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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제56장 보고서

· 43화 중 39화 · 3,327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첨부 제3호는 오래된 문서의 복사본이었다.

1996년 8월. 해외공작실 자체감사 결과. 열두 쪽.

영변 39화 제56장 보고서 — 헤더컷

내용은 간단했다. 1994년 오월 삼십일 다롄에서 체결된 계약 건과 관련하여, 승인된 조치 외에 두 건의 규격 미달 납품이 동일 경로로 반입된 사실이 확인됨. 두 건은 우리 기관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며 현지 중개인의 상행위로 판단됨. 조치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별도 조치 없음. 관련자 통보 불요.

관련자가 누구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열두 쪽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고, 대신 부호가 하나 있었다. 1993년 삼월부터 그 부호가 나를 가리켜 왔다.

마지막 장 결재란에 도장이 셋 있었다. 가운데가 윤성복. 맨 위가 정만호였다.

나는 그 도장을 오래 보았다. 인주가 번져서 테두리가 조금 뭉개져 있었다. 도장이 뭉개지는 건 세게 눌렀거나 급하게 눌렀거나 둘 중 하나다.

1996년 팔월이면, 오세환이 죽고 넉 달 뒤다.


십일월에 정만호를 만났다. 그도 재소집되어 나와 있었다. 직함이 없는 자리였다. 나이가 든 사람이 나이가 든 만큼 필요해지는 시기가 있다.

우리는 청사 뒤편 벤치에 앉았다. 볕이 안 드는 쪽이었다. 발치에 낙엽이 쌓여 있었고 그는 그것을 구두 끝으로 한쪽에 모았다가 도로 흩었다.

"읽었나."

"읽었습니다."

"그러면 됐어."

"두 건은 언제 아셨습니까."

"구십육 년 팔월에."

"그때 저는 베이징에 있었습니다."

"알아."

"왜 말 안 했습니까."

그가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병원에서 끊으라고 했다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말했으면 자네가 뭘 했겠나."

나는 대답을 준비해 두었었다. 준비해 둔 것이 세 가지였고 그 자리에서 세 개 다 쓸모가 없었다. 나는 회사를 접었을 것이다. 아니면 접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왕더셩한테 물었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때 알았으면 지금 다르게 살고 있었겠지." 정만호가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그런데 다르게 산 자네가 지금 자네보다 나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나. 나는 못 해."

그는 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예전보다 짧아져 있었다.


십이월, 박두철이 나를 전방으로 데려갔다.

임진강은 가장자리만 얼어 있었다. 다리 위로 차가 북쪽으로 갔다. 군용 트럭이 아니라 관광버스와 사료 운반차와 흰색으로 도색한 구급차였다. 완장을 찬 사람들이 탔고 총은 없었다. 버스 옆구리에는 관광회사 이름이 아직 붙어 있었다. 떼어 낸 자국이 아니라 그냥 붙은 채였다.

"구월에 회의가 여러 번 있었어." 박두철이 난간에 팔을 얹고 말했다. "넘자는 안이 세 개 나왔는데 다 같은 데서 막혔다."

"장사정포입니까."

"장사정포하고 중국." 그가 입김을 뱉었다. "1994년에 연합사에서 그 말 했다가 미국 사람한테 목 잡힌 중령이 있었어. 우리 쪽 연락장교였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그 사람 말을 안 막았다. 오 년 만에 같은 말이 나왔고 이번엔 그게 결론이었어."

"넘지 않는데 저 차들은 뭡니까."

"넘는 거지. 군대가 안 넘는 거야." 그가 나를 보았다. "너 그 보고서 읽었다며."

"읽었습니다."

"어땠어."

나는 강을 보았다. 답을 넉 달 기다렸고 받았고, 받아 보니 그 안에 번호가 셋 붙어 있고 그중 하나만 내 것이었다. 나머지 둘이 없었으면 그 일이 일어났겠는지는 그 종이도 모른다고 적혀 있었다. 40에서 80이라는 숫자를 나는 그 뒤로 자주 생각하게 된다. 폭이 마흔이다.

"모르겠다."

"뭘 모르겠어."

버스 한 대가 다리 위에서 속도를 줄였다. 얼음이 붙지 않은 가운데로 물이 흘렀다. 나는 그 물이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 한참 보고 있었다.


2000년 8월 15일과 10월 3일 · 평양 · 애틀랜타 · 서울

투표소는 락랑구역 제7인민학교 삼학년 교실이었다. 칠판을 떼어 낸 자리에 네모난 그림자가 남아 있었고, 그 앞에 최옥분이 명부를 펴 놓고 앉아 있었다.

"통일거리 삼십이호동, 리향미."

"예."

"도장 있소?"

"손도장 찍으라 하지 않았습니까."

영변 39화 제56장 보고서 — 전환컷

"오늘부터 둘 다 된다오. 도장도 되고 손도장도 되고."

최옥분은 이름 옆에 연필로 짧은 선을 그었다. 인민반 회의 참석부를 정리하던 손버릇 그대로였다. 그녀는 열두 해 동안 이 동에 사는 사람을 세었다. 세는 방식을 바꾸라는 말은 아직 아무한테서도 듣지 못했다. 명부의 첫 장에는 1993년에 등록된 이름들이 있었고, 그중 스무 개쯤에 다른 사람의 글씨로 가로줄이 그어져 있었다. 줄만 있고 사유는 없었다.

줄은 복도까지 나와 있었다. 앞쪽의 노인이 종이를 자꾸 뒤집어 보았다. 앞면에 두 줄이 인쇄돼 있고 뒷면은 비어 있었다.

