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7부 대전(大戰)
34화제46장 미분(未分)
셋 — 세 가지 물음
최문경: 세 가지 다 아니오.

장인철: 총재. 그러면 만들지 말자는 말씀입니까.
최문경: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소.
장인철: 동맹이 육 년 안에 이것을 만듭니다. 바네르지가 갔습니다. 그들은 압니다.
최문경: 아오.
장인철: 그들이 먼저 가지면 우리는 끝납니다.
최문경: 그것도 아오.
장인철: 그런데도 만들지 말자는 것입니까.
최문경: …
장인철: 총재. 저 글을 쓰신 분이 오늘 이 자리에 계셨다면 어느 쪽에 표를 던지셨겠습니까.
최문경: 그분이라면 만들지 말자 하셨을 것이오.
장인철: …
최문경: 그리고 지셨을 것이오. 그분은 늘 지셨소.
표결.
찬성 넷. 반대 하나.
찬성: 장인철, 박승규, 남기환, 아오키 도모에.
반대: 최문경.
『미분』 제10항 다음 장 뒷면에, 회의가 끝난 그날 밤 다섯 사람의 이름이 적혔다.
측명공이 부탁한 대로.
그 아래에 최문경이 한 줄을 덧붙였다.
— 우리는 세 가지 물음에 모두 아니라고 답했고, 그러고도 만들기로 하였다. 이 사실을 감추지 아니한다.
— 이것이 우리가 저분께 지킬 수 있었던 유일한 약속이다.
『제국 과학원 특별사업 제3호』 부록 제7권 표지
이 사업으로 죽은 자의 명부다. 이만 사천삼백아홉 명이다. 이름을 알 수 있는 자는 이름을 적었다. 알 수 없는 자는 알 수 없다고 적었다. 알 수 없는 자가 육천이백열한 명이다. 이 육천이백열한 명의 이름을 우리는 끝내 찾지 못했다. 그것을 여기 적어 둔다. — 편찬 책임 최문경
돌더미가 도는 것과 폭탄을 만드는 것 사이에는 이십 년이 있었다.
이십 년이 걸린 이유는 물리가 아니었다.
물리는 이미 다 알았다. 신해년 그 창고에서 끝났다.
이십 년이 걸린 이유는 양(量)이었다.
하나 — 우라늄은 쓸 수 없다
폭탄에 쓸 수 있는 우라늄은 천연 우라늄의 백사십분의 일뿐이다.
무게가 거의 같은 두 가지가 섞여 있는데, 백 근과 백 근 하고 반 푼의 차이다. 화학으로는 나뉘지 않는다. 화학은 무게가 아니라 성질을 보기 때문에, 성질이 같은 둘은 화학에 보이지 않는다.
『미분』 제3항 — 같은 종류인데 무게가 다른 것이 있다. 이것을 반드시 확인하라. 이것이 뒤에 가장 중요해진다 — 이 백 년 만에 그 뜻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나누는 방법은 있었다. 우라늄을 기체로 만들어 미세한 벽을 억지로 통과시키면 가벼운 쪽이 아주 조금 더 빨리 지나간다. 아주 조금이다. 한 번 통과에 천분의 사.
필요한 통과 횟수는 삼천 회였다.
삼천 개의 방과 삼천 대의 압축기와, 우라늄 기체가 닿아도 녹지 않는 벽과 관과 이음매가 필요했다. 그 기체는 불소를 여섯 개 달고 있어서 닿는 것을 전부 태웠다.
조선은 이 길을 육 년 걸었고, 계해년(1923)에 포기했다.
포기 사유가 보고서에 적혀 있다.
— 이 방법으로 폭탄 하나 분량을 얻으려면 제국 전체 발전량의 삼분의 일을 십사 년 동안 써야 하옵니다.
둘 — 그러므로 다른 길
다른 길이 있었다.
돌더미 안에서 우라늄이 중성자를 맞으면, 쪼개지지 않고 그것을 삼켜 다른 것이 되는 경우가 있다. 자연에 없는 새 원소다. 조선은 그것을 음금(陰金) 이라 불렀다. 그늘의 쇠다.
플루토늄이다.
음금은 우라늄보다 쉽게 쪼개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음금은 화학으로 나눌 수 있다. 우라늄과 다른 원소이기 때문이다.
즉 돌더미를 오래 돌린 뒤 그 안의 쇳덩이를 꺼내 화학으로 음금만 뽑아내면 된다.
간단하다.
간단하지 않은 것은 그 쇳덩이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었다.
돌더미에서 갓 꺼낸 우라늄 덩어리 옆에 서 있으면 사람이 이십 분 안에 죽는다.
보이지 않고, 냄새가 없고, 아프지 않다. 그냥 이틀 뒤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나흘 뒤에 피를 토하고 이레 뒤에 죽는다.
조선은 이것을 을축년(1925)에야 정확히 알았다.
그전 사 년 동안, 조선은 사람을 시켰다.
셋 — 압록강
압록강 상류 혜산 위쪽, 지도에 없는 골짜기에 시설이 섰다.
제1구역: 발전소 여섯 개. 총 출력 백사십만 킬로와트. 오십천 첫 발전소의 만 팔천 배다.
제2구역: 돌더미 열두 기. 세계의 나머지 전부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제3구역: 화학 분리 시설. 조선인들은 이곳을 재실(灰室) 이라 불렀다.
재실이 문제였다.
재실의 일은 이러했다.
돌더미에서 꺼낸 쇳덩이를 물에 담가 반년을 식힌다. 그것을 강수와 질산에 녹인다. 녹인 물에서 음금만 골라 뽑는다.

