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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제44장 이름을 파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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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보안원 창설 취지』 무자년(1888)

— 우리 나라의 힘은 감추는 데서 나오지 아니하고 나누는 데서 나온다. 『삼척약조』 제4조가 그것이다. 혼자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 그런데 나눈 것은 새어 나간다. 나누는 것과 새는 것은 같은 성질의 일이며, 하나를 막으면 다른 하나도 막힌다.

본원은 이 모순 위에 세워진다. 본원의 임무는 새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새는 속도를 나누는 속도보다 느리게 하는 것이다.
정조유신 32화 제44장 이름을 파는 자들 — 헤더컷

조선의 지식은 새게 되어 있었다.

설계가 그랬다.

『삼척약조』 제4조 — 혼자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모든 지식은 문서로 이관된다 — 는 조선을 강하게 만든 조항이다. 한 사람이 죽어도 지식이 사라지지 않았고, 한 부서가 알아낸 것을 다른 부서가 즉시 썼다.

그리고 그 지식은 문서로 존재했고, 문서는 다리가 없지만 사람은 있다.

『삼척약조』 제5조 — 바깥에 말하지 아니한다. 어기는 자는 목을 벤다 — 는 그 구멍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제4조와 제5조는 백사십 년 동안 싸웠다.

하나 — 새어 나간 것들

1889년, 셰필드 사건.

조선 야철소의 부제조 하나가 영국으로 갔다. 그가 가져간 것은 인이 든 광석으로 강철을 만드는 염기성 내벽 배합이었다.

영국은 그것을 이미 열한 해 전에 자력으로 알아낸 뒤였다.

이 사건이 조선에서 유명한 것은 유출된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남긴 편지 때문이다.

— 나는 삼십일 년 동안 국(局)에서 일했다. 내가 만든 것에 내 이름이 붙은 적은 한 번도 없다.
— 나는 돈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영국에서 이것을 내 이름으로 발표할 것이다.
— 이 나라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다만 하나를 주지 않았다.

1897년, 나가사키 유출.

제국 격물소에서 진공관 제작 공정을 다루던 일본인 기사가, 독일 영사관을 통해 자료를 넘겼다.

넘긴 것은 실질적이었다. 유리와 금속을 새지 않게 봉하는 배합. 조선이 삼십 년 걸려 얻은 것이었다.

그는 체포되어 그해에 처형되었다.

『삼척약조』 제5조에 따른 것이었다.


이 처형이 뒤에 값을 치른다.

처형된 기사의 이름은 마쓰이 요시로였다. 서른셋이었다. 나가사키 고등공업학교 1회 졸업생이었다.

그의 동기생 중 하나가 아오키 겐이치로다.

1903년 졸업식 훈사에서 아오키가 한 말 — 제군이 그 일을 할 때, 제군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 하라 — 은 마쓰이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이 훈사를 듣고 자란 세대가, 1938년에 제국을 그만두었다.


1911년~1923년, 「긴 사람」.

대서양동맹이 조선 화학원에 심은 사람이다.

봄베이 출신으로 위장한 영국계 인도인이었다. 정식 시험을 쳐서 합격했고, 십이 년 동안 조선의 유기합성 연구를 통째로 넘겼다.

발각된 것은 1923년이다. 그가 실수해서가 아니라, 조선의 통계 기계가 그를 찾아냈다.

문서 대출 기록을 교차 분석하니, 자기 부서와 무관한 문서를 열람한 횟수가 동료 평균의 십사 배였다.

기계가 사람을 잡은 첫 사례다.


1924년, 처음으로 조선이 훔쳤다.

프랑스 항공기 제조사에서 고출력 엔진의 밸브 합금 조성을 빼냈다.

조선사에서 이 사건은 오래 언급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조선이 남에게 배울 것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제국 병기국 내부 각서』 1924년.

— 신들이 아뢰옵기 부끄러우나, 이번에 얻은 자료는 우리가 팔 년 동안 못 푼 문제를 풀어 주었사옵니다.
— 백이십구 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가 남의 것을 필요로 하였사옵니다.
— 신들은 이 사실이 이 나라의 어느 문서에도 기록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사옵고, 그 마음이 부끄러워 이 각서를 남기옵니다.

둘 — 상(賞)이라는 무기

동맹이 조선에서 사람을 빼내는 데 쓴 가장 효과적인 도구는 돈도 협박도 아니었다.

이름이었다.

1901년에 만들어진 그 상이 무엇이었는지는 앞에서 적었다. 여기서는 결과만 적는다.

1901년부터 1938년까지 삼십칠 년 동안, 그 상의 과학 부문 수상자는 백열두 명이었다.

그중 오십사 명이 조선 제국 출신이었다.

그중 열아홉 명이 수상 후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조선은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시도는 했다.

1908년, 조선도 상을 만들었다. 「측명상(測明賞)」이다. 상금은 그 상의 세 배였다.

효과가 없었다.

이유를 조선 제국 과학원의 한 각서가 정확히 짚는다.

정조유신 32화 제44장 이름을 파는 자들 — 전환컷

— 우리가 주는 상은 우리가 주는 것이므로, 받은 자는 여전히 우리 안의 사람이다.
— 저들이 주는 상은 세계가 주는 것이다. 받은 자는 세계의 사람이 된다.
— 우리가 이것을 이기려면 세계가 우리 것이어야 한다.
— 그리고 우리가 세계를 우리 것으로 만들려 할 때마다 세계는 우리를 더 미워한다.
— 신들은 이 문제에 답이 없다고 아뢰옵니다.

셋 — 그리고 진짜 유출

조선에서 밖으로 나간 것 중 가장 큰 것은 스파이가 가져간 것이 아니다.

