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IONTOON

21화제30장 두 끼

· 43화 중 21화 · 3,414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이월에 배급소 창구가 닫혔다.

닫혔다는 안내는 붙지 않았다. 셔터가 절반쯤 내려와 있고 그 아래로 안이 조금 보이는데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 앞에 섰다.

영변 21화 제30장 두 끼 — 헤더컷

리향미도 섰다. 오전 아홉 시에 가서 열한 시까지 있었다. 앞에 열두 명, 뒤에 스무 명쯤이 있었고 줄은 줄지 않았다. 아무도 셔터를 흔들지 않았고 아무도 언제 여느냐고 소리치지 않았다. 서 있는 것 자체가 그날의 일과였다.

옆에 선 노인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작년 시월에도 이랬는데 열흘 만에 났었지."

리향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작년 공급 기준은 하루 사백칠십 그램이었다. 정월부터 사백이십 그램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 수는 표에 적힌 수고, 실지로 받은 것은 십일월에 열이틀분, 십이월에 아흐레분이었다. 정월에는 엿새분이 나왔다. 이월에는 아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삼월에 한 번 창구가 열렸다. 리향미가 표를 내밀었더니 안에서 표를 받아 도장을 찍고 도로 내주었다. 물건은 주지 않았다.

"이건 뭡니까."

"확인 도장입니다." 안에 앉은 여자가 말했다. "나중에 소급합니다."


집에 돌아와 배급표를 세었다.

봉투가 세 개다. 스무날치, 열흘치, 그리고 나머지. 종이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세어 봉투에 나누는 것은 시집온 해부터 해 온 일이다. 손이 먼저 안다. 손은 종이를 만지는 동안 무게를 계산하고 있다. 스무 장이면 며칠, 그 며칠에 옥수수가 몇 킬로.

그날은 종이만 세었다. 손끝에 남는 것이 종이뿐이었다.

명일이가 방에서 자고 있었다.

아이는 여섯 살이다. 작년 가을에 사 준 신발이 아직 맞는다. 발이 자라지 않았다. 리향미는 그것을 시월에 알았고, 그때는 신발이 크게 나왔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불을 걷고 아이 정강이를 손가락으로 눌러 봤다. 자국이 남았다. 셋을 셀 동안 남아 있다가 천천히 돌아왔다. 배는 조금 나와 있었다. 팔뚝에는 전에 없던 잔털이 서 있었다. 머리카락은 색이 바래서 등불 아래서 누렇게 보였다.

배가 고프다고 하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대신 잘 잔다. 아침에 깨우면 눈을 뜨고도 한참 누워 있다.

리향미는 자기 손톱을 봤다. 세로로 줄이 가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달거리가 없다. 계단을 삼층까지 올라오면 층계참에서 한 번 서야 하고, 설 때마다 눈앞이 잠깐 하얘졌다가 돌아온다.

몸이 먼저 안다. 몸은 말로 하지 않고 그냥 바꿔 버린다.


삼월 열이렛날 저녁에 최옥분이 문을 두드렸다.

세대 확인이라고 하고 들어와서, 방 안을 한 바퀴 보고, 수첩에 적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수첩을 덮었다.

"한 기사 동지는 아직 안 옵니까."

"영변에 있습니다."

"거기는 공급이 나온답디까."

"모릅니다."

최옥분이 잠깐 말이 없었다. 이 여자는 십 년 동안 이 동의 세대주 이름과 식구 수와 손님 잔 날짜를 다 적어 온 사람이다. 리향미는 이 사람 앞에서 말을 고르는 습관이 있다.

"향미 동무." 최옥분이 목소리를 낮췄다. "락랑시장 있잖소. 그 뒤 골목에."

"압니다."

"오전에 나가 보시오. 열 시 전에."

"거긴 단속 안 합니까."

"작년까지는 했지." 최옥분이 일어섰다. "요새는 단속 나갈 사람도 밥을 못 먹소."

