없어서 온 거잖아요."
"그렇지." 카터가 말했다. "직책이 있는 사람은 저 선을 못 넘어."
평양 시내로 들어서자 넓은 길이 나왔다. 광복거리라고 했다. 아파트가 줄지어 서 있었고 창마다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자전거가 거의 보이지 않는 큰길이었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걸음이 하나같이 빨랐다.
김일성은 층계참까지 나와서 기다렸다. 여든두 살이었고 그해 여름 무릎이 좋지 않았지만, 그는 앉아서 손님을 맞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My old friends!"
그는 영어로 그렇게 말하고 두 손을 내밀었다. 손등에 검버섯이 있었고, 손가락 관절이 굵었다. 카터가 그 손을 잡았을 때 노인의 악력은 예상보다 셌다.
회담장에 앉아서 그는 이 미국인이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생각했다. 대통령이 아닌 사람을 보냈다는 것은 두 가지를 뜻한다. 첫째, 저쪽은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둘째, 저쪽은 문을 열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다.

강석주가 옆자리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소리가 났다. 김일성은 그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우리에게 핵무기는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을 만들 생각도 없었고, 만들 능력을 가지고 뭘 하겠습니까. 다만 우리도 전기가 있어야 합니다. 흑연로 말고 다른 것을 주시오. 경수로를 주면 우리는 지금 것을 다 세우겠습니다."
카터가 사찰관 이야기를 꺼냈다. 감시 장비, 봉인, 연속성.
"내보내지 않겠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카메라도 그대로 두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흔 해 전에 이 나라를 잿더미에서 다시 세운 손이고, 요즘은 서류의 잔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강석주가 대신 읽어 주는 손이다. 이 방에서 오늘 정해지는 것들이 십 년 뒤에 어떻게 되어 있을지는 그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남쪽 대통령도 만나겠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언제든지. 조건도 걸지 않겠습니다."
카터가 고개를 들었다. 노인은 그 반응을 보았고, 자기가 방금 무엇을 주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십 년을 미뤄 둔 물건은 아무 때나 꺼내는 것이 아니라 값이 가장 높을 때 꺼내는 것이다.
"내일은 배를 탑시다." 그가 말했다. "대동강이 이맘때가 제일 좋습니다."
수행 통역은 그날 저녁 초대소 복도에서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카터가 전화기에 대고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상대는 워싱턴이 아니라 애틀랜타였다. 케이블 방송의 기자였고, 이름은 블리처라고 했다. 통역은 문밖에 서서 들었다. 회담이 끝난 지 네 시간이었고, 회담록은 아직 정서되지도 않았다.
"약속하셨습니다." 카터가 말하고 있었다. "사찰관을 추방하지 않고, 영변의 감시를 계속 허용하시겠다고."
그 문장이 수화기를 타고 나가서, 위성을 두 번 거쳐, 전 세계의 거실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통역은 계산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튿날 배 위에서는 바람이 좋았다. 유람선은 대동강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갔고, 오른쪽 강안으로 아파트들이 지나갔다. 물빛은 흐렸다. 여름 강물은 언제나 무언가를 밀고 내려간다.
선실 안쪽에서 확대회담이 열렸다. 통역은 노인의 오른쪽 뒤에 앉았다. 문장은 길지 않았고, 그는 세 시간 동안 자기가 옮긴 문장 수를 속으로 세었다.
갑판으로 나왔을 때 카메라가 이미 돌고 있었다.
카터가 카메라를 향해 서서 말했다.
"미국은 유엔에서의 제재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통역은 그 문장을 두 번 들었다. 두 번 다 같은 문장이었다. 오늘 오전 회담에서 미국인이 한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오전에 그는 제재 결의안 협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고, 통역은 그 문장을 옮기면서 협의라는 단어를 골랐다.
그는 수첩을 꺼내 카터가 방금 한 말을 영어 그대로 적었다. 옮기지 않고 적었다. 옮기면 그것은 해석이 되지만, 그대로 적으면 그것은 증거가 된다.
강석주가 갑판 문 옆에 서 있었다. 표정이 바뀌지 않았고,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 통역에게는 충분한 대답이었다.
선실에서 노인이 나왔다. 카메라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노인은 손을 들어 강 건너를 가리키며 무언가를 설명했고, 통역이 옮겼다. 저 아래가 어디고 그 너머가 어디라는, 배를 탄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종류의 말이었다.
그 말이 옮겨지는 동안에도 카메라는 돌고 있었다. 통역은 자기 목소리가 저 기계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 목소리가 어디까지 갈지는 알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배가 방향을 틀자 물살이 뱃전에 부딪혔다. 강물은 계속 아래로 흘렀다. 미국인 노인이 이 강 위에서 한 문장은 위성을 타고 곧바로 워싱턴에 도착했고, 워싱턴은 카메라 앞에 나와 그것을 바로잡아야 했다. 그 이틀 사이에 무엇이 어디로 옮겨졌는지는 아무도 장부에 적지 않았다.
유월 십팔일 오후, 통역은 팩스실로 불려 갔다.
종이 한 장이었다. 원자로에 새 연료를 넣지 않고, 방금 꺼낸 폐연료를 재처리하지 않으며, 국제원자력기구가 안전조치의 연속성을 유지하도록 허용한다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그는 영문본의 철자를 두 번 확인했다.
"이거이 조약입니까." 팩스실 직원이 물었다. 스물 몇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아니오."
"그럼 뭡니까."
통역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조약이 아니고, 성명도 아니고, 합의서도 아니었다. 서명란이 없는 종이였다.
기계가 종이를 물고 들어갔다. 신호음이 길게 났다가 끊겼다. 종이는 반대쪽으로 다시 밀려 나왔고, 그 사이에 문장은 이미 강 건너로 가 있었다.
통역은 밀려 나온 종이를 집어 들었다. 방금 보낸 것과 똑같은 종이였고, 무게도 똑같았다.
통역은 밀려 나온 종이를 집어 들었다. 방금 보낸 것과 똑같은 종이였고, 무게도 똑같았다.
남은 30화 · 약 108,388자 · 약 2시간 35분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