"둘 중에 하나만 찍으라는 게요?"

"예."

"안 찍으면 어찌 되오."

"그것도 됩니다. 종이는 통에 넣고 나오시오."

"그런 게 어디 있나."

"이제 그런 게 있습니다."

노인은 종이를 접었다 폈다 하다가 커튼 안으로 들어갔다. 커튼은 창문 것을 잘라 만들어서 무릎 아래가 비었다. 교실 뒤에 외국인 둘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여자였고 팔에 파란 완장을 찼다.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시계를 자주 보았다. 통역이 옆에서 팔짱을 끼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여자가 통역에게 뭔가를 물었고, 통역이 최옥분에게 옮겼다.

"명부에 없는 사람이 오면 어떻게 하시느냐고 물으십니다."

"없는 사람이 왜 오갔소."

통역은 그 대답을 옮기다 말고 한 번 고쳐 말했다. 여자는 수첩에 두 줄을 적었다.

리향미의 차례가 왔다. 커튼 아래로 그녀의 신발이 보였다. 뒤축을 세 번 고쳐 댄 신발이었다. 나오는 데 십 초가 걸리지 않았다.

"다 했소?"

"쌀이 어제보다 삼 원 올랐습데다."

"오늘 같은 날에도?"

"오늘 같은 날이니까 오르지요. 사람이 다 나오면 장이 늦게 서니까."

"명일이는."

"열 살이라 안 된답데다. 데리고 오지 말라 해서."

그녀는 자전거를 세워 둔 담장 쪽으로 갔다. 안장에 얹어 둔 자루 안에서 뭔가가 한 번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고, 그녀는 그것을 손등으로 눌러 자리를 잡아 주었다. 그녀가 무엇에 찬성했는지는 그 교실의 누구도 보지 못했다.


애틀랜타의 회의실은 에어컨이 오후 내내 소리를 냈다.

보고서 초안은 열한 쪽이었다. 참여 71퍼센트, 찬성 83퍼센트. 투표소 천사백열두 곳 중 감시단이 실제로 들어간 곳은 아흔여섯 곳. 후보도 정당도 없었고 문항은 하나였다. 반대를 조직할 수 있는 법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선거인명부의 바탕이 1993년 인구조사와 1999년 이후의 구호 등록부라는 것. 그 등록부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몇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세 번째 항목은 빼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실무자가 말했다. "숫자를 모른다고 쓰면 얼마인지 묻습니다."

"그러면 모른다고 대답하면 됩니다."

"기자들이 그걸로 기사를 씁니다."

"그것도 기사가 될 값어치가 있습니다."

책상 위에 투표소 사진이 열댓 장 널려 있었다. 어느 사진에서도 줄이 흐트러져 있지 않았다. 그것이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를 두고 감시단 안에서 이틀을 다퉜고, 결론은 나지 않았다.

실무자가 결론 문단을 두 가지로 만들어 왔다.

"하나는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판단할 수 없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입니다."

"둘이 다릅니까."

"법률 쪽에서는 다르다고 합니다. 앞엣것은 감시단의 한계에 대한 진술이고, 뒤엣것은 사실에 대한 진술입니다."

일흔 중반의 남자가 안경을 고쳐 썼다. 여섯 해 전 여름 그는 대동강의 배 갑판에 서 있었고,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고, 그때는 서명할 것이 없었다. 그날 그가 한 말은 그날 저녁에 워싱턴이 정정했다.

"뒤엣것으로 하세요."

"서울에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좋아하라고 보내는 게 아닙니다."

그는 서명란에 이름을 썼다. 그 문장에 서명한 것이지 그 결과에 서명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것은 승인이 아니었다. 보고서는 8월 28일에 발송되었고, 9월 초에 접수되었다.


10월 3일 서울은 흐렸다가 오후에 갰다.

경축식에서 대통령은 헌법 제3조를 소리 내어 읽었다. 넉 줄이었다. 4월 30일 기본조약에 서명한 평양 임시행정위원회 위원 가운데 선거로 뽑힌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그 사실은 그날 어느 연설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조약의 국문본과 조선문본은 문장이 두 군데 달랐다. 그 두 군데를 아는 사람은 양쪽을 합쳐 열 명 안팎이었다.

정부 대변인은 국제감시단의 유보 의견을 "참고 의견으로 접수했다"고 밝혔다. 저녁 뉴스에서 그 문장은 열두 번째 꼭지였고, 길이는 사십 초였다. 그 앞뒤로는 통일세 시행 시기와, 다음 해 예산에서 지방 도로 사업이 얼마나 밀리는지가 나왔다.

시청 앞에는 사람이 나와 있었다. 태극기를 든 사람과 들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었고, 확성기 소리가 두 방향에서 겹쳤다. 한쪽에서는 축하한다고 했고 다른 쪽에서는 세금 이야기를 했다. 지하철 입구 옆에서 노점이 만세 삼창 대신 오징어를 구웠다. 한 사진기자가 밤에 필름을 확대해 놓고 세어 보았다. 한 컷에 얼굴이 예순셋 들어 있었고, 웃는 얼굴이 마흔하나였다. 나머지는 웃지 않았다. 그는 그중 웃는 쪽만 잘라서 송고했다.

시청 앞에는 사람이 나와 있었다. 태극기를 든 사람과 들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었고, 확성기 소리가 두 방향에서 겹쳤다. 한쪽에서는 축하한다고 했고 다른 쪽에…

남은 4화 · 약 15,548자 · 약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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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전 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