문 앞에서 그가 한 번 더 말했다. "이불 같은 거 말고 팔 만한 게 있으면 그런 걸 가지고 가시오. 이불은 겨울에 또 오니까."


이튿날 아침에 나갔다.

골목이라기보다 담과 담 사이였다. 보자기를 편 사람이 스무 명쯤 되고 그중 열여덟이 여자였다. 남자는 둘인데 하나는 늙었고 하나는 다리가 불편했다. 나머지 남자들은 공장에 나가 있다. 기계가 돌지 않아도 출근은 해야 한다.

보자기 위에 놓인 것은 다 집에서 나온 물건이었다. 밥그릇, 아이 옷, 문고리, 이 나간 사기대접, 한 짝만 남은 구두, 재봉틀 발판. 파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이 많았다.

골목 어귀에 여자아이가 하나 서 있었다. 열 살쯤 됐는데 아무것도 팔지 않고 큰길 쪽만 봤다.

"저건 저 집 딸인데 망보는 게 일이오." 옆자리 여자가 말했다. "밥값은 받소."

리향미가 가져간 것은 시집올 때 받은 놋대야 하나와 남편의 여름 양복 한 벌이었다.

옆자리 여자가 값을 알려 주었다. 놋은 무게로 치고 옷은 눈으로 친다고 했다.

한 시간쯤 앉아 있다가 놋대야를 팔았다. 사 간 사람은 옥수수를 자루에 담아 왔다. 저울이 없어서 됫박으로 쟀다. 여섯 되였다. 양복은 팔리지 않아서 도로 싸 왔다.

돌아오는 길에 리향미는 자루를 두 손으로 안고 걸었다. 무게가 손에 익지 않았다. 그리고 걸으면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여섯 되면 두 사람이 스무날. 그 다음에 무엇을 내다 팔 것인지, 집에 있는 물건들이 순서대로 떠올랐다. 재봉틀, 시계, 겨울 외투, 그릇. 순서가 정해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집 앞 계단에서 한 번 서서 숨을 골랐다. 눈앞이 하얘졌다가 돌아왔다.


영변 21화 제30장 두 끼 — 전환컷

1996년 4월 3일 ~ 4월 20일 · 단둥 / 선양 / 베이징 / 부산

전화벨이 두 번 울리고 끊겼다가 다시 울렸다.

왕더셩이었다. 그는 인사를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강 사장, 지금 앉아 있소?"

"앉아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오 대리가 사고를 당했소. 단둥 서쪽 도로에서. 트럭이오."

나는 앉아 있었다. 앉아 있으라고 해서 앉아 있었던 것인데, 앉아 있으니까 일어설 수가 없었다.

"살아 있습니까."

"아니오."


이튿날 오후에 그 도로에 섰다.

단둥에서 봉성 쪽으로 나가는 이차선이었다. 오른쪽은 밭이고 왼쪽은 낮은 둑이다. 곧고, 넓고, 멀리까지 보였다. 사월 초라 밭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고 흙먼지가 낮게 날렸다.

노면에 기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사고 처리를 한 자리라고 공안이 알려 주었다. 나는 그 앞뒤로 이십 미터쯤을 걸었다.

브레이크 자국이 없었다.

한 줄도 없었다. 이런 길에서 앞에 사람이 있으면 밟는다. 밟고 나서 치더라도 밟는다. 자국이 없다는 것은 밟지 않았다는 것이고, 밟지 않았다는 것은 못 봤거나 안 봤거나 둘 중 하나다. 곧고 넓고 멀리까지 보이는 길에서.

나는 군에서 사고조사를 여섯 번 해 봤다. 자국을 재는 법을 배웠고, 자국이 없을 때 무엇을 적어야 하는지도 배웠다.

공안 조서에는 대형 화물차가 뺑소니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목격자 없음. 차량 미확인. 사망 시각 추정 십구 시 사십 분경.

나흘 만에 사건이 종결됐다.

