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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제51장 집(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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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 그러나 아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이 편지가 발견된 것은 1994년이다.

정조유신 37화 제51장 집(家) — 헤더컷

보낸 사람은 그해에 죽었고, 받을 사람은 1939년 인도양에서 죽었다.

넷 — 사월의 목소리

1936년 사월 이십사일, 대서양동맹의 조선어 방송이 시작되었다.

조선 본토에서도 잡혔다. 방해 전파가 있었으나 밤에는 뚫렸다.

그해 여름, 조선 본토의 라디오 판매량이 사십일 퍼센트 늘었다.

정부는 그 통계를 공표하지 않았다.


『제국 보안원 월보』 1936년 9월.

— 적 방송 청취로 검거된 자가 금월 이천사백십일 명이옵니다. 전월 대비 백육십 퍼센트이옵니다.

— 신들이 아뢰옵기 어려운 것을 아뢰옵니다. 검거된 자의 구성이 지난달과 다르옵니다.

— 지난달까지는 대부분 학생과 외지 출신이었사옵니다.

— 금월에는 사십 대 이상 본토 출신이 사십사 퍼센트이옵니다. 그중 상당수가 전사자 유족이옵니다.

— 그들은 적의 선전에 동조하기 위하여 들은 것이 아니오라,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서 들었사옵니다.

— 신들은 이 항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지침을 청하옵니다.

지침은 내려오지 않았다.

다섯 — 그리고 아무도 벌받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조선 본토에서 일어난 일 중 가장 이상한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폭동이 없었다. 재판이 없었다. 이름을 부르는 일이 없었다.

1941년 이월 총선에서 여당이 졌다. 그것이 전부다.

『의정원 회의록』 신사년(1941) 정월.

의원 김상헌이 물었다. — 우리는 진 것이오, 이긴 것이오.
의장 장인철이 답했다. — 우리는 그만둔 것이오.
김상헌이 다시 물었다. —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반성해야 하오.
회의록에는 이 뒤로 아무 발언도 적혀 있지 아니하다.


1994년, 조선의 한 작가가 이 시기를 다룬 소설을 냈다. 제목은 『부서지지 않은 집』이다.

그 소설의 마지막 문단이 자주 인용된다.

— 우리 도시는 부서지지 않았다.

— 우리 아이들은 잿더미에서 자라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들은 무너진 집을 파헤치지 않았다. 우리는 폐허를 본 적이 없다.

—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 콜롬보가 어떤 것이었는지, 수라바야가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는 사진으로 안다. 사진은 냄새가 없다.

— 나는 이것이 우리 세대의 가장 큰 결핍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을 몸으로 아는 방법을 영원히 갖지 못한다.

—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 세는 것이다.

—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애도다. 초라하지만 그것뿐이다.


『제국 육군성 병적 서식 제7호』 (1934년 개정)

성명란 아래 다음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 본토 출신이 아닌 자로서 조선식 성명이 없는 자는 본란에 편제 번호를 기입한다.

※ 이 문구는 1936년 개정에서 삭제되었다. 삭제 사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1936년까지 편제 번호로만 등재된 병적이 사십일만 이천 건 남아 있다.

이 장은 사람에 관한 것이다.

앞의 장들에서 나는 숫자를 적었다. 이 장에서는 여섯 사람을 적는다.

전부 실존 인물이며, 전부 국립사료원 제5고에 원본이 있다.

하나 — 최영후, 스물둘, 경상도 상주

조선 본토 출신. 상주 농고 이 년 수료. 1935년 징집, 남양 함대 소속 구축함 「청룡」 기관병.

집으로 보낸 편지 열아홉 통이 남아 있다. 여기 옮기는 것은 열네 번째다.

— 어머니. 저는 잘 있습니다.

— 배에서 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여기서 그대로 쓰입니다. 기관장님이 저더러 셈이 빠르다고 하십니다.

— 어머니,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볼 데가 없어서 어머니께 씁니다.

— 저희 배에 남양 사람이 열둘 있습니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잡니다. 그중에 저랑 나이가 같은 애가 있는데 이름이 안 불립니다. 다들 번호로 부릅니다.

— 제가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 애가 말해 줬는데 저는 그 이름을 못 외웁니다. 길고 소리가 어렵습니다.

— 그래서 저도 번호로 부릅니다.

— 어머니. 저는 이게 잘못된 것 같은데 뭐가 잘못됐는지를 모르겠습니다.

— 다들 그렇게 하고 아무도 뭐라 안 합니다. 그 애도 뭐라 안 합니다.

— 그런데 저는 밤에 잘 때 이 생각이 납니다.

— 어머니, 저 이상한 겁니까.

최영후는 1937년 팔월 남중국해에서 전사했다. 스물넷이었다.

「청룡」은 승조원 이백사십일 명 중 서른아홉이 구조되었다.

그가 이름을 못 외웠던 그 사람은 구조자 명단에 없다. 전사자 명단에도 없다. 승조원 명부에 번호로만 있다.

번호는 남양-3-11447이었다.

2025년, 국립사료원 제3차 조사에서 이 번호의 이름이 확인되었다.

