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제3부 여름
17화제24장 서른네 시간
여의도의 그 주는 하루가 일주일 같았다.
목요일까지만 해도 국회 주변에서는 정상회담 준비 얘기가 오갔다. 금요일 오후에 몇 사람이 조문단 얘기를 꺼냈다. 상대가 죽었으니 예를 갖추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도 낫다는 논리였고, 그 논리를 말한 사람들은 자기가 실용적인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토요일 밤부터 그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
정부는 조문에 찬성하는 발언을 김일성 추종으로 규정하고 사법처리 방침을 밝혔다. 그때부터 문장 하나가 신분이 되었다.
두 달 전 워싱턴의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카터를 중재자로 보내자고 말했던 사람은 김대중이었다. 그 제안은 유월에 실제로 실행되었고, 실행되어 전쟁을 미뤘고, 칠월이 되자 그 사람의 이름은 다른 목록에서 불렸다. 두 달 사이에 바뀐 것은 그의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을 읽는 계절이었다.
김영삼은 조문에 대해 한 줄도 양보하지 않았다. 유월에 그가 전화기에 대고 한 명도 보낼 수 없다고 말했던 상대와, 칠월에 그가 조문을 막고 있는 상대는 같은 나라였다.
칠월 십팔일, 서강대 총장 박홍이 조문 주장의 배후에 김정일을 따르는 세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 문장은 그날 저녁 모든 신문의 제목이 되었고, 다음 주 내내 사람들이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는 데 쓰였다.
방송에서는 평양의 화면이 계속 나왔다. 광장에 사람이 가득했고, 카메라가 훑을 때마다 같은 자세로 몸을 굽혔다. 김정일이 유리관 앞에 서 있는 장면이 짧게 지나갔다.
크립톤 자료가 최수경의 책상에 올라온 것은 칠월 십일이었다.
일본과 남해안 두 곳, 그리고 미국 쪽에서 넘어온 공기 시료 채취망의 수치였다. 크립톤 팔십오는 재처리의 지문이다. 사용후 연료를 자르고 녹이면 그 안에 갇혀 있던 것이 대기로 나오고, 그것 말고는 대기로 나올 경로가 사실상 없다.
유월 이십구일부터 칠월 오일 사이에 신호가 있었다.
그녀는 그래프를 그렸다. 세로축에 농도, 가로축에 날짜. 곡선은 급하게 올라갔다가, 꼭대기를 만들지 않고 꺾여서 내려왔다. 내려온 뒤로는 배경 수준이었다.
그녀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총 방출량을 역산해서 처리량으로 환산하는 데 계수가 세 개 필요했고, 세 개 다 구간으로 잡아야 했다. 두 시간 뒤에 답이 나왔다.
일점사에서 일점팔 톤.
노심 전량이 마흔여덟 톤이다. 봉으로 치면 칠천칠백 개다. 그중에서 일점육 톤이면 삼 퍼센트다. 잘 봐줘야 사 퍼센트다.
최수경은 그 자리에 앉아서 곡선을 한참 봤다.
재처리 캠페인은 이렇게 생기지 않는다. 시작하면 두 달이고 석 달이고 간다. 라인이 하나뿐이어도, 아니 하나뿐이니까 더 오래 간다. 성공한 캠페인의 곡선은 낮고 길다. 이 곡선은 높고 짧았다.
그녀는 여백에 연필로 세 글자를 썼다.
무슨 일.
문이 열리고 차은희가 들어왔다. 통신·암호과에서 올라온 전문철을 안고 있었다.
"과장님이 이거 먼저 보시랍니다."
최수경은 철을 넘겼다. 대부분이 조문 관련이었고, 김일성 사후 평양 동향에 관한 것이었다. 뒤쪽에 짧은 것이 하나 있었다. 베이징 발신, 유월 말 이후 특정 거래선 무응답, 긴급 확인 요망. 출처 표기는 부호 하나뿐이었다.
"이건 언제 온 겁니까."
"칠월 초입니다." 차은희가 대답했다. "닷새 됐습니다."
"회신은요."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최수경은 그 종이를 그래프 옆에 나란히 놓았다. 두 장 사이에 아무 선도 그을 수 없었다. 하나는 공기 중 농도이고 하나는 어느 상인의 전화가 안 되는 얘기다. 같은 시기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었다.
