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8부 대공위(大空位)
41화제57장 누설(漏泄)
1958년까지 세계에서 핵무기를 가진 것은 둘이었다.
조선과, 미국이었다.

동맹 다섯 나라 중 미국만 자체 개발에 성공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감독 아래 부분 참여했으며, 독일은 포기했고, 러시아는 1954년에 계획이 좌초했다.
즉 세계는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의 폭탄은 아시아를 지켰고, 미국의 폭탄은 대서양을 지켰다.
그리고 사이에 있는 모든 나라는 아무것도 없었다.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브라질, 나이지리아, 이란, 그리고 막 독립한 사십 개국.
그들은 1940년까지 조선의 식민지였고, 1940년 이후에는 아무의 식민지도 아니었으며, 아무의 보호도 받지 않았다.
최인영은 1919년생이다.
삼척 최씨. 최연의 오라비의 오대손. 최문경의 종손녀.
여덟 대째 유리를 만든 집안의 딸이었고, 아홉 대째로 유리를 만들지 않은 첫 사람이었다.
1941년 국립과학원 입원. 1947년 물리부. 1952년부터 핵무기 설계부.
그녀는 조선에서 폭탄의 내부 설계를 완전히 아는 열아홉 명 중 하나였다.
1958년 이월부터 사월까지 석 달 동안, 최인영은 열한 개국에 서류를 보냈다.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브라질, 나이지리아, 이란, 아르헨티나, 유고슬라비아, 멕시코, 터키, 그리고 일본.
내용은 같았다. 폭탄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 전부였다. 물리적 원리, 임계질량 계산, 기폭 방식, 야금 공정,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 하지 말아야 할 실수 사백스물두 가지의 목록.
마지막 것이 핵심이었다.
원리는 이미 공개된 물리였다. 어느 나라든 십오 년과 국가 예산의 십분의 일을 쓰면 도달할 수 있었다.
최인영이 준 것은 그 십오 년이었다.
그녀는 사월 십구일에 체포되었다.
숨지 않았다. 마지막 서류를 부치고 집에 돌아가 기다렸다.
심문조서는 백사십일 쪽이다. 여기 옮기는 것은 열두 번째 회차의 뒷부분이다.
문 : 귀하는 이것이 반역이라는 것을 아는가.
답 : 압니다.
문 : 사형이라는 것도 아는가.
답 : 압니다.
문 : 귀하의 행위로 인해 앞으로 이십 년 안에 핵무기 보유국이 열 나라가 넘게 된다. 그중 몇은 서로 전쟁 중이다. 그 결과 수천만이 죽을 수 있다. 그것도 아는가.
답 : 압니다. 계산해 보았습니다.
문 : 무엇을 계산했다는 것인가.
답 : 두 가지를 계산했습니다.
문 : 말하라.
답 : 첫째, 지금 상태가 계속될 경우입니다. 세계에 폭탄을 가진 나라가 둘뿐인 상태 말입니다. 이 상태에서 나머지 백사십 개 나라는 그 둘의 처분에 놓입니다. 그들은 어떤 협상에서도 지고, 어떤 분쟁에서도 물러나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백 년 계속될 때의 결과를 추정해 보았습니다.
문 : 결과가.
답 : 우리가 사십 년 전에 했던 것과 같습니다. 이름만 다릅니다.
문 : …
답 : 둘째, 열 나라가 갖게 될 경우입니다. 그 경우 전쟁의 위험이 커집니다. 저는 그것도 압니다. 실수로, 또는 미친 자에 의해, 또는 오해로 터질 확률이 매년 있습니다. 저는 그 확률을 대략 추정해 보았고, 백 년 동안 누적하면 결코 작지 않습니다.
문 : 그런데도 했다는 것인가.
답 : 그런데도 했습니다.
문 : 이유를 대라.
(조서에 공백. 다시 시작된 부분)
답 : …제 종고모님이 최문경 총재이십니다.
문 : 알고 있다.
답 : 그분이 1911년에 저것을 만들자는 표결에서 혼자 반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셨습니다.
답 : 그분이 그때 근거로 삼으신 것이 측명공께서 남기신 세 가지 물음이었습니다. 저는 그 물음을 압니다. 우리 집안에서는 그것을 외우게 합니다.
답 : 첫째, 이 나라는 자기가 죽인 사람의 수를 정확히 아는가.
답 : 둘째, 그 수를 백성에게 숨기지 않는가.
답 : 셋째, 이 나라에서 이것을 만들지 말자고 말하는 사람이 벌을 받지 않는가.
답 : 1911년에 세 가지 다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만들었습니다.
답 : 저는 재작년에 이 세 가지를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1956년의 조선에게 말입니다.
문 : …
답 : 여전히 셋 다 아니었습니다. 사십오 년이 지났는데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답 : 자바에서 몇이 죽었는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압록강에서 죽은 이만 사천삼백구 명의 명부는 아직 기밀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이 방에 앉아 있습니다.

답 : 셋째 물음의 답이 바로 이 방입니다.
(공백)
문 : 귀하의 논리대로라면 폭탄을 없애야 하지 않는가. 왜 남에게 주는가.
