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1부 낙하(落下)
5화제5장 만물지서(萬物之序)
『화성성역의궤』 부록 「측량기(測量記)」, 을묘년 시월
이날 동장대에서 서장대까지 새 법으로 재니 옛 장부와 어긋나는 데가 열한 곳이었다. 가장 큰 것이 사척 이촌이요, 작은 것이 칠푼이었다. 감동당상 조심태가 낯빛을 잃었다. 상이 이르시되, 잘못을 찾은 것이 상을 줄 일이지 벌할 일이냐 하시니, 좌우가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정조는 사흘 동안 그를 시험했다.
첫날은 천문이었다. 관상감 관원 셋을 불러놓고 일식을 물었다. 한주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언제 일식이 있는지 몰랐다. 관상감 관원들이 오히려 정확히 계산해냈다.
둘째 날은 의술이었다. 내의원 어의가 나와 물었다. 한주혁은 병의 이름 몇 가지와, 손을 씻으면 산모가 덜 죽는다는 말을 했다. 어의는 코웃음을 쳤다.
셋째 날, 정조가 물었다.
"너는 아는 것이 별로 없구나."
"그러하옵니다."
"어제 어의가 말하기를, 네 말은 어린아이도 할 소리라 하였다."
"어의의 말이 옳사옵니다."
"…"
"전하. 소인이 아는 의술은 어린아이 수준이옵니다. 그러나 그 어린아이 수준의 것을 지키면 사람이 열에 하나는 덜 죽사옵니다. 어의는 손을 씻으면 왜 덜 죽는지 소인에게 물었사옵니다. 소인은 답을 모르옵니다. 답을 알아내는 데 앞으로 예순 해가 더 걸리옵니다. 그러나 씻으면 덜 죽는다는 것은 지금 당장 참이옵니다."
정조가 붓끝으로 상을 두드렸다.
"그것을 어찌 증명하느냐."
"세면 되옵니다."
"세?"
"산실 열 곳에서 씻게 하고 열 곳에서 씻지 않게 하고, 죽는 아이와 어미를 세면 되옵니다. 한 해면 답이 나오옵니다."
정조의 손이 멈췄다.
"…사람으로 그런 짓을 하란 말이냐."
한주혁은 그 순간 이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았다.
"전하. 지금도 하고 있사옵니다. 다만 아무도 세지 않을 뿐이옵니다."
그해 시월, 정조는 그를 화성으로 데려갔다.
화성은 아직 공사 중이었다. 성벽은 대부분 올라갔고 문루가 지어지고 있었다. 감동당상 조심태가 나와 맞았고, 총리대신 채제공이 가마에서 내렸다. 일흔여섯의 노인이었다.
정조가 말했다.
"한생. 여기서 무엇이든 하나 보여라. 신하들이 네가 요망하다 하니, 요망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라."
한주혁은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마술을 할 줄 몰랐다. 렌즈로 불을 붙이는 것은 이미 조선 사람들도 알았다. 자석으로 못을 들어 올리는 것은 재주였지 학문이 아니었다.
그는 임금에게 한 가지를 청했다.
"『의궤』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새끼줄 삼백 발과 사람 스무 명을 주시옵소서."
그는 사흘 걸렸다.
먼저 그는 나무 자를 만들었다. 하나가 아니라 스무 개였다. 스무 개를 다 만든 다음, 하나를 골라 기준으로 삼고 나머지 열아홉 개를 그것에 맞춰 다시 깎았다. 그 과정에서 처음 만든 스무 개 중 열넷을 버렸다. 오차가 났기 때문이다.
인부들이 수군거렸다.
"자를 만드는 데 사흘을 쓰네."
"저 양반은 성 쌓으러 온 게 아니라 자 쌓으러 왔나."
한주혁은 그 말을 들었고, 그것이 이 나라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했다.
넷째 날, 그는 스무 명을 열 조로 나누어 성벽 열 구간을 재게 했다. 같은 구간을 두 조가 따로 쟀다. 그리고 두 조의 값이 다르면 다시 재게 했다.
