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5부 격차(隔差)
20화제28장 검은 물
콜타르를 나누는 데 여섯 해가 걸렸다.
증류탑을 세우고 온도를 나누어 받았다. 낮은 온도에서 가벼운 것이, 높은 온도에서 무거운 것이 나왔다.

나온 것이 열두 가지였다. 그중 넷이 세계를 바꾼다.
벤졸(벤젠). 여섯 개가 고리로 붙은 것. 화학의 새 문법.
석탄산(페놀). 소독약. 그리고 뒤에 플라스틱.
나프탈렌. 방충제. 그리고 염료의 뼈대.
암모니아수. 질소의 첫 공급원.
신축년(1841) 유월, 화학원의 스물두 살 국원 하나가 벤졸에서 뽑은 아닐린을 산화시키다 실수로 검붉은 것을 만들었다.
그것을 씻어내려고 물에 넣자 물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명주 조각을 담갔다. 명주가 보라색이 되었다.
그가 손을 씻고 다시 담갔다. 색이 빠지지 않았다.
보라색은 그때까지 인류가 만들 수 없는 색이었다.
지중해 소라에서 뽑았고, 소라 만 마리에서 한 돈이 나왔고, 그래서 로마 황제만 입었다. 조선에서도 자초(紫草) 뿌리로 겨우 흉내를 냈으나 볕에 바래고 물에 빠졌다.
이제 그것이 석탄 찌꺼기에서 나왔다.
유럽에서 같은 발견이 일어난 것은 1856년, 런던의 열여덟 살 소년 퍼킨의 손에서였다. 열다섯 해 차이.
그러나 진짜 차이는 발견이 아니라 다음이었다.
퍼킨은 회사를 차렸다. 조선은 원(院)을 세웠다.
화학원은 조선의 두 번째 특이점이었다.
첫 번째가 삼척 과학혁신국이었다면, 화학원은 그 방법론을 화학 하나에만 집중시킨 기관이었다.
운영 원칙이 넷이었다.
一. 새로 만든 물질은 무조건 등록한다. 쓸모를 몰라도 등록한다.
二. 등록된 물질은 성질을 스물두 가지 항목으로 잰다. 녹는점, 끓는점, 물에 녹는 정도, 산에 녹는 정도, 색, 냄새, 독성, 불붙는 온도 등.
三. 이 기록은 원 안에서 누구나 본다. 감추는 자는 내보낸다.
四. 만든 자의 이름을 반드시 적는다. 다만 그 물질은 만든 자의 것이 아니라 원의 것이다.
넷째 조항이 결정적이었다.
유럽의 화학자들은 자기 발견을 특허로 묶고 경쟁자에게 감췄다. 조선의 화학자들은 감출 수 없었다. 대신 이름이 남았고, 이름이 남으면 관직과 연금이 따라왔다.
그 결과 조선의 화학 지식은 한 사람의 머릿속이 아니라 목록 안에 쌓였다.
『화학원 물질록』은 신축년에 첫 권이 나왔고, 계미년(1883)에 만 번째 물질이 등록되었으며, 무술년(1898)에 십만 번째가 등록되었다.
같은 시기 유럽 전체가 알던 유기화합물의 수는 사만이 못 되었다.
목록에서 산업이 나왔다.
염료. 갑진년(1844)부터. 십 년 만에 조선은 세계 염료 시장의 팔 할을 가졌다. 인도의 인디고 농장이 무너지고, 프랑스 남부의 꼭두서니 밭이 갈아엎어졌다. 이것이 조선이 세계 경제를 처음으로 부순 사건이다. 조선은 그 사실을 이십 년 동안 알아채지 못했다.
약. 병오년(1846) 석탄산 소독약. 정미년(1847) 아스피린 계열 해열진통제. 갑신년(1884) — 염료 연구에서 파생된 설파제. 세균을 죽이는 최초의 실용 약이었다.
이 마지막 것이 조선의 인구를 바꾼다.
무술년(1838) 조선 인구는 이천오십만이었다. 유럽 어느 나라보다 사망률이 낮았지만 출생률도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설파제 이후 삼십 년 동안, 조선의 유아 사망률은 천 명당 이백오십에서 삼십으로 떨어졌다.
기해년(1899) 조선 본토 인구는 사천이백만이 된다.
거름.
임신년(1872), 화학원이 공기에서 질소를 뽑아 암모니아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공기의 사분의 삼이 질소다. 그것을 수소와 붙이면 암모니아가 되고, 암모니아는 거름이 된다.
간단하지 않은 것은 조건이었다. 이백 기압, 오백 도. 그 압력에서 수소는 강철을 파고들어 부스러뜨린다.
조선은 이 문제를 이중벽 반응기로 풀었다. 안쪽은 무른 저탄소강, 바깥은 고강도강, 그리고 바깥 통에 구멍을 뚫어 스며든 수소를 빼냈다.
유럽이 같은 해법에 도달한 것은 1913년이다. 마흔한 해.
암모니아가 조선에 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밥이었다. 조선과 만주의 곡물 생산이 이십 년 만에 두 배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화학원 연보』 제32호, 임신년 시월. 원장 이경묵의 마지막 글이다. 그는 그해 겨울에 죽는다. 아흔넷이었다.
— 오늘 우리는 공기로 밥을 짓는 법을 얻었다.
— 나는 이 자리에서 축하를 받았고, 축하를 받으면서 한 가지를 말하지 않았다. 이제 적어 둔다.
