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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제39장 셈

· 43화 중 27화 · 3,780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오른쪽에 무엇을 쓸지가 문제였다.

나는 아는 것만 쓰기로 했다.

영변 27화 제39장 셈 — 헤더컷

작년 곡물 생산 이백오십만 톤. 그중 쌀이 구십팔만, 강냉이가 팔십삼만. 이 숫자는 홍콩 중개상이 유엔 자료라고 하면서 팩스로 넣어 준 것이다. 정확한지는 모른다. 다만 재작년에 삼백오십만이었다고 하고 그전에는 칠백만이 넘었다고 한다.

배급 사백이십 그램. 이건 무역상들이 다 아는 숫자다. 그리고 재작년 하반기부터 그 사백이십 그램이 종이가 됐다는 것도 다 안다.

인구 이천이백만.

이것도 정확하지 않다. 이천이백만이라는 것은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쓰는 숫자다. 저쪽에서 마지막으로 인구를 센 것이 몇 년인지 나는 모른다.

여기까지 쓰고 계산기를 들었다.

이천이백만에 영 점 사이를 곱하면 하루에 구천이백사십 톤이다. 삼백육십오를 곱하면 삼백삼십칠만 톤. 사백이십 그램씩 일 년을 먹이려면 삼백삼십칠만 톤이 든다는 뜻이다.

있는 것은 이백오십만이다.

빼면 팔십칠만 톤이 모자란다. 그런데 곡물은 다 사람 입으로 가지 않는다. 종자로 남기고 가축을 먹이고 운반하다가 썩는다. 우리 장사에서도 하역 손실을 삼 프로 잡는다. 저쪽 창고 사정이 우리보다 낫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모자라는 것은 팔십칠만보다 많다.

한 사람이 일 년 먹는 양은 백오십삼 킬로다. 팔십칠만 톤을 백오십삼으로 나눴다.

오백육십칠만.

계산기 액정에 그 숫자가 떴다. 나는 그것을 오른쪽 칸에 옮겨 적었다.


여기서 막혔다.

오백육십칠만은 사람 수가 아니다. 사람 몫의 수다. 몫이 없는 사람이 다 죽지는 않는다. 강냉이대를 먹고 도토리를 먹고 산에 올라가고 강을 건넌다. 그리고 그 몫은 골고루 없어지지 않는다. 평양은 덜 없어지고 함경도는 더 없어진다. 도문 강가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회령에서 왔다.

죽은 사람이 몇인지 나는 모른다.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저쪽은 사람을 세는 나라이면서 이런 것은 세지 않는다. 세지 않는 게 아니라 세어서 어디에 적지 않는 것이겠지만, 나한테는 같은 말이다.

작년에 홍콩에서 어떤 사람은 삼십만이라고 했고, 옌지에서 만난 목사는 이백만이 넘는다고 했다. 열 배 차이가 나는 추정을 나는 장사에서 본 적이 없다. 열 배가 벌어지면 그건 추정이 아니라 아무도 안 세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른쪽 칸 맨 아래는 비워 두었다.


다음은 화살표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선을 그으려고 했다. 그으려면 그 사이에 있는 것들을 먼저 적어야 했다. 나는 종이를 돌려서 뒷면에 적었다.

하나, 소련이 없어졌다. 1991년이다. 비료 원료가 끊기고 기름이 끊겼다. 이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둘, 비가 왔다. 재작년 여름 황해도 어느 군에 일곱 시간에 팔백칠십칠 밀리가 왔다고 한다. 압록강이 사흘에 사십팔억 톤을 흘렸다고 한다. 이재민이 오백이십만이라고 한다. 이것도 나와 상관이 없다.

셋, 배급제가 그전에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팔십년대부터 두 번 깎였다. 이것도 아니다.

넷, 전기가 없다. 발전 능력의 팔십오 프로가 죽었다고 한다. 전기가 없으면 비료공장이 안 돌고 양수기가 안 돌고 방앗간이 안 돈다.

넷 중에 셋은 확실히 내가 만들지 않았다.

넷째에서 나는 연필을 멈췄다.