답 : 없앨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답 : 우리는 없애지 않습니다. 백 년이 지나도 없애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없애자는 주장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답 :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우리를 특별하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답 : 우리가 특별한 한 우리는 저 세 가지 물음을 다시 묻지 않습니다. 물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자는 반성하지 않습니다. 반성은 언제나 특별하지 않은 자가 합니다.
(공백)
문 :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답 : 있습니다.
답 : 측명공께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부탁이 하나 있다고 우리 집안에서는 전합니다. 봉인된 글에 있다고 하는데 저는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한 마디만 전해 옵니다.
답 : 재라.
답 : 저는 재었습니다.
답 : 저는 우리가 특별한 나라라는 계산과, 우리가 평범한 나라라는 계산을 각각 해 보았고, 두 번째가 낫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답 : 그 계산이 틀렸을 수 있습니다. 저는 제 계산에 오차를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그것도 압수 서류에 있을 것입니다.
답 : 저는 그것을 확인하십사 부탁드립니다. 저를 죽이시더라도 그 계산은 확인해 주십시오.
답 : 틀렸으면 틀렸다고 적어 주십시오.
답 : 그것 하나만 해 주시면 됩니다.
최인영은 1958년 십일월 이십사일에 처형되었다.
서른아홉이었다.
미혼이었고 자식이 없었다. 조카가 넷 있었다.
그중 하나의 손녀가, 이 사료집의 편찬자다.
『세계 핵무기 보유 현황』 국제원자력기구, 1978년
— 1958년 2개국. 1963년 4개국. 1968년 6개국. 1973년 9개국. 1978년 11개국.
본 기구는 1958년 이후의 급속한 확산이 단일 정보 유출 사건에 기인한다는 다수 견해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1958년 이후 각국의 개발 소요 기간이 이전 대비 평균 9.4년 단축되었음은 사실이다.
최인영이 죽고 나서 세계가 어떻게 되었는가.
폭발하지 않았다.
이것이 가장 놀라운 사실이다.
1958년에서 2027년까지 육십구 년 동안, 핵무기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세 번 쓰일 뻔했다. 1971년 남아시아, 1983년 중동, 그리고 2004년의 사고. 세 번 다 마지막 순간에 멈췄다.
역사학자들은 지금도 이것을 두고 다툰다. 확산이 억제를 만들었다는 쪽과, 우리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쪽이 있다.
최인영의 계산은 후자 쪽에 가까웠다. 그녀는 자기 서류에 이렇게 적었다.
— 이 선택의 기대 결과는 나쁘다. 다만 다른 선택의 기대 결과가 더 나쁘다.
— 나는 이것을 좋은 계산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덜 나쁜 계산이라고 주장한다.
— 오차는 크다. 크기를 함께 적는다.
조선이 어떻게 작아졌는가
조선은 지지 않았다. 조선은 따라잡혔다.
1940년, 조선의 기술 우위는 분야에 따라 십오 년에서 삼십 년이었다.
1960년에는 오 년에서 십오 년.
1975년에는 영에서 팔 년.
1990년에는, 몇 분야에서 조선이 뒤졌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사람이 늘지 않았다.
전쟁 이후 조선 본토 인구는 사천육백만에서 육천이백만이 되었다가 다시 줄기 시작했다. 2027년 현재 오천사백만이다.
같은 기간 세계 인구는 세 배가 되었다.
『만국형세도』가 백구십 년 전에 적은 문장이 마침내 완결되었다. — 우리가 앞선 것은 시간이지 크기가 아니다.
둘째, 목록이 바닥났다.
측명공이 남긴 『만물지서』는 마흔 권이었다. 그 마흔 권의 마지막 미해결 항목이 풀린 것은 1966년이다.
그 뒤로 조선은 처음으로 지도 없이 걷게 되었다.
『국립과학원 창립 백칠십주년 기념 연설』(1966), 원장 김호섭.
— 오늘 우리는 『만물지서』의 마지막 물음에 답했습니다.
— 백칠십 년 동안 우리는 저 마흔 권을 앞에 놓고 걸었습니다. 우리는 늘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었습니다.
— 오늘부터 우리는 모릅니다.
— 여러분. 오늘부터가 진짜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 같은 조건에서 걷습니다.
— 나는 이것이 두렵고, 동시에 이것이 우리가 백칠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정직해진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제도가 늙었다.
『삼척약조』 제2조 — 실패를 벌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하지 않은 것은 벌한다 — 는 조선의 심장이었다.
1970년대부터 이 조항이 형식만 남았다.
실패는 여전히 기록되었다. 다만 기록되기만 했다. 아무도 읽지 않았다. 국립과학원의 실패 기록은 1974년에 이르러 연간 사만 건이 넘었고, 그것을 읽고 분류하는 인력은 열두 명이었다.
기록은 남았고 지식은 흩어졌다.
1981년의 감사 보고서에 이런 대목이 있다.
— 본원은 1968년부터 1979년까지 동일한 실패를 서로 다른 부서에서 총 아홉 차례 반복하였다. 매번 정확히 기록되었다. 아홉 번 다 다른 사람이 처음 겪는 일로 여겼다.
— 측명공께서 세우신 제도는 기록하는 제도였지 읽는 제도가 아니었다. 우리는 백팔십 년 동안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였다.
1981년의 감사 보고서에 이런 대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