같은 시기라는 것 말고는.
홍기택 국장은 보고서를 세 장까지 넘기고 덮었다.
"결론이 뭐요."
"그들은 시작했고, 무슨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이 뭐요."
"모릅니다." 최수경이 말했다. "다만 자기 의지로 멈춘 게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자기 의지로 멈추려면 처리 물량을 이렇게 어중간하게 잡을 이유가 없습니다."
"최 분석관." 국장이 안경을 벗었다. "지금 이 층에서 김일성 사망 관련 보고서가 하루에 마흔 건씩 올라오고 있습니다. 부장님이 청와대에 세 번 들어갔다 나왔고요. 이 그래프를 지금 올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오?"
"읽히지 않습니다."
"안 읽히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저쪽 상황을 파악 못 하고 엉뚱한 걸 붙들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럼 언제 올립니까."
"이 소나기가 지나가면."
미국 쪽에서도 같은 자료를 보고 있었다. 그 주에 코널리 부지부장이 남산으로 전화를 걸어 크립톤 신호에 대한 한국 측 평가를 물었다. 홍기택은 북한이 재처리를 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그것은 워싱턴의 판단과 같았고, 같은 판단은 언제나 안전하다.
코널리는 그 답을 받아 적으면서, 이 사람들이 어디서 무엇을 계산해 이런 말을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묻는 것이 규칙에 없었다.

칠월 십구일, 평양 금수산의사당 앞 광장이 사람으로 덮였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안기부가 조명철 교수의 귀순을 공식 발표했고, 외무부가 한국전쟁 발발과 관련한 소련 측 문서를 공개했다. 저녁 신문 일 면은 세 칸으로 나뉘었다.
최수경은 분석실에 남아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평양 화면이 나왔다. 광장을 위에서 잡은 장면이었다.
이백만 명이라고 했다.
그녀는 화면을 보면서 세로줄을 세기 시작했다. 한 줄에 몇 명이 서 있고 줄이 몇 개인지 어림하면 대충 나온다. 이런 숫자는 발표하는 쪽이 늘 부풀린다. 세 줄까지 세다가 카메라가 움직여서 놓쳤다.
책상 위에는 그래프가 그대로 있었다. 여백의 연필 글씨는 아흐레째 지워지지 않고 있었고, 그동안 그 세 글자를 읽은 사람은 없었다.
1994년 10월 21일 ~ 1995년 2월 · 서울 성동구 옥수동 / 안기부 남산 안가
물이 끓기 전에 라디오를 켰다.
옥수동 셋방은 창이 하나뿐이고 그 창은 언덕 아래를 향해 있어서, 아침이면 골목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의 정수리가 먼저 보인다. 여덟 시 뉴스가 시작됐다. 아나운서가 문장 하나를 읽었다.
성수대교 상판이 내려앉았습니다.
컵을 든 채로 서 있었다. 내려앉았다는 말이 귀에 걸렸다. 다리는 내려앉는 물건이 아니다. 서 있으라고 만든 것이고, 서 있는 것이 그것의 유일한 일이다. 아나운서가 다음 문장에서는 끊어졌다고 했다. 나는 그 두 단어를 번갈아 생각하면서 가스 불을 껐다.
택시는 응봉동 못 미쳐서 섰다. 기사가 미터기를 눌러 껐다. 여기서부터는 안 들어갑니다, 손님. 걸어 올라가는 길에 사이렌이 세 번 지나갔고 그때마다 사람들이 갓길로 몸을 붙였다가 다시 걸었다.
강변에 사람이 많았다. 다들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고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상판이 없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은 크게 보인다. 나는 교각을 세었다. 강 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아홉, 열, 열하나. 열째와 열한째 사이가 비어 있었다. 밑에서 잠수부들이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강물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흐르고 있었다. 그 밑에 무엇이 잠겨 있는지 물은 표시하지 않았다.
끊어진 폭을 눈으로 재 봤다. 오십 미터 안팎. 군에서 든 버릇이라 재고 나서야 이걸 재서 뭘 하나 싶었다. 이튿날 신문은 사십팔 미터라고 썼다.
저지선 안쪽에서 경찰이 확성기로 물러나 달라고 했다.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같은 말을 계속했다.