닷새째, 그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임금 앞에 나아갔다.
"『의궤』의 수치와 어긋나는 곳이 열한 군데이옵니다."
조심태의 얼굴이 하얘졌다.
"…무슨 소리요. 의궤는 세 번 검수한 것이오."
"검수하신 것은 압니다. 다만 세 번 다 같은 자로 재셨을 것이옵니다."
"…"
"동장대 아래 여섯 번째 여장에서 서쪽으로 백 자 되는 곳입니다. 장부에는 여장 높이가 다섯 자 두 치로 되어 있으나, 실제는 넉 자 아홉 치 여덟 푼이옵니다. 두 치 두 푼이 모자라옵니다."
"…그것이 무슨 대수요. 두 치라니."
"저 여장 뒤에 서서 총을 쏘는 군사가 있사옵니다."
한주혁이 성벽을 가리켰다.
"두 치가 모자라면, 키가 다섯 자 두 치인 군사는 몸이 드러나옵니다. 그리고 두 치가 왜 모자란지가 더 중요하옵니다."
"…왜 모자라오."
"돌 하나하나가 조금씩 작았기 때문이옵니다. 스물여섯 켜를 쌓았으니 켜마다 한 푼도 안 되는 차이가 쌓여 두 치가 되었사옵니다. 석수의 잘못이 아니옵니다. 석수는 자기 자로 정확히 잘랐사옵니다. 다만 그 자가 도청의 자와 달랐을 뿐이옵니다."
채제공이 지팡이를 짚고 앞으로 나왔다.
노인은 성벽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나머지 열 군데도 그러하오?"
"그러하옵니다. 어긋난 방향이 제각각인 것이 그 증거이옵니다. 누가 훔쳤다면 한 방향으로 어긋나옵니다. 자가 달라서 생긴 것은 이리저리 어긋나옵니다."
채제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임금에게 절했다.
"전하. 신이 팔 년을 이 성에 매달렸사옵니다. 그런데 신은 오늘 처음으로 이 성이 무엇으로 지어졌는지 알았사옵니다."
"…무엇으로 지어졌소, 대감."
"짐작으로 지어졌사옵니다."
그날 밤,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정조가 그를 불렀다.
둘뿐이었다. 승지도 사관도 없었다. 사관이 없다는 것을 한주혁은 나중에야 그 의미와 함께 이해했다.

정조가 술을 따랐다.
"마셔라."
"…소인은 술이 약하옵니다."
"나도 약하다. 마셔라."
한주혁은 마셨다.
정조가 말했다.
"네가 사흘 동안 자를 깎을 때, 내 신하들이 무어라 했는지 아느냐."
"들었사옵니다."
"나도 그리 생각했다."
정조가 잔을 채웠다.
"그런데 오늘 성벽 앞에서, 나는 등이 서늘했다. 나는 이 성을 십 년 계획을 이 년 팔 개월로 줄여 지었다. 팔십칠만 냥을 썼다. 나라 일 년 살림을 여기 쏟았다. 그런데 이 성이 짐작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오늘 처음 온 사내가 사흘 만에 알아냈다."
"…"
"한생. 조선에 짐작으로 된 것이 이 성뿐이겠느냐."
한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조가 잔을 비웠다.
"말하라. 무엇이 필요하냐."
한주혁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여러 번 접혔다 펴진 흔적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지난 넉 달 동안 옥에서, 함거에서, 국청에서 계속 고쳐 썼다.
"소인이 아는 것을 다 적으면 스무 권이 되옵니다. 그러나 다 적을 시간이 없사옵니다. 소인이 하루에 잊는 것이 적는 것보다 많사옵니다. 그러니 소인은 순서만 적었사옵니다."
그는 종이를 폈다.
『만물지서(萬物之序)』라 적혀 있었다.
"이백 년 뒤의 세상은 다섯 기둥으로 서 있사옵니다."