경수로 두 기면 이천 메가와트다. 그게 왔으면 전기가 생겼을 것이다. 제네바에서 저쪽이 받은 것은 중유뿐이고 경수로는 착공이 미뤄졌다. 왜 미뤄졌는지 나는 신문에서 읽은 것밖에 모른다. 다만 저쪽에 팔 물건이 실제로는 없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재작년 겨울에 온 목록과 지난주에 온 팩스가 그 얘기를 하고 있다.

없는 것을 판 사람과, 그것을 없게 만든 사람과, 그 사이에 놓인 협상.

여기서 화살표를 그으면 다섯 번을 꺾어야 한다. 다섯 번 꺾이는 화살표는 화살표가 아니다.

나는 뒷면 맨 아래에 물음표를 하나 찍었다.

장사에는 이런 게 없다. 물건을 보내면 대금이 들어오고 안 들어오면 독촉장을 쓴다. 원인과 결과가 한 칸 건너에 있다. 여기는 아니었다. 여기서는 내가 한 것이 저기 있고 일어난 것이 저기 있는데, 그 사이가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것으로 꽉 차 있었다.

내 몫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얼마인지 모른다는 뜻이다. 영은 아니다. 영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얼마인가.

나는 그 물음을 세 번쯤 다르게 써 봤다. 세 번 다 같은 자리에서 멈췄다.


세 시가 좀 넘어서 재떨이를 비웠다.

종이를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었다. 접힌 데를 손톱으로 눌렀다. 라이터를 켜서 모서리에 댔다.

유리 재떨이는 얇아서 종이가 다 탈 때쯤 뜨거워진다. 나는 그걸 알고 있어서 손을 대지 않고 기다렸다. 종이가 오그라들면서 세로줄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자로 그은 선이라 그런지 그 줄만 늦게 탔다.

종이 타는 냄새는 사무실에서 오래 간다. 나는 창을 손가락 두 마디쯤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밖이 영하 십오 도쯤 됐다.

재가 식는 동안 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

이백오십만. 사백이십. 이천이백만. 삼백삼십칠만. 팔십칠만. 오백육십칠만.

태운 것은 종이지 숫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것들을 순서대로 다시 욀 수 있었고, 지금도 왼다.

책상으로 돌아와 새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자를 대고 가운데에 세로줄을 그었다. 왼쪽 맨 위에 다시 날짜를 적으려다가 연필을 놓았다.

밖에서 청소차가 지나갔다. 물을 뿌리면서 지나가는 차였는데, 이 계절에 뿌린 물은 그 자리에서 얼 것이다.


1997년 1월 하순 · 지린성 도문, 두만강 강변

명분은 잡화였다.

옌지 쪽에서 방한복과 장갑을 대량으로 받아 조선 무역회사에 넘기는 건이 있었고, 단가가 맞으면 붙어 볼 만했다. 나는 그 건을 만들어 놓고 기차를 탔다. 견적은 전화로도 뗄 수 있었다. 전화로 뗄 수 있는 일을 하러 열여덟 시간을 가는 사람은 다른 일 때문에 가는 것이다. 나는 내가 그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도문에 도착하니 눈이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한 달 만이었다. 그사이 날이 크게 한 번 꺾였다고 했다. 옌지에서 버스를 같이 탄 남자가 지난주에 영하 이십팔 도까지 내려갔다고 하면서, 그런 날은 트럭도 시동이 안 걸린다고 했다. 그는 그 얘기를 날씨 얘기로 했다.

역 앞 광장에도 눈이 그대로 있었다. 치운 데는 사람이 다니는 폭만큼만 치워져 있고 나머지는 얼어 굳어 있었다.


영변 27화 제39장 셈 — 전환컷

시장 뒷골목에는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같은 자리였다. 생선 상자를 쌓아 둔 벽 밑, 바람이 덜 드는 쪽. 넷이 아니라 다섯이었다.

얼굴이 달랐다.

나는 골목 입구에 서서 하나씩 봤다. 머리를 뜯어낸 것처럼 자른 아이는 없었다. 큰 아이 하나가 나를 마주 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나머지는 처음부터 안 봤다.

겨울 자세는 조금 달랐다. 시월에는 벽에 등을 붙이고 나란히 앉았는데, 지금은 둘씩 붙어서 서로 옆구리를 대고 앉아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그 안에 얼굴을 넣은 아이가 둘이었다. 그러면 숨이 옷 안에 남는다.

