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7부 대전(大戰)
38화제52장 스무 살들
다섯 — 라마 샤스트리, 스물여덟, 봄베이
1998년, 여든두 살의 그가 남긴 인터뷰가 있다.

— 저는 그 봉투를 열고 삼십 분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 저는 그것이 조선에서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식이 조선 것이었고, 실수 목록의 서른일곱 번째 항목이 제가 1936년에 저지른 실수였기 때문입니다.
— 저는 그것을 정부에 넘겼습니다. 넘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나중에 저는 그것을 보낸 사람이 처형되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름도 들었습니다.
— 저는 그분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저보다 세 살 어렸습니다.
— 사람들이 저에게 그분이 옳았느냐고 묻습니다.
— 저는 모르겠습니다.
— 다만 저는 이것은 압니다. 그분은 자기 계산에 오차를 함께 적었습니다. 저는 그 서류를 나중에 보았습니다.
— 세계를 바꾸겠다고 나선 사람 중에 자기 계산의 오차를 함께 적은 사람을, 저는 그분 말고는 본 적이 없습니다.
여섯 — 이름 없는 자
국립사료원 제5고에 서류 한 장이 있다.
1938년 압록강 제3구역 재실 병동의 진료 기록이다.
환자: 압-노-4471
연령: 미상. 이십 대로 추정.
출신: 남양
입원: 1938년 2월 11일
증상: 탈모, 구강 출혈, 백혈구 감소
진단: 폐결핵
처치: 결핵 요법
경과: 2월 19일 사망
기록 하단에 담당 의관의 필적으로 한 줄이 덧붙어 있다.
이 한 줄 때문에 이 서류가 유명하다.
— 이 환자는 결핵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안다. 나는 다른 병명을 적을 수 없다. 나는 이 줄을 적고 지우지 않겠다.
의관의 이름은 지워져 있다.
지운 것은 그 자신인지 다른 사람인지 알 수 없다.
2025년 제3차 조사에서, 압-노-4471의 이름이 확인되었다.
마르티누스 카바베. 남양 팔라우 출신. 1915년생. 1936년 계약 노무자로 압록강에 왔다. 계약 기간은 삼 년이었다.
가족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제국 최고전쟁평의회 회의록』 병자년(1936) 삼월 이십일일 — 제241차
※ 이 회의록은 종전 후 소각 명령이 내려졌으나, 서기 하나가 사본을 만들어 개인적으로 보관했다. 그 사본이 1972년에 유족으로부터 국립사료원에 기증되었다.
병자년 삼월, 조선은 폭탄을 쓰기로 결정했다.
결정의 논리는 세 가지였다.
첫째, 시간. 동맹의 자체 개발 완료 예상 시점이 1939년이었다. 그전에 전쟁을 끝내야 했다.
둘째, 표적. 동맹의 인도양 전략이 실론섬 콜롬보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곳에 동맹 연합 함대 주력과 십오만의 상륙 부대가 집결하고 있었다. 조선의 남양 방어선을 통째로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 거리. 콜롬보는 조선 세력권 가장자리인 수마트라 북단에서 이천이백 리였다. 조선 폭격기의 항속거리 안이었다.
회의록의 마지막 부분.
병기국 총제조 박승규: …신은 오 년 전 캄차카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의장 장인철: 알고 있소.
박승규: 그날 신은 이것을 사람에게 쓰면 안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장인철: 그것도 알고 있소. 지금 그 말을 취소하려는 것이오, 지키려는 것이오.
박승규: …신은 오늘 그 표적을 고르는 문서에 서명하러 왔습니다.
장인철: …
박승규: 다만 하나만 청하겠습니다.
장인철: 말하시오.
박승규: 도시는 안 됩니다.
박승규: 콜롬보 항 밖 정박지를 치겠습니다. 함대와 상륙부대가 거기 있습니다. 도시에서 팔 리 떨어져 있습니다. 바람이 서남풍이면 도시는 상당 부분 피합니다.
참모총장: 총제조. 그러면 효과가 반으로 줍니다.
박승규: 압니다.
참모총장: 이것은 반으로 줄여서 쓸 물건이 아닙니다. 이것을 쓰는 목적은 적의 함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적의 의지를 없애는 것입니다. 의지는 도시에 있습니다.
박승규: …
참모총장: 총제조께서 팔 리를 떨어뜨리시면, 우리는 이것을 한 번 더 써야 합니다. 그때 죽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박승규: …그 셈을 저는 못 하겠습니다.
참모총장: 총제조. 우리는 백사십 년 동안 셈을 하는 나라였습니다. 오늘 못 하시겠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회의록에 십칠 분간의 공백)
장인철: …표결하겠소.
장인철: 정박지 안. 찬성.

(찬성 넷)
장인철: 도시 안. 찬성.
(찬성 아홉)
장인철: …결정되었소.