— 암모니아를 산화시키면 질산이 된다. 질산은 거름이 되고, 질산은 화약이 된다. 같은 통에서 나온다. 통을 나눌 수도 없다. 밥과 폭약이 한 뿌리다.
— 그때까지 화약의 원료는 초석이었고, 초석은 땅에서 나거나 오줌으로 만들었으므로 양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전쟁은 화약이 떨어지면 끝났다.
— 오늘부터 화약은 공기에서 나온다.
— 공기는 떨어지지 않는다.
— 나는 오늘 인류가 전쟁을 끝낼 이유 하나를 잃었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을 연보에 남기는 것을 원의 여러분이 허락해 주기 바란다.
— 나는 아흔넷이고 곧 죽는다. 나는 측명공을 마지막까지 뵌 사람 중 하나다. 그분이 나에게 처음 낸 문제는 방 안의 쌀알을 다 세지 말고 헤아리는 법이었다. 나는 그때 답을 적으면서 오차가 얼마나 날지도 함께 적었고, 그래서 뽑혔다.
— 나는 평생 그 버릇으로 살았다. 무엇을 하든 오차를 함께 적었다.
— 오늘 나는 마지막으로 오차를 적는다.
— 우리가 오늘 얻은 것으로 앞으로 백 년 동안 굶어 죽지 않을 사람의 수는 대략 십억이다.
— 우리가 오늘 얻은 것으로 앞으로 백 년 동안 죽을 사람의 수를 나는 셈하지 못하겠다.
— 나는 이것이 내 평생 처음으로 오차를 적지 못한 셈이라고, 부끄럽게 적어 둔다.
『제국 의원(醫院) 백년사』 서문, 무술년(1898)
— 측명공께서 이 나라에 오셔서 처음 하신 의술은 손을 씻으라는 것이었다. 그분은 왜 씻으면 사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우리는 백 해 동안 그 "왜"를 찾았고, 찾고 나서 보니 씻으라는 말은 그대로였다.
의술의 백 년이란 그런 것이다. 답은 처음부터 있었고 우리는 이유를 찾았을 뿐이다.
조선이 세계에 준 것 중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무기도 기계도 아니다.
사람이 덜 죽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조선을 가장 크게 만들었고, 조선을 가장 크게 망쳤다.
하나 — 이유 없이 옳았던 것들
측명공이 남긴 의학은 이유가 없는 지침의 목록이었다.
— 손을 씻어라. 특히 아이를 받기 전에.
— 물을 끓여 마셔라.
— 뒷간과 우물을 서른 걸음 떼어라.
— 상처는 씻고 덮어라. 고름은 짜라.
— 마마 앓은 소의 고름을 아이 팔에 넣어라.
— 아픈 사람이 나온 집을 표시하고 열흘 오가지 마라.
—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세어라. 지킨 집과 안 지킨 집에서 몇이 죽는지 세어라.
이유는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 나는 왜 그런지 안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안다고 쓰지 않겠다. 다만 이렇게 하면 덜 죽는다는 것만 쓰겠다. 이유는 여러분이 백 년쯤 뒤에 찾을 것이다.
조선은 그 백 년을 팔십 년으로 줄였다.
둘 — 이유를 찾기
임자년(1852), 조선이 세균을 보았다.
보는 데 필요한 것은 셋이었다. 좋은 유리, 좋은 렌즈, 그리고 물들이는 것.
앞의 둘은 삼척에 있었다.
세 번째가 결정적이었다.
세균은 투명하다. 현미경으로 보아도 물과 구별되지 않는다. 물들여야 보인다.
조선에는 신축년(1841)부터 합성염료가 있었다.
화학원의 염료 목록에서 세포에 잘 붙는 것을 골라 시험하는 데 십일 년이 걸렸고, 임자년에 결핵균이 처음으로 보였다.
코흐가 같은 것을 하는 것은 1882년이다. 서른 해.
이유가 밝혀지자 지침이 바뀌었다.
— 손을 씻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씻어내는 것이다.
— 그러므로 물로만 씻으면 부족하다. 알코올이나 석탄산으로 씻어라.
— 그러므로 수술 도구는 삶아라.
— 그러므로 상처를 덮는 천도 삶아라.
병술년(1856) 조선 제국 의원의 수술 후 사망률이 이십칠 퍼센트에서 사 퍼센트로 떨어졌다.
셋 — 약
조선의 약은 염료에서 나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세균을 물들이는 염료를 찾다 보니, 세균에만 붙고 사람 세포에는 안 붙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세균에만 붙는 것이 있다면, 붙어서 죽이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 한 문장에서 현대 약학이 나왔다.
갑신년(1884) 설파제. 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최초의 실용 약.
정미년(1907) 곰팡이 약. 이 세계에서는 페니실린이라 부르지 않는다. 청곡소(靑穀素) 라 한다. 푸른 곰팡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청곡소가 실용화되는 데 십사 년이 걸렸다. 곰팡이가 만드는 양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세 가지로 풀었다.
一. 곰팡이를 골라내기. 팔만 이천 개의 곰팡이를 시험해 수율이 높은 것을 찾았다.
二. 곰팡이를 바꾸기. 자외선과 X선을 쬐어 돌연변이를 만들고 그중 수율 높은 것을 골랐다. 이 방법은 뒤에 육종학 전체를 바꾼다.
三. 큰 통에서 기르기. 무균 상태로 수만 리터를 저어 주며 공기를 넣는 통. 화학공학의 승리였다.
원래의 역사에서 같은 일이 1943년에 이루어진다. 이십이 해.
원래의 역사에서 같은 일이 1943년에 이루어진다. 이십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