그 도로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것 하나다. 자국이 없었다는 것. 지금도 그 밭의 색이나 둑의 높이는 기억나지 않는다.


저녁에 왕더셩과 밥을 먹었다. 그는 술을 시키지 않았다.

"강 사장, 한마디 하겠소." 그가 젓가락을 놓았다. "이 동네에서 사람이 차에 치이는 건 흔한 일이오. 흔한 일을 흔하지 않게 보기 시작하면 장사를 못 하오."

"선생님은 흔한 일로 보십니까."

"나는 봐야 할 것만 보오. 삼십 년 밥벌이가 그거요."

창밖으로 강이 보였다. 얼음이 풀린 지 얼마 안 됐다. 요새 저 강을 건너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그가 말했다. 겨울에는 얼어서 건너오고 봄에는 얕은 데를 골라 건너온다고. 잡히면 도로 넘겨보내는데 넘겨보내면 또 온다고 했다.

"작년 가을부터는 애들이 옵니다." 상을 치우던 식당 여자가 말을 보탰다. "문간에 서 있다가 남은 밥을 달라고 그러오. 말도 안 하고 그냥 서 있소."


영안실은 단둥 시내 병원 뒤채였다.

유품은 서류봉투 하나에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 자리에서 열었다.

삐삐 하나. 중국에서 산 것이다. 화면에 마지막 호출 번호가 남아 있었는데 단둥 국번이었고, 나중에 그 번호로 열 번 넘게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열쇠 두 개. 사무실 것하고 숙소 것.

담배 반 갑. 볼펜. 인민폐 삼백구십 위안.

그리고 종이 한 장. 접어서 지갑에 넣어 다닌 것이라 접힌 자리가 하얗게 닳아 있었다. 펴 보니 전화번호였다. 부산 국번. 그 밑에 볼펜으로 어머니라고 적혀 있었다.

우전국에 가서 국제전화를 걸려면 번호를 종이에 적어 창구에 내야 한다. 자기 집 번호를 외우고 있어도 종이는 있어야 한다.

봉투에 다시 넣는데 손이 잘 안 들어갔다.


선양에서 사흘을 보냈다.

화장 절차와 유해 반출 서류가 거기서 났다. 베이징 대사관에서 사람이 내려와 서류를 봐 주었다. 그 사람은 오세환을 몰랐고, 나를 회사 대표로만 알았고, 성실했다. 서류에 사인할 때마다 나는 오세환의 이름을 적었다. 회사 직원 오세환. 생년월일 천구백육십일년.

셋째 날 오후에 화장장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남자 하나가 옆에 와 섰다.

마흔 줄이고, 회색 점퍼를 입었고, 손이 컸다. 담배를 물었는데 불을 붙이지 않았다.

"고인은 몇 살입니까." 그가 조선말로 물었다. 억양이 조선족 같지는 않았다.

"서른다섯입니다."

"젊습니다." 그가 말했다. "안됐습니다."

우리는 이 분쯤 나란히 서 있었다. 그가 두 번째로 입을 열었을 때 나는 그가 무슨 말이든 위로를 마저 할 줄 알았다.

"구십사년 유월에," 그가 말했다. "화차는 잘 갔습니까."

나는 담배를 든 채로 그를 봤다.

그는 나를 보지 않고 마당 건너편 굴뚝을 보고 있었다. 얼굴에 아무것도 없었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위협하는 것도 아니고, 날씨 얘기를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물었던 담배를 도로 갑에 넣고 걸어갔다. 이름을 대지 않았고 나도 묻지 못했다.

마당을 다 건너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문 밖에 회색 승용차가 서 있다가 그를 태우고 나갔다. 번호판을 보려고 몸을 돌렸을 때는 담배가 다 타서 손가락이 뜨거웠다.

마당을 다 건너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문 밖에 회색 승용차가 서 있다가 그를 태우고 나갔다. 번호판을 보려고 몸을 돌렸을 때는 담배가 다 타…

남은 22화 · 약 79,658자 · 약 1시간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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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전 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