옆에 선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십육번 버스가 저기 있었대요. 나는 십육번이 어디서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몰랐다. 여학생들이라고 했다. 무학여중하고 여고. 등교 중이었다고 했다.
뒤에서 누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상판이 통째로 떨어졌고 그 위에 있던 차들이 같이 갔다고. 듣던 사람이 몇 대나요, 하고 물었다. 설명하던 사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사람은 담배를 끝까지 피우지 않고 발로 껐다. 나도 곧 돌아섰다. 오후 네 시에 남산에 들어가야 했다.
안가의 텔레비전은 하루 종일 다리만 비췄다. 헬기에서 찍은 화면이 몇 번이고 되풀이됐다. 사망자 숫자가 자막으로 올라올 때마다 조금씩 바뀌었고, 저녁 무렵에는 서울시장이 경질됐다는 자막이 그 아래로 지나갔다.
윤성복 부실장이 재떨이를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그는 나와 같은 방에 있을 때 반드시 무언가를 정리한다. 서류를 각지게 맞추거나, 찻잔 손잡이를 한 방향으로 돌려놓거나.
밤 뉴스 후반부에 화면이 제네바로 넘어갔다.
회의장은 밝고 조용했다. 양복 입은 사람들이 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고, 카메라가 손을 잡았다. 손 두 개. 하나는 갈루치, 하나는 강석주. 서류철을 열고, 서명하고, 서로 바꾸고, 다시 서명했다. 만년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 소리를 방송이 담을 리 없는데도 나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조항을 읽었다. 흑연감속로를 동결한다. 폐연료봉 팔천 개는 재처리하지 않고 저장했다가 국외로 내보낸다. 미국은 해마다 중유 오십만 톤을 준다. 경수로 두 기는—여기서 아나운서가 한 박자 쉬었다—제공을 위한 협의를 개시하고, 착공은 특별사찰이 끝난 다음으로 한다. 미신고 폐기물 저장소 두 곳에 대한 접근은 구십육년 유월까지.
"착공을 사찰 뒤로 미뤘네요." 윤성복이 말했다. "저쪽이 저걸 왜 받았지."
"중유." 정만호 실장이 말했다.
"그것뿐입니까."
"그것뿐이야. 겨울이 오잖아."
윤성복이 수첩에 뭔가 적었다. "돈은 결국 우리가 대게 되겠군요."
"그거야 늘 그랬고."
윤성복이 텔레비전 쪽으로 턱을 조금 들었다. "오늘 아침에 다리가 무너지고 오늘 저녁에 저기서 서명을 했으니, 뭐랄까 이런 날은—"
"그런 말 하지 마." 정만호가 리모컨을 집어 화면을 껐다.
방이 어두워졌다. 창밖으로 남산 타워의 붉은 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였다.
정만호가 나를 보지 않고 물었다.
"성공했나."
나는 대답하기 전에 몇 초를 썼다. 그 몇 초 동안 내가 가진 것을 세어 봤다. 리광호는 유월 말부터 연락이 없다. 삼분기 발주가 전부 취소됐다. 왕더셩은 술을 안 마시고 차만 마신다. 영변 쪽에서 사람이 안 나온다고 그가 말했다. 구월에 넣은 견적서 세 건은 답이 없다. 세관 창고의 그 자리는 비어 있다. 그게 전부였다. 사실을 아무리 나란히 놓아도 문장이 되지 않았다. 나는 유월 칠일 밤에 내가 한 일을 알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두 개를 이을 방법이 없었다.
"모릅니다."
윤성복이 숨을 짧게 내쉬었다. "모른다는 게 보고입니까."
정만호는 그를 보지 않았다.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기만 하고 불은 붙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적어."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처럼 들리는 말투였는데, 그 사람은 십 년 넘게 그 말투 하나로 사람을 움직여 왔다.
"다음 분기에 물건을 다시 넣어 보게. 끊긴 자리를 봐야 뭐가 끊겼는지 알지."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나갈 때 윤성복이 현관까지 따라 나와 문을 잡아 주었다.
"강 사장." 그가 말했다. "우리가 결재한 건 지연입니다. 그 이상은 결재된 적이 없어요."
그러고는 문을 놓았다.
그러고는 문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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