십 분쯤 서 있었다. 손수레가 두 번 지나갔고 두 번 다 반 미터를 비켜 갔다.

가운데 아이가 일어서더니 시장 안쪽으로 갔다. 걷는 게 느렸다. 오 분쯤 뒤에 돌아왔는데 빈손이었고, 돌아와서 아까 그 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고 기다렸던 것이다.


국숫집 주인은 나를 알아봤다.

"오랜만이오. 국수 하시겠소?"

"한 그릇 주쇼."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물었다. 저번에 데리고 왔던 아이. 머리가 짧고, 어른 운동화에 노끈을 꿴 아이.

주인이 냄비 뚜껑을 열면서 대답했다.

"아, 그 애."

"압니까."

"죽었슴다."

물이 끓는 소리가 났다. 주인은 면을 넣고 젓가락으로 저었다.

"언제요."

"보름쯤 됐나. 열흘인가. 강가에서 얼어 죽었다구 하더구만. 그런 날 있잖소, 저번에 갑자기 뚝 떨어진 날."

"확실합니까."

"확실하기야 하지비. 공안이 와서 실어 갔슴다. 아침에."

그 여자는 화를 내지도 않았고 안됐다고 하지도 않았다. 어제 배추값이 올랐다고 말하는 사람의 속도로 말했다. 나는 그 속도를 나무랄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그 골목을 매일 본다.

"어디다 묻습니까."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실어 가면 실어 가는 거지."

국수가 나왔다. 나는 그것을 먹었다. 다 먹었다.

"이름은 압니까."

주인이 행주로 손을 닦았다.

"이름 아는 사람이 어디 있소. 저 애들 이름 다 몰라요. 나이도 모르고."

"저는 압니다."

주인이 나를 봤다. 처음으로 손을 멈추고 봤다.

"그럼 뭐 하시겠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여자는 나를 몰아세운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물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대답이 있는 질문이었고, 나한테 그 대답이 없었을 뿐이다.

여자가 다시 행주를 잡았다.

"올겨울에 이 골목에서만 셋입니다. 저 애까지 셋."

"셋이요."

"내가 아는 게 셋이라는 거고. 아침에 실어 가면 그때나 아는 거지 누가 세고 있겠소."


강가에 나갔다.

두만강은 얼어 있었다. 가운데 물길 쪽만 얼음 빛이 다르고 나머지는 눈이 덮여 있었다. 저쪽 둑 위로 초소가 보였다. 굴뚝에서 연기가 났다. 시월에는 안 났었다. 초소 옆에 사람이 하나 서서 발을 굴렀다. 두 번 구르고 서고, 또 두 번 구르고 섰다. 나는 그 사람이 이쪽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십 분 동안 그는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강 위에 발자국이 있었다.

한 줄이 아니라 여러 줄이었다. 어떤 것은 새것이고 어떤 것은 눈이 덮여 자국만 남았다. 나는 둑을 내려가 얼음 가장자리까지 갔다.

발자국의 앞뒤를 보려고 몸을 굽혔다. 걷는 사람의 발자국은 뒤꿈치 쪽이 깊고 앞이 끌린다. 그것을 보면 방향을 안다.

이쪽으로 온 것이 대부분이었다.

저쪽으로 간 것도 있었다. 세 줄쯤. 그 세 줄이 제 발로 간 것인지 실려 간 것인지는 발자국으로 알 수 없었다. 발자국은 걸어간 것만 남는다.

물소리가 났다. 얼음 아래로 물이 가고 있었다. 서 있으니 발밑에서 그 소리가 계속 났다. 강은 얼어 있는 게 아니라 덮여 있었다.

시월에 나는 이 강을 자로 쟀다. 다리 위에서 백스물세 걸음을 세었고, 여관에서 지도에 점을 찍고 사백구십 킬로미터를 냈다. 그때 나는 그것이 무슨 발견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지금 이 얼음은 걸어서 이 분이면 건넌다.

한참 서 있다가 위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아이들이 모여 앉던 자갈밭이었다. 거기 눈이 다져져 있었다. 사람이 여럿 앉았다 일어난 자리는 눈이 그렇게 된다. 그 자리에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발로 눈을 헤쳐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발로 눈을 헤쳐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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