(회의록에 다시 공백. 그 뒤 박승규의 발언 한 줄)
박승규: …기록에 남겨 주십시오. 신은 정박지에 표를 던졌고 졌습니다. 그리고 신은 오늘 사임하지 않고 이 명령서에 서명할 것입니다.
박승규: 반대하고 서명하는 자가 가장 나쁜 자입니다. 그것을 알면서 서명합니다.
병자년 사월 십칠일 오전 아홉 시 사 분.
조선 제국 공군 제11 특수비행대 소속 사발 폭격기 「해동(海東)」 호가 콜롬보 상공에 도달했다.
투하 고도 삼만 척.
폭발 고도 이천이백 척.
이 세계의 역사서들이 콜롬보를 서술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조선의 교과서는 오랫동안 이렇게 적었다. — 대전을 조기에 종결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었다.
1994년에 그 문장이 지워졌다. 지금 조선의 교과서에는 숫자만 적혀 있다.
즉사 육만 팔천.
그해 안에 사망 십일만 이천.
십 년 안에 사망 십사만 육천.
콜롬보 인구의 절반이었다.
동맹 함대 손실은 주력함 아홉 척, 인원 이만 사천이었다.
즉 죽은 사람의 여섯 중 다섯이 군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것이 조선이 가장 크게 오판한 부분이다.
조선은 콜롬보 이후 동맹이 강화를 청할 것이라 예상했다. 통계원 추계는 사 주 안에 접촉이 올 것이라고 했다.
오지 않았다.
대신 온 것은 이것이었다.
1936년 4월 24일, 대서양동맹 오국 공동 성명.
— 우리는 지난주 실론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다.
— 우리는 그것을 야만이라 부르지 않겠다. 야만은 무지에서 나온다. 실론에서 일어난 일은 무지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계산의 결과였다.
— 우리는 이제 이 전쟁이 무엇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인지 완전히 이해했다.
— 조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굴복하라, 그러면 너희는 잘 살게 될 것이다, 우리 장부 안에서.
— 우리는 대답한다.
—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길 수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그 장부 안에서 사느니 우리 방식으로 죽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 조선은 우리에게 이것을 몇 번 더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 우리 도시 몇 개가 더 없어질 것이다.
— 다만 조선이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 조선은 우리 본토에 닿지 못한다.
— 조선의 비행기는 런던에 오지 못한다. 파리에도, 베를린에도, 시카고에도 오지 못한다. 조선이 그것을 쓸 수 있는 곳은 조선이 다스리는 아시아뿐이다.
— 즉 조선이 이 무기를 쓸 때마다, 조선은 자기 백성을 죽이는 것이다.
— 우리는 기다리겠다.
— 그리고 조선의 지배를 받는 이억의 사람들에게 이 성명을 전한다. 우리는 여러분을 구하러 가지 않는다. 우리는 그럴 힘이 없다. 여러분이 우리보다 먼저 알게 될 것이다.
— 여러분을 지배하는 자들은, 여러분이 있는 곳에만 그 불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 성명이 경위권 전역에 뿌려지는 데 삼 주가 걸렸다.
조선 보안원은 그것을 막지 못했다. 무선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백이십 년 전에 세계에 깔아 준 그 망을 타고 왔다.
『경위권 임시 자유평의회 선언』 무인년(1938) 이월 십사일, 반둥
— 우리는 조선을 미워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 중 다수는 조선의 학교에서 배웠고, 조선의 실험실에서 일했고, 조선의 관복을 입었다. 우리는 조선이 우리에게 준 것을 안다.
— 우리가 일어난 것은 조선이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다.
— 조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재는 자가 다스린다고. 재는 법을 익히면 누구든 다스릴 수 있다고. 능력의 문제이지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고.
—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우리는 익혔다.
— 그리고 지난 오 년 동안, 우리 삼백사십만이 전선에서 죽고 우리 이백만이 굶어 죽는 동안, 조선 본토에서는 사백육십만 중 이십삼만이 죽었다.
— 우리는 재어 보았다. 조선이 가르쳐 준 대로.
장부가 틀렸다.
하나 — 무너진 것은 밖이 아니었다
1937년 겨울부터 경위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맹의 상륙 때문이 아니었다. 동맹은 상륙할 힘이 없었다.
무너진 것은 행정이었다.
경위권의 식민 통치는 조선인이 하지 않았다. 조선 본토 인구는 사천육백만뿐이었고, 그중 백만 명 남짓이 관료였으며, 그들 대부분은 본토에 있었다.
인도차이나 총독부의 국장급 열아홉 중 열하나가 일본인이었다.
자바 민정부의 과장급 이상 백사십 명 중 조선 본토 출신은 스물둘이었다.
보르네오 광무국 기술진 삼천사백 명 중 조선 본토 출신은 이백열이었다.
경위권은 조선이 통치한 것이 아니라, 조선이 훈련시킨 사람들이 통치한 것이다.
그리고 1937년 겨울, 그들이 손을 놓았다.
그리고 1937년 겨울, 그들이 손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