조선이 판 것이다.

조선은 백사십 년 동안 세계에 물건을 팔았다. 유리와 약과 염료와 기계와 전신 장비를.

물건은 뜯어볼 수 있다.

『대서양동맹 공동연구위원회 보고』 1904년.

— 우리 연구의 상당 부분은 조선 제품을 분해하는 일입니다.
— 조선은 만드는 법을 팔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건을 팔면 만드는 법의 절반은 따라옵니다.
— 물건은 그 물건을 만든 공정의 화석입니다. 우리는 화석을 읽고 있습니다.

1832년 의정원 표결에서 측명공이 진 그 논쟁 — 감출 수 없다. 지식은 물건이 아니다 — 이 칠십 년 만에 이렇게 증명되었다.

그는 옳았다.

그리고 그가 이겼더라도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 그의 주장은 감출 수 없으니 팔자는 것이었고, 파는 대신 얻자는 것이었다.

조선은 감추면서 팔았다.

둘 중 최악이었다.


『대서양동맹 경제전략위원회 기밀보고』 1921년 3월 — 「조선 문제의 최종적 해법에 관하여」

— 우리는 조선을 군사적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이 결론은 페르시아 전역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우리는 조선을 기술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이 결론은 삼십오 년의 노력 끝에 확인되었습니다.

— 그러므로 남은 방법은 하나입니다. 조선의 목을 조르는 것입니다.

다행히 조선의 목은 좁습니다.

페르시아 전쟁은 1915년에 끝났다.

강화조약에서 조선은 원하는 것을 다 얻었다. 페르시아 남부 유전, 카스피해 남안, 그리고 배상금.

그리고 그 뒤 십오 년 동안, 조선은 서서히 굶어 갔다.

여덟 가지

조선에 없는 것은 여덟이었다.

물질쓰임조선 자급률(1920)
유황강수 → 화학 전체18%
고무절연·타이어·밀폐4% (보르네오)
석유연료·윤활·화학31% (수마트라·페르시아)
역청탄코크스 → 강철44% (만주)
백금촉매0%
주석도금·합금22%
인광석거름·화학61% (남양)
텅스텐절삭공구·장갑91% (영월)

이 여덟 중 다섯이 남의 땅에 있었고, 그 남의 땅 중 넷을 조선이 이미 갖고 있었다.

문제는 나머지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실어 오는 바닷길이었다.


1919년부터 대서양동맹은 조선을 조르기 시작했다.

방법은 세 가지였고, 셋 다 전쟁 행위가 아니었다.

첫째, 사지 않는다. 동맹 오국이 조선 제품 관세를 단계적으로 올렸다. 1919년 12퍼센트, 1922년 40퍼센트, 1926년 85퍼센트. 조선 염료와 약품이 서양 시장에서 밀려났다.

둘째, 팔지 않는다. 협약 제5조의 전면 발동. 여덟 가지 물자의 대조선 수출이 전면 금지되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아팠던 것 — 대신 판다.

동맹은 조선이 지배하지 않는 나라들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시암, 남미, 아프리카. 조선 궤간 대신 동맹 궤간을 깔아 주고, 조선 결제망 대신 새로 만든 「대서양 어음교환소」를 쓰게 했다.

경위망이 처음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조선의 대답 — 없으면 만든다

조선은 굴복하지 않았다.

대신 조선의 화학원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값비싼 십 년을 시작했다.

유황 — 임술년(1922) 해결.

황철석(黃鐵石)을 태워 아황산가스를 얻는 방법. 조선에 황철석은 있었으나 품위가 낮아 백 년 동안 버려 두었다. 이제 그것을 태웠다. 광석 백 톤에서 유황 오 톤이 나왔다. 비효율의 극치였으나 남의 손을 벗어났다.

이것 하나로 조선의 목숨이 붙었다.

고무 — 계해년(1923) 해결.

알코올에서 부타디엔을 얻고 그것을 이어 붙여 고무를 만들었다. 천연 고무보다 질이 떨어졌고 값이 세 배였다. 그러나 됐다.

석유 — 갑자년(1924) 부분 해결.

석탄에 수소를 붙여 기름을 만드는 법. 원리는 단순하고 실행은 지옥이었다. 이백 기압, 사백오십 도, 촉매. 암모니아 공장의 기술이 그대로 전용되었다.

문제는 셈이었다.

석탄 삼 톤을 태워서 기름 한 톤을 얻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다시 석탄 두 톤어치의 열이 들었다.

『화학원 연보』 제83호에 이 사업의 총평이 있다.

— 우리는 오늘 기름을 만들었다. 값은 페르시아 원유의 네 배 반이다.

— 우리는 이것을 팔 수 없다. 아무도 사지 않는다.

— 우리는 이것을 쓸 수만 있다. 그리고 쓴다는 것은 이 나라가 이 기름을 쓰는 만큼 가난해진다는 뜻이다.

— 신들이 아뢰옵니다. 이 사업은 성공이 아니라 연장(延長)이옵니다. 우리는 굶어 죽는 것을 굶는 것으로 바꾸었을 뿐이옵니다.

백금 —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조선 땅에 백금은 없었다. 촉매를 니켈과 철로 대체하는 연구가 이십 년 계속되었고, 일부는 됐고 일부는 안 됐다. 특히 질산 합성의 촉매는 끝내 백금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은 백금을 밀수했다. 러시아 우랄에서 나온 것이 여덟 손을 거쳐 조선에 들어왔다. 값은 정가의 열두 배였다.

조선은 백금을 밀수했다. 러시아 우랄에서 나온 것이 여덟 손을 거쳐 조선에 들어왔다. 값은 정가의 열두 배였다.