전 과정이 콘크리트 벽 뒤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그런데 조선은 처음에 그것을 몰랐다.
임술년(1922)부터 갑자년(1924)까지, 재실의 작업은 사람이 직접 했다.
납을 두른 옷을 입고, 긴 집게로 조작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충분하지 않았다.
『특별사업 제3호 부록 제7권』, 사망자 명부의 구성.
| 사인 | 인원 |
|---|---|
| 건설 중 사고 (낙반·추락·익사·폭발) | 9,842 |
| 광산 (우라늄 채굴, 진폐·낙반) | 5,113 |
| 재실 관련 급성 질환 | 3,067 |
| 재실 관련 만성 질환 (10년 내 사망) | 4,890 |
| 화재·화학 사고 | 987 |
| 기타·불명 | 410 |
| 합계 | 24,309 |
재실 관련 사망자 칠천구백오십칠 명 중, 조선 본토 출신은 사백열두 명이었다.
나머지 칠천오백사십오 명은 만주인, 일본인, 그리고 남양에서 데려온 계약 노무자였다.
배정한 것은 통계원이었다.
배정 원칙은 신축년 남양 인광석 문서와 같았다.
넷 — 아무도 몰랐다
가장 무거운 사실은 이것이다.
재실에서 일한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만지는지 몰랐다.
보안 등급 때문이었다. 『삼척약조』 제5조 — 바깥에 말하지 아니한다 — 가 백삼십오 년 뒤에 이르러, 자기가 죽어 가는 이유를 자기가 알지 못하게 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
노무자들은 자기들이 다루는 것을 뜨거운 흙이라 불렀다. 뜨겁지 않은데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기록에 없다.
병들면 시설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는 결핵이라고 진단했다. 결핵 치료를 받다 죽었다.
유족에게는 결핵으로 통보되었다.
무진년(1928) 봄, 최문경이 압록강에 왔다.
여든여섯이었다. 그해에 그녀는 이미 제국 과학원 총재직을 내려놓았고, 명예직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재실 병원 병동을 이틀 동안 돌았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 의정원에 문서 하나를 냈다.
제목은 「환자에 관하여」였고, 세 쪽이었으며, 요구 사항은 세 가지였다.
一. 재실 및 관련 시설의 모든 노무자에게 그들이 다루는 물질의 위험성을 고지할 것.
二. 이미 병든 자와 죽은 자의 유족에게 진짜 사인을 통보할 것.
三. 사망자 명부를 작성하고 그 명부를 공개할 것.
의정원 표결.
제1항: 부결. 찬성 삼십일, 반대 육십팔.
제2항: 부결. 찬성 이십사, 반대 칠십오.
제3항: 조건부 가결. 찬성 오십이, 반대 사십칠. 단, 명부는 작성하되 공개하지 아니한다.
최문경은 그 조건부 가결을 받았다.
그리고 남은 사 년 동안, 여든여섯의 노인이 압록강 시설의 사망자 명부를 직접 편찬했다.
병원 기록과 노무 계약서와 급여 대장과 유족 통보서를 대조했다. 계약서에 이름이 없는 자가 많았다. 남양에서 온 노무자 중에는 조선식 번호만 붙은 자가 육천이 넘었다.
그녀는 그 육천을 찾으려고 사 년을 썼고, 찾지 못했다.
명부의 표지에 그녀가 적은 문장이 그것이다.
— 이 육천이백열한 명의 이름을 우리는 끝내 찾지 못했다. 그것을 여기 적어 둔다.
최문경은 임신년(1932) 겨울에 죽었다.
아흔이었다.
죽기 전에 그녀는 자기 유해를 삼척에 묻어 달라고 했다. 도계, 측명공의 무덤 옆. 백십오 년 전에 죽은 그녀의 고모할머니 최연의 무덤 옆이기도 했다.
유언장에 한 줄이 더 있었다.
— 내 이름을 비석에 새기지 말고, 내가 못 찾은 육천이백스물한 사람의 자리를 비워 두라.
지금 그 자리에 서면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화강암 판 하나가 있다.
다섯 — 신미년 팔월
신미년(1931) 팔월 십일일 오전 다섯 시 사십이 분.
캄차카반도 남단, 조선 제국 유황 채굴 조차지의 무인 지대.
최초의 핵폭발 실험.
기록된 관측 사항.
— 빛이 먼저 왔다. 소리보다 훨씬 먼저 왔다. 십사 리 밖의 관측소에서, 검은 유리 두 겹을 통해서도 눈이 아팠다.
— 빛이 사라진 자리에 공이 있었다. 처음에는 흰색이었고 그다음에 노란색이 되었고 그다음에 붉어졌다. 공이 커지면서 위로 떠올랐다.
— 사십일 초 뒤에 소리가 왔다. 그리고 바람이 왔다. 관측소 지붕이 날아갔다.
—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 버섯 모양이 되었다. 높이 십일 리에 이르렀다.
— 폭발 지점에는 눈이 없었다. 눈이 아니라 땅이 없었다. 지름 이백사십 보의 웅덩이가 생겼고 바닥이 유리처럼 굳어 있었다.
— 그 유리는 초록빛이었다.
관측소에는 열아홉 명이 있었다.
병기국 총제조 박승규가 처음 입을 열었다.
기록에 그의 말이 남아 있다.
— …이것을 사람에게 쓰는 것은 안 되겠소.
옆에 있던 참모가 대답했다.
— 총제조 각하. 그러면 무엇에 씁니까.
박승규는 대답하지 못했다.
박승규는 대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