정조유신 37화 제51장 집(家) — 전환컷

바수키 하르요노. 자바 수라카르타 출신. 1913년생. 최영후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둘 — 응우옌 반 티엔, 열아홉, 통킹

1936년 징용. 남양 인광석 채굴 노무자.

그가 남긴 것은 편지가 아니다. 배급 수령 대장의 서명란이다.

1936년 삼월부터 1938년 시월까지, 그는 매달 자기 이름을 서명했다. 서른두 번이다.

처음 여섯 번은 한자로 정성껏 썼다.
일곱 번째부터 스무 번째까지는 점점 흐트러진다.
스물한 번째부터 서명이 손도장으로 바뀐다.
서른두 번째가 마지막이다.

1938년 십일월 대장에 그의 칸이 비어 있고, 옆에 붉은 글씨로 「병사(病死)」라고 적혀 있다.

병명은 적혀 있지 않다.

인광석 채굴장의 그해 사망자 중 「병사」로 처리된 사람이 이천사백열아홉이다.

셋 — 김순임, 열일곱, 평안도 정주

1937년 삼척 제3화약공장 근로 동원.

여자였다. 학제 단축으로 학교를 팔 년 만에 마치고 곧바로 동원되었다.

그녀의 일은 뇌홍을 뇌관에 채우는 것이었다. 손이 작은 사람이 유리했으므로 어린 여자들이 배치되었다.

1938년 오월, 그녀가 일하던 작업실에서 폭발이 있었다.

죽은 사람이 열넷, 전부 열여섯에서 열아홉 사이의 여자였다.

김순임은 살았다. 오른손을 잃었다.


1939년 그녀가 받은 통지서가 남아 있다.

— 귀하는 『공장 보호 조목』 제9조에 따라 다음의 급부를 받는다.
— 일시금 사백이십 원.
— 종신 연금 월 십일 원.
— 본 급부는 귀하가 사망할 때까지 지급된다.

김순임은 2011년에 죽었다. 아흔한 살이었다.

칠십이 년 동안 연금을 받았다. 총 지급액은 물가를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조선의 제도는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2003년, 여든세 살의 그녀가 남긴 구술 기록이 있다.

— 사람들이 나한테 나라가 잘해 줬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나는 칠십 년을 나라 돈으로 살았습니다.

— 그런데 나는 그 열넷을 압니다.

— 열넷 다 이름을 압니다. 같이 자던 애들입니다.

— 그 애들 유족한테는 십 년치가 갔습니다. 십 년 지나면 끊깁니다. 그게 조목입니다.

— 나는 손 하나 잃고 칠십이 년을 받았고, 그 애들은 다 잃고 십 년을 받았습니다.

— 나는 이걸 누구한테 따져야 하는지 모릅니다. 조목을 만든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 조목이 없었으면 나는 굶어 죽었을 겁니다.

— 그런데 나는 여든셋이고, 아직도 밤에 그 애들 이름을 셉니다.

— 셀 때마다 열넷입니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넷 — 아오키 겐타로, 서른넷, 나가사키

수라바야 제3화학공장 기술부장. 「경위권 임시 자유평의회」 부의장.

1938년 칠월 십칠일 수라바야에서 사망.

그가 봉기 직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어머니는 그것을 받았고, 그의 할머니 아오키 도모에에게 보여 주었다.

— 어머니.

— 제가 무엇을 하려는지 어머니는 아마 아실 겁니다. 할머니께서도 아실 것 같습니다.

— 저는 이 나라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나라 학교에서 배웠고 이 나라 말로 생각합니다. 제 꿈은 조선말로 꿉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 다만 저는 지난 오 년 동안 이 공장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세어 왔습니다.

— 세는 법은 이 나라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 그리고 재작년에 저는 본토 공장의 같은 숫자를 보았습니다. 우연히 서류가 잘못 왔습니다.

— 우리 공장의 사망률이 본토의 여섯 배였습니다.

— 어머니, 저는 그 종이를 사흘 동안 보았습니다. 계산이 틀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했습니다. 맞았습니다.

— 이 나라는 저에게 재는 법을 가르쳤고, 재지 말아야 할 것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저는 재었고, 재고 나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 할머니께 전해 주십시오. 저는 할머니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 할머니께서 스물일곱 해 전에 무엇에 찬성하셨는지 저는 압니다. 저는 그것이 할머니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다만 저는 할머니께 하나만 여쭙고 싶었습니다. 이제 여쭐 수 없게 되었으니 여기 적습니다.

— 할머니. 그때 반대하신 분이 한 분 계셨다지요.

— 그분은 어떤 기분이셨습니까.

다섯 — 라마 샤스트리, 스물여덟, 봄베이

제국 과학원 물리부 계산 담당. 라구 바네르지가 조선을 떠날 때 그의 조수였던 사람의 아들이다.

1934년부터 압록강 특별사업에 배속되었다.

그는 죽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인도로 돌아갔고, 1958년에 인도의 핵 개발 계획에 참여했다.

1958년 봄, 그는 조선에서 온 서류 봉투를 받았다.

발신인은 없었다.

안에는 폭탄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 전부와, 하지 말아야 할 실수 사백스물두 가지의 목록이 있었다.

안에는 폭탄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 전부와, 하지 말아야 할 실수 사백스물두 가지의 목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