정조가 몸을 기울였다.
"첫째는 불의 알갱이(原子)이옵니다. 돌 한 줌으로 도성을 불태우고, 또 그 돌 한 줌으로 도성을 백 년 밝히옵니다."
"…"
"둘째는 셈틀(計機)이옵니다. 사람 만 명이 백 년 걸릴 셈을 한 식경에 하옵니다. 셋째는 먼 말(電信)이옵니다. 한양에서 말하면 그 자리에서 북경이 듣사옵니다. 넷째는 화학(化學)이옵니다. 돌과 물과 바람으로 없던 물건을 만들어내옵니다. 옷도, 약도, 거름도, 화약도 다 이것에서 나오옵니다. 다섯째는 생명(生命)이옵니다. 역병을 미리 막고, 한 마지기에서 열 배를 거두옵니다."
정조의 손이 떨렸다.
"…그것을 만들 수 있느냐."
"못 하옵니다."
정조가 그를 노려보았다.
"소인이 살아서는 하나도 못 만드옵니다."
"그러면 왜 말하느냐."
"그 다섯에 이르는 사다리는 놓을 수 있사옵니다."
한주혁이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에 다섯 줄이 적혀 있었다.
一. 자(尺) — 온 나라의 자를 하나로 한다
二. 유리(琉璃) — 보고 재고 담을 그릇을 만든다
三. 강수(强水) — 만물을 녹이는 물을 만든다
四. 연장을 만드는 연장(工作) — 기계를 낳는 기계를 만든다
五. 셈(算) — 헤아리는 법을 새로 가르친다
"이 다섯이 없으면 다른 것은 하나도 못 하옵니다. 이 다섯만 있으면 나머지는 조선 사람이 저절로 해내옵니다. 소인 없이도 해내옵니다."
정조가 그 종이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얼마나 걸리느냐."
"열 해이옵니다."
"열 해 뒤에는 무엇이 되느냐."
"열 해 뒤에도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사옵니다."
"…뭐라?"
"열 해 뒤에 조선은 자가 하나가 되고, 유리를 굽고, 강수를 만들고, 나사를 깎고, 셈을 하게 되옵니다. 백성은 아무것도 못 느끼옵니다. 대신들은 돈을 버렸다 하옵니다. 전하께서는 소인을 죽이고 싶어지실 것이옵니다."
정조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 열 해가 지나고 나면."
한주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다음 열 해에 조선은 쇠를 녹이고, 그다음 열 해에 김을 부리고, 그다음 열 해에 번개를 부리옵니다. 사십 년이면 조선은 서양과 나란히 서옵니다."
"사십 년."
"사십 년이옵니다, 전하."
정조가 웃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웃었다.
"…나는 그것을 못 보겠구나."
한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조가 그 침묵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역시 그렇구나."
병진년 삼월, 정조는 밀지를 내렸다.
표면상의 명은 이러했다.
— 삼척 황장봉산을 순심(巡審)하고 재목을 헤아리라. 어사 한주혁에게 마패와 관인을 주고, 강원감사와 삼척부사는 그 요구를 따르라.
그 밑에, 승정원을 거치지 않고 내려간 별지가 있었다.
— 삼척에 국(局)을 두라. 이름은 과학혁신국(科學革新局)이라 한다. 비변사를 거치지 아니하고 나에게 직속한다. 필요한 것은 물어보지 말고 가져다 쓰라. 사람은 반상을 묻지 말라. 다만 세 가지를 어기면 목을 벤다. 첫째 밖에 말하는 자, 둘째 재지 않고 아뢰는 자, 셋째 실패를 감추는 자.
— 그리고 한생에게 이르라. 나는 사십 년을 기다릴 수 없다. 십 년 안에 무엇이든 하나 내 눈으로 보게 하라.
— 만약 십 년 안에 아무것도 없으면, 그때는 내가 너를 벤다.
그 밑에, 승정원을 거치지 않고 내려간 별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